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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의 제주해녀와 삶(18)] 아, 여기에서는 진짜로 해녀가 될 수 있겠구나

 제주해녀가 세계를 품었다. 유네스코에 의해 당당히 ‘제주해녀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제주와 대한민국의 쾌거다. 하지만 해녀는 아직도 우리의 시선에선 그저 물질이나 하며 생계를 꾸린 제주의 독특한 전통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엄연히 삶이 있고, 애환이 깃든 가족·가정사가 있으며 저승길 문턱을 오가며 가슴에 파묻은 눈물이 있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심연의 바다에서 제주사(史)를 일궈온 해녀의 삶, 그리고 그 인생사 이야기들을 연속기획연재 형식으로 허정옥 교수가 풀어낸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그는 서귀포 법환해녀학교 과정을 마치고 그의 어머니가 해왔던 해녀의 삶을 오롯이 되살리고자 스스로도 물에 뛰어들고 있다. / 편집자 주

 

우리는 16주에 걸쳐서 이론과 실습으로 구성된 총 80시간의 커리큘럼을 이수했다. 수업은 1주일에 두 번씩, 토요일 3시간과 일요일 2시간으로 이루어졌다. 토요일에는 이론과 실습, 일요일에는 실습 위주로 수업이 진행됐다. 수업이 끝나면 1주일에 한 번씩 실습일지를 작성해서 전담교수에게 제출했다. 이론 시험을 대체하는 리포트인 셈이다. 실기 시험은 마지막 수업 시간에 조별로 일대일 개인기량을 점검하고 물질실황을 비디오로 촬영해서 평가했다.

 

다음은 그 실습일지의 몇 몇 내용을 간추려서 정리한 것이다. 법환좀녀마을 해녀학교의 수업실태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어쩌면 해녀학교 입학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최고의 의사결정이 아닐까 싶다. 입학식 사진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내 얼굴은 감출 수 없는 만족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첫 번째 시간, 서귀포시 양홍식 해양수산 과장의 ‘해녀 어머니 이야기’는, 그가 왜 해녀학교를 개설하는 데 그토록 열심을 다했는가를 방증하기에 충분했다. 해녀 어머니가 만들어 준 소라꼬치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아들, 누나가 원정물질 가서 벌어다 준 돈으로 면학하여 해녀담당 과장이 된 동생.

 

그 성장배경과 바다사랑이 ‘제주바다에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영원히 울려 퍼지게 하자’는 갈망으로 이어진 듯하다. 그의 강의는 우리 해녀학교가 얼마나 소중한 그의 사명이자 비전인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우리에게 쏟는 그의 정성과 기대, 솔직담백한 추진과정과 어려움, 앞으로 더 투입해야 할 열정과 자원 등의 스토리를 듣는 동안, ‘아, 여기에서는 진짜로 해녀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꿈틀거렸다.

 

두 번째 시간, 교장선생님의 등장은 교실을 심훈의 상록수보다 더 진지한 분위기로 만들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로 구성된 학생들과 60대 해녀 교장선생님이 만나서 이루어진 학교라니.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다지만 더할 나위 없이 당당하고 실력 있는 선생님은 우리들의 눈과 귀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까지를 화알짝 열어놓았다.

 

우리는 교장선생님의 인생과 물질 이야기, ‘해녀란 무엇인가’를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역시 명품 강의란 화려한 수식과 그럴싸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자기 경험과 기술, 실패와 고난, 노하우와 성과, 눈물과 반전 등을 솔직하게 전해주는 감정이입의 산물이다.

 

그녀는 물질뿐만 아니라 가르침과 리더십에 있어서도 상군이었다. 게다가 눈에 띄는 미인이라서 ‘해녀는 전문직업인인 만큼 햇볕에 그을리지 않도록 썬크림을 듬뿍 발라서 품위를 잘 유지하라’는 가르침이 이심전심을 불러일으켰다. 역시 12질 깊은 물속을 무시로 넘나드시니 학생들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직업병적 염려도 금방 알아채시나 보았다. 바위인 양 붙어 있는 암전복을 찾아내듯, 돌멩이로 위장한 문둥구제기를 놓치지 않듯이 말이다.

 

실습시간, 드디어 교실을 벗어나 잠수복, 모자, 오리발, 수경 등의 해녀복장에 태왁을 어깨에 메고서 줄을 지어 바다로 나갔다. 원을 그리면서 오리발을 차는 연습을 하다 보니, 우리의 마음도 둥그런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았다. 직접 몸을 던져서 실연과 강의를 넘나드는 우리의 교감선생님, 조남용 교감선생님의 열정어린 지도와 훈련은 우리 해녀학교의 매력이자 강점이 될 듯한 예감이 들었다.

 

물속으로 직수해 들어가는 연습을 하던 중, 누군가 ‘문어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웬 횡재인가? 얼른 잠수해 들어가 보니, 바위 옆에 도사리고 앉아 낮잠을 즐기던 녀석이 꿈틀대며 막 움직일 태세다. 급한 마음에 얼른 녀석의 몸통을 붙들었다. 그런데, 아뿔싸, 그만 매끄럽게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바위틈으로 숨어버리는 게 아닌가.

 

이판사판으로 붙어서 기어코 문어의 상퉁이(머리통)를 붙들고 싶었지만, 호흡이 다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물 밖으로 솟구쳐 나왔다. ‘바다에서는 결코 욕심을 부리지 마라. 하나 더, 기어코 하는 욕심을 버리고 다음을 기약해라. 내가 못 잡은 건 동료의 몫이 된다’는 우리 어머니, 상군해녀의 당부를 떠올렸다.

 

바다의 시간은 왜 육지보다 짧을까? 이제 막 재미가 나려는데, 선생님이 ‘수업끝’을 선포하신다. 이렇게 수업이 재미있고 아쉬우면 공부 안 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오늘은 소라를 4개나 잡았다. 비록 다시 바다로 보내야 하는 실습이지만, 무언가를 잡는다는 건 물질을 진짜 하고 싶게 만드는 동기를 제공한다. 수영장에서는 쉽게 지치고 지루한 수영이 바다에서는 마냥 신나고 즐거운 놀이가 된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교실에서, 우리는 배려 깊은 급우가 미리 준비한 주스와 케이크로 허기를 달랬다. 물질을 하고 나오면 솟구치는 ‘배고픔’은 참으로 오랜만에 가져보는 추억의 느낌이다. 아마 이 허기와 먹성은 우리가 16주의 물질수업을 하는 동안 심신을 진짜 해녀처럼 튼튼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끝으로 조편성을 하고 반장을 뽑고 나니, 지난날의 교실, 추억의 그 학교로 돌아온 느낌이다. 내가 반장이 되었다. 인생 후반전에 이 무슨 영화인가. 다음 수업부터는 반장의 ‘차렷, 경례!’ 소리에 맞춰서 선생님께 일제히 인사를 해야겠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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