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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의 제주해녀와 삶(15)] 제주바다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그녀

 제주해녀가 세계를 품었다. 유네스코에 의해 당당히 ‘제주해녀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제주와 대한민국의 쾌거다. 하지만 해녀는 아직도 우리의 시선에선 그저 물질이나 하며 생계를 꾸린 제주의 독특한 전통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엄연히 삶이 있고, 애환이 깃든 가족·가정사가 있으며 저승길 문턱을 오가며 가슴에 파묻은 눈물이 있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심연의 바다에서 제주사(史)를 일궈온 해녀의 삶, 그리고 그 인생사 이야기들을 연속기획연재 형식으로 허정옥 교수가 풀어낸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그는 서귀포 법환해녀학교 과정을 마치고 그의 어머니가 해왔던 해녀의 삶을 오롯이 되살리고자 스스로도 물에 뛰어들고 있다. / 편집자 주

 

어머니가 원정물질을 위해 육지로 떠나던 17세에,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대포마을을 떠났다. 이때부터 멀어진 바다는 내 마음속의 추억으로 아스라이 가라앉았다. 물질 또한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기억속의 지나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표면적으로 보면 나는 바다와 물질을 잊어버린, 아니, 전혀 관계가 없는 도시의 직업인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때가 되면 다시 돌아와 직면하게 되는 어떤 숙명 같은 게 있다. 마치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자기충족적 예언과 같이 나의 물질에 대한 꿈이 그러하였다. 바다를 떠난 지 30여년이 지난 어느 날, 다시 돌아 올 기회가 생긴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획해 온 나의 직업전선에서 예상치 못한 실직의 변수가 발생하였다.

 

그 틈을 타서 나는 한림읍 귀덕리의 한수풀해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2009년도 4월, 타이밍이 절묘하게도 두 번째 신입생을 뽑는 마지막 날, 맨 끝번호로 입학의 행운을 거머쥐었다. 31번이었다. 이 학교는 제주의 독특한 해녀문화를 보존하고 제주해녀의 삶과 강인한 개척정신을 젊은 세대에 전파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다.

 

 

 

드디어 제 2기 입학식이 시작되려는 찰나, 새파란 눈의 외국 여자가 ‘나도 좀 들어갈 수 없느냐’고 적극적으로 애걸하였다. 지금은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지만, 고향 호주에서는 어부를 해봐서 ‘누구보다 제주바다를 좋아한다’면서. 그러니, 물질을 배워서 꼭 ‘제주해녀를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해녀학교에 대한 입학 의지와 열정, 목적이 학교당국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녀의 이름은 셰린이었다. 문제는 그녀를 위해 수업을 영어로 통역해 줄 수 없는 현실의 한계였다. 하는 수 없이 마지막 번호인 내가 그녀의 학습을 도와주기로 하고, 세린은 즉석에서 입학이 허락되었다. 32번이었다. 참으로 설립목적을 위해서라면 통쾌하고도 유쾌하게 열려 있는 학교였다. 그 덕택에 나는 입학식을 기념하는 사진에서 셰린과 함께 나란히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 외국인은 특별히 대접받는 분위기였고, 그 자리는 학교가 초대한 귀빈들의 특별석이었다.

 

해녀학교는 입학식 날부터 32명 전원이 고무 잠수복을 입고서 물질을 시작했다. 처음 입어보는 고무옷이 왠지 모르게 답답하고, 허리에 찬 납덩이(연철)도 은근히 불편했다. 하지만 차가운 5월의 바닷물 속에서 2시간을 족히 견뎌내려면 오히려 감지덕지인 복장이었다. 입학식이라고 해서 적당히 넘어가지 않는 분위기 또한 기강이 느껴지는 진짜 학교였다.

 

어촌계장 출신의 남자 교장선생님이 우리들의 실습을 진두지휘하는 모양이 그야말로 중대장처럼 느껴졌다. 뚱뚱한 배를 돋보이게 하는 고무옷이 그의 스타일을 한층 더 다부지게 만들었다. 때문에 우리는 모두가 말 잘 듣는 모범생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에 2시간씩 16주 동안 바다현장에서 실습을 하는 것이 커리큘럼이었다. 대학의 한 학기 교양강좌와 유사한 체계였다. 실습 계획은 5월 유영훈련, 6월 잠수법 및 호흡법, 7월 해산물 채취훈련, 8월 종합훈련으로 구성되었다.

 

학생들이 각각 물질 솜씨를 선보이면 선생님이 그 기량을 보고서 일대일로 개인지도를 행하는 도제식 훈련방식이었다. 한 번도 정식으로 물질을 배워본 적이 없는 내겐, 늦게나마 제대로 가르침을 받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미 연습용 소라가 뿌려진 실습장에는 해녀선생님들 서 너 분이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배움이란 얼마나 가슴 벅차고 설레는 것인가? 또한 바다는 얼마나 그리움에 가슴 졸이던 곳인가? 나는 숨을 한껏 들이쉬고서 쏜살같이 물속으로 숨비질해 들어갔다. 여기저기 돌 틈마다 소라들이 엉덩이를 치켜들고서 엉거주춤 엎드려 있었다. 이게 웬 구제기인가? 서 너 개를 재빠르게 주워들고 용솟음쳐 올라왔다. 지켜보던 해녀선생님이 큰 소리로 외쳤다. “여긴 벌써 상군 나서. 야인 더 공부헐 필요가 어신게. 낼부터 우리영 곹이 물질 해여도 되크라(얘는 더 공부할 필요가 없어. 내일부터 우리랑 같이 물질해도 되겠네).”

 

그 걸걸한 목소리가 내 안에 잠자던 해녀를 깨웠을까? 나는 32시간의 수업 동안, 물고기들이 무안할 정도로 부지런히 헤엄치고 끊임없이 잠수했다. 다행히 수영이나 골프와 같은 운동과 달리 물질은 특별한 규칙이나 동작의 표준, 일정한 법칙 등이 없는 일이다. 그냥 눈으로 보고 몸으로 익혀서 나름대로 물건을 채취하면 되는 노하우의 작업이다. 그러니 어려서 내가 배운 대로 몸이 기억하는 바에 따라 움직이면 되는 거였다. 해녀 선생님도 바로 그 점을 인정하시고, 나의 물질 방식과 포즈에 대해 가타부타 간섭을 하지 않으셨다. 아니, ‘잘 한다’는 격려와 공개적인 칭찬, 자율과 재량을 허락하는 것으로 최고의 교육과 훈련을 선사해 주셨다.

 

그래서일까? 30년이 넘어서 돌아온 나를 그대로 덥석 안아주는 바다의 넉넉한 품이 고맙고도 서러웠다. 그 품 안에서 나는 더 열심히, 신나게, 그리고 성실히 실습에 임했다. 하지만 소라를 잡은 후 다시 되돌려주는 게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재미가 없어졌다. 실습장도 축항으로 둘러싸인 공간이라 파도가 없어서 바다 맛이 덜하였다. 하지만 커리큘럼상의 유영훈련, 잠수법 및 호흡법, 해산물 채취훈련 등이 오리엔테이션과 달리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게 다행이었다.

 

물질은 이 모든 게 차례로 발생하거나 분리되어 일어나지 않는 종합적인 기술이자 총체적인 기능이다. 이 점에서 수영장에서 하는 수영과 바다에서 하는 물질은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수영은 정해진 공간에서 그저 운동을 하기 위한 다종류의 기능이지만, 물질은 다양한 상황에서 살아있는 물건을 채취하기 위한 총체적 작업이다. 유영과 잠수, 호흡, 채취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동시다발적 행위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렸을 적 물질을 배우던 방식처럼 처음부터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가서 돌멩이를 주워오거나 풀을 뜯어 올리는 훈련을 바로 하는 게 효과적이다. 나중에는 소라잡기보다 물고기와 함께 헤엄치며 놀러 다니는 데 정신이 팔리기도 했다. 사실 물질하러 들어가서 총천연색의 물고기들을 만나거나 떼 지어 다니는 멸치나 자리 같은 작은 고기들을 보게 되면, 소라잡기도 잊은 채 뒤따라 다니게 된다.

 

오죽하면 뱃물질을 나간 해녀들도 노를 저으며 노래할 적에 물고기를 벗 삼아서 놀고 싶다 하였을까? ‘한강 바당 네를 젓엉 이섬엘 가민 점복이 시카, 저섬엘 가민 진주가 시카, 풍덩 빠젼 들어가 보난 궤기덜은 모다나 들엉 벗을 삼앙 놀젠 해라(한강 바다 노를 저어 이 섬엘 가면 전복이 있을까, 저 섬엘 가면 진주가 있을까, 풍덩 빠져서 들어가 보니 고기들은 모여나 들어서 벗을 삼아 놀려 하더라).’

 

이 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해녀가 될 수만 있었다면, 아마도 나는 바다로 돌아갔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학이 취업을 보장해 주지 않듯이, 해녀학교 졸업장이 해녀를 보증해 주지 못했다. 정작 학교의 목적은 해녀 양성보다 홍보에 있었다. 지금은 9기에 걸쳐서 약 500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지금까지 9명 정도가 정식 해녀와 해남이 되어 현지해녀들과 물질을 하고 있으니, 홍보 이상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결국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하는 수 없이 직업을 찾아 서울로 올라갔다. 하지만 다시 맛 본 해녀의 길은 여간해선 잊히지 않는 숙명처럼 다가왔다. 어느덧 50이 넘은 나에게 바다는 연어의 회귀처럼 귀향을 갈망케 하였다. 보목마을의 섶섬을 배경으로 한 황순원의 소설 ‘비바리’처럼, 주말이면 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들을 바라보며 서울살이의 시름을 달랬다. 어서 빨리 바다로 나가서 ‘호이, 호오잇’ 하며 숨비소리를 내지르고 싶었다. 깊이깊이 잠수해서 그리운 나의 소라들을 만져보고도 싶었다.

 

 

 

참, 이쯤에서 나의 한수풀해녀학교 동기인 셰린(Sherrin Hibbard)을 생각하며 한 편의 글을 올린다. 서울에서 썼던 신문 칼럼을 다소 개정한 것이다. 지금쯤 셰린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셰린은 제주바다가 맺어 준 친구다. 그녀는 호주 출신이고,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5년째 제주에 살고 있다. 열일곱 살 이후로 한 장소에서 5년 이상 머물러 본 적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벌써 이곳을 두 번 이상 떠났을 터이지만, 그때마다 소리쳐 우는 바다가 발목을 붙잡았다. 그녀가 얼마나 바다를 좋아하는지는 삶의 이력에 생생히 남아 있다.

 

너무나 바다를 동경한 나머지 배를 타기 위해 요리법을 배운 여자. 남성들만의 선상에서 세린은 유일한 여자 선원이었다. 요리사로 시작한 그녀의 선원생활은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선장이 되기까지 길어졌다. 그리고 우연히 제주에 오게 된 그녀의 바다 사랑은 이곳에서 한층 더 깊어졌다. 셰린은 사랑의 자유가 무한대인 싱글이다.

 

내가 셰린을 만난 곳은 한림읍 귀덕2리가 문을 연 한수풀해녀학교 개교식장이다. ‘해녀학교’ 뉴스를 보고 친구와 함께 구경나온 셰린은 ‘나도 정말 해녀가 되보고 싶다’며 발을 굴렀다. 마침 그녀처럼 해녀가 되고픈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셰린의 사정을 학교에 알리자, 학교는 그녀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다만 내가 셰린의 입과 귀가 되어 그녀의 학교생활을 충실히 도와야만 하는 것이 전제되었다. 그 소식을 듣고서 팔짝팔짝 뛰는 셰린은 영락없는 중학생이었다. 즉석에서 해녀복을 입고 우리와 함께 나란히 입학식 사진을 찍은 셰린은 지금도 그 속에서 가장 크게 웃고 있다.

 

셰린은 여러모로 우리 반의 우등생이었다. ‘바다 속에서 가장 오래 숨을 참고 버티기’ 시험에서는 급우들은 물론 해녀 선생님들을 제치고 1등을 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물속에서 1∼2분을, 아무리 숨이 긴 대상군이라도 3분을 넘기기 어려운데, 셰린은 4분 30초를 견뎌냈다. 그의 비법은 깊고 넓은 들숨으로 온 몸의 구석구석에 산소를 꾹꾹 누르며 불어넣었다가 서서히 끄집어서 날숨으로 조금씩 내보내는 방식이다. 풍선식 호흡법이라고나 할까. 그녀는 태국에서 배운 무호흡 잠수법을 제주도에 맞게 재개발한 것이라 하였다. 그 비결을 아낌없이 공개해서 동급생들에게 찬찬히 알려주는 셰린은 단연코 모범생이었다. 어쩌면 그의 우수성은 성적보다 선행에 더 기인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선행의 진면목은 본격적인 해녀수업에서 그 모습을 더욱 솔직하게 드러냈다. 잠수법을 배우고 소라잡기에 들어간 어느 날, 학생들은 모두 자기가 잡은 소라를 자랑하며 망실이를 힘껏 들어 올렸다. 아이고, 저걸 어쩌나! 셰린의 망실이에는 플라스틱 병과 깡통, 비닐 등이 가득했다. 내가 수업내용을 잘못 전했나보다. 쓰레기를 보며 한마디씩 하는 급우들 앞에서 나는 민망한 마음으로 망실이속을 헤아려 보았다. 어떻게 셰린의 눈에만 이런 것들이 보였을까? “바다에 쓰레기가 너무 많아. 사람들이 생각 없이 그냥 막 버린 거야. 그러니 바다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은 그 바다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보살펴야만 해.” 그러면 그렇지. 셰린은 몸짓과 눈빛만으로도 의사소통은 물론 이심전심의 배움을 실천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 해녀학교 학생들 중에서 바다를 가장 사랑한 사람은 셰린일는지 모른다. 적어도 셰린이 바다를 가장 좋아하는 건 분명하다. 그녀는 수업 시작 전의 준비운동 시간조차 못 참아 할 정도로 바다와 교감하기를 좋아한다. 온 몸으로 바다의 속살을 느끼면서 어서 빨리 물질을 배우고 싶어 안달이다. 그리고 바다에 뛰어들면 금세 물을 만난 고기가 된다. 움직임이 얼마나 유연하고 열정적인지, 상군해녀의 딸인 내가 무색할 정도다. 그리고 가끔 숨비소리를 흉내 내면서 속내를 터놓는다.

 

“나는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바다에서 물질하는 게 더 좋아. 해녀만 하고 살아갈 수는 없을까? 만약 바다가 덜 오염되고 소라가 더 많아진다면 그럴 수도 있을텐데... 호-이” 그러니까 셰린의 꿈은 제주바다에서 해녀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느 날, 교실(귀덕2리 포구)을 청소하다가 죽은 생선을 보고 와∼앙 울어버린 셰린. “쓰레기들이 바다가 아니라 하수구에서 흘러나오고 있어. 무심코 버려진 쓰레기들이 마침내 제주바다를 모두 오염시키고 말거야.” 그리 되면 바다와 함께 그녀의 꿈도 죽어버리고 말 거다.

 

그래서 셰린은 ‘제주 바다 지키기’를 자청하고 나섰다. 해양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3주 동안 하루 10 킬로미터씩 제주바다를 일주하면서 환경오염 실태를 점검하는 것이다. 사실 그녀는 집 근처인 삼양 검은모래 해변을 산책할 때도 쓰레기를 남기고 가려는 사람들에게 서투른 한국말로 외친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 주세요'라고.

 

그러기 위한 체력단련을 위해 올 여름에는 ‘자전거 제주 일주’를 마쳤다. 나도 그녀와 함께 하루를 달렸다. 사실 자전거 제주일주는 이미 이틀에 걸쳐서 제주 해안도로를 일주한 내가 제안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앞서가는 바퀴와 나란히 동행할 수가 없어서 슬쩍 포기하고 말았다. 그녀에게 도움은커녕 방해가 되어서다. 어쩌면 그녀의 넘치는 에너지는 뜨거운 바다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아니, “물질만큼은 제주 해녀들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 순식간에 문어를 낚아채는 기술은 정말 최고예요."라며 극찬하는 해녀 사랑이 그 발전소일 것이다.

 

그녀가 사랑하는 바다, 눈물이 아롱지는 제주 바다는 정작 우리 어머니들이 목숨 걸고 물질하는 일터다. 우리를 먹여 살리려고 칠성판을 등에 지고서 한 질, 두 질, 열두 질의 깊은 물속으로 속절없이 들어가는 바당밭. 그러니 바다는 우리들의 젖줄이 아닌가. 그 생각을 하면, 내 눈시울도 붉어진다. 제주 해녀의 지속성은 공부보다 청소가 우선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바다가 죽으면 해녀도 사라짐을 염려할 때다. "제주는 정말 아름답고 세계환경수도로서 잠재력이 높지만, 쓰레기가 너무 많아요. 우리는 지구에 책임감을 가져야 해요. 정부를 탓하기 이전에 개개인의 작은 노력이 중요합니다."라고 외치던 셰린의 선행에 이제는 우리가 답할 때이다.⌝

 

고마워, 셰린! 이제, 바다는 우리가 책임질게. 우리 한수풀 해녀학교 졸업생들이 너의 ‘바다 사랑’ 바통을 이어받아서 제주바다가 청정해질 때까지 이어달리기를 계속 할 거야. 제주 해녀가 영원히 지속되는 미래를 위하여!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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