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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제주지역 경제권 장악한 일본 상권에 자주적으로 대항

또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경제학·사회복지학 분야에 능통한 진관훈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의 ‘제주근대경제사 신문읽기’입니다. 비록 지금의 경제시스템과 여건이 구비돼 있다하지만 제주 역시 과거의 실타래가 얽히고 설킨 땅입니다. 기업과 산업이 척박했던 제주에도 그 맹아가 등장하던 시기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제주사회와 경제상황을 살핀 ‘신문’을 통해 그 시절의 기업·경제가 지금 우리 제주의 삶과 어떻게 연관·연동되고 있는지 가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일제강점기 제주도에는 제조업, 운수업, 금융, 보험업, 창고업, 도․소매업 등 다양한 상업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특히 1930년대는 문화 및 오락, 식품, 위생, 서비스업 등 다양한 소비도 늘어났다. 한편 읍면지역에서는 유통과 소비를 목적으로 도민자본에 의한 소비조합들이 등장했다. 오일장이나 상설점포와 별도로 면지역의 안정적 소비를 위한 조합들이 생겨나 제주농촌의 상업활동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제주도(濟州島)는 조선 남해 중에 있어서 조선내지와 교통이 불편함을 따라 문화향상과 산업발달에 막대한 영향이 있어 생산품 중 토산물을 제하고는 직조물(織造物)로는 토옥(土木)과 토포(土布 )와 토주(土紬)둥이 있으나 만치 못하며 해륙물산이 대부분이 난다 하나 아모 가공(加工)업시 그대로 판매함으로 이익은 적은 중에 인민의 소비액은 날마다 늘어 감을 따라...

 

토산물을 가공케 하며 소비액을 절약하야 불안한 생활을 안녕케 하고자 제주소비식산조합(濟州所費殖産組合)을 발긔... 일용품 중에 업지 못할 것을 제한 외에는 조선사람의 손으로 제조한 조산물산을 사다 쓰며 토산을 장려한다 함으로 일반인민들은 대환영을 하는바...(조선일보, 1923년 03월 24일).

 

일제 강점기 제주지역의 대표적인 소비조합으로, 1927년 10월 설립된 이래 일본상품 불매운동과 지역주민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영업하였던 ‘조천소비조합’과 1925년~1933년 종달리 서쪽부터 한동리 동쪽을 상권으로 지역농가에 필요한 각종 일용품을 판매하는 상업활동을 펼쳤던 ‘동부구좌소비조합’, 마지막으로 1930년 제주읍에 소재하며 조합원 492명, 출자금 6만원으로 주로 제주읍 관내에서 영업을 했던 ‘제주산업조합’을 들 수 있다. 이외에 1921년 성산포에서 고은삼 등이 주축이 되어 설립되었으나 일반인의 이해부족으로 영업하지 못하고 해산된 ‘영주소비조합’이 있다.

 

당시 제주지역에 소비조합들은 소비자의 분산된 힘을 모아 소비자의 권리와 이익을 신장시키는 유용한 경제조직으로 이해되었으며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널리 보급시켜 가야 한다는 민족주의적 지역사회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소비조합은 인적결합(人的結合)으로 소비자와 시장 상인 간의 종래 형태를 바꾸어 소비자의 이익을 도모하여 지위를 확보하는 데 있다. 만일 면지역에 있는 소비자 개인의 소비재를 소량으로만 구입하게 되면 고가로 판매될 수밖에 없지만 소비자가 공동으로 구입하게 되면 소량소비재이 다량소비재로 구입할 수 있게 되어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소비조합의 기본적인 논리에 따른 것이다.

 

조천소비조합은 공동구입한 상품을 저가로 판매하여 일본인 상점의 폭리를 견제하고 그 이익을 대중을 위해 유효하게 사용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됐다. 조천 소비조합의 설립 취지와 영업활동은 다른 소비조합과 동일하지만 상무이사를 비롯한 역대 조합장들이 민족의식이 강한 항일인사들이었고 조천소비조합운동이 민족운동(조천야체이카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민족소비운동’ 이상의 상징과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동부구좌소비조합이 상업활동을 했던 1925년부터 1933년은 제주지역 농촌이 이전에 비해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던 시기이다. 게다가 하도리를 포함한 동부구좌지역이 타 지역에 비해 해녀수가 많았기 때문에 해녀물질에 의한 현금보유와 출가 송금액 또한 많아 타 지역에 비하여 충분한 구매력이 있었고 이로 인해 다른 지역보다 더 활발한 상업활동이 이루어 졌다.

 

동부구좌소비조합을 주도했던 인물은 조합장을 역임했던 김창오(金昌五)이다. 그는 하도리 출신으로 광주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고 면에서 회계원 근무를 하다가 퇴임 후 사업을 했는데 해산물 중개 즉, 하도에서 해산물을 수집하여 강경에 가서 팔았다. 그는 애초에 개성상인등의 상거래에 착안을 하여 소비조합을 구상하였다고 한다. 전무는 김순종이었고 이사 각리 1명씩이며 서기 겸 점원은 문도후가 맡았다.

 

동부구좌소비조합 설립취지를 보면, 소비절약과 일인상품 불매를 목적으로 일상용품을 구입하여 염가로 조합원에게 제공하여 소비생활의 합리화를 기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합원 출자금은 일인당 1원, 백미 한말(당시 미가 대승으로 4승에 30전, 우육 1근에 30전)이었고 이익은 출자금에 따라 배당되었다. 출자인원은 150명 정도로 설립부터 초창기 영업은 매우 순조로웠다.

 

동부구좌소비조합의 판매 물품은 점원인 문도후가 부정기적으로 부산에 가서 일정량 구입하여 온 것들로 성냥, 석유, 고무신, 마늘, 옷감 등과 같은 일용품이다. 기본적으로 농민들에게 염가에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고 가격 면에서나 판매단위 면에서 지역 소비자들의 편의에 부합되었기 때문에 지역 내 반응은 좋은 편이었다.

동부구좌소비조합 1925년 설립 이후 8여 년을 영업하다가 일제의 간접적 탄압과 자금부족으로 운영난을 겪다가 폐업됐다. 일제의 간접적 탄압이란, 1932년 세화리 해녀사건 이후 주민활동에 대한 일경의 감시가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당시 소비조합점포의 위치가 경찰서 맞은편에 있어 일본순사가 거의 상주해 있다시피 하면서 점포에 물건을 사려오는 사람마다 감시 눈초리를 보냈기 때문에 주민들의 상거래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오일장의 활성화로 인해 상권이 축소되었고 교통의 발달로 제주읍 상권에 침식되어 영업활동이 점차 쇠퇴되어 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점포를 해체하여 남은 자산과 재고물건을 처분해서 가급적 공평하게 조합원에게 돌려주었고 김창오조합장은 제주읍으로 진출하여 박종실(朴宗實) 등과 동업하였다고 한다.

 

제주산업조합은 판매와 구매를 동시에 하였으며 거래하던 물품들은 다른 소비조합들과 다르지 않지만 위탁 판매 즉 농촌지역 생산자들을 위한 위탁 판매와 공동구매를 통한 원가절감을 시도하는 등 나름 차별적인 전략이 있었다. 이는 구좌, 조천의 소비조합과 달리 농촌소비자들의 입장보다 상인들의 이익, 원가절감을 통한 영업실적의 향상을 도모했다는 점에서 경영전략의 발전으로 보아진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제강점기 제주지역 소비조합들은 소비생활에서 규모의 경제와 소비자 주권 확보를 기본목적으로 당시 주도적이고 독점적으로 제주지역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인 상인과 상권에 자주적으로 대항하려 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를 경제사적 관점에서 보면,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식민자본주의시장 내에서 독점적 자본을 보유하며 무소불휘의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던 일본인 제조․생산자에 대한 제주농민의 ‘이중적 저항’이라 결론 내릴 수 있다.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제주대 사범대를 나왔으나 교단에 서지 않고 동국대에서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2011) 학위를 받았다. 제주도 경제특보에 이어 지금은 지역산업육성 및 기업지원 전담기관인 제주테크노파크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겸임교수로 대학,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등이 있으며『문화콘텐츠기술과 제주관광산업의 융복합화연구』(2010),『제주형 첨단제조업 발굴 및 산업별 육성전략연구』(2013),『제주자원기반 융복합산업화 기획연구』(2011) 등 보고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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