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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훈의 시평세평] 쉽다면 한없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효도 … 시작이 반!

한국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맨처음 배우는 말이 '엄마'라고 합니다.

 

갓난애가 가장 쉽게 낼 수있는 모음이 'ㅏ'이고 자음은 'ㅁ'인데 이를 한꺼번에 내는 '아마'가 그 원형(原型)이라네요.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옹알이에서 비롯된 이 말이 여러 과정을 거쳐 유아어(幼兒語)론 '엄마', 성인어(成人語)론 '어머니'가 된 것이지요.

 

어머니란 이렇게 우리를 있게 한 생명의 원천으로, 존재의 근원이자 영원한 보호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나 자식으로서 나이가 적건 많건,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늘 "어머니"를 찾고 부르며 의지하는 것이죠.

 

그 분이 살아계시거나 돌아가셨거나 관계없이 말입니다.

 

 

'어ᆞ머ᆞ니'란 세 마디만큼 편한 말이 없으려니와 동시에 그보다 더 가슴 '쎄한' 말도 없는 것도 이 때문이죠.

 

세상 모든 어머니들 치고 훌륭하지 않은 어머니가 있으리요마는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 시대 한국의 어머니들은 차라리 위대하다못해 성스럽기조차 합니다.

 

그 분들은 한마디로 '드럽게 어려운 시절'을 오직 가족만을 알고, 자식만을 위해 살아온 '그림자같은 인생'들이셨으니까요.

 

빼앗긴 나라에 태어나 광복을 찾았나 싶기 무섭게 전쟁이 터지고, 난리통에 부모, 자식을 잃거나 생이별(生離別)한 채 살아남으니 이번엔 쑥대가 무성한 폐허 뿐-.

 

다른 나라에선 천 년에 걸쳐 겪을 일을 한꺼번에 피눈물로 살아내면서도 진 자리는 오직 당신 몫인 양, 자식들에겐 마른 자리를 내주신 그 하해(河海)보다 넓고도 깊은 사랑이라니...

 

어디 그 뿐입니까?

 

'음식이라도 맛을 보고/쓰디 쓴 것은 어머님이 잡수시고 /달디 단 것은 아기를 먹여 /오뉴월이라 짧은 밤에 /모기 빈대 각다귀 뜯을세라 /곤곤하신 잠을 못다 주무시고 /다 떨어진 세살부채를 손에다 들고 /왼갖 시름을 다 던지시고 허리둥실 날려를 주시며/ 동지섣달 설한풍에 백설이 펄펄 날리는데/ 그 자손은 추울세라 덮은데 덮어주고 발치발치 눌러를 주셨죠'(회심곡)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싫거나 힘든 내색을 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오히려 즐기시는 표정이 얼굴에 그득하시곤 했죠.

 

'사랑에 겨워서 하시는 말씀이/ 은자동아 금자동아 금이로구나/만첩 청산의 보배동아 순지 건곤의 일월동아 /나라에는 충신동아 부모님전 효자동아/ 동네방네 위엄동아 일가친척의 화목동아/ 둥글둥글이 수박동아 /오색비단의 채색동아 채색비단의 오색동아/은을 주면 너를 사고 금을 주면 너를 사랴'(회심곡)

 

지극한 가난과 고통을 지극한 정과 사랑으로 변주(變奏)해내신 당신들이야말로 천사(天使)요 보살(菩薩)이십니다.

 

그럼에도 이 땅의 자식들은 미욱하기 짝이 없습니다.

 

당신들의 은혜는 어디에 전당잡혔는지 잘 난 건 모조리 제 공덕(功德)이라 여길 뿐이니 말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몰라서, 무식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귀에 딱정이가 앉도록 듣고 배운 게 효도(孝道)교육이었으니까요.

 

그 중 대표적인 게 '육적회귤(陸績懷橘)'이란 고사(故事)죠.

 

중국 삼국시대 오(吳)나라 손권(孫權)의 휘하였던 육적이 여섯 살 때 구강(九江)에서 원술(袁術)을 만나 귤을 세 개 받았는데, 노모에게 드리려 먹지 않고 가슴에 품은 채 인사를 하려다 떨어뜨리는 바람에 들통이 나 지극한 효심을 칭찬받았다는 내용입니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등 동양에서 효의 전범(典範)으로 대접받는 실화이죠.

 

역대 문인이나 화가들의 단골 소재로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少年懷橘獻慈親 今見黃柑淚滿巾
同舍故人堂有母 可能羅帕不分珍
(육적은 귤을 품어 어머니께 드렸는데/
오늘 누런 귤 보니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
함께 사는 동무 집에 어머니 계시어/
보자기 펼치지만 누런 귤 나눌 수 없네)'

 

남송(南宋)시대 왕십붕(王十朋)은 《송감요자재(送柑姚子才)》란 시에서 육적의 고사를 빌어 효도를 하려해도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이렇게 그렸습니다.

 

조선시대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역시 육적의 고사를 모티브로 삼아 꼭같은 심사를 귤대신 홍시를 통해 내보였으니 그 유명한 《조홍시가(早紅柿歌)》입니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 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세 글로 설워하나이다'

 

노계의 이 시조는 교과서에 실려 웬만한 이는 다 기억할 정도이고, 이에 못지 않게 유명한 '효도송'이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시조이죠.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길 이 다하여라/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평생에 고쳐 못 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이 시조 또한 교과서에도 실렸지만 시골에서도 좀 산다하는 집마다 두껍닫이에 족자처럼 붙여놓았던 기억이 지금도 뚜렷합니다.

 

물론 애들 교육용이죠.

 

하지만 효도는 이론이나 지식으로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효도란 두 말 할 것도 없이 실천할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천의 요체는 무엇일까요?

 

일찌기 원효(元曉)스님께서는 "효도란 나를 생각하기 전에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파하셨습니다.

 

 

효자는 부모가 낸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분들이 덜 외롭고, 덜 불편하게 해드리는 것-,그것이 단순한 호의호식(好衣好食)보다 훨씬 낫다는 말씀이죠.

 

하지만 늘 공손히 모시다가도 경계적인 문제에 부닥치면 부모의 입장보다는 자신의 입장에서 해결하려는 게 대다수 자식들의 태도입니다.

 

물론 저도 대부분 그렇게 행동하곤 합니다. 다 큰 자식들이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아직도 수양이 모자라 그렇습니다.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것도 이태껏 못되게 한 행동을 반성하고 다시금 맘을 다잡으려는 나름의 각오에서입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귀여워한답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는 사람임에랴!

 

꼭 이맘때 어떤 아들이 "꽃구경가자"며 노모(老母)를 지게에 태운 채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들이 힘들까봐 쉬었다 가자고 해도 아들은 아무 말도 없이 계속 깊은 곳을 향해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제야 낌새를 챈 노모는 지날 때마다 솔방울을 따서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이 물었습니다. "뭣하러 그러시느냐?"고요.

 

노모가 말했습니다. "네가 돌아갈 때 행여나 길을 잃을까봐."

 

이게 바로 우리네 어머니의 생각이자 삶입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동온하량(冬溫夏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겨울에 따듯하게, 여름엔 시원하게 해드리라'는 말입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깜짝 쇼로 한 두 번 즐겁게 해드리는 것보다 평소 할 수있는 일들이라도 부모님을 위해 자주 하는 게 좋다는 가르침이죠.

 

쉽다면 한없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게 효도인 것같습니다. 우선 자주 찾아 뵙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전화라도 자주 드립시다. 부처님 가운데 같은 말씀같지만 머리로만 하지말고 실행을 합시다.

 

시작이 반입니다. 전화를 누르는 순간 당신도 효자로 거듭납니다!  [제이누리=이만훈 전 중앙일보 라이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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