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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25) 모르는 사람 앞에선 몸이 떨릴 정도의 불안함

 

K씨는 50대 부인이다. 대인관계 공포가 있다고 한다. 작은 호텔 프론트 업무를 보고 있는데 내부 전화벨이 울리면 받기가 불안해진다. “네, ooo입니다.”라는 말도 제대로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덜덜 떨며 우는 둣한 목소리에 상대방이 의아하게 생각할 게 틀림없다.

 

최근 교회에서 작은 직책을 맡겼는데 걱정이 많다. 여러 사람 앞에서 성경을 읽는다거나 발표를 해야 할 때 보나마나 목소리도 그렇고 온 몸을 떨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도 말은 안했지만 사람들이 너무 이상하게 봤을 거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평소 친한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아무 걱정이 없다. 잘 모르는 사람이거나 서로 얼굴만 아는 사이 정도에선 목소리가 달라지고 심지어 몸을 떨기도 한다. 무섭다. 구체적으로 누구라고 말하기 싫지만 요즘은 특별히 힘든 사람이 두 명 있다. 만날 때마다 불안하고 두렵다. 실제로 몸도 떤다.

 

둘 다 굉장히 억세고 냉랭한 사람이다. 친하고 싶어 다가가는데 번번이 거절당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도 나를 친하게 대해주었으면 하고 다가선다. 불안하고 두렵고 떨면서. 어떻게 보면 어이없는 일이다. 그 사람들에게 K씨가 잘못한 것도 없고 아쉬운 것도 없을뿐더러, 막말로 무시해 버려도 그만인 사람들이다.

 

남편과 아들 하나 해서 세 식구다. 남편은 일 때문에 2년 전부터 중국에 가 있다. K씨는 5남매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살아계신다. 어릴 때 상처가 많았다. 부모님에게 한 번도 칭찬을 못 받아보았다. 뭘 해도 못했다고만 야단쳤다. 다른 형제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놀림 받고, 욕 듣고, 매 맞고. 아버지도 그랬지만 어머니가 특히 심했다. 나이 들면서도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더라.

 

진단 기준으로만 보면 사회신경증(예전에는 사회공포증, 대인공포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한다거나 주시를 받는 상황에서 어떤 것을 수행해야 할 때 불안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만 들어 수행불안증이라고 한다.)이 당장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특별하게 어떤 사람에게 보이는 신경증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K씨가 인과론처럼 말하지도 않았고 단정할 수도 없다. 연상 흐름에서 심리적 현실을 추정하는 거다. "심리적 현실"에선 K씨가 특히 힘들어 하는 그 사람(특정인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어떤 사람에게 K씨만이 느끼는 독특한 메타포가 전부다)은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던 어린 K에게 냉랭하게 야단치던 부모다, 어머니다. K씨가 거절당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이유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몸을 떨 정도로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이유기도 하다.

 

​K씨가 정신치료(정신분석적 면담치료를 정신치료라고 한다)를 받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난 개원해서도 나름 꾸준히 해 왔지만 작년 초에 종결한 분을 마지막으로 정신치료는 하지 않기로 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개인 사정이다. 언제까지라고 정해지진 않았지만 앞으로도 아마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정신치료를 권유하거나 이끌어내지 않았다. 정신치료가 간절한 사람들은 소개를 해 줄 뿐이다. 어쩌면 K씨는 코허트(Heinz Kohut, 자기심리학 정신분석가, 1913~1981)가 말한 의미에서 자기애 성격장애의 전형이다. 자기심리학적 접근이 반드시 필요한 사례일 수도 있다.

 

K씨가 불편해하는 사회신경증 혹은 수행불안 측면에 대해서는 특정한 수행(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를 한다, 모르는 사람들과 노래방에 가게 생겼다, 등) 전에 사용할 수 있는 약물처방과 교육을 했다. 경험상 수행불안에 대한 약물치료는 꽤 만족스런 효과를 보인다. K씨는 언제 또 방문할 것이다.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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