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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23) 얼굴인식불능증 vs. 카그라스 증후군

 

2015년 8월에 미국의 저명한 뇌신경학자 올리버 색스(Oliver Wolf Sacks, 1933-2015) 교수가 돌아가셨지요.

 

그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뇌에 문제가 생긴 P교수가 앉아있는 아내를 모자로 알고 머리에 쓰려는 장면에서 표제로 삼았어요. P교수 증상은 한 가지가 아닐 뿐더러 극단적이라 충격적이었지만, 친숙한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는 증상이 인상에 남아요. 얼굴인식불능증(prosopagnosia)라고 합니다.

 

 

 

가령 절친한 친구 홍길동이 P를 찾아왔어요. 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 봅니다. 특징을 찾으려고요. ‘단추 눈구멍, 검은 뿔테 안경, 매부리코 옆에 큰 점, 순대처럼 두꺼운 입술... 아, 길동이군.’ 늘 이런 식이란 말이죠. 홍길동 얼굴이 뚜렷한 특징이 있는 얼굴이라면 모르지만 ‘평범한 얼굴’이라면? 그가 누군지 몰라요.

 

다른 힌트들, “P야. 오랜만이다."는 목소리를 들으면 즉시 그가 홍길동이란 걸 알죠. 목소리가 아니어도 절친 홍길동만의 독특한 행동, 태도 등 다른 힌트들을 통해서 아는 겁니다.

 

아마 다른 증상 전혀 없이 오로지 얼굴인식불능증만 나타나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얼굴인식불능증은 전통적으론 양쪽 후두엽 피질(occipital cortex) 기능이 손상된 경우에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지요. 시각 인지는 후두엽이 담당하거든요. 가령 치매가 후두엽까지 진행되면 얼굴인식불능증이 나타날 수 있겠죠.

 

같이 사는 며느리가 치매 노인을 모시고 와요. 저 분 누군가요? 노인이 며느리 얼굴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글쎄요. 아는 사람 같긴 한데... 누구세요?” 이런 경우는 다른 뇌 부위도 손상이 있어 얼굴 외에 목소리 등 다른 힌트가 있어도 잘 모르겠지만요.

 

뇌 피질 기능은 모듈(module)처럼 작동한다고 합니다. 특히 고위인식 기능은 말이에요. 그래서 고위인식 기능에 문제가 생겼을 때 딱 어느 부위만을 특정하기도 어렵고, 특정 부위가 손상되었을 때도 어느 한 가지 증상만 극단적이고 또렷하게 나타나지는 않는 이유일 겁니다.

 

얼굴인식불능증과 반대되는 경우가 있을까요? 이를테면 얼굴은 잘 아는 홍길동과 똑같이 생긴 건 알겠는데, 아무래도 그 사람이 아니에요. 분명히 아니에요. 똑같이 생긴 사기꾼? 이런 경우를 카그라스 증후근(Capgras syndrome)이라고 부릅니다.

 

 

 

1920년대 조셉 카그라스(프랑스 정신과의사, Joseph Capgras)가 이런 증례를 처음 논문으로 보고했지요. 한 노파가 주변사람들이 ‘꼭 닮은’ 누군가와 바꿔치기 되었다고 호소했어요. 남편 역시 그 사람을 사칭하는 사기꾼으로 바뀌어졌다고요. 1990년대까지도 문화권에 상관없이 유사한 사례가 간간히 보고되었어요.

 

바꿔치기로 나타난 사람을 꼭 사기꾼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요. 망상적 오인Delusional Misidentification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바꿔치기 되는 사람은 밀접한 정서적인 유대감이 있었고 발병할 즈음에는 양가감정을 품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알려졌습니다.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증후군이지요?

 

몇 년 전에 최인호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읽었습니다. 작가 최인호는 그 소설을 쓰고 2년 지나 작고했지요. 유작인 셈입니다. 어느 토요일 아침,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 똑같이 생긴 다른 사람으로 바꿔치기 된 겁니다. 심지어는 화자 K 자신도 바꿔치기 되었어요. 여기 나는 누구인가, 내가 바꿔치기 되었다면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나를 나이게 하는 타인과 그 관계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 육체와 영혼 등을 분리하고 통합하고 갈등하고 화해하며 미스터리하고 환상적으로 전개됩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거라고 느꼈어요. 내용과 별개로 그 소설 역시 카그라스 증후군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심리적으로만 생각하던 이 증후군도 최근에는 뇌과학이 발전하면서 다른 방향으로 설명합니다. 이 증후군은 친밀한 사람에 대한 감정이 그 사람 자체와 단절돼서 생기는 건데요. 친밀한 사람을 봤을 때 전혀 그에 대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죠.

 

왼쪽 뇌 해석자(주어진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납득시키는 기능. 왼쪽 전두엽 어디라고 특정할 수는 없다)는 이런 상황을 설명해야 합니다. 해석자는 안면 인식 모듈로부터 정보를 받고 있습니다. 저 사람은 홍길동이라고요. 하지만 그와 관련한 감정적 정보는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해석자는 이렇게 해결하는 겁니다. "꼭 닮긴 했지만 실제는 홍길동이 아니야. 저 사람이 진짜 홍길동이면 반드시 그에 대한 어떤 감정을 내가 느낄 테니까. 오호라. 바꿔치기 되었군. 저 사람은 사기꾼이야!"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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