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이권홍의 '중국, 중국인'(33)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침구(鍼灸)는 중국 중의학의 고유명사다. 침과 뜸의 총칭이다. ‘침’법이란 침으로 경락혈을 자극을 줘 치료하는 것이고 ‘구’법은 쑥잎 등을 가지고 혈을 뜨겁게 하여 질병을 예방 치료하는 방법이다. 침구는 중국 의학의 중요한 구성 성분으로 세계 의학사에 기이하면서도 특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약 2500년 전 어느 날 아침 괵(虢)나라 태자가 갑자기 쓰러지더니 황천길로 갔다. 괵나라는 비통함에 빠져들었고 온 나라가 태자를 위해 장례를 준비하였다. 유방랑중(游方郎中 : 일정한 지역에 머물며 의술을 펼치지 않고 돌아다니며 치료하는 의사) 편작(扁鵲)이 마침 괵나라를 지나가다가 태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태자의 발병 과정과 죽은 시간을 상세히 듣고는 군왕을 찾아가 태자를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편작이 왕궁에 이르러 자세히 태자의 맥을 짚어보고 신체를 관찰하더니 태자의 맥박이 어지러워 사망한 것처럼 고요하지만 잠시 ‘시궐(尸厥)’(쇼크 혹은 가사)한 것뿐이라고 하였다.

 

편작은 태자의 정수리, 흉부와 사지 부위에 침을 놓자 얼마 후 태자가 깨어났다. 편작은 이어 태자에게 약을 먹인 후 양 옆구리에 온찜질을 하였다. 그러자 오래지 않아 태자가 일어나 앉는 것이 아닌가. 괵나라 태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자신을 위해 준비한 장례를 보게 된 셈이다. 당시 여러 사람들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니 편작의 의술의 명성은 일시에 천하에 퍼지게 되었다.

 

 

산동 미산호(微山湖) 양성(兩城)산에서 동한(東漢)시기의 첨구 화상석(畵像石) 4편이 출토되었다. 돌의 한 쪽에 새의 몸을 하고 있는 사람이 새겨져 있고 상대편에는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병자가 있다. 한 손으로는 맥을 짚고 있고 다른 한 손은 침을 놓기 위해 침을 들고 있다. 이 새 몸의 사람이 편작이라 본다[편작이 아니라 원고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신의라 하기도 한다]. 의술의 대가에 대한 숭배가 나중에 신화(神化)했다고 보는 것이다. 화상석의 내용은 신화된 편작이 침구로 의술을 행사는 그림일 가능성이 많다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비의 침구 의술은 어느 시대에 생겼을까? 한 전설에 따르면 사냥꾼이 콧등에 화살을 맞았는데 오랫동안 앓던 두통이 갑자기 치유되면서 침의 효능이 발견됐다고 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침구 의술의 기원은 석기시대까지 올라간다. 많은 지역에서 피부를 찌르는 침 모양의 석제 도구가 발굴되기도 했다.

 

진한(秦漢)시기 침구학은 대단히 발전하였다. 예부터 남방은 침법이 성행하였다. 1993년 봄, 사천성 명양(綿陽)시 영흥(永興)진 쌍포산(雙包山)에서 발굴된 제2호 서한 목곽(木槨) 고분 후실에서 검붉은 빛이 나는 검은 색 칠을 한 소형 목질 인형이 출토됐다. 그 위에는 붉은 색으로 선으로 칠해진 침구 경락 순행 경로가 표시돼 있었다. 문자나 경혈 위치 표기는 없었다.

 

그러나 온몸에 분포돼 있는 경맥 순행 경로는 칠흑의 나무위에 유난히 선명하게 표시돼 있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발견된 최초의 경맥 흐름이 표시된 나무 인체 모형이다. 이 묘는 한나라 문제(文帝)와 경제(景帝)시기라 밝혀졌다. 침구 목인(木人)이 출토된 지역은 부강(涪江) 강변이다. 부강은 한나라의 부수(涪水)다.

 

『후한서』기록에 따르면 그곳은 유명한 침구가 부옹(涪翁)과 그 제자 정고(程高), 재전제자 곽옥(郭玉) 3대가 활동하였던 지역이다. 곽옥은 동한 초기 태의승(太醫丞)으로 있을 때 한나라 화제(和帝)의 명을 받아 귀인(貴人)의 병을 치료한 ‘한 번 침을 놓으면 병이 다 나았다[一鍼卽瘥]’는 고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부옹은 침술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의사 윤리가 남달랐다고 전한다. 그리고 전문적인 『진경(陣經)』『진맥법(診脈法)』등을 저술했다고 전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침구 교재와 같은 목인이 부강 강변에서 발굴됐다는 것은 그리 신기할 일만도 아니다.

 

마왕퇴 3호 고분에서 출토된 백서(帛書) 『경맥(經脈)』은 인체 내 11경맥의 순행, 주된 병과 뜸의 방법을 논술하고 있다. 중의학 이론과 관련된 기초 경맥학의 고문헌이다. 『황제내경(黃帝內經)』은 중국 고대 의학의 보고다. 춘추전국 및 서한 시기 여러 고대 의학가의 진귀한 경험을 총결한 것으로 대대로 누적돼 온 의학을 총 집약하였다. 그중 침자요법(鍼刺療法)에 대한 해석이 무척 상세하다. 9가지의 침을 소개 하고 있는데 쓰임새도 각각 다르다. 9침은 대침(大鍼), 장침(長鍼), 호침(毫鍼), 원침(圓鍼), 봉침(鋒鍼) 등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길이는 약 3센티미터에서 24센티미터다. 책에는 인체 표면의 365개의 혈도에 대해 이름을 붙이고 어떤 통증과 질병을 치료하는데 적용되는지와 그 방식을 나열해 놨다. 침의 종류에 따라 각기 맞는 질병 종류가 따로 있음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황제내경』에 기록돼 있는 의료방법은 황제가 창조하여 시행한 것처럼 돼 있지만 황제 이외에도 중국 역대의 많은 제왕들은 생리학, 특히 신경 계통에 흥미를 가졌다. 기원후 1세기경 왕망(王莽)은 의사와 어용 백정의 협조를 받아 적의 시체를 해부해 죽첨으로 인체 신경 계통을 세밀히 살폈다. 1000년 후 송나라 휘종(徽宗)은 화가를 고용해 해부된 죄인의 인체 기관을 그리게 하였다. 휘종 이전에 송 인종(仁宗)은 장인에게 인체의 모든 신경 계통을 표시한 동인(銅人)을 제작케 하기도 하였다. 이 동인은 의관원(醫官院) 침구과(鍼灸科) 학생들을 가리키는 교재 도구로 사용되었다.

 

 

북송(北宋) 중엽 인종(仁宗)이 쓰러졌는데 어의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민간의 의사를 불러 침구를 행하게 하였다. 그 민간 의사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머리 뒤의 혈에 침을 놓았다. 침을 놓은 후 바늘을 뽑자 인종이 깨어났고 두 눈을 뜨면서 연거푸 ‘대단하다[惺惺]’며 칭찬하였다.

 

중국어의 ‘성성(惺惺)’은 ‘현명하다, 똑똑하다’는 뜻으로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그 혈은 ‘성성혈(惺惺穴)’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옛 책에는 이러한 예들이 많다. 침과 뜸으로 기사회생했다는 기록이 자주 보이고 전신마비를 치료했다거나 부인 난산, 신생아 파상풍, 복통, 가슴앓이, 두통, 류머티즘, 이비인후과 등의 병을 치료했다는 기록도 많이 보인다.

 

침구 의술을 발명한 중국 고대인들은 세계 의학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할 것이다.

 

신비한 의술 원리를 더 개발하고 연구해 나가 위대한 인류 문명을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후손들에게 남겨져 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중국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관련기사

더보기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