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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6) 광장공포증? 분리불안?

 

20대 후반 B씨와 Y씨가 들어왔다. 여성들이다. 두 사람은 원룸에서 같이 살고 있다. 6개월 정도 됐다. 두 사람은 그 전에 후배의 친구 등 인연으로 몇 차례 술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B씨가 세 살 위다. 우여곡절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동성애 관계는 아니라고 했다. 동성애 관계여도 상관없다.

 

심리척도 검사를 실시했다. 모두 우울척도와 불안척도 점수가 꽤 높았다. 특히 Y씨는 병력에서 공황장애도 의심되었다. 따로 한 사람씩 면담했다. 둘 다 도피성으로 집을 나왔다고 한다. 어떤 공황장애 환자들은 혼자 밖으로 나다니지 못한다. 혼자 있을 때 공황발작이 일어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공황장애에서 흔히 동반될 수 있는 광장공포증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분리불안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Y씨가 그랬다.

 

현재 두 사람은 각각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B씨는 밤 12시까지 근무를 하고 Y씨는 9시에 끝난다. 9시에 끝난 Y씨는 B씨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3시간가량 있다가 같이 집에 들어간다. B씨는 이해할 수 없다. Y씨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해도 혼자 있으면 불안하다는 거다. Y씨는 B씨 손을 잡고 자지 않으면 잠이 들지 않는다. 때론 불안발작이 있다. 최근에는 껴안고 잔다. 잠은 잘 자는 편이다. 이건 공황장애의 분리불안 형태와는 별개인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

 

Y씨가 불안발작이 올 때는 숨을 쉬지 않으며 눈도 좀 뒤집힌다고 한다. 최근 응급실에 가본 적은 없다. 숨을 쉬지 않으며 '눈이 뒤집히는 증상'은 공황장애에서 흔하지 않다. 또한 제발 숨을 쉬라는 B씨의 간절한 외침과 포옹으로 가라앉아 응급실에 가지 않아도 되는 공황장애는 없다고 봐야 한다.​

 

 

 

Y씨를 껴안거나 최소한 손을 잡아줘야 하는 B씨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Y씨가 자신에게 병적으로 의존하는 것 같아 무척 부담스럽다. 부담 스트레스로 B씨는 화가 날 때가 많다. 하지만 Y씨가 불안발작이 나타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너무 힘들어서 네가 나가던 내가 나가던 하자고 말한 적이 몇 번 있다. Y씨는 절망했고 심하게 자책했다. B씨는 Y씨가 무슨 일을 벌이거나 공황발작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했다. 한편으론 Y씨를 ‘버리는 것’ 같아 죄책감도 들었다. Y씨가 자신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른다. 복종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다. 결국 헤어지지 못했다. B씨는 마치 영원히 Y씨를 책임져야 할 의무를 진 보호자가 된 느낌이다. B씨는 점점 우울해졌다.

 

Y씨는 단순한 공황장애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더 깊은 성격문제가 있다. B씨가 말했듯 병적 의존성이다. Y씨 스스로는 어떤 결정도 할 수 없다. B씨에게 아예 인생을 내맡긴 것 마냥 보인다. 혼자 있지 못한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혼자 남겨진다는 두려움은 마치 유기된 아이에서나 볼 수 있는 극심한 불안에 다름없다. Y씨에게 B씨는 심리적 생존의 가느다란 생명줄과 같은 존재다.

 

숨을 못 쉬며 눈이 뒤집히는 증상은 애정과 돌봄 관계를 얻거나 유지하려는 절박함의 표현이다. 적개심도 숨어있을지 모른다. B씨가 자신을 버린(떠난) 것에 대한 적개심이다. 떠나지도 않았는데 뭘 버려? 정신분석의 무의식에서는 선후 시간이나 인과 따위는 없다. 예상할 수 있는 건 이미 일어난 거다. B씨는 Y가 날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저러나 하는 생각까지 한다고 말했다. 화가 날 정도로 달라붙는다. 그것에 내가 힘들어한다는 걸 뻔히 알고 또 미안해하면서도.

 

 

 

미국 정신의학회는 심리역동보다는 증상이나 드러나는 행동에 따라 병을 분류한다. 이를테면 통계적 진단이다. Y씨 경우 '의존성 인격장애'에 해당될 것이다. 자기심리학은 ‘자기애’를 다루는 심리학이다. 여러가지 신경증이나 성격장애를 정도나 현상이 다를 뿐 본질적으론 모두 ‘자기애 장애’ 범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알코올의존이나 폭식증을 볼 때도 그렇다. 자기심리학에선 Y씨 역시 ‘자기애 성격장애’라고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는 의존적이다. 완전한 독립이란 가능하지 않은 건지 모른다.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인정과 공감, 위로를 바라고 요구하며 살아간다. 말하자면 자기심리학의 '자기대상' 없이 정서적 생존은 불가능하다. 다만 원시적인 자기대상에서 좀 더 성숙하고 적절한 자기대상을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자기애 성격장애’ 여부를 가리는 관건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엄마 -그것도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고 동화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이상적 엄마- 가 될 수는 없다. ‘자기애 성격장애’는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가까운 타인에게 당신은 내게 그런 엄마로 기능해야 한다고 절박하게 또 끈질기게 요구한다. B씨가 느끼는 것처럼.

 

참고로 정신치료를 시작한다면 사실 첫 인상이 의존성 인격장애든 자기애 성격장애든 상관없다. 진단이야 정신치료 과정에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당장은 “필사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하는 20대 여성” 정도로 진단붙이고 시작하면 되겠지.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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