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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택의 탐라역사문화기행(프롤로그)] 정체성 찾기, 그 길에 서다

 새 봄을 맞아 또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문영택 전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의 ‘탐라역사문화기행’입니다. 지난달 말 우도초·중통합교 교장직을 끝으로 평생의 업을 마감한 문 전 국장은 교육계 재직 기간 뜨거운 교육열로 후학 양성에 진력했던 분입니다. 그는 학교에 봉직하면서도 틈만 나면 제주 구석구석을 찾아 선현의 지혜와 역사의 숨결을 끊임없이 기록하고 그 의미를 정리했습니다. 그가 정리한 제주역사와 문화의 실타래를 이제 하나씩 풀어갑니다. 많은 애독을 바랍니다. /편집자 주

 

 

 

제주역사문화를 쓴다. 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글로 수놓은 멋진 옷을 입히는 작업이다. 멋은 내면에서 비롯된다. 내면의 미는 현란 한 글솜씨가 아닌 진실의 올로 수놓는 솜씨다.

 

솜씨는 문화를 가꾸는 토양이다. 과거를 알고, 과거를 말하고, 과거에서 배우는 것은 문 화토양을 가꾸는 일이다. 선인들의 역사에서 교훈의 올로 수놓은 품위 있는 의상을 후손들이 골라 입을 수 있는, 그러한 제주역사문화를 쓰고 싶다.

 

한때 사이클을 즐겨 탔던 나는 제주도를 누비며 나만의 치유 시 간을 가졌다. 덤으로 도처에서 손짓하는 제주역사문화 소개 글을 읽었다. 그러다보니 갓 태어난 강아지가 눈 뜨듯 제주의 과거가 보 이기 시작했다. 보이는 만큼 안다는 말처럼 더 많은 곳을 찾아다녔다. 내가 주로 다닌 곳은 자동차가 다니지 않은 호젓한 오솔길과 고 지대에 위치한 굴곡진 곳이었다. 특히 나의 고향 마을을 여러 길로 우회하며 주말이면 달렸다.

 

제1·2횡단도로를 건너는 계획을 세우던 나는 사이클 타기를 접어야 했다. 산악용이 아닌 자전거로 고지대를 달린 후유증으로 발목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동산을 오르고 고지대를 넘기 위해 발목 에 힘을 주며 사이클을 밟은 데서 생긴 병이었다. 전신마취에서 깨어난 나는 이후 사이클에 관련된 모든 장비들을 재직하던 학교의 학생들에게 경품으로 내놓았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비극으로 우리 학생들도 뭍으로 수학여 행 가는 나들이 기회를 미루고 아픔에 동참하였다. 전체 학생들과 함께 노란 리본을 달고 찾아간 곳이 한수풀역사순례길이었다. 그 순례길은 학교에서 사제동행으로 개척한 제주 최초의 길이 되었다.

 

인생은 의미부여하기 나름이다. 최근 우리사회가 물질문명에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하다보니 세월호 참사, 최순실 게이트 같은 쇠락의 길로 접어든 듯하다. 나는 눈에 보이는 물질보다 보이지 않은 역 사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2017년 2월, 40여 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접는다.

 

그 후에도 나는 역사문화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가질 것이다. 그런 의지의 표명으로 명함에 장래희망을 향토해 설사로 적었다.

 

현상이 보이는 것이라면 본질은 보이지 않은 곳에 묻혀있을 것이다. 역사의식을 지닌다는 것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정체 성을 찾으려는 아이는 자기의 앞길을 스스로 선택하여 걸으려 한 다. 정체성 속에는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인성과 창의가 숨어 있었다.

 

역사에는 사실과 진실만이 기록되지는 않는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말하듯 승자에의해 미화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과거를 알 려는 노력은, 역사 미화 여부를 떠나 뿌리를 찾고 알아가는 과정으로써, 조상으로부터 삶의 지혜를 얻으려는 것이다.

 

성차별도 신분의 귀천도 없는 평등의 시대이다. 왕후장상(王侯將 相)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로되, 후손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후손이 어떻게 발복하느냐에 따라 현대판 왕후장상은 만들어지기도 한다.

 

1970년 12월 제주에서 부산으로 항해하던 남영호가 대한민국 해 난사고 중 가장 많은 326명의 주검과 함께 컴컴한 바다 속으로 잠 겨버렸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비극으로 이어졌다. 남영 호와 세월호의 비극은 판박이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개인에게 도, 가족에게도, 국가에도 업보가 있다. 남영호 비극의 눈물을 씻지 못한 아버지의 업보가 딸의 추락으로 이어지고, 개인과 가족을 넘어 나라의 업보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조상의 삶이 후손의 삶에 여러 영향을 미치고 지혜를 준다는 점이다. 조상의 삶과 역사를 알려는 마음을 후손에게 심어주는 일은, 설령 늦었다 하더라도 지금이 바로 적기라는 사실이다. 위기가 곧 기회이기도 하다.

 

산업화 시대의 최루탄 가스가 난무하던 시위문화가 평화로운 촛불시위로 번져갔다. 우리가 가꾸는 시위문화는 세계인도 놀라워할 정도이다. 우리 손으로 역사의 흐름 을 바로잡고 있다. 이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 법은 물의 흐름의 이치를 닮는다.

 

법의 일상화가 된 사회는 민주주의와 복지가 실현되 는 평등 세상이다. 그러함이 문화를 가꾸는 지혜이고, 위기의 황량 한 밭을 기회의 옥토로 경작하라는 백성의 외침일 것이다. 그래서 백범 김구 선생의 이야기에 더욱 귀가 기우려진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 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문화는 우리의 삶 그 어디에나 스며져 있다. 구린내가 아닌 향기 로운 삶의 내음이 곧 우리 문화의 향기이어야 한다. 제주역사문화 수필집의 지향점은 이웃들과 함께 향기로운 문화의 시대로 나아가려 제주선인들의 삶의 향기를 맡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사이에서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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