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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73)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제갈량(諸葛亮 : 181-234), 자는 공명(孔明), 낭아(琅玡) 양도(陽都, 현 산동 기남[沂南]) 사람이다.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정치가요 군사 전문가이다. 건안(建安) 12년(207)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에 의해 유비를 보좌하기 시작했다. 그의 책략으로 유비는 촉한 정권을 세웠고 나중에 유선(劉禪)을 보좌해 촉한 정무를 처리하고 무향후(武鄕侯)에 봉해진다. 건흥(建興) 12년 오장원(五丈原) 전투 중 군중에서 병사하고 정군산(定軍山)에 묻힌다. 비바람을 부르고 콩을 뿌려 병사를 만드는 ‘신력(神力)’을 부릴 줄 안다고 전한다.

 

소설 『삼국연의』에 제갈량은 주유(周瑜 : 175-210)를 조문하기 위해 동오(東吳)로 갔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제갈량이 밤중에 형주(荊州)에서 천상을 관찰하다 갑자기 장군 별이 떨어지자 유비(劉備)에게 웃으면서 주유가 이미 죽었다고 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제갈량은 동오로 조문하러 가기로 결심했다. 그가 천상을 보고 있을 때 많은 장군 별들이 동쪽에 반짝이고 있는 것을 보고 동오에 적지 않은 인재들이 남아있음을 의미한다고 판단해 조문을 핑계로 동오로 가서 유비를 위해 인재를 물색하려고 했다는 얘기다.

 

 

 

 

유비는 제갈량 때문에 주유가 화가 나 죽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까닭에 제갈량에게 동오로 가는 것은 스스로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만류했다. 제갈량은 주유가 살아있을 때도 자신을 어떻게 하지 못했는데 이제 주유가 죽었으니 무엇이 두렵겠느냐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에 조운(趙雲)에게 500 군사를 이끌고 제갈량을 호위토록 하고 동오로 보냈다.

 

과연 주유의 부장이 제갈량을 보고는 원수를 보는 듯 눈에 핏발을 세우며 당장 죽이지 못하는 게 억울한 듯 노려보았다. 조운이 검을 들고 호위하고 있어 감히 손을 쓰지 못했다. 제갈량의 제문(祭文)은 주유가 손책(孫策)을 따라 패업을 이뤘음을 칭송했을 뿐만 아니라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조조를 대패시킨 탁월한 업적 등을 찬양했다. 지음(知音)의 죽음을 애탄하면서 주유의 죽음은 천하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하나 뿐인 지기를 잃었다고 한탄했다.

 

제갈량이 제문을 다 읽고 땅에 엎드려 샘솟듯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 이런 행동은 그야말로 동오인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동오의 여러 장수들은 제갈량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도 했다. 장수들은 “사람들이 공근(公瑾, 주유의 자)과 공맹이 불화했다고 말하는데 지금 그 조문의 정을 보니 ‘사람들 모두 잘 못 알고 있었구나’고 했다.” 노숙(魯肅)은 심지어 “공맹은 다정했는데 공근이 속이 좁아 스스로 죽음에 이르렀구나”라고 생각했다.

 

제갈량의 이런 행동은 당시의 동오 사람들을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후대 사람들을 당혹케 만든다. 제갈량의 조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제갈량의 조문은 진심일까 아니면 쇼일까?

 

제갈량의 주유의 죽음을 애통한 것은 지음을 잃었기 때문에 슬퍼 눈물을 흘린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록 주유가 제갈량을 질투했지만 제갈량은 영웅이라 자신을 질투할 수 있는 사람은 지음이라 여겼다고 보는 것이다. 지음이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기에 마음속에 응어리는 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라 부를 수 있다고 여긴다. 주유는 제갈량의 재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제갈량을 질투해 여러 번 제갈량을 제거할 방법을 생각했다. 이것도 제갈량의 능력을 알아준 ‘지음’이라는 것이다. 물론 제갈량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보는 것이고.

 

제갈량과 주유는 다른 정치 집단에 속했고 다른 주인을 섬겼다. 그들이 처한 집단의 이익에서 출발해 주유는 제갈량을 죽이려 했고 제갈량은 계략을 써서 주유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것은 모두 정치 투쟁의 필요에 의한 것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제갈량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주유를 적대적인 입장에서 처리한 것일 뿐이다. 가장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은 주유였다. 그런 주유가 죽었으니 세상에 더 이상 지음을 찾을 수 없고 또 애상의 분위기에 취해 제갈량은 눈물을 쏟았다고 해석한다. 물론 조문을 하는 도중에 통곡을 한 것은 어느 정도 쇼라는 성격도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제갈량의 행위는 진정으로 지음을 위한 것이었다고…….

 

 

 

 

그러나 제갈량은 셈이 빠르고 마음에 꿍꿍이를 담고 있는 역사상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계략에 강한 인물이다. 과연 그의 울음 속에 진정성이 얼마나 담겨 있었을까?

 

제갈량이 조문을 끝내고 귀국하기 위해 배를 탔다. 그런데 갑자기 강기슭에서 한 사람이 나타나서 제갈량에게 손가락질하며 “네가 주유를 죽게 만들었으면서 조문을 하러 왔다니. 동오에 인물이 없다고 기만하는 게 분명하구나!” 소리를 질렀다. 제갈량이 놀라 누군가하고 돌아보니 방통(龐統)이었다. 제갈량은 웃음을 터뜨렸다. 제갈량이 방통의 한 마디로 정곡을 찔렸으니 당혹함에 그저 웃을 뿐. 어색한 자신을 웃음으로 넘긴 것이다. 정치상의 상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은 정치 투쟁의 필요에 의한 것이다. 인정으로 말하자면 조문을 한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꿍꿍이가 있어 찾아갔다면 어찌 인정이라 하겠는가?

 

『삼국연의』는 소설이다. 이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일까? 진실성에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믿을 수 없는 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이유로는 제갈량이 동오로 가서 조상한 일은 역사 기록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소설 속에 보이는 ‘주유에게 보내는 글[與周瑜書]’ 이라든가 ‘주유를 조상하는 제문[祭周瑜文]’ 등도 없기 때문이다. 창작을 하는 작자가 줄거리 구성의 필요에 따라 임의로 삽입한 내용일 공산이 크다.

 

 

 

 

주유가 병사했을 당시 손권과 유비는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유비가 사람을 보내 주유를 조문하고 유족들을 위로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외교사절 한 두 명이면 될 것을 어찌 제갈량이 직접 나설 필요가 있었겠는가. 더욱이 손권과 유비의 동맹이 유지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주유가 제갈량으로 인해 세 번씩이나 분통이 터져 죽은 게 아니라면, 설사 제갈량이 동오로 조문을 갔다고 할지라도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유비의 말처럼 동오의 장수들이 제갈량에게 해를 입힐까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관중이 구성한 줄거리를 역사적 진실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소설이며 허구이기 때문이다. 허구화한 이야기는 스토리나 등장인물의 성격 구성상 특수적 상황을 가미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주유가 제갈량에게 세 번씩이나 기만을 당하고 난 뒤 분통이 터져 죽는 장면은 주유의 기개와 도량 그리고 지모 등 모든 면에서 제갈량보다 한 수 아래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은 아닐까?

 

제갈량은 뛰어난 정치가였고 주유는 훌륭한 장군이었다. 적벽대전을 이끈 주유의 용맹은 정치가인 제갈량의 지모를 따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점을 부각시켜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주려는 작가의 고뇌는 없는 것일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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