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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아름다움 찔레꽃[이만훈의 시평세평] 고향의 다른 이름 … 친숙하고 정겨운 대상
이만훈 전 중앙일보 라이팅 에디터  |  jnuri@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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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24  09: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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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과 산을 다니노라면 제법 그윽한 향기에 정신이 번쩍합니다. 밭머리에 퉁그러지듯 버림받은 돌무지나 산비냥 서덜 끝자락에 멋대로 엉킨 채 소복하니 무리지어 핀 찔레꽃 때문이죠. 매화(梅花)가 아니더라도 암향(暗香)이 부동(浮動)하는 게 장난이 아닙니다.

사는 곳이 외진 탓에 사람이 그리워서인가, 향기로라도 부르려는 듯 합니다. 바람기라곤 전혀 없음에도 지나는 이마다 고개를 돌리게 해 붙잡는 품이 눈물겹습니다.

찔레꽃은 곱지만 화려하진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예나 지금이나 '화초'로는 축에도 끼지 못하는 신세죠. 찔레에서 나온 장미가 '꽃의 여왕'으로 대접받는 걸 생각하면 짠할 정도입니다. 장미가 신라 때부터 등장해 시가(詩歌) 등 예술적 탐미(貪美)의 대상이었던 데 비해 찔레는 거의 찾아볼 수없으니까요. 그나마 시에 등장할 때도 세시풍속에 따른 농사의 지표로 쓰일 뿐이었습니다.

'해마다 밭머리에 흰 눈이 날린 듯하고(每年塍塹雪粉粉)/짙고도 맑은 향기 여기저기서 풍겨오네(馥郁淸香遠近聞)/절로 피고 짐을 뉘라서 다시 즐기랴(自落自開誰復賞)/농삿꾼에게 땅 갈고 김매는 철 알게 할 뿐(田家只用候耕耘)'

조선 현종 때 문인으로 연행록(燕行錄)의 선구자이기도 한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ᆞ1658~1721) 의 《야장미(野薔薇)》란 시입니다.

'야장미'란 우리 말로 하면 '들장미'죠. 찔레나무를 일컫는 말인데, 우리는 이 시를 통해 그 시절 사람들이 찔레를 어떻게 여겼는지 미뤄 알 수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 때문에 대다수 민초(民草)들에겐 더 정겨운 대상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차피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민초들한테는 완상(玩賞)이란 사치일 뿐일 테니 그저 일하러 오가다 풀숲광에 수더분하게 핀 꽃을 보며 지친 맘을 달랬겠지요. 더구나 그건 일부러 심은 것도 아니고, 반(半) 품이라도 들여 가꾼 것도 아닌 데도 한껏 위로를 주는 존재이기에 더욱 고맙고 정겨웠을 테고요. 그러기에 찔레꽃은 유별난 그 무엇이 아니라 아주 친숙한 존재요, '고향'의 다른 이름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때문에 이 땅에 뿌리를 둔 사람들한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데 아마 이만한 것도 별로 없을 겁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언덕 우에 초가삼간 그리~ㅂ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민족사이에 아리랑만큼이나 사랑받는 노래가 바로 백난아(白蘭兒ᆞ1927~92)의《찔레꽃 》인 것도 그 때문이죠.

일제치하인 1941년 발표된 이 노래는 '찔레꽃 '이란 노랫말이 '고향' '초가삼간' 등과 함께 어우러져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고향을 떠난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고, 지금도 술자리마다 빠지지 않고 불리는 명곡이니까요.

찔레꽃은 하얀꽃뿐인데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고향'이라고 한 가사때문에 식물학적으로 그르니, 마니 하는 논쟁과 함께 반공(反共)의 국시(國是)에 어긋난다며 한 때 금지곡이 되기도 했던 내력이 이 노래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기도 했죠.

사실 '붉은 찔레꽃'관련 식물학적 논란은 작사가가 남녁에서 '찔레'라 부르는 해당화(海棠花)를 그리며 사투리대로 쓴 것이란 게 정설입니다.

한데 10여년 전 전남 해남에서 진짜 붉은 찔레꽃(사진 아래)이 발견됐다고 해 진위를 놓고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한 상태입니다.

   
 
덩굴장미라느니, 월계화의 일종이니 반론이 만만찮은데 이미 버젓이 상품화해 유통되고 있으니 여전히 헷갈릴 따름입니다.(*꽃모양으론 영락없는데...) 진짜 '붉은 찔레꽃'이라면 '블랙 스완(black swanᆞ검은 백조) '만큼이나 놀라운 일이라니 그럴만도 하지요.

어쨌거나 찔레꽃 사랑이 오죽했으면 이 같은 논란까지 화제거리가 되고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토록 한민족이 찔레꽃을 좋아하는 까닭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우리네 특유의 미감(美感)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화려하고 짙은 향기를 좋아하는 서양인들이나 중국ᆞ일본인들과는 달리 한민족은 전통적으로 옅은 빛깔과 은근한 향기를 좋아했으니까요. 가을 박꽃이나 마찬가지로 하얀 찔레꽃의 질박한 아름다움이야말로 유난히 흰옷을 즐겨입었던 민족의 정서와도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다 특히 서민들에겐 찔레꽃과 또 다른 공감요소가 있죠.

그건 다름아니라 찢어지게 가난하던 아픈 추억의 공유이기도 합니다. 찔레꽃이 필 무렵은 보릿고개가 한창인 계절이라 찔레꽃 자체가 배고픔의 고통을 예고하는 메신저나 매한가지였으니까요.

찔레꽃이 필 때면 안타깝게도 늘 가뭄이 들어 '찔레꽃 가뭄은 꿔다 해도 한다'는 속담마저 있을 정도로 고통을 주었죠.(*옛날엔 가뭄을 초목을 태워버리는 毒龍, 즉 強鐵의 출현으로 여겼답니다!)

그래서 찔레꽃이 피면 꿈에라도 사돈 보기가 무섭고,또 그러니 무남독녀를 건너 마을에 시집보낸 영감조차 차마 갈 엄두를 못내고 혼이 나간듯 멍하니 딸네를 바라다 볼 수밖에요.

가객 장사익(張思翼)이 목이 터지도록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밤새워 울었지'를 외쳐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찔레꽃이 다른 한편으론 고맙기도 했지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꽃잎을 한웅큼 따서 입에 넣을라치면 아쉬우나마 배고픔을 잠시 잊을 수 있었으니까요. 거기에다 새 순인 찔레의 껍질을 벗겨 씹으면 달작지근해 주전부리로도 그만이었거든요.

   
▲ 이만훈 전 중앙일보 라이팅 에디터.
그래서 이런 노래도 생겨났죠.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이연실의 《찔레꽃 》1절)

가시가 많아 잘 찔린다고 해 찔레란 이름을 얻었다지만 우리의 아팠던 시절을 보드랍게 위무해주는 찔레꽃.

그래서 찔레꽃은 흔하면서도 늘 귀한 존재입니다, 우리네 마음엔-.  [제이누리=이만훈 전 중앙일보 라이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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