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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의 제주해녀와 삶(13)] 여고생이 되기 전 유달리 따뜻했던 겨울

 제주해녀가 세계를 품었다. 유네스코에 의해 당당히 ‘제주해녀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제주와 대한민국의 쾌거다. 하지만 해녀는 아직도 우리의 시선에선 그저 물질이나 하며 생계를 꾸린 제주의 독특한 전통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엄연히 삶이 있고, 애환이 깃든 가족·가정사가 있으며 저승길 문턱을 오가며 가슴에 파묻은 눈물이 있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심연의 바다에서 제주사(史)를 일궈온 해녀의 삶, 그리고 그 인생사 이야기들을 연속기획연재 형식으로 허정옥 교수가 풀어낸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그는 서귀포 법환해녀학교 과정을 마치고 그의 어머니가 해왔던 해녀의 삶을 오롯이 되살리고자 스스로도 물에 뛰어들고 있다. / 편집자 주

 

‘어떤 일에 1만 시간 이상을 투입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소위 1만시간의 법칙에 따르면, 요람에서 열여섯까지 이어진 나의 물질 시대도 얼추 여기에 해당한다. 어쩌면 ‘10년 법칙’이라는 관점에서 보아도 대충 맞아떨어지는 기간이다. ‘좀녀 아기 나뒁 사을이민 물에 든다’고 했으니, 교실 다음으로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 바다일 터다.

 

실제로 어머니는 ‘나를 낳은 후 사흘만에 물에 들었노라’고 말씀하신다(어머니의 이 고백은 제주해녀박물관 영상실에 녹화되어 관객들에게 공개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시절을 상상컨대, 어머니는 ‘좀녀 아긴 일뤠만에 것 멕인다’는 말처럼 이레만에 나에게 밥을 먹이고서 물에 들어가셨으리라.

 

정한숙의 소설 ‘해녀’의 효순이처럼, 어머니의 탯줄에서 떨어진 나는 바닷물에서 배꼽이 야물었고, 가시 같던 잔뼈가 산호가지 모양 튼실해졌을 것이다. ‘똘 다섯 나민 부재 뒌다’는 옛말이 시사하듯, 어머니가 나를 골체(삼태기)에 눕혀서 불턱의 엉장 그늘케(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불을 쬐는 곳으로, 보통 큰 바위들로 가려져 그늘이 생김)에 놓아두고 물에 들러 가버리면, 일곱 살짜리 셋째딸이 애기업개(애기를 돌보는 아이)를 하였는지도.

 

 

어머니에게는 내 위로 다섯과 아래로 하나, 도합 일곱명의 딸들이 있었다. 어머니는 위로 셋이 어느 정도 자라면 첫째가 넷째, 둘째가 다섯째, 셋째가 여섯째를 돌볼 것을 명하였다. 둘 사이의 터울이 6∼7세 정도이니 충분히 가능한 계산이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똘 한 집이 부재(딸 많은 집이 부자)’란 속담은 우리 집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언니와 나는 둘이서 잡은 물건에다 어머니가 얹어주는 상품을 짊어지고 중문 신작로와 서귀포 매일시장에 나가서 팔았다. 딸들은 어머니의 판매원이자 근로자였고, 우리집의 판매 철학은 박리다매(薄利多賣)였다. ‘별다른 자본을 들이지 않고 공짜로 얻은 것들이니 그저 준들 어떠랴’는 게 어머니의 마케팅철학이었다.

 

어머니가 딸들에게 판매와 밭일을 맡겨놓고 물때에 맞춰서 바다로 나가면, 동네해녀들은 부럽다는 듯 한마디씩 거들었다. “정열이 어멍은 똘덜이 하난 조크라(정열은 큰딸의 이름; 딸들이 많아서 좋겠다)”. “똘 셋이민 혼해에 밭 혼 파니썩 산댄 허난, 올히도 큰 밭 호나 사큰게(딸 셋이면 한 해에 밭 한 뙤기씩 산다니, 올해도 큰 밭 하나 사겠네)”.

 

이처럼 채취한 물건을 판매한 시간까지를 합치면, 나는 보통의 애기좀수가 아니었다. 얼마나 물질에 빠져서 살았던지, 고등학교 입학식 날 선생님이 내 얼굴을 보고서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교감선생님이 찾는다는 소리에 교무실로 달려간 내게, 선생님이 물으셨다.

 

“네가 허정옥이냐?” “네, 허정옥입니다!” “네가 중문중학교 허정옥 맞아?” “ 예, 중문중학교 출신 허정옥입니다!” “그럼, 네가 이번에 수석 입학한 중문중학교 허정옥이 맞아?” “예, 제가 그 허정옥입니다!”

 

이쯤에서 형광등이 켜진 나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햇볕에 그을리고 바닷바람에 겉절여진 피부가 그야말로 공부와는 개념이 다른 색깔을 띠었으리라. 오해는 하지 마시라. 이 기회를 틈타서 나의 공부 전력을 자랑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다만 해녀에 대한 묘사를 가급적 사실대로 적나라하게 하고 싶은 것뿐이다.

 

여고생이 되면 ‘더 이상 물질은 안 된다’는 소리에, 겨울 방학 내내 어머니를 따라 바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미역이 양식되면서 ‘허채’ 제도가 사라지자, 자연산 미역은 누구나 먼저 채취한 사람이 임자였다. 아직 좀 이르긴 하지만 미역도 조물고, 소라도 잡고, 머정(운)이 좋은 날은 해삼도 잡았다.

 

물론 어머니는 물에 들어서 소라물질을 하였다. 그 해 겨울은 유달리 따뜻해서 지름잔 고튼 바당(참기름을 부은 잔 같은 바다)이 장군의 하루처럼 내게도 심심찮게 행운을 주었다. ‘바당에 궐허지 말앙 댕기당 보민 호루는 장군헌다(바다에 빠지지 말고 다니다 보면 하루는 장군한다)’는 게 해녀 삼춘들의 덕담이다.

 

 

제주도 해삼은 껍질이 붉은 빛을 띠는 홍(紅)해삼이다. 해삼의 피부는 좋아하는 먹이와 서식처 등에 따라 색깔이 결정되는데, 홍해삼은 주로 우뭇가사리, 김 등 홍조류를 먹는다. 대개 물이 맑고 돌이 많은 제주와 울릉도, 독도 주변에서 많이 잡힌다.

 

제주 바다야 청정하기가 따 놓은 당상이지만, 울릉도 바다도 ‘바농 줏엄직이(바늘을 주울 수 있을 만큼) 물이 고와서 제주보다 물건이 더 많이 난다. 원정 물질을 다녀 온 해녀들의 보고다. 남해안을 비롯한 여타 지역에서는 암녹색이거나 검은색을 띤 뻘해삼(청해삼, 흑해삼)이 주종을 이룬다.

 

충청도 바다는 물이 어둡고 깊지 않아서 조금 때 물이 잠시 맑으면 ‘와다닥’ 하게 빨리 물질을 해야 할 정도다. 주로 해삼바리가 목적인데 전복도 많이 난다. 어쨌든 해삼 중에는 홍해삼이 가장 맛이 뛰어나 ‘해삼의 제왕’이라 불리면서 값도 가장 비싸게 팔린다. 껍질에 가시가 골고루 많이 돋아 있고 표면이 울퉁불퉁한 게 양질이다.

 

그런데 해삼은 겨울에서 초봄까지 추울 때만 움직이고 수온이 25도를 넘어서면 알을 낳은 뒤 자취를 감춰버린다. 이 때문에 ‘4월에 잡은 미(해삼)는 사돈집에 갖고 간다’는 속담이 나돌아 다닌다. 음력 4월이 되면 해삼들이 깊은 바다 속 어딘가에 숨어버려서 잡기가 힘들어지므로 사돈댁에나 들고 갈 만한 귀한 물건이란 뜻이다.

 

이처럼 여름이 되면 해삼을 보기가 힘든 것은 여름잠(夏眠)을 자기 때문이다. 썰물 시간에 크고 작은 바위들을 통째로 뒤집고서 아무리 훑어봐도 녀석들의 흔적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눈 발 날리는 해삼통에서 이리저리 나뒹굴면서 장난기를 발산하던 그 많은 해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참고로 해삼은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3월의 웰빙 수산물이다. 인체 보양 효과가 인삼에 버금가는 바다의 삼(蔘)이라 하여 해삼(海蔘)이다. 바다 삼인 해삼과 육지 삼인 인삼은 찰떡궁합이라서 두 삼을 함께 넣어 만든 양삼탕(兩蔘湯)은 산삼만큼이나 효과가 있단다. 태교의 교과서로 불리는 태교신기에서는 ‘자식이 단정하기를 바라면 잉어, 총명하기를 바라면 해삼, 해산하면 새우와 미역을 먹으라’고 권하고 있다.

 

‘물천은 공거, 친정보다 낫주(해산물은 공짜, 친정집보다 낫다)라는 해녀마을에선 색시감을 고를 때, 우선 ’사발물에나 들 충 알아져(사발물에라도 들 줄 아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면 ‘젭시바당에서 매역이나 건지주마씸(접시물처럼 얕은 바다에서 미역이나 건진다)’ 하는 답으로, 혼사가 순풍에 돛을 달았다.

 

이제 50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고서 동네 해녀들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나도 계속 물질을 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보다 물질을 못하던 영자와 순자가 다녀왔다는 욕지도로 원정물질은 다녀왔겠지?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 했으니 해녀회장은 한 번쯤 해보았을 거다. 지금쯤은 딸들에게 물질을 허락할까 말까 고민도 더러 해볼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저 바다를 누비면서 “호오이 호잇”, 숨비소리 청아하게 바다새와 함께 이중창을 부르고 있으리라. 나의 물질시대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터이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과 경영학을 공부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했고, 법환좀녀마을해녀학교 1기를 졸업했다. 보목마을에서 4개월간 해녀 인턴십을 마친 후 서귀포수협 조합원이 되었다. 마을어촌계에서 기존 해녀들이 조합원으로 받아주어야 정식 해녀가 될 수 있어, 지금은 그 날을 꿈꾸고 기다리면서 글로써 해녀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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