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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참 소중한 사람들, 고마운 시간들…최고의 순간

 

 

늘 그렇듯이, 오늘도 우리 흑조의 선생님이 최고였다. 선생님은 우리들을 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데리고 다니듯이 조심조심 다루셨다. ‘파도치는 곳으로 너무 멀리 가지 말고, 바다 속에 들어가서도 너무 오래 있지 말라’ 하시는 게, 마치 엄마 닭이 새끼들을 몰고 다니며 부리로 머리를 쪼아대는 잔소리와도 같았다.

 

또한 가장 약한 새끼에게 먼저 신경을 쓰고, 훈련의 수준을 제일 미숙한 새끼에 맞추는 모습이 안도의 한숨을 낳았다. 그러면서도 잘 하는 새끼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는 가르침의 지혜가 절로 미소를 일으켰다. “우리 반이 젤로 잘 햄신게. 하나는 벌써 상군이 다 되어서”라면서 옆 반이 들으라고 큰소리를 지르시는 모습 또한 우리 모두를 으쓱거리게 하였다.

 

가장 감명 깊은 것은, 새로운 기술이나 새로운 장소마다 선생님이 먼저 시범을 보이는 것이었다. 때로는 그냥 ‘알아서 한 번 해보라’고 말씀만 하실 법 한데도 말이다. 선생님의 시범에 따라 우리가 물질을 따라하면, 일일이 평가를 하시되, 언제나 칭찬으로 마무리를 하셨다. 뿐만 아니라 몇 차례나 숨비질 하면서 직접 성게를 잡아서는 우리들 망사리에 일일이 넣어주셨다. 선생님은 한 번 물에 들어가면 빈손으로 나오는 법이 없었다. 역시나 상군해녀는 무언가 달라도 다른 거였다.

 

오늘의 작업을 통해 가장 뚜렷하게 각인된 배움은 ‘물질은 밭일과 비슷하다’는 사실이었다. 선생님께서 물속에서 바위틈을 살피고 돌멩이를 뒤지고 숨어 있는 성게를 찾아내는 모습이, 마치 밭고랑에서 고구마를 캐거나 김을 매는 것처럼 보였다. 참 신기한 노릇이었다.

 

사실, 제주에서는 바다를 바당밭이라 부른다. 섬 전체가 한라산으로 이루어졌으니, 밭이란 게 돌짝밭이거나 고만고만한 돌랭이(작은 밭)들 뿐이다. 그러므로 농사지을 밭이 부족하거나 먹여 살릴 식구들이 많을 경우엔, 바다를 밭 삼아 뛰어들어서 고구마 캐듯이 소라, 전복, 해삼, 성게 등속을 채취해야만 했으리라.

 

나의 이러한 느낌을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선생님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니, 마치 밭에서 고구마를 캐는 것 같은데..., 선생님은 물질도 밭일처럼 하시나요?” 나의 이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가 성게를 잡아 오시는 선생님. 역시 교육에는 시범이 최고로다.

 

선생님께서 잡아주신 성게와 내가 잡아 올린 것들을 우리 셋의 망사리에 골고루 갈라 넣었다. 파도에 태왁들이 뒤섞여서 어느 게 우리 것인지 분간이 안 되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표시이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망실이들이 비어 있었다. 또한 성게를 잡는다는 물질의 목적이 생김으로써 모두가 더 부지런히 분발하여 물질하는 효과도 생겼다.

 

물질이 모두 끝나고 전원이 모여서 종강을 한 후, 선생님은 우리가 잡은 성게를 모두에게 보여주셨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이 이렇게 물질을 잘 했다’고 칭찬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특별한 성과에 구경 온 사진꾼들이 그냥 있을 리 만무했다.

 

선생님이 모아서 한 아름 품에 안으신 성게와 함께 함빡 웃는 내 모습이 카메라 속으로 신속히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보란 듯이 선생님은 성게들을 바다 속으로 보내주셨다. 아, 가르침은 저렇게 모범과 재치, 계획, 실연을 보이는 것인가? 물질은 밭일과도 같은 것이구나. 일은 목적이 있을 때 더 열심이 생기는구나.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이 목숨 걸고 이 물질 해서 우리들 입 속으로 먹을 것을 쏙쏙 넣어주신 거구나.

 

오늘은 파도가 좀 거친 탓인지 물질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조금만 더 하고 싶은 욕심을 태왁에다 실어 안고서 물 밖으로 나왔다. 아쉬움에 뒤돌아보니 허옇게 파도치는 바다가 입을 벌리고 달려든다. 저 바다 속으로 삼 시 세끼를 굶고, 칠성판을 등에 지고서, 목숨 던져 소라 잡고 전복 캐고 문어를 잡아 올리셨을 우리 어머니. 오늘은 그 어머니에게 더 따뜻한 저녁밥을 지어 드려야겠다.

 

물질이 끝나고 다시 모인 교실, 종강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긴다. 적당히 고픈 배가 단 것을 생각나게 한다. 다음 주부터는 간식이 제공될 거란다. 벌써부터 다음 시간이 기다려진다. 물질이 있어 즐거웠던 주말이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 한다.

 

법환좀녀마을 해녀학교의 무궁한 발전을 빌면서, 어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물 밀 듯 밀려오는 이 조름, 친구들도 모두 단 잠으로 빠져들었겠지. 어쩌면 꿈속에서도 ‘호오이 호오잇’ 숨비소리를 내지르는 게 아닐까? 참 소중한 사람들, 고마운 시간들이다. 이들과 함께 가장 하고 싶은 것을 누리는 지금이야말로 내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리라.

 

문득, 뚜럼 부라더스가 가르쳐 준 노래가 생각난다. ‘웃당보민 행복해진댄 마씸’ 아마도 이 느낌, 이 푸근하고 편안해서 저절로 미소가 번져나는 이 기분이 바로 그 행복인가보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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