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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아프리카 서신(8) ··· 폭정의 과거 한국, 열차 타는 르완다

기시감(旣視感 ; Deja-vu)! 언제 어디선가 봤다는 소리다.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일상 생활 중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신비한 현상이다. 과학적인 증거야 없겠지만 사람들은 윤회의 증거로 삼기도 한다. 그럴듯하다. 뭔가 반복이 된다는 느낌.

 

문제는 개인의 경험의 차원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도 이런 느낌이 간혹 든다는 것이다.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 것인가? 혹시 반복하는 것은 아닌가?

 

비좁은 국토. 지하자원 부재. 높은 인구밀도. 처참한 내전의 혼란을 극복하고 강력한 리더십 아래 고속의 경제성장을 일구어낸 나라. 한국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가 읽어도 한국의 이야기인데 아프리카에서는 르완다의 이야기다.

 

1994년 내전의 참상과 그 폐허를 기억하는 한 지금의 발전상은 기적 그 자체임에 틀림없다.

 

1997년 기타라마(Gitarama)라는 마을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2010년 르완다로 돌아와서 가족을 데리고 내가 예전에 일하던 곳을 보여주고 싶었다. 분명히 이 도로가 맞는데 하면서 달렸지만 기억 속의 마을도, 사무실로 빌려 쓰던 건물도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한시간 반을 달렸다. 도로변에 서 있던 경찰에게 ‘Gitarama, ikowapi?’라고 물었다.  르완다 말을 못하니 꿰맞춘 아프리카 말인 스와힐리어로 물었다. 같은 반투 계열의 언어이니 대충은 알아듣겠지라고 생각했다. ‘Inyuma, Inyuma’ 스와힐리어로 뒤쪽이라는 말에 가까운 르완다 말로 되돌아가라고 손짓을 한다.

 

그럴 리가 하면서 돌아와서 보니 마을은 큰 타운으로 변해 있었다. 물론 한국 기준으로 읍 정도에 불과한 규모다. Muhanga 라고 지명조차 바뀌어 있었다. 설마하며 지나친 곳이 그 곳이었다. 6.25 참전 용사들이 한국을 다시 방문하면 큰 감격에 젖는다고 하는데 내가 그랬다.

 

참으로 이만큼 해낸 것만 해도 자랑스럽고 눈물이 나고 아름다운 나라다. 누군들 자신이 애써 일했던 나라가 더 상황이 악화되기를 원하겠는가?

 

 

지난해 12월 르완다에서는 개헌이 이루어졌다. 국민청원으로 국회에 상정된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98%의 지지를 얻어 통과되었다면 절차상으로도, 외관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어 보인다.

 

현 카가메 대통령은 2000년 집권, 약간의 곡절을 겪고 7년 중임제의 두번째 임기를 2017년에 마감하게 되어 있었다. 개헌은 3선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이었고 3번째 임기가 끝나는 2024년부터는 5년 중임제로 전환한다. 그런데 적용시점에 현 대통령에게는 출마제한을 두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당선되기만 한다면 최장 2034년까지 현직에 머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가 이쯤되면 한국 사람이라면 약간의 불안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언제 어디선가 이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르완다에서는 한국의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인상 깊게 받아들이고 성공의 원인이 무엇인지 매일 묻는다. 한국형 개발의 성공이 강력한 정부의 시의적절한 시장개입에 있다고 믿는다면 나름 교과서로서 잠시의 역할을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자유시장경제와 삼권분립에 입각한 민주주의가 개발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믿는다면 절대권력을 가진 강력한 정부는 언제 어떻게 전환되어야 하는지도 이야기해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이전까지의 기시감이 싹 사라진다. 

 

 

 

한국사람이 아프리카에 오래 살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분명 통계상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다. 르완다의 1인당 GDP는 미화 700불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곳 청소년은 입시에 시달리다가 자살하지 않고 청년들은 3포시대라는 말을 만들지 않는다. 중년의 과로사도, 노인빈곤도 들어본 적이 없다.

 

숨가쁘게 달려온 한국사람들이 숨이 탁탁 막히는 능선에 이제 막 올라서서 고민에 빠졌다. 과연 이게 우리 아버지 세대가 물려주고 싶어하셨던 대한민국인가? 지금은 한 번쯤 숨고르기라도 하면서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나라가 어떤 모습일지 도화지에 제법 큰 그림을 함께 그려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르완다는 이제 막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격려하고 싶은데 '데쟈뷰'로 인해 살짝 불안해진다. 달리기 전에 함께 행복의 청사진을 그려봤으면 좋겠는데.

 

"Until lions have their historians, tales of the hunt shall always glorify the hunter."

 

아프리카 속담이다. "사자들이 스스로를 대변해줄 역사학자를 갖기 전까지는 사냥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은 사냥꾼을 찬양할 것이다"란 소리다.

 

역사적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역사가들이 중심이 돼 쓰여지고 전해진다. 역사는 역시 주관성을 갖고 있다. 역사 속에서 약자는 언제나 스치듯 다뤄지거나 누락되기 일쑤다. 
 

 

이상훈은?=연세대 정외과를 나와 미국 컬럼비아대 국제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 연구위원으로, 우간다·아프가니스탄·르완다에서 국제구호기금 지역(보급)책임자를 맡으며 20년 가까이 생활했다. 현재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주민을 돕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의 아내는 르완다 현지에서 유치원을 개원, 교육계몽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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