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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8) 누구나 갖고 있는 방어기제지만 ...

 

 

“대사, 우리끼린데 너무 딱딱하게 하지 말고, 오늘은 농이나 한번 합시다.”

 

“좋지요.” “누구부터 할까요.” “전하부터 하시지요.”

 

“그러지요. 그럼 나부터 시작합니다. 대사의 상판은 꼭 돼지처럼 생겼소이다.”

 

“그런가요. 전하의 용안은 부처님 같으십니다.”

 

농담을 하자는데, 무학이 정색으로 자신을 찬양하자, 이성계는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어허. 대사. 농담하는 시간이라니깐.” “전하.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이옵니다.”

 

이성계는 이 한 방에 껄껄 웃고 말았습니다.

 

                                  ㅡㅡ 『붓다의 치명적 농담』(한형조, 문학동네)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방어기제는 무의식에서 일어납니다. ‘방어기제’라는 말은 너무 엄격한 정신분석 용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정신기제’라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오늘은 투사(投射,Projection) 정신기제를 말해볼까 합니다. 투사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학파마다 조금씩 다른 관점으로 설명합니다.

 

 

 

이무석 선생(정신분석가, 1945~)은 『정신분석의 이해』에서 투사를 ‘자신이 무의식에 품고 있는 공격적 계획과 충동을 남의 것이라고 떠넘겨 버리는 정신기제’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망상이나 환각도 투사 정신기제가 작동한 결과라는 거지요. 내 마음 속 욕망과 충동을 밖에서 타인들이 일으키는 것으로 여긴다는 뜻입니다. 원시종족들이 인간의 잘못을 큰 바위나 나무 등 대상의 탓으로 돌리는 애니미즘(animism)도 투사기제로 설명합니다. 이 단락 예시들만 보면 투사를 정신병리 혹은 고대 종교 등 어떤 특수한 경우에만 나타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네요.

 

“그 XX는 언제나 어떡하면 내 걸 하나라도 뺏어가 볼까 생각한다니까. 시도 때도 없이 내 눈치 살살 보면서 말이야. 진짜 나쁜 놈인 것 같아.”

 

일상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죠. 누가 봐도 타당한 객관적 증거나 정황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혹은 무슨 일이 생기면 “너 때문에...” 남 탓하는 경우도 있지요. 하다하다 없으면 결국 조상 탓이라도 하지 않습니까. 이런 게 모두 투사의 예입니다. 투사는 광범위하지만 어찌되던 ‘미숙한’ 방어기제입니다. 끝내 자신의 내면은 보지 못하고 외부 대상, 환경 탓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죠.

 

한형조 교수는『붓다의 치명적 농담』(문학동네)에서 “대개 사람들이 상대방에 대해 하는 말이, 결국 ‘그 사람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칭찬하고 욕하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틀림없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입을 열면 남의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들은 대체로 착한 사람들이 아니고, 남의 잘못에 관대하고 혹시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돌아보는 사람들은 대체로 선량하다면서요.

 

말하려는 요지엔 동의하면서도 예외없이 전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무슨 일만 있으면 ‘다 내 탓이요.’는 좋지 않아요. 실패와 절망이 닥칠 때, 적당히 환경 탓, 조상 탓도 하면서 살아야지, 모든 게 다 내 탓이면 못난 인생 죽을 일밖에 더 있겠어요?

 

말이 과격했네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언제나 ‘정도의 문제’라는 겁니다. 정신분석에 등장하는 방어기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다만 그 사람이 어떤 방어기제를 '주로' 사용하느냐를 두고 성숙, 미성숙을 말하고 심지어 성격장애까지 말하는 거지요. 자기 내면을 먼저 보고 성찰하려는 자세는 우리 모두 가꿔나가야 할 덕목인 건 물론입니다.

 

'돼지는 타인을 돼지라 하고, 부처는 타인을 부처라고 한다'는 글을 읽으며 정신기제 '투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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