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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건 교수의 [제주유배지 재발견(2)]...조천에서 만난 박영효.이승훈

을미년 새해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유배의 땅! 제주의 곳곳을 다시 살피는 작업입니다. 유배의 땅이었지만 실상은 미래를 향한 도전과 진취, 그리고 배양(培養)이 자리했던 제주의 역사를 더듬습니다. 유배문화의 정수를 살펴왔던 양진건 교수가 집필자로 나섭니다. <제이누리> 독자 여러분의 애독을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조천 포구

 

화북 포구를 보고 나서 그냥 돌아오려 하다가 내친 김에 조천 포구까지 들렸다.

 

조천 포구로 들어서기 바로 전의 골목을 찾았다. 그 골목에는 과거 조천 마을의 위세를 증거하는 흔적들이 많다. 특히 오래된 집들이 그러하다.

 

날은 추웠지만 길고 좁은 골목 안은 고요하고 편안했다. 필자가 일부러 찾은 그 집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시인 기형도가 "가엾은 내 사랑이 갇혀 있는 빈집" 이라고 하던 그 빈집 같았다.

 

마지막 제주유배인 이승훈이 지내던 조천의 그 집이었다. 몇 해 전, 개화파 박영효도 그 집에 머물렀었다. 한때 제주군수를 지냈던 어른의 집이었다.

 

집 주인은 수완이 좋은 어른인 듯했다. 유배인이 비록 오늘은 죄인이나 내일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어른이었다. 그래서 지역의 토호들은 고위 정객 출신의 유배인들에게 대접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내일이면 그 공을 갚아주던 유배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두 유배인은 그 집의 사랑채에 머물면서 대접을 극진히 받다가 제주성안으로 거처를 옮겼다.

 

"제주도가 한반도의 본이고 한라산이 산의 본인 것 마냥 제주도 사람들은 한국 사람의 본이 되어야 한다" 고 이승훈은 얘기했다. 민족학교인 오산학교의 창립자다운 얘기이다.

 

박영효 역시 제주 최초 근대여학교인 신성여학교의 개교에 큰 영향을 줄만큼 두 사람 모두 교육에 대한 애착이 컸던 근대 개화기 유배인들이었다.

 

그들이 들어왔던 조천포구는 골목 바로 곁에 붙어 있었다.

 

조천 포구 역시 화북포구나 마찬가지로 을씨년했다. 사람의 자취가 없었다. 바다쪽으로 열린 곳이 화북보다 넓어선지 겨울바람이 더 세고 모질었다.

 

연북정(戀北亭)만이 달랑 포구를 지키고 있었다. '연북정'은 유배인들이 북녘의 임금에 대한 사모의 충정을 보냈던 곳이다. 그러나 임금의 반응은 오늘 겨울바람처럼 차갑고 매섭기만 했다.

 

그래서 유배인들은 현실의 집착을 거세당하고 그 어떤 종류의 희망도 갖지 못한 채 절망의 나락에 빠져든다. 이제 그들의 미래는 죽는 일 뿐이라는 자기 상실을 처절히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비분강개한 절망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치할 수 없을 만큼 암담할 뿐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유배인들은 비록 그런 비운 속에서도 누구보다도 군왕에 대한 충성을 간절하게 표현하였다는 사실이다. 바로 조천 포구에 세워져 있는 연북정은 유배인들의 변함없는 충성을 표현하던 흔적이다.

 

 

연북정은 고려 고양왕 23년(1374)에 건립되었을 만큼 그 역사가 오래다. 조망정(眺望亭), 쌍벽정(雙碧亭)으로도 불렸고 현재 지방유형문화재 3호로 관리되고 있다. 그만큼 제주도의 유배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조천은 이제 유배인들의 비운과는 거리가 먼 동네가 되었지만 그래도 연북정에 올라가 멀리 겨울 제주바다를 보고 있자니 유배인들의 겪었던 절망감이 어느 정도 실감되었다.

 

그런 충성 표현 속에는 반드시 군왕으로부터 다시 추천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기에 충성의 표시는 유배인들의 관례적인 감상이기도 했다. 충성의 표시라는 것이 결국은 유배인 자신의 처지를 달래기 위한 관례적인 방법이었다는 말이다.

 

그런 충성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그 자신의 억울한 처지, 비분강개 없이는 지탱할 수 없는 현실을 과장시켜 줌으로써 외딴 섬에 버려진 자신을 달랠 수 있었던 것이다. 유배인 김춘택이 제주도에서 남긴 『별사미인곡』(別思美人曲)에서 보이는 연군과 충념의 정서가 바로 그런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이율배반이라고 하는가? 조천 포구에서 돌아오며 혼자 던져 본 질문이었다.

 

양진건은?

 

= 1957년 제주생으로 한양대에서 교육학을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 교육학과에서 교육사를 가르치면서 제주유배인들의 교육활동을 연구해왔다. 최근에는 제주대 스토리텔링학과에서 역사스토리텔링을 가르치면서 제주유배문화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에 대한 노력으로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탐라문화상을 수상했다. 제주대 학생처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제주대 스토리텔링연구개발센터장과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위원, 한국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제주유배길에서 추사를 만나다』(푸른역사, 2011) 등의 저서와 함께 『귀한 매혹』(문학과지성사, 2008) 등의 시집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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