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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필의 세상훑기(38) ... 권의주의 정권의 트라우마

 

지난 토요일 충남 청주시 대청호변의 청남대(靑南臺) 나들이에 나섰다. 둘러보는 2시간 반 내내 주위 풍광엔 감탄했으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처음 왔었던 10년 전보다 눈에 띄게 볼거리가 많아졌고 시설도 크게 정비됐지만 기분은 울적했다. 순전히 개인적 이유에서였다. 1970, 80년대 정치격변기를 경험한 50대로서 그 장본인들 모습을 자주 만나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다.

충북도는 2003년 대통령 전용 휴양지인 청남대의 소유권을 넘겨받아 ‘대통령 테마파크’로 탈바꿈시키고 있었다. 역대 대통령을 회상할 수 있는 장소로 조성하고 있다. 곳곳에서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 등 9명의 재직 때 사진과 치적 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 지난달 4일 대통령마다 대형 초상화 2장씩을 전시하고, 대통령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대통령기념관도 개관했다.

 

총 184만㎡(약 55만평) 야산에 83년 청남대를 만든 전두환 대통령을 비롯해 이후 5명의 대통령 이름을 붙인 산책로·등산로를 만들었다. 동상도 각각 세웠다.

이렇듯 잘 꾸민 청남대가 기분을 망치게 한 이유는 뭐일까. 청남대에 도착하면 대통령과 그 가족들이 머물던 본관부터 구경하고 뒤편의 테니스장, 수영장, 정원을 살피도록 동선이 짜여 있다.

10년 전과 달리 요소요소에 안내문이 자상하게 적혀 있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잇따라 눈에 들어오는 설명문이 내 속을 긁었다. 5·6공화국 주인공 얼굴이 자주 눈에 띄어 그들에 대한 달갑지 않은 추억을 불러 일으켰다. 대학에 다니던 30여년 전인 79년 10·26과 12·12, 80년 서울의 봄, 81년 5공화국 탄생을 겪은 50대로서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일종의 트라우마다. 80년대 초 극장에서 당시 대통령이 나오는 대한뉴스를 보다가 못 참고, 휴게실로 담배 피우러 나오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청남대 본관 로비 한 켠에 식당 테이블이 있다. 위에 ‘5·6공화국 청남대 만찬 때 사용했다’는 설명문이 있다. 이를 시작으로 온통 전·노 두 전 대통령의 흔적이었다. 실내 탁구장, 실외 테니스장, 본관 옆 산책로는 두 대통령과 그들의 가족사진 일색이었다.

 

정원의 ‘산책(전두환 대통령)’제목 안내판에는 사진 3장이 올라 있다. ‘본관 정원에서 가족분들과 산책과 등나무 의자에 앉아 담소와 휴식을 하는 대통령 내외분’. 가까이 있는 정원파티 사진 안내판에는 ‘1988년 10월 노태우 대통령은 서울올림픽을 마치고 사마란치 IOC 위원장과 위원 부부 동반 26명을 초대해 본관 정원에 오찬 연회를 열었다’고 적혀 있다.

정원 옆 산책로를 걸었다. 이른바 ‘전두환 대통령길’이다. 안내판을 대통령 상징인 봉황 문양으로 꾸몄다. 오각정에 도착하면 ‘86년 하계휴양시 오각정에 오른 전두환 대통령 내외분과 가족(큰 영식 내외와 영애)’ 사진이 방문객을 맞는다.

영식(令息)과 영애(令愛), 참 오래된 말이다. 권위주의 정권 때 대통령 자녀를 지칭하는 단어다.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알고보니 내외분·영식·영애는 청남대가 대통령 부부와 자녀를 말하는 안내판 공식어였다.

오각정 바로 옆에 전 대통령의 전신(全身) 동상이 서 있다. 대통령 테마파크라 가능한 일이다. 휘호와 친필 사인도 큼지막하게 표석에 새겨져 있었다. 연못에서 시원한 분수쇼를 보고 돌아서는 순간. ‘스케이트를 타시는 내외분’ 사진 설명문이 또 속을 긁었다.

 

☞조한필은?

=충남 천안 출생. 고려대 사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고대사를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편집부·전국부·섹션미디어팀 기자를 지냈다. 현재는 충청타임스 부국장 겸 천안·아산 주재기자로 활동하면서 공주대 문화재보존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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