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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의 날씨이야기(15) 케산전투와 안개

 

 

베트남 전쟁에서 안개가 승패에 큰 영향을 줬던 전투가 바로 ‘케산 전투’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미국 대장 크레이턴 에이브럼스는 “역사상 그 어떤 전투에서도 베트남의 케산에서처럼 날씨가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 적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은 그만큼 이 전투에서 안개와 낮은 구름으로 인해 큰 곤욕을 치러야했다.

베트남 전쟁에 미국 해병대까지 투입됐는데 강력한 전투력을 활용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다. 교착(交着)되어 있는 전황(戰況)을 단숨에 역전시켜 주도권을 잡아보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해병대의 무력시위에도 불구하고 변화될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애초 다낭 기지의 방어를 위해 파견된 해병대는 적의 로켓포 사정거리 안에서는 방어가 무리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다낭 기지에서 60㎞ 지점까지 전진했다. 미 해병대는 이윽고 국도 9호선을 따라 라오스 국경 근처까지 이동해 ‘케산’ 기지를 만들었다. 이곳은 북베트남에서 남베트남으로의 침투, 적 병참선 차단 및 미군의 초계활동을 위한 전진기지로 사용됐다. 남베트남으로 병력과 물자를 보내는 통로로 사용하던 북베트남군에게는 큰 장애물이었다.

케산은 라오스 국경에서 동쪽으로 10㎞, 비무장지대(DMZ) 남쪽으로 약 25㎞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케산 기지에는 길이 1200㎞짜리 활주로 하나가 있으며 기지 전체의 크기는 동서 1800m, 남북 800m에 달하는 북베트남에 가장 가까운 전진기지였다. 고원지대에 위치한 기지 옆으로는 해안과 라오스를 연결하는 도로가 있었다. 미군은 이 도로 옆 기지를 확장해 활주로를 넓히고 6000명의 미 해병대를 파견해 주둔시켰다.

한편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으로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도가 그대로 실현된다면 인근 ‘호찌민 루트(=산악이나 정글 지대의 작은 길로 형성된 통로 연결망)’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고심하던 북베트남의 군부는 결국 4만여명의 병력으로 케산을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1968년 1월 21일부터 4월 18일까지 벌어진 케산 전투는 베트남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로 남았다.

통상 베트남의 5월에서 10월은 남서쪽에서 불어오는 계절풍으로 인해 비가 많은 우기다. 11월부터 4월까지는 북동계절풍의 영향으로 건조한 시기가 된다. 전쟁이 시작됐을 무렵은 건기(乾期)였다. 미군 기상 참모는 케산 지역의 날씨가 대체로 좋고 아침에 3마일 이하의 시정과 2000피트보다 낮은 구름이 끼겠지만 낮에는 3000피트까지 구름이 올라갈 것으로 예보했다. 그러나 이 해에는 유독 1~2월의 날씨가 너무나 안 좋았다. 악천후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미군은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게 된다. 특히 케산의 안개는 너무나 지독했다고 전한다.

케산은 겨울에도 평균 기온이 20℃ 이상 되는 더운 곳이라 안개가 자주 낀다. 그런데 케산에서는 그 독특한 지형적 요인 때문에 모든 종류의 안개가 동시에 또는 번갈아 영향을 줬다. 보통 안개는 그 생성원인에 따라 4가지로 구분된다. 지표면의 냉각으로 발생돼 땅안개라 불리는 ‘복사안개’, 바다에서 생성된 안개가 밀려온 ‘이류안개’, 평지로부터 지형위로 상승하는 공기가 냉각돼 만들어지는 ‘활승안개’, 비가 온 다음 증발된 습기에 의해 생기는 ‘증발안개’ 등이다.

안개는 낮에 온도가 올라가면 걷히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곳의 안개는 소산되기보다는 낮은 구름으로 만들어져 고지대에 다시 형성됐다. 이것을 층운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낮은 층운은 태양 빛을 막아주기 때문에 안개가 오후까지 이어졌다. 한편 층운 구름이 두껍게 형성됐을 때 며칠씩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낮은 구름은 하늘과 땅 사이에 차단막을 형성해 군대를 공습과 폭탄 투하로부터 보호해 준다. 안개는 시야를 불투명하게 해 부대이동을 숨겨주고 적은 병력으로도 적과 싸울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구름과 안개의 형성을 포함한 날씨와 기후에 대한 지식을 지휘관이 잘 알고 있다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1968년 1월 21일 짙은 안개와 낮은 구름이 드리워진 새벽, 베트남군은 대대적인 기습 포격과 공격을 감행했다. 미군 해병대는 공격해오는 북베트남군과 백병전(白兵戰·칼, 창, 총검 과 같은 무기를 가지고 적과 직접 몸으로 맞붙어서 싸우는 전투)을 벌였다. 북베트남군의 포격으로 미군은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이튿날 날씨가 좋아지면서 미 공군의 대대적인 폭격이 가능해지자 베트민군은 작전을 중단했다. 간간이 포격전만 하던 북베트남군은 케산에 대한 2차 공격을 2월 5일 시작했다. 이에 맞서 미군도 온 힘을 다해 물자를 수송하고 무차별적으로 폭탄을 투하했다. 하지만 짙은 안개와 낮은 구름의 연속인 2월 한 달간 항공기를 이용한 지원 작전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 기간 동안 날씨가 가장 좋아진다는 한낮에도 항공기 착륙률은 40%를 넘지 못했다.

한편 3월에 접어들면서 차차 맑은 날이 많아지자 미군 전폭기의 폭격이 정확해졌다. 북동계절풍 몬순이 끝나는 4월이 되자 더 이상 안개가 끼지 않았다. 4월 15일, 케산의 미군은 석달에 걸친 베트민군의 포위로부터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미국의 톨슨 장국은 “아무리 강력한 공중무기도 안개와 낮은 구름으로 시계(視界)가 가려진 상태에서는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며 “케산 전투 이후 날씨는 미래 전쟁에서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30년이 훨씬 지난 코소보 전쟁에서 나토(NATO) 군의 주요 무기는 ‘레이저 유도탄’이었다. 하지만 이런 레이저는 안개와 비 또는 구름 속에서는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앞으로 개발되는 어떤 무기체계도 날씨의 장애를 극복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온케이웨더>
 

반기성은?

 

=충북 충주출생.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공군 기상장교로 입대, 30년간 기상예보장교 생활을 했다. 군기상부대인 공군73기상전대장을 역임하고 공군 예비역대령으로 전역했다. ‘야전 기상의 전설’로 불릴 정도로 기상예보에 탁월한 독보적 존재였다. 한국기상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군에서 전역 후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위원을 맡아 연세대 대기과학과에서 항공기상학, 대기분석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기상종합솔루션회사인 케이웨더에서 예보센터장, 기상사업본부장, 기후산업연구소장 등도 맡아 일하고 있다. 국방부 기후연구위원, 기상청 정책자문위원과 삼성경제연구소, 조선일보, 국방일보, 스포츠서울 및 제이누리의 날씨 전문위원이다. 기상예보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대통령표창,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날씨를 바꾼 어메이징 세계사>외 1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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