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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시평] 국정논단 작태, 희극 같은 검찰, 그리고 대통령?

 

 

대학 2학년이던 때다. 연초 추위가 몰아치던 날이었다. 늦은 시각 자취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돌연 경찰서로 끌려갔다. 불심검문의 횡행하던 때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4·19혁명’을 다룬 논문 몇 편의 복사물을 가방에 담고 있었다는 죄(?)였다. 새벽 무렵이 되도록 자인서와 진술조서, 그 외 몇장의 자술서를 수도 없이 쓰고 나서야 겨우 경찰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처음엔 분노였지만 막상 경찰서 안으로 끌려가자 두려움이 앞섰고, 시간이 흐를 수록 피곤에 시달리다보니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가 나를 이끌었다. 새벽 무렵 경찰서 문을 나서며 맡은 한기가 그리도 싱그러울 수 없었다. 안도와 피로감이 동시에 밀려와 거의 하루 종일 자취방에서 잠에 곯아 떨어졌던 기억이 난다.

 

그해 연초엔 대학생은 물론 온 국민이 분노를 산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보다 고작 한 살 많은 서울대생 박종철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에 의해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고, 그는 물고문을 당하다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세상을 떠났다. “수배중인 친구의 소재를 대라”는 이유로 그렇게 고문을 해댔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그 시절 경찰청의 전신 치안본부장이 언론에 대고 한 말은 한참이나 지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집요한 문제제기로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래도 그 때 박종철의 사인은 명백히 처음부터 ‘외인사’로 규정됐다. 진실을 파헤치는데 한 검사와 의사의 ‘소명’이 다하여 땅 속에 파묻히지 않은 진실이 됐다.

 

1987년 6월 9일 최루탄에 맞아 한달여 사경을 헤매다 숨진 동년배 연세대생 이한열은 그래서 그 시절의 정권에겐 치명타였다. 그해 연세대 백양로에서 열린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던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시절 대학생 신분으로 그 장례식장 행렬을 취재한 건 지금도 개인적으로 자부심을 갖는 경험이다. 장례행렬의 선두가 서울시청 앞에 당도했건만 후미는 아직 연세대 교문 앞을 나오지도 못할 정도였다. ‘100만 추도행렬’이란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그 시절 정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수 밖에 없었고, 민주화를 향한 국민의 열망은 그리도 거대한 것이었다.

 

25년 여 ‘기자’란 직함으로 살고 있다. 권력의 시녀 정도가 아닌 아예 주구(走狗) 노릇을 하는 일부 검사와 검찰조직을 지켜봤고, 그 칼을 휘두르는 권력과 검찰에 기생해 굴종이 아닌 공생하는 언론인도 목도했다. 혹자들은 ‘설마 그러려니’ 하겠지만 최소한 그동안의 경험에서 영화 ‘내부자들’이 보여준 세상은 진실에 더 가깝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하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흘러 세상은 변화했다. 진보하는 줄 알았다. 더 좋아지는 줄 알았다. 민주화는 성취됐고, 이제 더 새로운 문명의 길을 향한 전진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판을 보니 한마디로 아니다 못해 경악이다. 대학 신입생 시절로만 놓고 보더라도 3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이 모양이다. 도대체 그동안 우리가 쌓아올린 희생과 눈물의 역사가 이렇듯 처참히 도륙될 수 있는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최순실 게이트’로 번진 국정농단 사태를 보며 그저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자괴감이 앞선다. 누가 만들어준 권력인데, 그동안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 만들어낸 나라인데 잔치판에서 배불리 욕심을 채운 이들은 따로 있었다.

 

검찰이 특수수사본부를 꾸렸다. 의혹의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 전경련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난리법석이다.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의혹이 불거지고 한달여가 지났는데 지금도 증거들을 없애고 치우지 못할 정도로 그들이 그리 아둔하단 말인가? “압수수색이 들어갈 지 모르니 서둘러 증거물들을 치우라”는 신호라도 줬는가? 시간도 참 많이 줬다는 생각이다. 독일 어느 곳으로 도주, 행방을 알 수 없다던 의혹의 주인공 최순실은 버젓이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내보냈다. 그런데 검찰은 그의 행방을 지금도 쫓고 있다. 진정 희극이다. 검찰이 이럴진대 그래도 ‘병사’가 맞다고 우기는 지성의 요람 서울대 병원 한 의사의 ‘소신’은 그래서 어설프다 못해 연민을 느낀다.

 

보수와 진보의 구도로, 좌파와 우파의 프레임으로, 흑과 백의 시선으로 진실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긴다. 재확인한다. 오로지 진실을 추구하는 노고와 소명이 있어야만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그 어떤 직관과 고매한 이념도 진실이 가져오는 파괴력 이상을 발휘할 수 없다.

 

대한민국 현대사가 쌓아온 성취는 산업화와 민주화다. 하지만 민주화를 거론하는 것 이전에 이미 국가적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고 말았다. 그것도 국가의 안위를 수호하고 헌법을 준수할 책무를 지닌 대통령에 의해서다. 고작 한 줌의 무리에 불과한 ‘교파’ 패거리에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부처가 유린됐고, 검찰 조직이 놀아났다. 대통령은 이성의 범주에 있지 않았고, 정치권은 아예 휘둘렸다.

 

그렇다고 우리가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언제나 한민족이 그래왔듯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언제나 민초였고, 평범한 백성들이었기 때문이다. 외적이 쳐들어와 나라가 무너질 판에서도 의병을 일으켜 구출했고, 일제의 총칼에 목숨을 잃어가면서도 독립을 외치며 끝없이 저항한 것도 평범한 우리 국민들 아니었던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군 영광된 조국을 더 나은 미래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자 불철주야 뛰고 있는 것 역시 우리 국민들 아니었는가? 그들이 뭉개버린 대한민국이지만 그들에게 과감히 지지의사를 철회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

 

그저 부탁이라면 적당히 하고 이제 그만 손을 떼라는 것이다. 그래도 대한민국 정통성의 주인이자 대한민국 권력의 주인인 우리 국민들이 다시 고쳐 쓸 수 있도록 그 쯤에서 멈추라는 부탁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다. 어차피 대한민국의 주인은 우리 국민이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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