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21화] 해녀의 숨비소리는 저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목숨의 메아리

오늘은 우리와 천생연분처럼 느껴지는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일일이 잠수를 해보라 하시고, 강평을 해주셨다. 우리 흑조는 모두가 장래의 상군 감들이란다. 이제라도 바다에서 해녀들이랑 물건을 잡을 수 있겠다고. ‘다들 예쁘고, 부지런하고, 열심이라서 마음에 든다’시며, 부지런히 성게를 잡아서 일일이 까시고는, 우리들 입속에 쏘옥 쏙 넣어주셨다. 마치 암탉이 병아리들에게 모이를 먹이는 것처럼!

 

물질을 하는 것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지만, 배가 고프고 지친 게 문제였는데, 오늘은 선생님이 공급해 주시는 고단백 성게 음식으로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얼마나 물질에 힘이 생겨나던지..., 이런 날은 아마 앞으로도 흔치 않을 것 같다. 오늘은 운수 좋은 날, 혜성처럼 천사가 나타나 우리를 날개에 태워준 날이다. 성게를 까주시는 사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1) 해녀의 호흡법은 훈련이 필요한가요?

 

“선생님,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물속에 들어가서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나요? 저희들에게 해녀의 호흡법을 훈련시켜 주세요.”

 

“호흡은 훈련과 욕심의 조합이란다. 물속에 들어가서 숨이 끊어질 때까지 참으면서 물건을 하나라도 더 잡으려고 애쓰다 보면, 어느새 숨이 길어지게 된다. 그러니 해녀들이 물에서 나오면 ‘호오이∼’ 하고 숨비소리를 내지르지 않느냐. 오죽하면 그런 소리가 저도 모르게 나오겠어? 숨을 참아내느라 가슴이 터질 것 같으니까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렇게 있는 힘껏 소리를 내지르면서 참았던 숨을 내뱉는 거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바다 속에서 숨이 다할 때까지 목숨이 끊어져라 참는 거란다. 혹여 몸에 좋다는 암전복을 이판사판으로 떼다가 숨이 다해서 물숨(물속에서 쉬는 숨)을 먹으면 죽는 거란다. 그러니 숨, 호흡은 해녀 물질의 기본이고, 시작이자 끝이란다. 어쩌면 호흡 조절, 숨이 물질의 전부라고 할 수 있지!”

 

(2) 왜 해녀가 되셨나요?

 

“선생님은 참 예쁘시고 다정하신 분인데, 어떻게 이토록 거칠고 험한 물질을 하게 되셨나요?”

 

“시집을 와서 보니,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뿐이야. 돌렝이(작은밭) 조차 하나도 없는 살림에, 살아갈 일을 생각하니까 눈앞이 캄캄하더라. 그런데 집 앞에 있는 바다를 보니, 바로 그게 밭인 거야. 바당밭이지. 그땐 바당에 물건도 많았고..., 그래서 죽어라 물질을 하였지. 그 덕택에 자식들 다 공부 시킬 수 있었단다. 참 내게는 바다가 고마운 은인, 복을 주는 귀인과도 같아. 요즘은 물질을 하면 운동도 되고, 체중관리도 되니, 일거양득일세. 해녀들이 보통 더 건강하고 장수하는 편이니까. 그래서 요즘은 돈벌이도 좋지만 운동 삼아, 놀이 삼아, 사람이 좋아서 물질 갈 때가 더 많단다”

 

(3) 해녀만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요?

 

“선생님, 우리 학생들 중에는 해녀를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애들도 있는데, 해녀만 해서도 먹고 살 수가 있을까요?”

 

“옛날에는 바다에 물건이 많아서 그게 가능했던 것 같다만, 요즘은 힘들 거야. 우리가 매일 작업하는 것도 아니고, 소라나 성게 등을 키워서 1년에 몇 달, 그리고 한 달에도 며칠씩만 작업하기 때문에 물질은 부업인 셈이지. 그러니 주업이 필요하단다. 해녀는 별 자본 없이 자기 몸 하나로 바다에 들어가 부지런하기만 하면 각자의 기량만큼 돈을 벌 수 있지만, 그 벌이가 매일 같지 않고, 또 일정하지도 않아서, 월급쟁이들처럼 살아갈 수는 없을 거야”

 

이상은 오늘의 흑조 담임인 고은희 선생님과의 대담 내용이다. 단란한 가족처럼 다정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치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잡아주시던 소라를 먹던 것처럼 달콤하고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오늘의 배움은, ‘해녀란 물질을 해서 단지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니라 동료애를 통해 가족애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소중한 직업이란 사실이다.

 

거센 파도를 헤치며

 

제주 해녀의 노동요 중에는 ‘칠성판을 등에 지고, 삼시 굶엉 이 물질 해영, 한 푼 두 푼 모아논 금전, 부랑자 술잔에 다 들어간다’는 구절이 있다. 물질은, 열길 스무길 물속으로 들어가 소라나 전복을 따는 일이란, 사실 관 뚜껑을 짊어지고 깊이를 모르는 위험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목숨을 걸고 하는 작업이란 뜻이다.

 

메르스 때문에 몇 번이나 물질 수업을 미뤄오던 차, 태풍이 불어 또 휴강을 하게 되니, 이리저리 애가 타고 몸이 달은 학생들. 그 마음을 아는 선생님 덕택에 오늘은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속으로 태왁을 짚고 나갈 수 있었다.

 

바다속은 파도로 밀려온 온갖 쓰레기와 부유물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바다의 품에 안겨 있는 느낌은 너무나 시원하고 즐거웠다. 우리 조의 해녀 선생님은 당신이 몸소 물질해 보이시길 무척 좋아하셨다. 다소 나이 들어 보이는 선생님을 따라, 마치 어미오리 뒤를 따르는 새끼 오리들 마냥 물질 연습을 하는 우리의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정겹기도 하였다. 조금이라도 울타리 밖을 벗어난다 싶으면 어서 들어오라고, 위험하다고 소리치는 선생님의 외침이, 참으로 든든하고 고마운 느낌이었다.

 

문득, 어린 시절, 먼 곳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집안에 대접할 게 없다 싶으면, 무조건 태왁을 지고 바다로 내달리시던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허옇게 이빨을 벌리고 달려드는 파도를 아랑곳 하지 않고, 용감하게 바다로 몸을 던졌다. 파도에 휩쓸리면 어떻게 하나, 바위에 부딪치면 어떻게 하나, 잔뜩 근심에 절어 있는 내가 막 울음을 터뜨릴 찰라가 되면, 어머니는 소라와 문어가 제법 들어 있는 망사리를 매고서 환하게 웃으시며 나타나셨다. 으르렁대는 파도를 ‘왜 이러나’ 하면서 잡아 제치고서 의기양양하게 돌아오는 장수의 표정으로. 어머니에게는 그 정도 파도가 바다의 애교에 불과했던 것일까?

 

한 시간 가량 물질을 하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파도에 지쳐서 바위 위로 올라가 있었다.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물질을 쉬면 우리의 수업도 끝을 맺는다’는 수업 전 약속에 따라 오늘의 수업은 끝 종을 치고 말았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바다를 등지고 오는 마음은, 그래도 이 정도라도 물질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은 안도였다.

 

사실은, 물질을 시작하기 전, 법환동의 현민철 마을회장님 강의를 통해 법환이란 지명이 원래는 ‘벌판-넓은 들’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바다로 들어가서 몇 차례나 마을 쪽의 지형지세를 살펴보았다. 역시 월드컵 경기장이 내려와 자리할 만큼, 마을의 품이 드넓고 포근해 보인다. 그 넓은 들처럼 넉넉한 마을 인심 덕택에, 특별히 우리 해녀 선생님들 아량으로 우리들의 해녀학교가 이곳에서 시작될 수 있었나 싶다.

 

지금은 법환(法還)이란 마을 이름이 ‘법으로 돌아간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역시 법환은 벌판임에 틀림이 없다. 또한 법으로 돌아간다는 뜻의 지고한 의미는 ‘법 없이도 살아간다’는 말로도 해석이 된다. 인심이 좋아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찾아오는 사람들을 넉넉하게 품어서 함께 살아가는 법환, 그 순리가 참으로 가슴 따뜻하고 편안하다.

 

바로 이런 곳에서 해녀 인턴십을 할 수는 없을까? 여기저기 흩어지기 전에, 여기에서 함께 인턴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우리를 잘 알고 아끼고 키워준 법환 바다에서 졸업 후 직업교육도 받을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그런데, 교감 선생님과 인턴십 면담을 마친 학생들의 표정이, 절반의 희망과 절반의 근심으로 뒤섞여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도 인턴십이 어디냐? 아니, 진짜 해녀가 될 수 있다는 꿈을, 언감생심 꾸면서 배우고 훈련받을 수 있는 게 어딘가? 꿈은 이루어진다니, 그저 조심스레 희망의 이름에 기대어 분홍빛 미래를 그려 본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관련기사

더보기
18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