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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불륜의 씨가 뱀이 됐다는 역설

 

 

옛날 옛적에 장나라 장설룡과 송나라 송설룡이 부부가 되어 살았다. 큰 부자였지만 50세가 되도록 자식이 없자 온갖 제물을 준비하고 절에 가 백일불공을 드려 딸 하나를 얻었다.

 

딸이 일곱 살 되던 해에 아버지 장설룡이 천하공사, 어머니 송설룡이 지하공사 벼슬 살이를 가게 되었다.

 

부부는 어쩔 수 없이 딸을 단단한 방에 가두어 놓고 떠났다. 집안일을 돌보는 정하님에게 잘 키우고 있으면 벼슬 살이 마치고 와서 종 문서를 돌려주겠다고 부탁했다. 며칠 후 아기 씨가 보이질 않았다. 찾지 못한 정하님은 상전에게 편지를 띄웠다. “아기씨가 사라졌으니 어서 바삐 돌아오십시오.”

 

딸은 부모가 그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문이 제대로 닫혀 지지 않은 것을 보고는, 방을 빠져나와 부모가 갔다는 나라를 찾아 산길을 달렸다. 길은 끝이 없고, 두 이레 열나흘을 울다 보니 아기씨는 죽을 지경이었다. 마침 스님 셋이 지나가고 있었으나 아기씨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른 아기씨가 힘을 내어 불렀다. “앞에 가는 대사님아, 나를 살려 주옵소서.” 세 번째 스님만이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우리 절에 와서 불공을 드려 낳은 그 아기씨로구나.” 하고 스님은 반가워하면서 아기씨를 장나라로 데려갔다.

 

그즈음 장설룡 대감 부부는 귀한 딸을 찾으러 온 세상을 돌아다녔으나 찾지 못해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웬 스님이 대문 앞으로 들어섰다.

 

중은 아기씨를 데리고 다니면서 할 짓 못할 짓 다 하다가 문 밖에 숨겨놓고는 도망쳐 버렸다. 장대감이 집 주위에서 찾은 아기씨 얼굴에는 기미가 끼고 배가 불룩했다. “양반집에 이거 무 슨 창피한 일이냐. 가문의 수치로다. 중놈의 자식을 배다니.”

 

귀하게 얻은 딸을 죽일 수 없는 부부는 무쇠상자에 딸을 넣어 바다에 버렸다. 상자는 조류를 따라 제주바다 산지포구에 들어왔다. 산지포구에는 이미 자리 잡은 바다 당신이 있었다.

 

그 옆 마을 화북 포구로 들어가려고 하니 거기에도 이미 자리 잡은 당신이 있었다. 이 마을 저 마을 포구로 들어가려 했으나 포구마다 자리 잡은 신들이 있었다.

 

다행히 함덕마을 동쪽 갯가로는 들어갈 수 있었다. 어느 날 일곱 잠수들이 물질도구를 메고 ‘썩은개’에 왔다가 무쇠상자를 발견했다. 서로 자기가 먼저 보았다고 다투는 것을 송첨지가 말렸다. “그 속에 금이나 은이 들어있으면, 일곱이 똑같이 나누어 가지고 무쇠상자는 나를 주면 담배 갑으로나 쓰겠다.” 하니 모두들 좋다고 했다.

 

송영감이 무쇠상자를 세 번 메어치니 뚜껑이 열렸다. 해녀들이 그 안을 들여다보니, 뱀 여덟 마리가 누워있는 게 아닌가. 장설룡 딸이 뱀 일곱 마리를 낳고 뱀으로 환생한 것이다. 기대가 무너진 송첨지는 낚싯대로, 해녀들은 비창으로 뱀들을 이리저리 헤쳤다.

 

 

 

그런데 해녀 일곱과 송첨지 영감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사경을 헤매어 환자들은 마지막으로 점을 쳐보기로 했다. 이름난 점쟁이는 ‘남의 나라에서 들어온 신을 박대한 죄가 크다. 신을 청해서 굿을 하라.’라는 점괘가 나왔다.

 

그들은 심방을 불러 큰굿을 했더니 병이 씻은 듯이 나을 뿐만 아니라 재물이 많아지고 부자가 되었다. 그러자 해녀들과 송첨지 영감은 그 마을에 칠성당을 짓고 신을 계속 위했다. 마을 사람들도 신을 위하니 마을이 부촌이 되었다.

 

오랫동안 떠돌던 뱀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제사를 받고 위함을 받으니 너무 좋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사는 제주성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한 칠성 뱀들은 제주성으로 향했다.

 

낮에는 사람이 안 다니는 좁은 길로, 밤에는 큰길로 해서 제주성 가까이 있는 화북에 이르렀다. 일곱 아기 뱀들은 제주성 동문 밖의 동산에 올라 가락천까지 갔다.

 

물길이 내려가는 곳에 구멍이 나 있었다. 구멍을 기어 성 안 산지 금산물가에서 쉬고 있을 때, 물을 길러 온 부인이 뱀들이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상하게 여긴 부인은 치마를 벗어 입구에 놓고 물을 길었다. 물을 긷고 나와 보니 치맛자락에 뱀들이 누워있었다.

 

‘내게 내려주신 조상님이거든 어서 우리 집으로 가십시다.’ 하고, 뱀을 치맛자락에 싸서 집으로 모셔가서는 고팡에 두었다. 그로부터 그 집은 부자가 되었다. 칠성(뱀)이 제주성 안에 들어와 맨 처음에 그 집에 좌정했기 때문에 그 골목을 ‘칠성골’이라 불렀다.

 

 

 

하루는 뱀 어머니가 일곱 아기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한가로이 다니면서 언제까지나 얻어먹을 수도 없으니 너희들도 갈 곳을 찾아 가거라.” 딸 뱀들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터를 잡고 신이 되었다.

 

큰딸은 추수할머니로, 둘째는 이방과 형방 차지로, 셋째는 옥지기로, 넷째는 과원할머니로, 다섯째는 창고지기로, 여섯째는 관청할머니로. 집 뒤 칠성으로 들어간 막내딸이 어머니가 머물 곳이 궁금했다.

 

‘나는 고팡으로 들어가 큰 항아리 작은 항아리, 큰 뒤주, 작은 뒤주 아래로 곡식을 섬으로 지키는 이, 말로 지키는 이, 되로 지키는 이, 다 거느려서 안칠성으로 들어서서 얻어먹겠노라.’ 이리하여 어머니 뱀은 안칠성으로 들어서서 모든 곡식을 거두어 주는 신이 되었다 전한다.

 

뱀신이 된 대감집 외동딸인 아기씨는 부모와 중으로부터 배척을 당했다. 부모도 그녀의 기구한 처지를 이해해 주지 않았고, 세속을 초월하여 살아가는 중들도 여자를 욕망의 대상으로 여겼을 뿐이다. 세상에 대한 한을 품은 딸이 낳은 일곱 자식이 모두 뱀이 되었다.

 

중의 불륜의 씨가 뱀이 되었다는 이 역설은, 인간에 대한 배신과 불신을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제주까지 왔으나 어엿 한 당신(堂神)으로 좌정할 곳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집안 여러 곳의 신으로 좌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뱀신은 쫓겨 온 당신들 중에도 한이 많고 인간으로부터 배척당한 외로운 신이다.

 

뱀신이 외롭기에 절해고도에 사는 외로운 사람들의 정을 더 받았던 것은 아닌지?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를 두고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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