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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54)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왕소군(王昭君), 생졸 미상, 이름은 장(嬙, 혹은 墻), 자는 소군(昭君), 현 호북(湖北) 출신이다. 원제(元帝) 때에 궁으로 들어갔다. 기원전 33년, 흉노(匈奴)의 선우(單于)에게 보내져 1남 2녀를 낳았다. 중국 고대 4대 미인 중 한 명이다.

 

중국 역사에 이른바 ‘4대 미인’이 전해져 온다. 중국 역사 속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총명하고 기지가 넘치며 대담하면서도 세심하다고 평가받는다. 의협심이 넘치며 아름다운 용모로 제왕의 곁에서 중요한 시기마다 뛰어난 역할을 했다. 미인이라 하기보다는 재녀(才女)라 부르는 것이 더 나은 사람도 있다. 그녀들의 출신과 일생은 형용하기 힘든 신비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 아름다운 여인들에 대한 의문이 하나하나 제기되고 있다.

 

 

왕소군은 17세 때 한나라 원제(元帝)에 의해 선택돼 입궁했다. 그녀는 한인인가 아니면 소수민족 출신인가? 그의 성격과 그의 운명을 보면 그녀의 혈통과 관련이 있음은 분명하다.

 

원제는 화공이 그린 그림을 보고 궁녀를 간택했다. 그래서 심중궁궐의 궁녀들은 황제의 은총을 입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더 아름답게 그릴 수 있도록 애썼다. 궁녀들은 천금의 뇌물을 아깝다 여기지 않고 화공에게 부탁했다. 왕소군이 왕궁에 들어간 후 그런 규정이 있는지도 몰랐고 뇌물을 주는 방법을 통해 황상의 눈에 들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화공 모연수(毛延壽)는 왕소군의 눈을 그릴 때 암시적으로 “인물화의 생동하는 필치는 눈동자를 찍는 데에 있는데 정말 천금의 가치가 있으니”라고 말을 건넸다고 한다. 왕소군은 그 뜻을 알았지만 뇌물은커녕 비아냥거리는 말 몇 마디만 남기고 나와 버렸다. 모연수는 오만한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왕소군의 눈에 단청하지 않고 얼굴에 점을 찍어 버렸다. 그 점 때문에 왕소군은 황제와 만날 기회를 잃어 버렸다고 한다.

 

그때 마침 흉노의 호한야(乎韓邪) 선우가 한족 여자를 처로 맞이하기 위해 한 왕실에 와 있었다. 원제는 흉노의 침범을 막을 길이 없어 강화의 방법을 찾던 중 오한야 선우가 한 왕실에서 처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정치적 화친의 호기라 생각해 5명의 궁녀를 보내기로 했다. 구중궁궐에 들어와 황제를 만날 기회를 잃어버린 왕소군은 흉노의 선우가 혼인을 맺기 위해 궁궐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흉노에게 가겠노라 자청했다. 원제는 그녀의 자색이 별로라 생각하고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런 억센 성격은 바로 토가족(土家族)의 특성을 반영한다고 본다. 당시 봉건적 환경에 속박된 한족 여자들은 결코 그러한 성격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왕소군의 고향은 ‘백만(百蠻)’, ‘백이(百夷)’들이 섞여 살고 있는 지역으로 남자들은 적고 여자들이 많은 곳이었다. 여자들이 시집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그녀는 화친의 기회를 잡아 흉노의 선우와 결혼하기로 결심했다고 보는 것이다.

 

왕소군이 어떻게 출새(出塞)했는가 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의론이 분분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왕소군은 출중한 용모를 갖추었지만 화공인 모연수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추하게 그려져 그림으로 궁녀를 간택하던 황제의 눈에 들지 못해 황제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설일 뿐이다. 깊은 궁궐에서 무료하게 지내던 왕소군이 기회를 잡고 흉노에 시집을 가겠다고 자청했다는 것도. 이에 원제는 동의했고 변방으로 화친을 맺기 위해 시집을 가게 된 것이라고 하는 것도.

 

 

『소군원(昭君怨)』 동방규(东方虬)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 화초가 없으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네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자연히 옷이 헐렁거리니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허리를 가늘게 하려는 것은 아닌데

 

또 다른 설은 화공 모연수가 구국의 계책으로 인해 왕소군이 출새케 됐다고 보기도 한다. 왕소군의 용모가 비범함을 본 모연수는 그렇지 않아도 이미 여색에 빠져 정치를 돌보지 않는 원제가 왕소군에게 빠져 나라를 망칠까 걱정돼 초상화를 그릴 때 추하게 그렸다고 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원제는 소군을 흉노에게 시집을 보내게 된 것이고. 역대 문인들은 모연수의 그런 행동은 출중했다고 평가한다. 원제는 호색한으로 만약 왕소군을 내보내지 않았다면 총애를 받았을 것이고 달기(妲己)와 같은 인물이 돼 국가와 국민에게 손해를 끼치게 되었을 것이라 보는 것이다.

 

왕소군이 대범한 여인이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왕소군이 비록 평범한 평민 가정 출신이기는 하지만 범속치 않고 담력과 식견이 남다른 궁녀였는데 궁정이라는 속박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흉노에게 시집을 갔다고 본다. 그리고 애국심의 발로로 한나라와 흉노 사이에 우호를 맺게 ‘화친의 사자’가 돼 흉노의 땅으로 멀리 떠났다고 하기도 한다.

 

호한사는 왕소군을 ‘영호(寧胡)’ 알씨(황후)로 책봉했다. 시집와서 흉노에게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주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흉노로 갈 때 왕소군은 많은 선물들을 가져갔다. 그녀는 흉노의 백성들을 아끼며 화목하게 지냈다. 천 짜는 기술과 옷 만드는 기술, 그리고 농업기술들을 가르쳐 줘 흉노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다.

 

왕소군은 중국 역사에 대단한 공적을 쌓은 미인이다. 왕소군이 흉노로 시집간 다음부터 흉노와 한나라는 서로 화목하게 지내면서 자주 왕래했고 60여 년 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왕소군은 시종 화목한 생활을 했다. 남편인 호한야 선우가 죽은 후 전처의 아들이 즉위했다. 흉노의 풍속에 따르면 왕소군은 그의 처가 돼야 했다. 예교를 받은 한나라 여인이 그런 풍습을 쉽게 따를 수 없었겠으나 왕소군은 개의치 않았다. 복주루(復株累) 선우 사이에서 두 딸을 낳았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중국의 ‘4대 미녀’는 양귀비(楊貴妃), 왕소군(王昭君), 초선(貂蟬), 서시(西施)라 한다.

 

양귀비(楊貴妃)는 수화(羞花)다. 당(唐) 미녀 양옥환(楊玉環)은 명황(明皇)에게 간택돼 입궁한 후 매일매일 우울해 했다. 어느 날 그녀가 화원에서 꽃을 감상하며 우울함을 달래다가 무의식중에 함수화(含羞花)를 건드렸다. 함수화는 바로 잎을 말아 올렸다. 명황이 그녀의 ‘꽃을 부끄럽게 하는 아름다움’에 찬탄하고 그녀를 ‘절대가인(絶對佳人)’이라고 칭했다.

 

왕소군(王昭君)은 낙안(落雁)이다. “기러기가 날개 움직이는 것을 잃고 땅으로 떨어졌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한(漢)의 왕소군은 재주와 용모를 갖춘 미인이다. 한나라 원제는 북쪽의 흉노와 화친을 위해 왕소군을 선우와 결혼시켰다. 집을 떠나가는 도중 그녀는 멀리서 날아가고 있는 기러기를 보고 고향생각이 나 금(琴)을 연주하자 한 무리의 기러기가 그 소리를 듣고는 날개 움직이는 것을 잊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에 왕소군은 낙안(落雁)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초선(貂蟬)은 폐월(閉月)이라 한다. “달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렸다”고 한다. 초선은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로 한나라 대신 왕윤(王允)의 양녀라 한다. 용모가 명월 같았을 뿐만 아니라 노래와 춤에 능했다. 어느 날 저녁에 화원에서 달을 보고 있을 때 구름 한 조각이 달을 가렸다. 왕윤이 말하기를 “달도 내 딸에게는 비할 수가 없구나.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었다”고 했다. 이 때 부터 초선은 폐월(閉月)이라고 불리게 됐다. 초선은 왕윤의 뜻을 따라 간신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시키며 동탁을 죽게 만든 후 여포의 부인이 됐다고 한다.

 

서시(西施)는 침어(浸魚)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어 버렸다”는 데서 비롯됐다. 서시는 춘추말기의 월(越)나라의 미인이다. 어느 날 강변에 있었는데 맑고 투명한 강물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췄다. 수중의 물고기가 수영하는 것을 잊고 천천히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래서 서시는 침어(浸魚)라는 칭호를 얻게 됐다. 서시는 오(吳)나라 부차(夫差)에게 패한 월왕 구천(勾踐)의 충신 범려(範蠡)가 그녀에게 예능을 가르쳐 부차에게 바쳤다고 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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