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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제주] 김종현 '섬이다' 대표 "제주청년들의 벗이 내 갈 길"

 

“이시돌 목장하면 ‘우유’, 우유하면 ‘아이스크림’이죠. 바로 그겁니다.”

 

1960.70년대 '제주 근대화'의 모델이었던 이시돌 목장. 각종 유제품과 양모 스웨터.이불 등을 수제로 만들어내며 서울 고위층의 인기를 얻었던 그 곳은 90년대로 접어들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뒤따른 건 극심한 경영난. 활로를 얻지 못하고 헤매던 이시돌 목장에 한줄기 빛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김종현(42) 사회적 기업 ‘섬이다’ 대표. 이시돌 목장 운영주인 이시돌 농촌사업개발협회에 그가 아이디어를 들이댔다.

 

그는 2012년 천주교 제주교구청으로부터 이시돌 목장의 경영난 소식을 들었다. 서울대에서 종교학을 전공한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기도 한 그는 천주교 재단이 운영하는 이시돌협회의 난제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자문을 지원한 그는 ‘우유 아이스크림’이라는 아이템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시돌협회는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보다 못한 그가 직접 나섰다. 이달 9일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이시돌목장 안에 ‘우유부단’을 오픈한 것이다.

 

넘칠 우(優), 부드러울 유(柔), 아니 부(不), 끊을 단(斷). '너무 부드러워 끊을 수 없다는 뜻'을 가진 이 아이스크림 가게는 이시돌 목장의 사진찍기 명소인 '테쉬폰' 옆에 있다.

 

푸른 초원과 하늘, 그리고 말과 은은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우유부단'. 우유 아이스크림과 밀크티 등 유제품이 주 상품이다.

 

 

그는 "우유부단은 이시돌 목장의 우유 소비 촉진을 위해 만들어졌다"며 "더 많은 이시돌 우유 소비를 위해 프랜차이즈 등과 같은 확장 계획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우유부단’은 그가 대표로 있는 예비사회적기업 ‘섬이다’의 사업 일환이다. 수익금은 이시돌협회와 ‘섬이다’가 나눈다. 이시돌협회에서는 수익금의 일부를 이시돌 양로원과 호스피스 병동 등에, ‘섬이다’에서는 청년과 청소년을 지원하는데 사용한다.

 

“제주 청년들이 제주의 가치를 보고 다양성과 함께 제주의 미래를 이끌어야죠. 그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가 청소년·청년들을 후원하는 이유다. "많은 청년들의 ‘벗’으로서 제주의 미래를 견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포부.

 

그는 ‘섬이다’를 통해 (사)아름다운 생활을 여는 청소년과 대정 천사의집을 후원하고 있다. 제주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벗’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청년들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벗’이 부족한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그는 2014년 1월 유한회사 ‘섬이다’를 설립했다. 지난해 6월 제주도로부터 예비사회적기업 지위를 얻으면서 청년들의 벗을 자처하고 나섰다. 빛날 섬(閃), 다를 이(異) 많을 다(多). ‘빛나는 다름이 많은 제주’라는 뜻이다.

 

‘섬이다’는 우유부단과 제주시 용담해안로 닐모리동동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닐모리동동은 그가 대외사업본부장으로 있던 NXC에서 5년 전 설립한 문화카페다. '닐모리동동'은 "내일 모레를 손으로 세며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표현한 제주어다.

 

그러나 NXC는 '닐모리동동'은 건물주와의 5년간의 임대 계약이 만료되자 고민에 휩싸였다.

 

넥슨컴퓨터박물관 등 지역공헌 사업이 확장되고 관계사 포함 800여명이 제주로 이전한 상황에서 닐모리동동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역사회 공헌이라는 취지로 탄생한 '닐모리동동'을 중단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러한 NXC의 고민을 잘 알고 있는 그가 해결사로 나섰다. '사회적기업'이라는 조건으로 닐모리동동을 맡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회사는 이를 흔쾌히 승낙했다.

"솔직히 제주출신으로서 자존심이 상했어요. 기업의 단순 기부 방식의 지역 공헌활동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5년전 제주도와 지속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인 '닐모리동동'을 만들게 됐습니다"

5년 전 NXC 직원으로서 그가 '닐모리동동'을 고안해낸 배경이다.

"NXC운영 당시에는 수익금을 주로 문화사업에 사용했어요. 그러나 (제가 맡고 있는)지금은 수익금의 일부를 청년과 청소년 등을 지원하는데 사용하고 있지요"

 

이렇듯 그의 제주 사랑은 애틋하다. IT기업 제주이전 열풍을 몰고 온 포털사이트 다음의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의 전신)과 게임회사 넥슨을 제주도로 유치한 것도 그 이유(?)다.

 

그는 다음과 넥슨의 제주이전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주역이다.

 

이 시점에서 옛날 얘기 한토막. 2004년 다음은 회사 이전문제를 검토하고 있었다. 어느 날 사내게시판에 다음 이재웅 대표의 글이 올라왔다. "회사 이전지로 춘천이 좋을까, 전주가 좋을까"를 사원들에게 묻는 글이었다.

 

거기에 그가 댓글을 달았다. "이왕이면 제주로 갑시다!" 다음의 제주이전 프로젝트인 '즐거운 실험'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 댓글이 다음을 제주로 이전하도록 한 시발점이 됐다. 그 후 회사 총무팀이 제주를 방문했고, 제주이전에 대해 검토했다. 하지만 당시 제주도는 기업지원제도가 부족했던 상황. 자칫 다음의 제주 이전은 물거품이 될 뻔했다.

 

그러던 중 그가 다음과 제주도의 연결고리가 됐다. 지인의 도움으로 그 시절 현직 지사였던 우근민 지사와 이재웅 다음 대표의 만남을 성사시킨 것이다.

우 지사와 이 대표의 만남 이후로 이전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고 그 후 제주이전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렇게 ‘다음’이 제주에 정착할 수 있던 것이다.

 

그 스토리를 전해 들은 넥슨에서 연락이 왔다. 2009년 다음 이전 사례를 들은 NXC가 그에게 NXC 제주이전프로젝트를 함께 할 것을 요청했다. 그는 수락했다.

 

그는 “다음과 NXC의 제주이전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제주와 제주 밖을 연결하는 고리', 자연스레 내 역할이 굳어갔다"고 말했다.

 

 

양 측의 다름을 보고 그 다름을 시너지로 바꿔주는 중간 매개자가 스스로가 됐다는 것. 대학에 진학하며 처음 뭍 구경을 한 그는 다음의 제주이전 전까지는 서울에서 쭉 살았다. 그런 ‘그’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와 ‘다음’, ‘NXC’가 지금 제주에 있을 수 있는 것은 “고향 제주에 대한 사랑”이라고 그는 말했다.

또 ‘이왕이면 제주로 갑시다’라는 댓글은 그가 품고 있던 "고향 제주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목소리를 낮췄다.

 

그가 바라는 제주는 ‘제주가 제주 스스로의 가치를 볼 수 있는 제주’다. "제주도민들이 자긍심과 자신감을 갖고 제주를 만들어 가는 것"이 그가 꿈꾸는 제주다.

 

그 꿈을 향해 그는 또다른 다름이 빛나는 내일의 주역이 우글거릴 제주를 그리며 뚜벅뚜벅 제길을 걷고 있다.  [제이누리=박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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