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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영식의 '지구촌 아시아'(1) ... 자가당착 우려되는 위안부 문제

  새로운 도전! 새로운 감동, 변화를 추구하는 <제이누리>가 새 필진을 모십니다. 동북아 국제정세·정치 전문가인 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입니다. 20여년 동북아 문제, 아시아 국제정치 문제에 천착해 온 봉 위원은 YTN 등 각종 미디어가 한-일관계와 동아시아 정치문제 토크에 초대, 자문을 구하는 전문가입니다. 봉 위원의 칼럼을 통해 우리나라는 물론 제주, 동북아의 새로운 국제정치 줄기와 외교 담론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지난 18일 일본군 성노예(종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국장급 협의가 열렸다. 2014년 시작된 국장급 협의는 이번으로 벌써 9번째다. 그러나 이번 국장급 협의도 양국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였을 뿐, 별다른 성과없이 끝났다. 한일 양국은 10월 중 제10차 국장급 협의를 열기로 합의하였다고 한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 협의를 담당한 한국 정부 관리들의 말을 들어 보면 한국은 당연히 일본보다 도덕적 우위에 서 있다는 전제 아래 일본을 압박하는 것 같다. 한 정부 당국자는 "일본은 외교역량이 굉장히 높은 나라였는데, 최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리수를 둔다"며 "일본의 행보와 상관없이 우리는 도덕적 우위를 바탕으로 정도 외교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한국은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가?

 

한일 관계를 관찰해 온 필자는 도덕적 우위를 당연시하는 한국 정부의 입장이 정확한 현실에 기반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특히 일본 강경론자들의 주장을 베트남전 성폭력 피해자 이슈에 대입하면 더욱 그렇다.

 

일본 내 강경론자들은 “한국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3.1절 대국민 담화문에서 “역사의 진실은 살아있는 분들의 증언입니다. 살아있는 진술과 증인들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하고 정치적 이해만을 위해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고립을 자초할 뿐입니다” 라고 비판하였다.

 

지난 5월 26일자 한겨레신문은 ‘베트남전 성폭력 피해자들이 증언한다’는 제목으로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윤미향 대표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윤 대표는 베트남 빈딘성 인민위원회가 베트남 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공식 확인한 피해자 26명 중 8명을 인터뷰했다. 기사엔 다음과 같은 증언 내용이 나온다.

 

네 사람이, 한 명씩 돌아가며 내게 그 짓을 했어요…참호에 한 명씩 집어넣고, 이틀 낮 이틀 밤을 가둬놓고, 연속으로 강간을 했어요”...할머니들은 기억을 떠올리며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했다
…팜티언 할머니도 아직 한국 정부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말을 한다. “한국 정부가 인정 안 해? 병사들한테 알아보면 되잖아. 그 사람들도 인정 안 해? 나 같은 사람이 있는데, 없다고 하면 그게 말이 돼? 그걸 어떻게 없었다고 해?”

 

 

‘역사의 진실은 살아있는 분들의 증언인데 이를 듣지 않으려고 하고 정치적 이해를 위해 인정하지 않는’ 일본을 비판한 박근혜 정부였다. 그러나 필자가 알기로 한겨레신문 보도 후 한국 정부는 ‘베트남 성폭력 피해’에 아직 이렇다 할 진상규명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일본 내 강경론자들의 또 다른 주장은 ‘일본 정부는 이미 사과와 배상을 했다. 아시아 여성기금을 통해 희생자들에게 보상했다. 1965년 국교정상화로 한국 정부는 개인배상 청구권 문제를 정부 스스로 책임지겠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개인 청구권을 인정하는 한국 사법부의 판결이나 종군위안부 문제는 한일기본조약에서 제외되었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은 약속을 어기는 행위다’라는 것이다.

 

인터뷰에서 하티낌응옥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한국 정부에 사죄하고 배상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어요. 그때 일만 배상해서는 안 돼요. 그 일로 우리가 현재까지 이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당하고 있는 고통에 걸맞은 배상을 해야 해요.”

 

올해는 베트남전 종전 40주년이자 한국이 전투병을 파병한 지 반세기가 되는 해다. 그동안 여러 한국 민간단체들이 베트남 전시 피해자들의 상처와 한을 치유하고 삶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한국 정부는 사과와 치유의 문제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과거를 닫고 미래로 간다’는 것이 역사 화해 문제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베트남 정부는 1992년 수교 당시 “승전국으로서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선언했고, 전쟁으로 인한 배상 문제도 논의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베트남전 당시 성폭력 희생자들이 한국 정부에 진상규명과 사죄, 보상을 요구하는 개인 청구권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은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의 공식 사과와 법적 책임 인정, 민간 기금이 아닌 일본 정부 예산을 통한 손해배상을 요구해 왔다. 만일 베트남 성폭력 희생자들이 같은 맥락의 요구를 해 올 때 한국 정부는 어려운 입장에 처할 것이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베트남 방문 시 호치민 묘소를 참배한 후 “우리는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한 것이 한국 정부의 최초 사과 발언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인 박근혜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역사인식에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고 참전용사들의 명예를 이토록 손상시켜도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이는 6.25전쟁 참전 16개국 정상들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북한 주민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한 것과 같은 엄청난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랬던 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 9월 베트남을 국빈 방문하고 베트남 국부 호치민 묘소에 헌화하고 침묵 참배하였다. 당시 한국 언론은 ‘아버지 시대 역사의 매듭 풀다’, ‘아버지의 적 호치민 묘 앞에 선 딸… 미래 위한 ‘마음 얻는 외교’’라는 제목 하에 ‘박 대통령은 이번 방문을 통해 한때 서로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아픈 과거사를 묻고, 번영의 미래를 논의하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한층 심화시켰다’고 보도하였다. 당시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박 대통령의 엄숙한 침묵 헌화와 참배에 대해 “박 대통령의 헌화와 참배는 행동으로 보여준, 그 자체가 강한 화해의 제스처다. 과거에 대한 한국과 베트남의 성숙한 입장과 잘못된 역사인식에 갇혀 있는 일본이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지 않겠느냐”고 해석했다.

 

국제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일본 압박 외교가 아니라 전시폭력을 규탄하고 여성인권과 소수자 보호라는 인류보편가치를 수호하는 차원의 외교라고 강조하였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2014년 유엔 인권이사회 기조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21세기 현재에도 분쟁하 성폭력 문제가 악화되고 있는 것은 과거에 발생하여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진행 중인 문제와도 관련됩니다. 실증적인 사례가 바로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한국, 중국, 동남아, 네덜란드 등 피해국들과 일본 간 양자 문제만이 아니라 인류보편적 인권 문제이며, 여전히 살아있는 현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일본 정부가 ‘21세기인 지금도 무력분쟁하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 분개한다’고 하면서 ‘여성이 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중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고 재발 방지 활동을 위해 정대협이 주도하여 만든 나비기금이 2주년을 맞은 2014년 3월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가 베트남 여성 피해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과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들도 억울하게 당했지마는 우리 한국으로 인해서 베트남의 여성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하니까, 한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그래서 우리들 힘으로 나비기금을 모아서 피해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정대협도 성명을 발표하면서 한국 정부에 전쟁범죄 인정과 진상규명 및 정부의 공식사죄와 법적인 책임 이행을 촉구하였다.

 

‘대일 도덕적 우위’는 한국 정부의 생각일 뿐이라고 여기는 제3국 외교관, 언론인, 학자들을 많이 만났다. 영어권 국가 사람들은 한국 정부에 대해 ’disingenuous‘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솔직하지 못한(특히 아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진정성이 부족한’이라는 뜻의 단어다.

 

‘일본엔 역사를 직시하라면서 베트남엔 침묵하는 모순’을 한국은 얼마나 안고 살아갈 것인가.

 

베트남전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현 정부의 무반응을 생각하면 한국이 일본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당연시하기보다 이를 확보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봉영식 박사는? = 미국 워싱턴 D.C.의 아메리칸 대학교(2007~2010년)와 윌리엄스 칼리지 정치학과(2005~2007년) 조교수를 역임하고 2011년부터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외교안보)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웰슬리 여대 정치학과에서 박사 후(後) 연구자로 재직하였다.
동아시아 지역안보, 역사영토문제, 한국정치, 북한 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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