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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희 교수, "기원전 15세기 존재 증거 수두룩 ... 발해만 연계 해양세력"

청동기 시대인 기원전 15세기 전후에 제주도에 탐라국이 실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학술적 연구결과가 나왔다.  만주 요서지역을 근거지로 한 고조선이 남방 해양문화와 교류와 교역을 할 때 제주도가 중요한 해양거점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다.

 

탐라국이 신화와 전설, 또는 향토사적으로만 규명됐을 뿐 국제정치학적 실재론으로 추론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인 남창희 인하대 정치외교.융합고고학과 교수는 27일 오후 3시 제주대에서 열리는 사단법인 대한사랑 주최 세미나에서 '제주도문화와 고조선 문화 DNA'라는 연구논문을 통해 이같은 내용의 발표를 할 예정이다.

 

그의 주장은 기존 고고학계에서 고조선 개국에 대해 소극적으로 보는 만큼 청동기 중기 제주도에 국가급 사회가 존재했다고 보지 않는 것과는 정반대로 배치되는 입장이다.

 

단순히 청동기 문화의 존재뿐 아니라 해양교류의 중계 거점으로 탐라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제주 도내에는 고을나(高乙那)왕의 왕세보가 전해지고 있고, 고려사 권57에도 이와 관련된 기록이 있다. 남  교수는 기존 고고학의 통념은 아시아 전체의 해양교류사의 입장에서 볼 때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강조한다.

 

"제주도가 고대 동아시아 해양교류의 거점으로 역할을 했으며 이 같은 관점에서 고고학적 분석을 해야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고조선의 역사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환단고기'가 단순한 일부 사서들의 합본 이상이라고 말한다. 신라시대 십성으로 알려진 안함로에서부터 조선시대 이맥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속 당대 뛰어난 지식인으로 평가된 다섯사람이 각각 저술한 사서가 하나의 책으로 모아진 것이라는 평가다.

특히 '단군세기'는 단군시대 연대기로 1대 단군왕검에서부터 47대 고열가 단군에 이르는 역대 단군의 이름과 제위 연수, 업적과 사건등이 기술되어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조개화폐인 '패전'의 제조와 사용, 세금제도 등이 설명되어 있어 고조선 국가경제체계 이해에 많은 정보를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남 교수는 이중 기원전(BC) 15세기로 연대가 측정된 중국 요녕성 조양시 하가점하층문화 지역에서 출토된 고대화폐 카우리 조개를 중요한 증거로 제시했다.

카우리조개는 같은 종에도 여러 형태와 크기가 있지만 조양시에서 출토된 카우리조개는 대만, 팽호도와 필리핀 인근해역에서만 서식한다.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은 수온이 1도 정도 높았고 오키나와나 제주도에서도 이 카우리 조개가 서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신 한류(寒流)가 흐르는 중국 동남해안에서는 이 조개가 채집되지 않는다. 중국의 허남성 내륙에 있던 사람들은 이 조개를 직접 채집하지 못하고 수입하거나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화폐를 상품을 주고 교환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국제적 교역관계의 사례다.

 

그의 가설에 따르면 만주지역 사람들이 대량으로 이 조개를 화폐로 유통하기 위해서는 원양 항로를 항해하는 항해집단의 존재가 전제조건으로 대두된다.

 

실제로 한국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신석기시대에 포경활동을 한 것을 입증하고 창녕 비봉리 유적에서는 8천년 전 통나무배가 발견되기도 했다.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인 빗살무늬토기, 고인돌, 비파형동검은 모두 발해만을 중심으로 환발해만유역에서 발견, 분포된다.

그 출처가 분명한 카우리조개를 사용한 조개화폐 역시 발해만을 통한 이동이 자유로운 세력이 아니고서는 화폐의 제조 및 유통이 원활하지 않았을 것이고, 고조선이 발해만을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는 해양기술로 인해 당시 패권국으로서 상당히 오랜기간 평화를 유지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고조선이 조개화폐의 제조 및 유통과 시간 및 도량형 기준을 제공할 수 있는 패권국이자  해양강국의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남 교수는 제주도는 대만에서 오키나와를 거쳐 북상하는 쿠로시오 난류가 서해와 동해로 갈라지는 길목에 있어 중간 기착지로 일찍부터 문화가 발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히고 있다. 즉 만주 요서지역을 중심지로 하는 고조선이 남방 해양문화와 교류와 교역을 할 때 제주도는 중요한 해양거점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남 교수는 그 추론의 근거로 고조선인들이 유입됐음을 방증하는 문화요소를 제주도 설화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단군신화의 풍백, 우사, 운사의 세사람과 천부인(天符印) 세개 등 우리 전통의 삼신(三神)문화가 제주설화에 음양짝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선돌에서 활을 쏘는 내용에서 거석문화의 상징성도 보인다고 남 교수는 분석한다.

 

무엇보다 고을라, 양을라, 부을라 세사람의 이름에 음양사상의 태을개념이 공통된 것도 동이(東夷)족의 신선숭배 문화DNA와 연관된다는 것이다.

 

고조선은 대륙 북방의 유목문화와 농경문화가 반농반목으로 결합됐고 여기에 발해만을 낀 해양문화와도 융합되어 있다. 제주설화에서도 그러한 융합문화의 특징이 발견된다. 배를 타고 온 벽랑국 세 공주가 오곡과 가축을 섬에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는 세가지 문화의 고조선식 융합성을 시사한다고 남 교수는 말한다.

 

삼 공주의 나라인 벽랑국(碧浪國) 역시 '파란 파도의 나라'란 지칭에서 볼 때 "제주도에 시원적으로 유입된 해양문화 요소를 상징하고 있다"는 추론이다. 

 

 

남 교수는 조선 중종 때 왕실 찬수관을 지낸 이맥이 저술한 『태백일사』의 탐라국 기록을 고고학적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 교수는 "이 책에는 기원전 1632년 탐라인이 평양의 부단군 을아왕에게 말 30필을 헌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청동기 시대 말기 말뼈가 제주 도내에서 출토됐고 고인돌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상기 기록은 사실 여부를 과학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남 교수는 "만일 고대 고조선 문화권 일부로서 탐라국이 실재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제주도는 단순히 세계적 자연유산의 보고일 뿐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 해양교류의 거점이라는 역사성이 가미되어 역사자연 문화도시로 재평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제이누리=이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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