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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의 제주해녀와 삶(17)] 제대로 해녀를 양성하는 학교

 제주해녀가 세계를 품었다. 유네스코에 의해 당당히 ‘제주해녀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제주와 대한민국의 쾌거다. 하지만 해녀는 아직도 우리의 시선에선 그저 물질이나 하며 생계를 꾸린 제주의 독특한 전통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엄연히 삶이 있고, 애환이 깃든 가족·가정사가 있으며 저승길 문턱을 오가며 가슴에 파묻은 눈물이 있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심연의 바다에서 제주사(史)를 일궈온 해녀의 삶, 그리고 그 인생사 이야기들을 연속기획연재 형식으로 허정옥 교수가 풀어낸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그는 서귀포 법환해녀학교 과정을 마치고 그의 어머니가 해왔던 해녀의 삶을 오롯이 되살리고자 스스로도 물에 뛰어들고 있다. / 편집자 주

 

 

 

‘너와 같이 1년만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는 어머니의 하소연을 못이기는 척 하고 돌아온 고향에서, 나는 운 좋게도 법환좀녀마을 해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해녀양성과정’이란 교육목적이 가슴 설레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내가 진짜로 해녀가 될 수 있을까? 두둥실 태왁에 몸을 싣고서, 서귀포 바다를 마음껏 얼싸안고서, ‘호이, 호오잇’ 속이 터져라 숨비소리를 내지를 수 있을까?

 

우선 커리큘럼을 보니 물질 실습만 하는 게 아니라 해녀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을어장과 어촌계에 대한 이해’, ‘노래로 배우는 제주어’, ‘해녀음식과 건강관리’, ‘불턱체조와 숨비소리’ 등 해녀의 생활문화와 관련된 이론과목들도 다양했다. 또한 해녀 물질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물때·조류·바람과 물질’, ‘물질도구와 태왁 사용법’ 등 필수과목들도 체계적이었다.

 

‘제라지게(제대로)’ 해녀를 양성해 보려고 오랫동안 준비해 온 학교 같았다. 사실, 나는 접수가 시작 되자마자 바로 원서를 제출한 첫 번째 학생이었다. 매스컴을 통해 개교소식을 입수하면서부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적시에 행동한 결과였다. 한수풀해녀학교 때의 마음 조리던 입학절차를 다시는 겪지 않으려고 노력한 산물이기도 하였다.

 

제주시에 있는 한수풀해녀학교까지 왕복 2시간을 헌납하며 오갈 때, ‘서귀포에도 해녀학교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 드디어 그렇게 바라던 학교가 곧 개교한다니, 꼭 제때에 등록해서 반드시 해녀 학생이 되고 싶은 각오와 기대가 들끓었던 것이다.

 

입학식 날, 법환마을 포구에 특설된 입학식장엔 개교와 함께 30명의 신입생을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졌다. 오프닝공연으로 시작된 뮤지컬 ‘해녀의 일생’은 법환마을 해녀선생님들이 공동 제작, 처녀 출연한 창작품이었다. 배우들의 의상과 표정, 말과 노래 등이 시종일관 웃음바다를 이루긴 했지만, 신입생들에게 ‘해녀란 무엇인가?’를 정석으로 가르쳐주는 걸작이었다. 이어서 등단한 시장님, 도의원님, 마을회장님 등의 연속된 인사말과 축사 등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의 가슴은 이미 기쁨과 기대로 가득차고 말았다. 마지막에 등장한 여자 교장선생님이 ‘어촌계장으로서 해녀학교를 만들게 된 동기와 과정’을 회고할 때는, 그야말로 가슴 벅찬 감동과 뭉클한 결의를 불러 일으켰다. 해녀학교에는 역시 교장선생님도 여성이 제격인 듯, 심장이 뜨겁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는 제대로 해녀를 만들어 주겠구나!

 

첫 번째 실습 시간, 바다는 만조였다. 해녀 실습장엔 이미 밀물이 가득 들어와 넘실대고 있었다. 우리는 해녀 선생님과 함께 5명이 조를 이루었다. ‘흙조’라 붙여진 이름이 우스워서 차라리 ‘흑조’라 부르기도 하였다. 범섬을 배경으로 둥그렇게 만을 이룬 실습장은,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실이었다. 선생님들은 특별히 사명과 열정이 넘치고 실력과 기술이 노련한 분들이었다. 태왁을 짚고서 오리발로 빠르게 헤엄치는 기술, 소라가 서식하는 장소와 문어가 진을 치는 환경, 파도가 높이 일 때 피하는 요령(파도를 등에 업고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감) 등을 차근차근 일러주셨다.

 

드디어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오리발을 약간 수면 아래로 잠기게 해서 힘차게 뒷발질하며 휘저었다. 역시나 오리발이 수면 위에서 가볍게 찰싹거릴 때보다 추진력과 가속도에 힘이 실렸다. 배움의 힘이 주는 만족감과 신기함에 취해서 우리는 더욱 힘차게 발차기를 하였다. 발들이 잇대어져 만들어지는 원을 따라서 우리의 ‘깔깔’ 대는 웃음소리가 허옇게 포말 지며 부서졌다.

 

입을 크게 벌리며 달려와 우리 앞에서 부서지는 파도도 ‘하하’ 거리며 함께 웃어댔다. 어느새 우리의 마음은 둥그런 원을 그리며 하나가 되어 두둥실 구름위로 날아올랐다. 그 순간, 영등할망처럼 마음씨 좋은 선생님께서 “호∼오이, 호잇!” 하는 숨비소리를 휘파람처럼 내질렀다. 그러고는 두 발을 하늘로 번쩍 치켜 올리더니 머리를 물속으로 세차게 처박으셨다.

 

직수해 들어가는 “숨비질”을 시연해 주시는 거다. 내게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헤엄치던 우물안의 개구리가 자유형을 제대로 배운 수영장의 프로선수를 보는 느낌이었다. 내심 ‘물질을 배웠다’고 장담하면서도 실은 제대로 학습하고 훈련해 본 적이 없으니, 나는 평생 ‘돌팔이’요, 영원한 ‘아마추어’였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것에는 배움이 필요한 거다. 갑자기 향학열에 불타오른 내가, ‘선생님추룩 바당 소굽에 들어강 구제기 호나 잡아보카 마씸(선생님처럼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소라 하나 잡아볼까요)?’하고 호기를 부렸다. 그 순간, 선생님이 얼른 바다 속으로 잠수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소라의 위치를 파악한 후 다시 올라와서는 그 장소들을 가리켜주셨다. 참으로 가르침이 철저하고 솔선수범적인 스승님 덕택에, 나는 한 번 숨비질에 소라를 다섯 개나 잡아 올리는 신기록을 수립했다.

 

진짜 해녀가 된 기분의 그 짜릿하고 뿌듯함이라니. 역시 가르침이란 화려한 수식과 그럴싸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다. 진짜는, 자기 경험과 기술을 고스란히 전수해 주는 제자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거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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