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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세평] '함께 살아간다'는 소박한 원칙 하나만은 가졌으면...

 

얼마 전 일이다.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마을의 대표경관인 연화못 앞의 카페가 '더럭'과 '연화못' 이름을 특허등록했다. 

 

'더럭'은 상.하가리 2개 마을을 아우르는 마을의 고유명칭이다. 600~700년 전 설촌(設村) 이래 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이름이기도 하다.

이 일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구르는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형국”이라며 법적 대응은 물론 현수막 게시, 항의 집회 등을 벌이며 반발하고 나섰다.

결국 마을과 카페 주인간 협의를 통해 일부 이름을 빼고 주요 상호.이름을 마을로 이관시키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같은 일은 앞으로 제주의 어느 곳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제주의 전통적인 문화 가치가 도시적 가치, 개발 논리와 만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예라는 점에서 해프닝 이상의 의미가 있어 보인다.

수백년 된 마을의 이름과 고유지명에 대해 특허등록을 한다는 것은 상식선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탐욕의 발로라고 생각된다. 반면 늘 빈틈을 노리는 자본과 개발의 논리에서 보면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하는 빈 구석이나 기회로 여겨질 것이다.

국제정치학자인 새무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은  "냉전이 끝나는 시기에 세계가 이데올로기가 아닌 문명 간의 충돌에 의해 불안정성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제3의 물결>이란 저작에서 언급한 이른바 '문명충돌론'이다.

그가 제시한 문명이란 "사람들의 총체적인 생활방식"이라는 문화와 같은 의미로 사용됐다. 달리 말하면 살아온 방식이 달라 갈등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실제로 이슬람 문명과 중국 문명의 약진 및 갈등 유발은 이미 전 지구적으로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거창한 국제관계에 대한 이야기 대신 대한민국 최고 관심지인 제주로 관심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문명 대신 문화라는 말로 바꾸면 그 충돌의 현장은 이제 본격적인 서막을 열고 있는 느낌이다.

 

'육지 것'과 제주도민 간의 생활방식 차이는 단순한 출신지를 넘어 종종 사회적 특이 현상으로 드러나곤 한다. 물론 이것이 꼭 육지 대 제주간의 생각 차이도 있지만 도시화 혹은 개발과 농촌 혹은 전통 공동체와의 차이라고 보는 편이 더 어울릴 때도 많다.

문제는 제주 곳곳에서 이를 피할 수 없을 뿐더러 어쩌면 사회통합의 측면에서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중요 현실이라는 점이다.

입도민(入島民)들에게 제주는 여러가지 분야에서 '기회의 땅'이다. 경제적인 의미뿐 아니라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반면, 제주에 내려온 육지인들이 말하는 제주의 가장 어려운 부분 역시 '궨당'이라는 전통 네크워크를 꼽는다. 결국 스스로는 분리돼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오랜 시간 제주에서 보낸 사람들 대부분은 제주의 배타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제주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정받으면 바로 한 식구처럼 대하는 경우도 잊지 않고 말한다.

 

제주에 내려와서 어느 자리에 가든 출신지와 무슨 성씨(姓氏)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관계를 찾아가는 점에서 고마운 일이기는 했지만 무슨 성씨이고 무슨 파인가 하는 질문을 거의 받아본 적이 없는 외지인에게는 여전히 낯선 일임은 사실이다. 무언가 연결고리를 찾기 위함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그 문화적 차이는 기억에 남는다.

제주 내부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의 차이로 이미 제주는 상당부분 분리되어 있는 느낌이다.

 

지난 주 곽지의 한 식당을 방문한 후 담소를 나누던 중 그 지역 아주머니 한 분이 불현듯 말을 꺼냈다. "여기 계신 분 모두 육지에서 오신 분이지요?"

무엇이 그 분으로 하여금 4명 모두가 육지 출신임을 알게 했을까. 5명의 사람들 중 그 분을 제외하곤 전부 육지출신이었음은 사실이었다. 10년이 넘은 사람부터 6개월짜리 짧은 체류기간을 가진 사람까지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육지의 생활습관이나 문화습관이 한 눈에 보인 것이리라.

 

얼마 전 올레길 12코스를 걸었다. 올레 본래의 의미를 떠나 올레길을 내며 개인 소유의 땅을 길로 활용토록 하거나 뒷마당을 지나가게 하는 등의 예는 올레길의 홍보자료 등에서 제주의 공동체 정신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수월봉 천문대가 있는 올레길을 지나면서 불현듯 올레길이 끊긴 것을 확인했다. 올레길 앞을 줄로 막아놓고는 '사유지 출입금지'  팻말로 올레길을 막아놓은 것이다. 정확한 자초지종은 모르지만 제주의 전통적 가치가 '사유지 고수'라는 원칙과 부딪히는 상황을 보여줬다. 전통의 제주가 외부의 가치와 충돌하는 느낌이었다.

급격한 육지인의 입도로 이미 제주 인구의 4분의 1 가까이가 외지출신이 차지하기 이르렀다. 그 추세는 더 빨라질 전망이다. 비록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더라도 서로 다른 생활방식은 앞으로도 곳곳에서 충돌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소한 불신과 분열로 갈 개연성이 높다.

 

상대방을 모르면 상대방의 가치를 무시하기 쉽다. 불합리와 몰상식으로 매도하기 쉽다. 비합리적이라거나 제주만의 가치를 무시한다는 비판도 거침없이 나올 수 있다.

다행히  마을 공동체 복원같은 논의를 사회적으로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제주가 가진 여러 가능성 만큼 제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 가치에 '함께 살아간다'는 소박한 원칙 하나만이라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육지것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리라.

그래야 올레길을 막고 사유지라고 출입을 중단시키거나 마을 이름을 개인소유의 특허 등록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제이누리=이재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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