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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시평] 부패와 몰상식에 가려진 정의와 상식을 드러내자

 

 

시절은 1990년대 초반. 서울의 한 경찰서 골방이다.

 

시험을 치르고 어렵사리 한 언론사에 입사, ‘수습기자’ 신분으로 사건·사고현장을 누비고 다니던 때였다.

 

지금 청년세대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휴대폰은 없었다. ‘삐삐’로 불리는 무선호출기가 유일한 긴급 통신수단이었다.

 

선배 기자의 수시 호출에 즉각 즉각 응답을 해야 하니 취재현장에서도, 잠을 잘 때도, 식사 중에도 언제나 전화기 주변이 선택장소다. 목욕탕에 가서도 카운터에 삐삐를 맡겨두고 가슴 졸이며 시간을 때웠다.

 

그런데 사고를 쳤다. 그 시절 석간이던 그 신문의 편집시스템에 맞춰 새벽 5시부터 움직이다보니 어느 날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5개월여 수습기자 생활을 하다보니 지칠 대로 지쳐버린 것이다.

 

‘20 CALL'이란 메시지가 호출기에 떴다. 선배가 스무 번이나 날 찾았던 것이다.

 

민망하기 보단 오히려 절망이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다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기를 들었다. 수화기에선 분노한 선배의 목소리에 이어 그 나이 무렵 들어본 적이 없는 질책과 타박을 받았다. 상상할 수 없는 욕설에 귀가 멍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선배가 말했다. “오늘 넌 일할 필요 없어. 반성문 100장 쓰고 와!”

 

 

 

 

솔직히 어리둥절했다. 그 감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착잡함을 뛰어 넘어 한 없는 자괴감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20대 후반이었고, 대학원까지 마치고 들어간 첫 직장인지라 자부심과 더불어 선민의식까지 갖고 있던 터였다. “그런 나에게 반성문을 쓰라고?” 솔직히 그 때까지 부모에게도 써 본 적이 없는 문건이었다.

 

하지만 일단 문방구에서 갱지 다발을 사긴 샀다. 경찰서 앞 허름한 찻집에 앉았다. 한참을 생각했지만 다가온 모멸감은 반성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사직서를 쓰는 걸로 마음이 흘러갔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직서를 호기롭게 썼다. 전해주기만 하면 될 터인데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고향의 부모는 물론 주변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일단 반성문을 한번 써봤다. 쓰다보니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까지 살아왔던 지난 날들을 주마등처럼 떠올렸다. 처음엔 그럴 생각이 아니었지만 반성문을 100가지 버전으로 만들었다. 똑같은 글을 100번 쓰라는 뜻인 걸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오기로 그렇게 했다. 시·콩트·수필은 물론 만화, 그림, 기사체 등 별의 별 형식을 총동원했다. 그리곤 선배가 있는 출입처로 찾아가 뭉텅이로 제출했다.

 

더 이상 자만도, 오만도 부릴 지경이 아니었다. 너무도 부끄러웠고 창피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없이 어린 초등생으로 고꾸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신세가 그리 초라한 줄 몰랐다.

 

그날 저녁 편집국 회의를 마치고 선배가 잔술을 나에게 건넸다.

 

“야! 너 글 좀 쓰더라. 출입처 다른 기자들이 다 읽어봤어. 이번 후배는 쓸만한 놈이라고. 잘 훈련시키라더라.”

 

그랬다. 훈련과정의 하나였다. 오만·자만을 버리고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교육의 한 연장이었다. 두뇌가 아닌 성실을 다시 일깨우기 위한 메시지였다.

 

그 선배가 초년병 시절이던 나에게 늘상 건네던 말이 있다. “기자는 말야.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해야 돼. 그래야 권력을 견제하고 어두운 곳에 불을 밝힐 수 있는 거야.”

 

그런데 그 반대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기자를 보게 되는 경우가 꽤 있다. 제주에서 그렇다. 지성과 상식·학습으로 무장하지 않고 그저 ‘큰 목소리’만으로 언론의 위용을 과시하는 이들도 많이 봤다. 내 스스로도 혹이나 내가 그러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살펴보고, 반성하고, 되돌아 보기도 한다.

 

제주언론계에선 이상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비정상’이 ‘정상’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고, 언론(인) 답지 않은 언론(인)이 더 언론(인)  행세를 하고, 더 대접을 받기 일쑤다. 더욱이 기자와 언론사가 특정 기업의 전위대가 된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인다. 그러다 선거판이라도 닥치면 그 증세는 더 심하다.

 

헤겔이 [법철학]에서 한 말이 있다.

 

“미네르바(지혜의 여신)의 올빼미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 나래를 편다.”

 

어둠이 깊을 수록 새벽은 더 가까이 다가와 있다. 부패와 몰상식이 만연한 만큼 가려졌던 정의와 상식은 이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도무지 일어나선 안될 일이 벌어져 제주사회는 물론 제주언론계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이제 우리 제주사회가 지난 날의 잘못된 관행과 잘못된 인식, 그리고 고루한 발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계기가 된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그래서 지금은 바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나저나 미국에 사는 그 선배의 근황이 궁금하다. 그가 나를 일깨워줬기에 그나마 ‘기자정신’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다. [양성철=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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