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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훈의 시평세평] 쭉정이 중에서 더 찬 놈을 골라야 하는 것도 숙명

 

온 나라가 연일 시끌벅적한 게 정신이 하나도 없다.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돼 급작스레 후임을 뽑는 선거판이 벌어진 판에 북쪽 '석동(石童ᆞ돌아이)'은 미사일 장난을 계속하고, 이에 경쟁이라도 하듯 바다 건너 큰 석동 역시 느닷없이 돈타령으로 겁박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정이 이런 데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들은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 서로 네 탓에 핏대를 올리느라 여념이 없으니 도대체 이게 나라인지, 나라라면 누구의 나라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시절은 곡우(穀雨)가 지나 본격적인 농사철인데 전국이 유세밭으로 변해버린 마당에 농심(農心)마저 흩어놓고 있지나 않은 지 저으기 걱정된다.

 

하긴 대통령을 뽑는 일도 나라살림을 농사로 치면 농삿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도 큰 일이니 이해는 한다. 앞으로 5년 동안 먹고 살 농사의 씨앗을 고르고 뿌리는 일이니까.

 

국회의원 선거가 밭농사라면 모름지기 대선은 우리의 주식(主食)인 쌀을 마련하는 논농사라 할 수 있다.

 

논농사건 밭농사건 가장 먼저 하는 일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 좋은 종자(種子)를 고르는 것인 만큼 나라 농사에도 지도자를 뽑는 일이야말로 같은 맥락에서 엄청난 대사임에 틀림없다.

 

종자가 '후지면' 아무리 살뜰히 돌보아도 결실이 떨어져 배고픔을 면할 수없듯이 국가를 이끌 지도자를 '후진' 사람으로 뽑으면 5년 내내 '흉년(凶年)'에 시달릴 수밖에 없으리란 건 자명한 일이다.

 

자고로 농사꾼이 튼실한 볍씨를 고르는 데는 오랜 동안 경험칙으로 얻은 나름의 지혜가 있다. 대물림을 통해 오늘에 까지 전해져 쓰이고 있는 방법들이다.

 

씨고르기(選種)의 맨처음은 잘 여문 놈을 골라 타작을 한 뒤 볕에 말려 쭉정이를 없애는 일이다.

 

깨물어 "딱"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말랐으면 키나 풍구(風具)를 이용해 바람의 힘으로 검불과 명개는 물론 껍데기나 쭉정이를 날려버리고 속이 꽉 찬 낟알만 추려 갈무리해야 한다.

 

이때 적은 양이면 종댕이(* 종다래끼의 사투리로 우리 계에선 어린 계집애들이 나물할 때도 쓰곤 했슴)에 담아 매달아 두고, 많은 양의 볍씨는 숨을 쉰다는 질독에 보관했다.

 

이게 이른바 '씨나락'으로, 농부라면 아무리 죽었다 깨는 일이 있어도 '까먹는' 짓을 하면 절대로 안되는 존재였다. 농사의 밑천을 먹어치우면 자살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니까.

 

요즘도 엉뚱하거나 같잖은 얘기를 지껄이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며 면박을 주는데,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농부의 신중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못자리에 볍씨를 치기 직전에 다시 한 번 소금물에 담가 부실한 놈들을 걸러낸다.

 

씨앗의 싹틔우기를 도울 겸(浸種) 소독도 할 겸 겸사겸사 소금물에 볍씨를 담그는데 소금물의 농도는 달걀을 띄워 물위로 500원짜리만큼 나올 정도면 됐다.

 

물보다 소금물의 비중이 높은 만큼 바람고르기에 통과한 놈도 이 과정에서 딱 걸리게 마련이니 이 얼마나 과학적 아이디어인가?

 

껍데기는 가라! 쭉정이도 가라! 그렇다면 국가농사의 '씨고르기'인 대선을 코앞에 둔 마당에 '우량한 인간'을 뽑으려면 어떡해 해야 하는가?

 

볍씨고르기처럼 누구나 쉽게 '제대로 된 사람'을 고르는 수단과 방법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가림의 대상이 사람인지라 똑부러진 방법이야 있으리요마는 예나 지금이나 양(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통하는 '품인(品人)'의 기준은 있었다.

 

흔히 품인을 할 때 귀감(亀鑑)으로 삼는 예가 유방(劉邦)과 항우(項羽)의 자질과 관련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들이라 다소 진부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이 두 사람의 장·단점 비교만큼 국가지도자의 자질기준을 뚜렷히 드러내는 것도 없을 거다. 우선 지도자로서 유방의 가장 큰 장점은 탁월한 '지인능력(知人能力)'이 있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인재를 존중하고 잘 활용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인성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까지 두루 꿰고 살필 줄 알았으니까.

 

그는 책읽기는 싫어했지만 타고난 총명함에 도량이 넓어 상대의 신분을 가리지 않고 만나자마자 친구가 되는 친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밑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었다.

 

장량(張良)은 귀족, 진평(陣平)은 떠돌이, 소하(蕭何)는 현리(縣吏), 한신(韓信)은 평민, 번쾌(樊噲)는 개백정, 관영(灌嬰)은 포목상, 누경(婁敬)은 마부, 팽월(彭越)은 강도였을 정도였으니까요.

 

유방은 이 같이 다양한 사람들과 부단한 소통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대신 그들의 특장(特長)을 적시에 빌려씀으로 해서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천하가 땅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진리를 뼛속에 새기고, 실천한 사람이 바로 유방인 것이다.

 

그는 또 기회가 닥쳤을 때 망설이지 않고 과감히 결단했고, 하리라 맘먹은 일은 반드시 끝까지 해내고야마는 집요함도 있었다.

 

반면 항우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정도로 독선적이었다. 기껏 은혜를 베푼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폼잡기 위한 과시용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연왕(燕王) 한광(韓廣)을 요동으로 보내버리고, 조왕(趙王) 조헐(趙歇)을 대국(代國)으로 내쫓았다. 

 

또 한왕(韓王) 한성(韓成)에겐 그의 모사였던 장량이 한때 유방을 도운 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봉지(封地)도 내리지 않고 직위마저 후작(侯爵)으로 강등시켰다가 죽이기까지 했다.

 

이 일로 한성의 브레인이었던 장량이 유방한테 도망갔고, 항우는 마지막까지 그와 싸워야 했으니 아무리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도 천하의 주인으로선 어림도 없는 '깜냥'이었던 것이다.

 

부하들과의 소통은 커녕 홀로 천하제일의 영웅이라는 자부심에 취해 매사 제 힘으로만 얻으려 했으니, 결과적으로 죽도록 고생만 하고 좋은 소린 듣지도 못한 채 쓸쓸히 혼자 남겨졌다가 최후를 맞았던 것이다.

 

항우는 우리의 누구(?)처럼 죽을 때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으니, 해하(亥河)전투에서 패한 뒤 오강(烏江)에서 자결할 때 "하늘이 나를 망하게 했다"며 하늘만 원망했을 정도다.

 

어떤가, 얼추 이 정도면 대선에 출마한 후보자들 가운데 누가 '깜'인지 감이 잡히는가? 아니, 막상 알고보니 더 답답한가?

 

껍데기 날리고, 쭉정이 골라버리고나면 남는 게 없다는 그 말, 200% 동감한다.

 

하지만 어찌하는가, 그게 우리의 수준이고 우리나라의 운명인 것을...

 

아예 이민이라도 가고플 테지만 그게 아닐 바엔 그래도 그나마 '쭉정이' 중에서도 조금이라도 더 찬 놈을 골라야 하는 것도 숙명적 의무라는 말씀.

 

합-!

 

#한 가지만 추가한다면 대책없이 화려하고 듣기좋은 공약을 떠벌리는 자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당장 해로운 조미료로라도 입맛을 사로잡으려고만 하는 포퓰리스트가 분명하다.

 

삿된 장난에 속지 말자.

 

지극한 맛(至味)은 절대 삿된 맛이 끼어들지 않은 담백한 맛, 그 자체(無味)란 걸 명심하자! 당장에 달콤함은 입에 당길지라도 결국 몸을 해치는 독(毒)이 된다. [제이누리=이만훈 전 중앙일보 라이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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