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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인문학(4) ... 행복

 

3. 행복

 

한자가 다른 ‘가정’은, 부부를 중심으로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의 가정(家庭)과 집안 살림을 다스리는 일의 가정(家政)이 구별돼 있지만, 한글로는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 혈연관계의 가장 작은 집단을 꾸려가는 일, 또는 집안 살림을 다스리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이 바로 가정이다.

 

엄마는 딸이 어렸을 때 자주 데리고 다녔던 도서관을 가족 모두 함께 가자고 했다. 도서관을 가보면 어린 자녀와 동행한 엄마가 대부분이다. 중학생 이상의 자녀를 두고 있는 엄마는 자녀를 학원에 빼앗긴 뒤 도서관에로의 발길도 끊는다. 사회의 출발점이자 이래서 사회의 기둥인 가정이 지나치게 편향된 쪽으로 다스려지고 있는 비틀어진 사회는 사회의 출발지인 가정에서부터 이미 흔들리고 있다. 이 기준의 정점인 엄마는 딸의 입시실패와 자신의 욕구좌절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동기는 내적 경험의 원인이다.’(쇼펜하우어)

 

내적 경험은 좌절과 시련 뒤 자각을 통해 얻는 또 하나의 소중한 체험이다. 이 경험이 동기가 되어 엄마는 다시 딸의 어릴 적으로 돌아가 보는 시간을 갖는다.

 

‘사물의 아름다움은 그 사물에 대해 사유하는 정신에 달려 있다.’(데이비드 흄)

 

딸을 바라보는 아름다움이 변해갔다. 곱디곱던 딸의 아름다움은 주변의 시선이나 주변의 판단에 따라 추종되면서 주변에 의해서 만들어져갔고 그 아름다움도 잃어갔다. 주변으로 인해 자신을 잃는다.

 

부러움

 

부러움을 받는 사람은 부러움의 함정에 함몰되며 그 구속에서 스스로 벗어나기란 힘들다. 받는 부러움의 구속이란, 타인보다 우위라는 우월 또는 선민의식의 속박이기에 겸손보다는 오만해지기 쉽고 자중하기보다는 자만에 빠지기 쉽다. 자신의 오만과 자만은 남의 부러움으로 더 포장되어가고 그럼으로써 스스로를 더 구속하게 된다. 그래서 부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부러움을 받는 사람보다 끝내는 더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창피함

 

창피함은, 부러움의 상대어 같지만 동의어가 되기도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면 낮아질 것이요, 자신을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 말은 부러움과 창피함의 관계를 설명하는 듯하다. ‘부러움만 받다보면 창피한 일이 생길 것이요, 창피한 경험은 부러워하는 자리에로의 자각이다.’ 부러움과 창피함은 슬기롭게 대응하지 못하면 부러움은 창피함으로, 창피함은 부러움으로 자리바꿈을 하게 된다.

 

“엄마가 가장 불행하다고 느낄 때 가장 행복했던 날이 있었나, 하며 그 날을 떠올렸단다.”

 

‘행복이 불행으로 바뀌는바 가장 불행해지게 만드는 요소는 바로 행복했던 데에 있다.’(보이티우스)

 

이렇게 가족의 특별한 나들이는 시작되었다.

 

“아빠가 바쁘다는 이유로 엄마에게만 우리 딸을 맡겼구나. 이미 지나가버린 우리 딸의 어린 시절이 엄마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는데 아빠에게는 같이 한 그 시간이 없어. 아빠에겐 잃어버린 시간, 엄마의 행복이 아빠의 불행이라니... 우리, 가족 맞나? 하지만 불행은 행복의 시간을 더듬어 찾아가게도 하는가 보다, 오늘 같이 말이다. 우리 딸은 언제 가장 행복했니?”

 

멈칫하지도 않고 딸도 엄마와 도서관 다니던 그 때라고 한다.

 

“엄마가 들려주기도 하고 엄마랑 함께 읽었던 동화책은 아직도 거의 기억이 나. 특히 꽃들마다 지니고 있는 전설을 들려주던 엄마의 목소리는 지금도 생생해.”
“엄마의 목소리가 어땠는데?”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나누는 가족의 대화다.
“천사의 목소리”

 

아빠가 끼어든다.
“그럼, 10여 년 전 아빠의 목소리는 어땠니?”

 

기억을 되살려보려고 한참 머뭇거리던 딸은 끝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는 딸의 말에 아빠는 악마의 소리보다 못했던 자기의 목소리, 기억에도 없으니 남지도 못한 목소리는 존재하지도 않은 시간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소외감에 몸서리를 친다. 소외감이 버려짐 같이 느껴져서다.

 

“아빠는 우리를 위해 돈 버느라고... 그래서 버젓한 우리 집도 생긴 거잖니? 이제부터 아빠를 우리 가족의 행복에 끼어줄까?”

 

아무리 돈벌기만 했을까.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은 넉넉하진 않았어도 찾으려들면 충분했다.

 

핑계

 

가정을 다스리는 데에 아빠의 몫은 가족을 위한 노동과 그 노동의 대가로 얻는 가족의 안정이다. 안정에는 기여했을지 모르나 이것을 핑계로 안위에 빠져있었고, 안위는 제 몫을 다했다는 책임회피 또는 의무전가가 될 수 있다. 가정의 그 나머지 몫은 엄마가 도맡았다. 엄마도 바깥 일, 아빠처럼 노동이 없었던 게 아니었건만...

 

‘누구만 벌고 누군 안 벌었나?’

 

고정관념

 

자녀들의 교육은 엄마만의 몫이 되어버린 고정관념에 아빠만이 아니라 엄마도 묶여있다. 당연한 내 몫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고정관념이며, 이러한 고정관념은 역할분담의 기회나 고려까지도 박탈시키며 봉쇄한다. 잘 알다시피 물이든 생각이든 고여(고정) 있으면 썩게 마련이고 퇴보하게 돼 있다. 이런 말을 입으로는 수없이 하면서도 우리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정관념은 깨는 것보다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그럼, 엄마의 지금 목소리는? 몹시 불안해지네...”

 

주저하는 딸,
“솔직히 말해도 돼? 나로 인해 변하지 않을 수 없는 엄마를 이해하지만 악녀, 미안해 엄마, 이런 목소리로 들릴 때도 있었어. 하지만 오늘 아침, 도서관 가자는 목소리에서 엄마는 다시 천사가 되었거든.”

 

 

천사의 목소리

 

천사의 목소리는 행복했던 순간에 듣는 음악이다. 행복은 목소리에서 나오고 기쁨은 웃음에서 나온다. 도서관에 가자던 엄마의 얼굴에서 웃음이 되살아났다.

 

‘인간은 스스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링컨)

 

세상에서는 위대했던 링컨은 가정에서는 허영심 많은 아내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다. 링컨은 마음을 스스로 다지면서 불행을 누르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말은,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마음의 조절로 행복을 과대포장시키지 말라는 뜻으로도 이해가 된다. 원효스님의 ‘모든 것은 다 생각 먹기 나름이다.’라는 일체유심조도 마인드콘트럴 이전에 행복조절에 대한 설법으로도 들린다.

마침 찾아간 도서관은 어느 딸의 삶을 기리기 위해 그 가족이 기부한 돈으로 지은 기념관이기도 하다. 유난히 책을 좋아했다던 딸이 유학 간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도서관 벽면에는 이진아 씨의 엄마·아빠, 그리고 언니가 내놓은 돈으로 지은 도서관(이진아기념도서관, 서울 서대문구 소재)임이 명시돼있다. 벽면에 새겨진 의미는 한 사람을 기리는 단순한 기념관으로는 너무나 부족하다.

“<천로역정>을 쓴 영국의 존 번연은 직업이 땜장이였단다. 그런데 아내가 시집오면서 가지고 온 두 권의 종교서적을 읽고 난 후에 그는 성서를 탐독하게 되었고, 결국 종교가가 되었다는구나. 작가도 되었고. 이진아 씨 가족의 바람은, 번연이 작가로서의 계기가 된 아내의 종교서적처럼 책 한 권이 사람을 바꿀 수 있는 데 기여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고 보았던 거겠지.”

아빠가 딸과 아내의 손을 살며시 잡는다.

 

“이 도서관이 생긴 사연을 듣고 전에 혼자 왔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우리 딸이 대학 들어가면 가족이 함께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대학에 수월하게 들어갔다면 아마 지금 이 기분 좋은 시간은 없을지도 모르지. 대학교에 내 딸을 빼앗겼을 테니까. 재수가 좋기도 하네. ‘서두르지 마라’라고 가르쳐주니 말이다. 늦는다고 꼭이 뒤쳐지는 건 아니야, 그치?”

 

엄마가 남편과 딸을 두 팔로 안으며 어깨동무를 한다.

 

‘부유한 사람의 풍요는 그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성경)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문제가 생긴다는 성경말씀이다.

 

‘부지런한 자의 계획은 필시 이로운 일을 이루게 한다.’(성경)

 

계획을 세워 이룰 수 있는 일이 꼭 부자만이 아니며 이로운 일의 성취로 부자가 될 수 있음을 역시 성경은 말씀한다. 사고를 당한 이진아 씨의 부모는 꽤나 부유했던 것 같다. 50억을 기부했다고 하니 보통사람으로는 마음은 있어도 엄두조차 낼 수 없다. 하지만 성경은 부자를 경계하는 듯하지만 부자이기에, 풍족하기에 오히려 할 수 없게 만드는 부자의 욕심이나 속성을 질타하고 있다. 부자가 할 수 있다면 더 큰 이로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부자는 부지런한 자가 된다. 비록 딸을 기리는 공명처럼 보이더라도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부자이기에 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 재벌의 딸이 자살을 했고 그 딸이 가진 재산만해도 당시 3천 억 원이 넘는다는 기사도 나왔었다. 그러나 이진아 씨 가족과 같은 아름다운 상속의 소리는 그 가족에게선 더 들을 수가 없었다. 이후 가족 간의 수천 억 재산상속의 법적 다툼의 볼썽사납고 유치하고 치졸하기 그지없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들의 풍요가 오히려 그들을 편하게 잠들지 못하게 하는가 보다. “쉽지 않은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에서는 존경받아야 해!”

 

딸이 활짝 웃으며 더 하는 말,
“내 나이 스물, 다 큰 재수생 딸과 도서관 함께 오는 엄마·아빠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결코 쉽지 않은 일을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중!”

 

엄마가 오랜만에 어깨를 펴며 우쭐한다.
“아빠·엄마를 우리 딸이 존경한다는 말?”

 

‘인생의 참된 행복은 자신이 가장 고귀하다고 느낀 목적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버나드 쇼)

 

엄마는 도서관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행복 그리고 기쁨에 대해 생각한다.

 

“도서관 가는 길이 우리 가족 행복의 길이었네. 십년만인가? 딸에게서 천사의 목소리란 말을 다시 들었으니 난 지금 너무 행복하고, 도서관을 함께 오지 못했던 아빠도 동행했으니 오늘은 불행을 행복으로 전환한 날이고, 우리 딸은 어땠나?”

 

“엄마한테 늘 미안했는데 오늘 엄마가 많이 웃으니까 정말 좋다. 이런 기쁨이 행복이지 않나? 근데, 엄마, 아빠가 엄마를 보는 눈길, 정말 아름답고 멋지다. 아빠가 이렇게 멋진 남자인 줄은 오늘 처음 알았는걸.”
어느새 가족은 어깨동무로 엮여있었다. 딸은 아빠의 귀밑 새치머리를 처음 보았다고 했다. 아빠의 새치가 마음을 찡하게 한다.

 

“사람은 고생이나 실패를 겪고 난 뒤에야 겸손하고 또 슬기로워진다더니, 지금 엄마마음이 그렇구나. 이렇게 고운 딸을 두고 욕심만 냈으니... 엄마도 엄마 일에 더 열심히 할 거야. 유치원 제자들에게 더 신경 쓸 거라구. 이제 딸에게서 벗어나도 섭섭해 하지 않을 거지?”

 

“물론이지, 엄마!”

 

엄마와 딸이 치킨가게로 들어간 뒤 아빠는 옆 구멍가게로 들어간다. 소주 한 병을 산다.

 

“공원 그네에서 치킨 먹고 가면 안 될까?”
“예쓰! 공부보다 노는 게 훨 재밌는데, 공원으로 렛츠 고우~~~”

 

엄마가 이러는 딸을 눈으로 째리지만 웃는 얼굴이다. 결혼 전 엄마와 헤어진 후 공원에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돌아간 아빠의 과거를 딸에게 그네를 밀어주며 들려준다.

 

“나도 며칠 전에야 처음으로 아빠한테 들었단다.”

 

꿈 또는 계획

 

계획이어도 좋고 꿈이어도 좋다. 주로 혼자 하는 계획이고 꿈이지만 남, 특히 가족 앞에서 꿈을 드러내고 나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가족 앞에서 계획을 과장해서 떠벌리는 가장이 있을까. 떠벌리더라도 가족은 공증인이 되어 계획과 꿈을 대신 점검해주거나 더더욱 부추겨주기도 하고 때로는 촉구하기도 하고 격려로서 고무시켜주기도 한다.

“아빠는 재산이 많지 않아 도서관 하나를 혼자 힘으로 지을 수는 없지만, 십시일반으로 여러 사람이 뜻과 힘을 모으면 이진아 씨 가족이 했듯이 그와 같이 의미 있는 도서관을 또 지을 수가 있을 거야. 오천 만원씩 백 명이 모이면 제 2의 이진아도서관을 지을 수 있지 않겠니? 우선 엄마랑 아빠랑 주모자가 되는 거야. 주동자라고 해도 좋고. 이건 죽기 전에 꼭 우리가 해야 할 일 같다. 대신 딸이 시집갈 때는 한 푼도 줄 수 없을지 몰라!”

 

“좋아! 내 힘으로 결혼할 거니까. 나도 대학 졸업한 뒤 취직해서 모이는 만큼이라도 십시일반? 십일조 도서관 건립에 참여할 거야!”

 

“당신, 내 의견은 듣지도 않고 맘대로 이래도 되는 거야? 암튼 나도 좋아! 아빠의 첫 카리스마, 들어주지 뭐. 멋진데 당신의 그 카리스마! 십시일반 도서관이 오늘부로 태어나려고 하고 있네. 우선 참여자 세 명 접수 받고...”

 

그네는 흔들릴 때 더 신명나는 소리를 들려준다. 누군가를 태우고 누군가가 밀어주고 그들의 평화로운 소리가 들려온다. 그네는 흔들어야 한다. 그네는 흔들려야한다. 그네가 사람의 마음과 같다. 흔들어서 흔들려야 제 기능을 하는 그네처럼, 사람은 사람을 흔들어서 흔들리게 하는 자각으로 인해 바뀔 수가 있다.

‘흔들어서 흔들리게 하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그네와 같다.

 

‘사랑하지 못하고 끝내느니, 오히려 사랑하다가 잃어버리는 것이 낫다.’(테니슨)

 

<부모 먼저>

 

“김장 못해주고 와서 내가 죄 지은 것 같네.”

 

추운 겨울이 되자 시골에서 혼자 사시는 84세의 어머니가 큰 딸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수원의 큰 딸 집에서 어머니는 52살인 막내딸에게 전화를 넣어 죄 지은 것 같다는 심정을 내놓는다. 그 어머니는 몇 달 전 허리수술을 받아 유모차에 의지해 걸어야하거나 거의 집 안에만 계셔야할 정도로 몸이 성치 못하다.

그런데도,

 

“상추를 심어놨으니 종종 가서 뜯어먹어라. 아직 거두지 못한 배추도 있을 것이다. 무는 뽑아 김장에다 넣었니? 냉장고에 열어보면 간장은 충분할게다. 가져가고.”

김장을 맛있게 담는 법이라도 가르쳐줬어야 하는데... 나을 병이 아니라며 흘러가버린 시간을, 자식에게 다하지 못한 사랑을 내내 아쉬워하는 어머니. 어머니의 다하지 못한 아쉬움은 어머니에겐 자식에게 죄를 짓는 것과 같았나보다. 넘침에도 늘 한없이 부족하기만 하다는 어머니의 사랑.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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