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제11회] 철저히 배제된 제주도민 … 전쟁을 위한 일방적 개발

또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경제학·사회복지학 분야에 능통한 진관훈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의 ‘제주근대경제사 신문읽기’입니다. 비록 지금의 경제시스템과 여건이 구비돼 있다하지만 제주 역시 과거의 실타래가 얽히고 설킨 땅입니다. 기업과 산업이 척박했던 제주에도 그 맹아가 등장하던 시기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제주사회와 경제상황을 살핀 ‘신문’을 통해 그 시절의 기업·경제가 지금 우리 제주의 삶과 어떻게 연관·연동되고 있는지 가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1938년 9월 조선총독부 미나미 지로(南次郞) 총독은 ‘제주도를 금후 여하히 개발할 것인가’를 구상하기 위하여 제주도를 방문했다. 이후 조선총독부 미나미 총독의 지시에 따라 전라남도가 작성하고 조선총독부의 최종 승인을 받은 ‘제주도 개발계획’은 도로, 항만, 상수도, 수력발전개발, 농․수․축산 진흥 등에 대한 10개년 및 15개년 계획이며, 이 계획은 ‘제주개발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위탁해 추진하려 했다.

 

농업은 이미 주민이 상식(常食)으로 하는 맥(麥), 패(稗), 감저(甘藷) 메밀 등은 자급자족에 달하고 또 전도(全島) 가경지(可耕地)로서 구만오천정보 중에서 삼만정보의 휴경지가 잔존하여 있다. 이 휴경지는 전부 감저의 경작에 적당하고 이것이 무수주정원료(無水酒精原料)로서 국책선(國策線)에 당(當)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목축은 소위 목야지대의 목초가 우, 사만오천두 마, 이만이천두를 사육하고도 충분하다. 장래는 세양(細羊)을 가(加)하야 익익(益益) 국책선(國策線)에 적응하도록 장려하기 바란다. 삼림지대는 모두 수령 칠팔십년으로부터 이삼백년에 상당하야 울창하게 번무(繁茂)하고 이에 적당한 빈리(貧理)를 한다면 금후 도내에 있어서 공업재료의 자급자족은 물론 일부는 수출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1938. 09. 18. 동아일보).

 

제주도 개발의 기반 조성을 위해 제주도 일주도로와 제주~서귀포를 횡단도로에 대한 교량, 배수로 시설 공사는 물론 중산간 일대의 농․축․임산물 생산과 수송을 위한 한라산 환상도로 등에 대한 신설계획을 수립했다. 또한 각종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지하수 개발과 상수도 시설 설치를 추진했고 전기와 용수공급을 위해 어승생악 일대에 수력발전시설을 건설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자원에 적당한 제주도가 하고(何故)로 불우(不遇)의 지위에 잇는가 하면 그는 항만에 적절한 데가 없기 때문이다... 성산포를 제(除)한 타(他)의 사항(四港)은 전부(全部) 항내(港內)가 얕고 해저(海底)는 암반(巖盤)으로 되었다고 한다. 큰 선박을 입항시키는 데는 모든 해저의 암반을 폭파하야 대기술과 대공사를 요구하게 된다(1938. 09. 18. 동아일보).

 

제주도의 개발은 십삼년도부터 십개년계획을 가지고 산업 전면적에 실시하기로 되었는데 우 계획수행에 당(當)하야 문제로 되어 있는 것은 용수(用水)를 여하히 할까에 있다...도(道)에서는 근간 뿌링그에 의하야 제주도 일대의 용수시험을 행하기로 되었는데...(1937. 08. 07. 동아일보).

 

이 계획은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사실상 주도하는 민․관 합자형식의 국책회사인 ‘제주개발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위탁하여 독점적으로 관리하려 했다. 개발사업 규모는 당초 계획보다 3배 이상 증가된 20,022,073원(조선총독부 11,315,016원, 전라남도 8,707,076원)이며 이외에 제주개발주식회사의 투자금(750만원 계획)은 포함되지 않은 규모로 이를 포함하면 3,000만원 가까운 규모이다.

 

금년도부터 착수한 제주도 개발 십개년계획은 농업, 수산, 축산에 긍(亘)하야 먼저 축산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사만오천정보의 대방목지를 옹(擁)하고 양돈, 면양(緬羊)의 적극적 증산을 기도(企圖)하기로 되어 축우는 농가매 일호 일두를 목표로 하고 현재의 삼만팔천구백칠십두를 육만두로 돈(豚)은 오만두를 육만륙천두로 면양은 오만두로 증산하는 것인데(1937. 06. 11. 동아일보).

 

제주도 개발을 위탁받은 제주개발주식회사에서는 면양사육 사업을 추진하고 우유와 유제품 생산을 위한 유우 사육사업, 돈육사업 등을 추진한다. 또 수산업과 수산물 가공업을 비롯해 무수주정 원료인 고구마 생산을 위해 전남지역 밀집지역 농가 7,500호(각 호당 주택건축비와 도항비 명목으로 100원씩 지원)를 중산간 일대에 이주시키는 이민사업, 각종 공장가동, 가정에 사용할 전기사업 등을 직접 운영하려고 했다.

 

조선남단의 보고(寶庫) 제주도개발에 대하여 금년 이월 총독부 각 관계국 과장과 기사등과 전남에서 각기 조사원을 현지에 파견하야 실지조사를 하였든 바 그 결과에 기하야 저간 전남에서는 동도의 식산흥업(殖産興業))을 목적으로 한 제주도개발회사의 설립안을 작성하여 가지고...

 

이제 동개발회사의 원안을 본다 하면 자본금은 삼천만원(일주 오십원, 육십만주중 사십만주는 동척(東拓)과 기타 민간의 출자로 하고 이십만주는 총독부의 출자하야 제일회 불입은 칠백오십만원인바 당분간은 오분, 내지 육분의 배당을 정부가 보증한다는 것이다.

 

사업의 계획은 다음과 같다 한다. 면양을 중심으로 한 목축, 발전, 어업, 농장, 무수(無水)알콜의 제조 등이다. 이 사업과 별개로 총독부와 도의 시설로서 도로, 방풍림, 항만, 농사시험장 등도 시설키로 하고 명년도부터 십개년계획으로 예산총액 일천구백칠십삼만원이다(1937. 06. 22. 동아일보).

 

 

 

제주도 개발주식회사는 제주도내 자원개발과 산업장려 등을 위해 국책회사로 설립하고 사장과 감사는 총독부가 임명하고 이사는 주주총회에서 선출한다. 사무소는 경성부 또는 광주부에 본점을 두고 지점은 제주읍과 기타 필요한 곳에 설치했다. 자본금은 3,000만원(1주당 50원, 60만주발행)으로 정부가 3분의 1(20만주), 동척 등 특수회사 등이 3분의 2(40만주)를 부담한다. 또 개발회사 경영방법은 정부가 임명하는 감독관을 두고 정부와 전남도, 전남도 도농회, 제주도농회가 생산자원을 처리하는 것은 물론 가공과 판매도 공동으로 맡았다.

 

제주개발회사는 화학 알콜로 전쟁수행에 필요한 무수주정 제조업 20만톤을 목표로 무수주정의 원료인 고구마 생산자로부터 최저가격에 원료를 매입해 도내 28개와 도외 211개 무수주정 공장에 공급, 운영하였다.

제주도개발타합회(打合會)는 기보(旣報)와 같이 이십일일 오후일시부터 총독부에서 총독부측 각국과장 관계관 송본(松本) 전남지사, 미기농무(尾崎農務), 이달토목(伊達土木), 경야산업과속(境野産業課屬) 등 출석하에 전남도안인 전반에 긍(亘)한 개발 십개년계획 급(及) 특수회사인 제주도개발회사 창설안에 대하야 신중한 검토를 가(加)하였는데 동일의 타합(打合)에 대하여는 구체적 방침을 결정한데 이르지 못하고 농산, 축산, 수산, 공산의 각 분과 타합회(打合會)를 개최하야 이 결정을 기다려 다시 회합한 후 방침을 결정하기로 되었다(1937. 06. 23. 동아일보).

 

이상에서 살펴본 제주도 개발계획은 전쟁의 막바지인 1930년대 후반에 작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0개년 혹은 15개년 계획이었고 생산기반 시설,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투자액의 상당부분을 투자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일제는 단기적 수탈보다는 장기적 이윤을 추구하고 영구 병합하려는 의도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즉, 단기적 이윤추구나 근시안적 약탈보다는 장기적 이윤추구와 영구적 병합을 위한 기반조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주개발계획은 계획 추진 전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철저히 배제된 총독부 주도의 일방적 개발정책이다. 개발의 공과에 대한 귀속도 제주도민과는 무관했을 것이다. 일제에 의한 1930년대 말 제주도 개발계획은 제주사회와 제주도민을 무시, 묵살하고 제주서 육지부의 개발 효용이 다된 시점에서 전쟁 수행을 위한 후방의 군수물자 확보와 병참을 목적으로 한 일방적 개발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제주대 사범대를 나왔으나 교단에 서지 않고 동국대에서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2011) 학위를 받았다. 제주도 경제특보에 이어 지금은 지역산업육성 및 기업지원 전담기관인 제주테크노파크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겸임교수로 대학,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등이 있으며『문화콘텐츠기술과 제주관광산업의 융복합화연구』(2010),『제주형 첨단제조업 발굴 및 산업별 육성전략연구』(2013),『제주자원기반 융복합산업화 기획연구』(2011) 등 보고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관련기사

더보기
21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