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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11) 그의 '조잔함'이 부른 '망국'

 

 

송영길 의원은 지난 8일 한 인터넷 방송에서 “인천시장 시절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간담회를 하는데 ‘대통령이 쉬어야 하니 시장실을 빌려달라’는 말에 기꺼이 시장실을 비웠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박 대통령이 변기를 쓰기 전에 청와대 비서실이 시장실 화장실 변기를 뜯어냈다”며 “깜짝 놀라 왜 변기를 뜯어가느냐 했더니, (박 대통령이) 내가 쓰던 변기를 못 쓴다는 말이었다. 소독하고 닦든지 깔개를 깔면 될 텐데 변기까지 뜯어갈 사안인가 신기했다”고 과거 일화를 소개했다. [2016. 12. 16. 인터넷 신문 이데일리]

 

기사를 읽으며 조금 유별나다 싶었지요. 최근 여러 언론에 화장실에 관련한 박대통령 기사가 쏟아집니다.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제4차 핵 안보정상회의가 있었어요. 각국 정상과 국제기구 대표들의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 박 대통령이 빠진 겁니다. 외교 문제, 한국정상 예우 문제, 의전 문제 등 여러 의혹이 난무했지만 나중에 밝혀진 것은 박대통령이 정상회담 장소에 있는 화장실에 가지 않고 현지 숙소의 화장실까지 가느라 사진촬영을 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국내, 해외를 막론하고 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나 머무는 숙소 화장실은 미리 교체했다고 해요. 군부대 사령관 사무실 화장실이나 외국 호텔 화장실이나 가릴 것 없이요. 이쯤 되면 강박증(강박신경증)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경우엔 ‘오염(contamination) 강박’이겠지요. 화장실 연관해서 말입니다. 강박은 그 대상이 다양하고 또 확산되는 경향이 있지만 대상에 상관없이 오염 강박과 확인(checking) 강박이 가장 흔합니다. 가령 누구나 자신에게 더럽거나 불결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무언가에 접촉하고 나면 손을 씻지요. 문제는 언제나 그 정도입니다. 접촉 자체를 피하려 하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깝지요. 씻고, 잠시 후 또 씻고, 또 또... 나중엔 실제 접촉이 아니라 그런 생각만 들어도 씻는다면?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지은『한중록』을 보면, 사도세자도 강박증이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그 사도세자요. 혜경궁 홍씨는 의대(衣襨)증이라고 표현했더군요.

 

​ 이때 경모궁(사도세자를 지칭)께서 의대 병환이 극하시니, 그 어인 일인고. 의대 병환이야말로 더욱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괴질이니, 대저 옷을 한 가지나 입으려 하시면 열 벌이나 이삼십 벌이나 해놓아야 하는데, 그 옷마저도 잘 입지 못하시면, 귀신인지 무엇인지를 위하여 불태우기도 하니라. 한 벌을 순히 갈아입으시면 천만다행이나, 옷을 입지 못하시면 당신은 당신대로 애를 쓰시고, 이 때 시중드는 이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사람이 다치니, 이 아니 망극한 병이냐. --『한중록』(혜경궁 홍씨 지음/정병설 옮김. 문학동네) 중에서

 아침에 출근하는데 옷을 입고 나서 혹은 입던 도중에 뭔가 마음에 걸려 계속해서 갈아입다가 출근을 못할 정도가 되면 어떻겠습니까? 옷 뿐 아니라 가령 구두나 머리손질이어도 상관없습니다. 가스불이 잘 꺼졌는지 대문 열쇠가 잘 잠겼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해도 상관없고요. 강박증 환자가 자신의 강박증 때문에 출근 시간을 놓치는 경우는 실제로 종종 일어납니다. 강박증의 느림(slowness)이지요.

 

세월호 참사 당일이었습니다. 세월호 중앙대책본부는 광화문 청사에 있었죠. 청와대에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입니다. 박대통령은 오후 3시에 중앙대책본부 방문을 지시합니다. 그러곤 2시간도 넘은 5시15분에야 도착했다고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밝혀졌습니다. 그 날만이 아닙니다. 북한 핵실험 때도 번번히 그랬다고 합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하고서 한두 시간씩 늦게 나타났다고요.

 

비선실세의 국정농단과 허위로 숨겨졌던 박 대통령과 청와대 진짜모습이 드러나자 국민들은 당장은 경악했고, 이어지는 감정은 수치심이었다고 합니다. 탄식과 한탄. “이게 나라냐?” 그리고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이 상황에 강박증에서 보이는 느림과 같은 ‘조잔한’ 이야기가 썩 내키지도 않습니다. 제 직업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에 하나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이 독특한 강박 때문에 저렇게 급박한 국가위기 상황에 늦는 것이었다면 아마 ‘조잔한’ 이야기만은 아닐 겁니다.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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