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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의 시론담론(時論談論)

노신을 떠올리다

 

노신(鲁迅·1881~1936은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20세기 초 혼돈 속의 중국을 냉철하면서도 연민 어린 눈으로 바라 본 인물이다. 1923년 출간된 『외침』이라는 소설집의 서문엔 밖으로는 제국주의의 침탈과 안으로는 군벌주의의 득세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지식인의 고뇌가 가장 잘 표현된 문구가 있다.

 

 "가령 말일세. 쇠로 만든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창문이라곤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어. 그 안엔 수많은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 있어. 머지않아 숨이 막혀 죽겠지. 허나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음의 비애 같은 건 느끼지 못할 거야. 그런데 지금 자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의식이 붙어 있는 몇몇이라도 깨운다고 하세. 그러면 이 불행한 몇몇에게 가망 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는 게 되는데, 자넨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나?"

 

 20여 년 전에 노신의 ‘철로 만든 방’이라는 표현을 처음 대했을 때의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신이 없었을 뿐 아니라 1980년대 중반 한국 사회는 숨 막힐 것 같았다. 87년의 절차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다음에도 대학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사회는 이해할 수 없는 지역주의와 탐욕에 가득 찬 기업, 그리고 권력집착증에 걸린 정치권으로 채워져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세상을 어떻게 하겠다는 영웅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졸업과 동시에, 기형도 시인의 표현처럼 “톱밥처럼 쓸쓸하게” 뿔뿔이 흩어진 수많은 무리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던 기억이 난다.

 

철방 안에 갇힌 청춘이여!

 

지난해에 15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다시 돌아와 강단에 섰을 때 강의실을 빼곡히 채운 학생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20여 년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대단한 ‘스펙’을 쌓고 입학한 학생들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그 어떤 시대의 대학생들보다 영어를 잘 구사하고, 국제화 돼 있으며, 실용적이고, 생산적이다. 툭하면 강의를 빼먹고 시위하러 가거나 술을 마시고 당구를 치며 시간을 보내던 강단 위의 교수들 세대와는 확연이 달랐다. 지금의 학생들은 교재를 전부 읽어오며 정해진 시간에 과제물을 제출하고 교수의 강의에 귀를 기울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학기를 마치며 느낀 것이 있다. 그 훌륭한 학생들은 뭔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상담시간에 학교생활에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의 학생들은 불안감을 호소한다. 졸업 전에 바로 옆에 앉아 있는 학우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해야 하는 무한 경쟁시대의 초조함이 이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 중 한 학생이 그네들이 좋아하는 노래 하나를 추천했다. 2007년 데뷔 이후 젊은 감수성을 가장 잘 대표하고 있는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이란 노래다.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메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노래를 들으며 노신이 말한 철로 만든 방은 20년 전의 우리 세대보다 지금의 20대들이 더 절실히 느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세대 이전의 절망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젊은이들이 한 주체로서 느끼는 좌절이었다면, 지금의 20대들은 스스로를 팔려가는 객체로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더 비싼 값에 팔려 갈 수 있는지에 대해 안달하고 가끔 그런 ‘미친 세상’ 속에 갇혀 있는 자신들을 바라보며 ‘졸업’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닐까. 철로 만든 방이라는 비유가 주는 절망감은 현실의 어려움 보다 탈출의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데서 온다.

 

과거 세상이 젊은 세대들을 최루탄과 경찰 곤봉으로 밖에서 가두며 윽박질렀다고 한다면 지금의 20대들은 그들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정글의 게임 법칙에 절망하고 있다.

 

 위에 인용한 노신의 문구는 다음의 문장으로 이어진다.

 

"그래도 기왕 몇몇이라도 깨어났다면 철방을 부술 희망이 없다고 할 수야 없겠지."

 

철방을 깨 부수는 것의 전제조건은 단 몇몇이라도 깨어나는 것이다. 20세기 초 낭만적 계몽주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철방을 깰 수 있는지 또는 철방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를 얘기하는 데는 수많은 의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깨어나는 것 자체의 당위성을 부정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희망을 얘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20대들에게 ‘깨어남’은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귀국해서 1년 반 동안 강단에 서 있으면서 아직도 내게 남은 고민이다.

 

☞서정민?=부산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랐다. 연세대 정외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마쳤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미국 하와이대 정치학과에서 10여년 간 교수로 생활했다. 현재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정치와 민족주의를 전공,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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