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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산다] 신선경 지포박물관 부원장, 버클리 음대 포기 제주에 눌러 산 이유

급속히 늘고있는 제주입도민. '제주이민'의 시대에 맞춰 육지로부터 인구유입이 빨라지고 있다. 수많은 육지인들이 단순 관광을 넘어 과감한 입도를 택하며 제주 곳곳에서 터를 잡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며 낯선 제주행을 감행하는 것일까. 얼핏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입도러쉬'의 속내가 궁금하다. 그들만의 제주가 만들어 지고 있는 현장이 궁금해졌다. 그들은 무엇을 하며,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 속내를 때로는 낯설고도 생경하게 가끔은 부러운듯 궁금증의 문을 열어본다.<편집자 주>

11월 중순의 토요일 오후.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내 박물관 1층에서 조그만 연주회가 열렸다. 매달 2째, 4째주 토요일에 열리는 'ZIPPO 앙콜연주회'가 이날의 연주회 이름.

 

관중이라야 잠깐 앉았다 떠나는 사람들을 합해야 10여명 남짓한 조그만 연주회는 관객수와 상관없이 시작됐다. 4회째다.

연주가 시작되자 지역내 기타리스트 2명의 노래와 연주가 시작됐다. 연주 시작을 알리던 도시풍의 여성이 공연 끝무렵 피아노에 앉더니 연주자들과 함께 즉흥연주에 나섰다. 양희은의 '사랑,그 쓸쓸함에 대하여.'
 
자신을 재즈피아니스트라고 소개한 신선경씨(38). 건네준 명함의 직함은 'ZIPPO 박물관 부관장'.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제주이야기를 물었다. 왜 내려와서 사느냐고...

5년째 제주에 정착하며 살고 있다는 그녀는 잠깐동안 말을 아끼더니 이내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듯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유학 가기 전에 쉬러 내려왔어요.미국 보스턴의 버클리 음대에 입학허가를 받았고 입학금도 내고 작은 금액이지만 장학금도 받기로 돼있었어요. 출국날짜 잡고 비행기 티켓팅도 마친 후 제주에 쉬러 내려왔어요."

올레길 초기시절인 2010년 1코스를 걷다 '할망(할머니의 제주방언)집'민박에 묵게 됐고 느낌이 좋아 3개월간 계속 머물렀다. 그러곤 아예 제주에 눌러 앉았다.

그녀의 제주살이는 어느날 아침 우연히 시작됐다.

 

“하루는 매일같이 아침 일찍 일나가는 할망들을 보면서 '나는 뭣하고 있나' 싶었고 처음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할망에게 부탁해서 무공장이랑 무밭에서 3개월간 일을 시작했는데 제주에서 해본 일 중 무공장이 가장 힘들었어요. 근데 그 일들이 저를 제주에 적응케 했어요. 아침에 일 나가서 오전 9시 새참, 12시 점심, 3시 간식 5시 퇴근하면 피곤해서 일찍 잠들고 다시 아침이 계속됐어요"

 


그 리듬이 자신에게는 매우 의미있었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오전 5시쯤에 할망에게서 오늘 비오니 일 없다면 없는 것이고, 일 있으니 나오라면 일 나가는 상황에서 자연의 스케줄에 자신을 맞추는 느낌을 알게 됐단다. 자연의 흐름에 맞게 자신의 생활을 맞추는 경험이 너무 신선했다며 그녀는 그 상황을 회고했다.

결국 학교 입학을 몇차례 연기하다 유학하기로 한 돈으로 덥석 감귤농장을 사버린 그녀는 지금 자신은 어엿한 농부라고 말한다.

농부라고?

처음 자신을 재즈피아니스트라고 소개한 그녀는 자신을 재즈피아니스트이자 농부라고 정정했다.  '딴따라 농부'가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말한다.

1700여평의 감귤농장을 2012년에 사서 지난해부터 감귤 판매를 시작했다는 그녀는 농장 '벌이(?)로 혼자서는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녀는 농장생활을 하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제주에 정착하고 시간이 지나 '올레길 슈퍼 연주회'를 연 이야기를 꺼냈다.

"가지고 있던 신디사이저를 슈퍼에 가지고 가 연주회를 열었어요. 마을 분들이 제가 피아노를 치자 여기 저기서 몰려왔구요. 나름 가장 대중적이라고 생각하는 곡을 골라 몇곡 연주했는데 주민들이 한곡도 모르더라구요. 아주 오래된 팝송과 뽕짝 몇곡을 연주하니 그때서야 많이 좋아하시더라구요."

이날의 연주회는 그녀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함께 한다는 게 이런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주의 눈높이와 육지인들의 눈높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후 마트에서 가끔씩 동네 공연을 한단다. 그 때문인지 올 7월에는 성산읍에서 주최하는 페스티발의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녀는 다시 감귤농사의 바쁜 와중에 농장에서 지인들과 여행객들을 위한 파티 이야기를 꺼냈다.

 

기대없이 던진 질문에 그녀의 답변은 빨랐다.

"아, 팜파티요? 관심 있는 분들과 지인들 70명이 모여 1박2일로 농장에서 파티를 열었어요."

7월의 더위 속에서 감귤농장에서 벌인 파티를 언급하며 다양한 공연팀들이 와서 연주와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 팜파티의 실체다.  당연히 모르는 분들도 섞여있는 모임. 어쩜 서울 등지에서 이미 문화로 자리 잡은 파티문화가 제주에서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이었다.

"항의나 불평이요?  당연히 있었지요. 왜 자신들을 초대하지 않았느냐고 혼났어요. 다음에 꼭 초대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마음을 푸셨지요.”

그녀는 제주와 자신 같은  육지 사람들의 차이도 있지만 공통점은 아주 가까운데 있어 결코 분리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운동회에 가보면 너무 놀라워요. 모든 분들이 너무 잘 노시는게 저는 참 좋아보였어요.”

또 하나 제주분들은 농악이나 굿공연 같은 소리는 바로 옆에서 나도 결코 불평하지 않는단다. 이미 굿장단 등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라는게 그녀의 설명.

 

"저희도 그날 그같은 공연팀이 있었는데 마트연주회와 더불어 문화적 결합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는 이어 "제주에서는 마을에서 돼지를 잡곤하잖아요. 잔치기간동안 순대도 만들고 같이 고기도 나누고. 다음번 팜파티에서는 돼지를 잡으며 동네분들과 함께 저희들의 공연도 섞어보고 싶어요.”

순간 재미있는 공연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적 트렌드도 퓨전이 대세인 세상이다. 그녀의 모습에서 버클리음대를 가려했던 재즈피아니스트보다는 마트에서 신청곡을 받으며 함께 어울리는 피아니스트가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서도 잊지 않았다.

 

요즘 문화에 관심이 있는 지인들과 문화예술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다. 서로에게 실질적인 교육을 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는 것.

“해녀할망들의 오랜 경험이 누군가를 또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는 인식을 가지면 현장에서 필요한 교육을 서로에게 확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미 주변의 음악 미술 건축 등의 전문가들 20여명과 협동조합을 위해 발기인대회를 마친 상태다.

“음악은 앞으로도 계속할 겁니다. 하지만 진짜 잘 해보고픈 것은 오히려 농사에요”.
 
문화의 본질은 역시 농사에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그녀는 농사에 좀 더 집중해서 농사와 음악이 접목되는 노력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한다.

작은 연주회 무대공연의 취지와 진행을 설명하던 그녀에게서 어느덧 음악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농부라는 자부심이 한껏 배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제주는 한 여성을 섬에 묶어 두었다. [제이누리=이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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