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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17) dissociation, 해리(解離)성 정체성 장애

 

요전에 간호사들과 같이 점심을 먹으며 TV를 보는데 다중인격 장애를 다룬 드라마를 하더라고요. 재방송이겠죠. 제목이 <킬미,힐미>던가요? 과거에는 다중인격 장애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해리성 정체성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라고 합니다. ‘정체성 해리장애’가 더 좋은 번역 같은데요.

 

아무튼 dissociation을 해리라고 번역한 것도 아마 일본 학자일 거예요. 경의를 표합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보니 ‘해리(解離): 풀려서 떨어짐 또는 풀어서 떨어지게 함’이라고 나와 있네요. 해리성 정체성 장애는 딱 한번 경험한 바 있습니다만 이 병에 대해서는 인터넷 여러 군데에서 충분히 소개되었기 때문에 제가 보탤 것까지는 없는 것 같고요. 어쭙잖지만 한자에 대한 감상평이나 그려볼까 합니다. 제목만 보고 들어와 실망하셨다면 제가 이른바 낚시질에 성공한 겁니다.

 

한자 풀 해(解)를 보면 전 <장자>에 나오는 그 예술가 레벨의 백정을 떠올립니다. 소를 잡는데 절도 있는 춤 동작과 설겅설겅 음률에 맞는 칼질 소리에 살과 뼈가 척척 떨어져 나오며 물 흐르듯 해체시키는데 우와 이건 완벽한 행위예술이지 않겠습니까. 그저 입만 떡 벌리고 그 광경을 지켜본 왕이 ‘아, 인간의 재주가 어찌 이런 경지까지 이를 수 있는가.’ 흐흐흐. 글 쓰면서도 슬금슬금 웃음이 나와요. 그 후 전 저 한자를 보면 소를 완벽하게 해체시키며 뼈를 발라내는 칼춤 동작이 보여요.

 

​​

 

 

한자 떠날 리(離)도 제게 사연 있는 글자에요. 신영복 교수는 저서 <강의>에서 초사(楚辭)를 소개합니다. 중국 시인 굴원의 「이소(離騷)」가 초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더군요. 제목 이소(離騷)의 한자 리(離)가 "만나다"는 뜻이더라고요. 이소(離騷)는 ‘근심을 만나다’는 말이 되는데 속이 새까맣게 타다 혹은 너무 우울하다는 뜻이 되겠죠. 그런데 해리(解離)에서 리(離)는 "떠나다"는 뜻이잖아요. 글자도 새가 새장을 훌쩍 떠나는 것처럼 생겼어요. 정반대 뜻입니다.

 

프로이트는 이런 주장을 했어요. 지금 현대인이 사용하고 있는 어떤 단어들을 고대에는 동시에 정반대의 뜻으로도 사용했다고요.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지우면 님이 된다는 유행가 가사도 있지만 점을 지울 필요도 없어요. 애초부터 한 단어에 정반대 의미도 있었다는 겁니다.

 

사랑이란 단어에는 동시에 미움이라는 의미가 들어있고 삶이란 단어에는 죽음이란 의미도 있다는 그런 이야기가 됩니다. 리(離)라는 글자에서 프로이트 주장이 비로소 환기되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한자에는 그런 글자가 많다는 것도 알았고요. 철학이나 언어심리학까지 진행할 수는 없지만 이만하면 제겐 사연 있는 글자가 아닙니까.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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