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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130)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견우(牽牛)와 직녀(織女)는 고대 중국 신화 속의 인물이다. 전하는 바는 이렇다. 견우가 천제의 딸 직녀를 사랑하게 됐다. 직녀도 견우를 사랑하게 됐고. 그래서 부부가 됐으나 천제의 노여움을 사게 됐다. 천제는 둘 사이에 은하수를 만들어 서로 헤어지게 한 후 매년 7월 7일에 한 번씩만 만나게 했다고 한다. 이 신화는 민간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면서 진실 된 감정에 대한 동경과 갈망을 표출하는 도구로 삼았다.

 

고대의 애정 전설, 오작교 다리에서 서로 만난다는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는 대대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처럼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이야기는 어디서 유래됐는가?

 

『시경·소아·대동(詩經·小雅·大東)』에 다음과 같은 시편이 보이기는 한다.

 

跂彼織女(기피직녀)  저 직녀성 찾아보니,
終日七襄(종일칠양)  하루 일곱 자리 옮기네.
雖則七襄(수즉칠양)  일곱 자리 옮기지만,
不成報章(불성보장)  비단 무늬 못 짜네.
睆彼牽牛(환피견우)  저 견우성 쳐다보니
不以服箱(불이복상)  수레를 아니 끄네.

 

이 시는 직녀성과 견우성의 별자리에 대해 객관적으로 묘사한 것일 뿐, 견우와 직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한(漢)대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이 두 별자리에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한다. 궁궐 곤명지(昆明池)에 견우와 직녀의 석인상을 만들어 세웠다. 반고(班固)의 양도부(兩都賦)의 “곤명지에 이르니 왼쪽에는 견우 오른쪽에는 직녀, 은하수가 끝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 같아라”는 구절이 그 증거다. 그러나 이 구절도 사실을 묘사한 것일 따름이다.

 

이선(李善)의 『문선·낙신부(文選·洛神賦)』에 와서야 견우와 직녀가 부부가 됐다는 이야기가 보인다. “견우는 남편, 직녀는 아내, 견우와 직녀의 별자리는 각기 자리를 잡고 있다가 7월 7일에야 한번 만나네.” 이때부터 역대로 많은 시인들이 그들의 불행한 결혼생활에 대해 읊기 시작한다.

 

 

 

 


한대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중 「초초견우성(迢迢牽牛星)」에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迢迢牽牛星(초초견우성) 아득히 먼 견우성
皎皎河漢女(교교하한녀) 맑게 반짝이는 직녀성
纖纖擢素手(섬섬탁소수) 곱디고운 하얀 손 놀리며
札札弄機杼(찰찰농기저) 찰칵 찰칵 베북을 움직인다.
終日不成章(종일불성장) 하루 종일 한 폭도 짜지 못하고
泣涕零如雨(읍체영여우) 눈물은 비처럼 계속 흐른다.
河漢淸且淺(하한청차천) 은하수는 맑고 또 얕은데
相去復幾許(상거부기허) 서로 떨어진 거리 얼마나 되는가.
盈盈一水間(영영일수간) 찰랑찰랑 넘치는 물줄기 가운데 두고
脈脈不得語(맥맥부득어) 바라만 볼뿐 말조차 나누지 못하누나.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만 볼 뿐 만날 수가 없다. 그리움에 사무친 슬픔을 가슴 깊숙이 담고 살아갈 뿐. 그렇게 하여 사랑하지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그리움에 사무치는 사람들을 얼마나 울렸던가.

 

그렇다면 견우와 직녀가 어떤 사랑으로 부부가 됐으며 무슨 까닭에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헤어져 7월 7일에서나 만나게 됐을까? 민간 전설과 문학 작품 속에서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보자.

 

전하는 바에 따르면 직녀는 천제(天帝)의 딸이다. 『사기·천관서』에 “직녀, 천손(天孫)이다.”라고 돼 있다. 견우도 하늘의 별자리다. 견우는 은하수 서쪽 기슭에서 소를 치고 직녀는 은하수 서쪽 기슭에서 베를 짰다. 맡은 일을 충실히 하며 게으름이 무엇인지 몰랐다. 천제가 그들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는 어여쁘게 여겨 부부의 연을 맺게 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결혼한 후 두 부부는 금슬이 너무 좋아 애정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너무 사랑에 빠진 나머지 자신들이 맡은 일을 소홀히 하게 됐다. 천제가 대노했다. 사랑 때문에 자신들이 맡을 바를 소홀히 하다니.

 

천제는 까막까치(烏鵲)에게 명령한다. 견우는 은하수 서쪽으로 돌려보내고 직녀는 동쪽에 남게 해 계속 자신이 맡은 직책을 충실하게 만들라고. 그러면서도 7일에 한 번씩 만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었다. 그런데 까막까치가 칠석(七夕)에 한 번씩 만나게 허락했다고 잘못 전달해 버린다. 그렇게 비극이 시작됐다.

 

천제의 뜻을 잘못 전달한 까막까치도 상응하는 징벌을 받게 된다. 천제는 까막까치에게 책임을 물었다. 칠석 때 자신들의 깃털을 모두 뽑아내 견우와 직녀를 위해 은하수 위에 오작교를 만들어 그들이 서로 만날 수 있게 하도록. 그 다리 위에서 사랑을 속삭일 수 있도록 만들라고. 여기에서 매년 칠석이 되면 까막까치들이 깃털을 몽땅 뽑는다는 전설이 전해지게 됐다.

 

다른 식의 이야기도 있다. 견우가 사랑하는 직녀와 결혼하려고 했는데 자금이 없었다. 그래서 천제에게 돈을 빌려 약혼 금품과 폐물을 해결했다. 결혼생활은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남경여직(男耕女織)의 생활이란 예나지금이나 자신들의 생활은 꾸려나갈 수 있을 뿐 돈을 모으지 못했다. 천제에게 꿔온 부채를 갚을 도리가 없었다. 천제는 화가나 그들을 헤어지게 만들었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거주하게 하고 매년 칠석 때나 오작교에서 만나 정을 나눌 수 있게 만들었다.

 

이는 견우와 직녀의 불행이 빈한함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바로 불합리한 봉건제도가 불러왔다는 말이 된다. 그들의 불행하게 된 이유를 봉건사회의 통치자들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봉건제도의 최상위자이며 대표가 천제이기에 천제의 쩨쩨함을 얘기하고 있고. 천제가 왜 봉건제도의 최상위자이며 대표냐고? 황제는 천제의 아들이다. 천제의 명을 받아 황제가 됐다. 그럼 봉건제도의 잘못은 누구에게 있다? 천제에게 있다. 천제의 쫀쫀함을 탓한다는 것은 현실의 통치자들의 잘못을 비꼬는 것이고. 그렇다고 모반은 아니다. 일반백성이 어찌 모반까지 도모하랴, 그저 반항하는 마음의 표출일 터.

 

 

 

 

이외에도 다른 설이 또 있다. 이른바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양산백(梁山伯)과 축영대(祝英臺)의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양산백과 축영대는 서로 사랑을 나누는 사이지만 결혼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둘 다 자살을 택했다. 자살로 끝나면 동양의 이야기가 될 수 없지 않는가. 죽은 후 오색나비가 돼 하늘로 날아간다. 『양축(梁祝)』의 줄거리다. 어떤가, 여음이 길게 이어지지 않는가?

 

이게 끝이 아니다. 정적(情敵)이었던 마(馬) 씨는 사랑으로 죽은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사람을 시켜 그들의 무덤을 파헤쳐 보니 돌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게 아닌가. 돌 두 개를 강 양쪽으로 옮겨 놔 영원히 만날 수 없도록 해코지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돌이 나무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나무가 자라고 자라 마침내 서로 잇대어 가지와 잎사귀가 이어졌다. 나중에 마 씨가 그 광경을 보고 나무를 잘라낸 후 불살라 버렸다. 그런데 활활 타는 불꽃 속에서 물총새 두 마리가 하늘로 올라가는 게 아닌가. 하늘에 올라 견우성과 직녀성으로 변해 은하수 양쪽에 자리를 잡았다.

 

천제가 그들의 비극적인 처지를 알게 돼 불쌍해진 그들을 가련타 여기고 7일에 한 번씩 만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불행은 사람들을 더 불쌍하게 만드는 것일까? 견우와 직녀는 천제의 말을 매년 칠석 때 한 번 만날 수 있다고 잘못 듣게 된다. 그렇게 영원히 여한으로 남게 됐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당대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의 마지막 구절의 모태가 됐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7월 초이레 칠석날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야반무인사어시) 한밤중 인적 없을 때 속삭이신 그 말씀.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죽어 하늘에 있다면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죽어 땅에서 만난다면 연리지가 되자던.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장구한 천지도 결국 다할 때가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우리의 한은 면면히 이어지리니.

 

어찌 보면 이 구절에 견우와 직녀의 의미가 함축돼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감동어린 사랑과 관련된 전설이 문인들의 손에 창작되면서 봉건사회의 효도(孝道)를 선양하는 대상이 돼 버린다. 『태평어람』권4백10 『효자전』과 『수신기(搜神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견우 동영(董永)은 집이 가난했다. 부친이 별세했는데 장례를 치를 돈이 없었다. 자신을 팔아 장례비용을 충당했다. 부친을 위해 삼년상을 치루고 주인집으로 노예 살이 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그런데 도중에 한 여인이 아내가 되겠다며 자신을 막아서는 게 아닌가. 두 사람은 길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함께 주인집으로 갔다. 주인이 여인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묻자 여인은 베를 짤 수 있다고 답했다. 주인은 만약 일백 필의 천을 짤 수 있다면 빚을 탕감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여인은 7일 만에 일백 필을 다 짜서 내놓는 게 아닌가. 그러고 나서 동영에게 말했다. “나는 원래 천상의 직녀랍니다. 당신의 효성이 하늘을 감동시켜 천제께서 내게 세상으로 내려가 빚을 갚아주라 했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얘기다.

 

이외에도 견우와 직녀의 사랑 이야기는 희곡(戱曲)의 제재가 되기도 했다. 다만 황매희(黃梅戱)의 『천선배(天仙配)』와 같은 희곡 작품 대부분은 문인들의 창작과는 달리 반봉건적인 색채가 강하다. 민간전설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각색해 봉건사회의 문인들과는 다른 격조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민간에 가장 광범위하게 전해지는 이야기는 어떤 내용일까? 견우는 세속의 인물, 즉 세상에서 농사짓고 살고 있던 일반인이고 직녀는 재미없는 천상의 궁정 생활에 염증을 느껴 세상으로 내려가 돌아다니고 싶은 갈망을 가지고 있던 선녀다. 하루는 천제가 없는 틈을 이용해 직녀는 사사로이 세상으로 내려와 인간세상에서 유유자적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견우가 우연히 호숫가에서 선녀가 목욕하기 위해 벗어 둔 옷을 발견하고 집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만나게 된 직녀는 견우를 사랑하게 되고 결국 부부의 연을 맺어 살 게 됐다. 부부가 돼 1남 1녀를 낳고 평안하고 고요한 세외도원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사람과 선녀가 사랑을 한다는 것은 천상의 계율을 어기는 것이라, 직녀는 천제의 핍박을 견딜 수 없어 부득이 견우를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견우가 직녀가 떠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서는 곧바로 짐을 꾸려 직녀를 쫓았다. 거의 따라잡았을 때 가만히 보고 있던 왕모낭랑[王母娘娘, 신화 속 여신인 서왕모(西王母)로 곤륜산(崑崙山)의 요지(瑤池)에 살며 불로장생의 선도(仙桃)를 키웠다.]이 머리에 꽂고 있던 옥잠(玉簪)을 뽑아 직녀의 몸 뒤쪽에 훅하니 한 획을 긋자 파도가 거센 은하수가 생겨나면서 견우의 발길을 멈추게 만들었다.

 

 

 

 

마지막엔 왕모낭랑도 두 사람의 목숨을 걸 정도의 사랑에 감동하여 매년 7월 7일에 한 번씩을 만나게 만들었다고 하고. 그렇다면 사랑은 신도 감동시킨다? 어쨌든 남녀의 사랑은 쉬이 결론내릴 수 없는 인간 내면의 미스터리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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