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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복싱협회, 18일 종합경기장 내 시민복싱장서 흉상제막식

2007년 별세한 '캥거루 복서' 고(故) 김성은(1943∼2007) 전 대한아마추어 복싱연맹 회장이 흉상으로 환생했다. 

 

제주도복싱협회(회장 백상훈)는 18일 오전 제주종합경기장 내 시민복싱장서 고인을 기리기 위한 흉상제막식을 열었다.  

 

이날 제막식에는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비롯한 각급 기관장, 우창궈 국제복싱협회(AIBA) 회장 등 150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신효동 출신인 김 전 회장은 1961년 중문중 졸업 후 혈혈단신으로 상경, 대경상고(현 서울시 중구 대경정보산업고)를 다니면서 복서의 길에 입문했다.

 

경희대 재학시절인 1965년 김 전 회장은 제2, 3, 4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페더급 1위를 석권, 명성을 쌓았다.

 

아울러 1965∼73년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1970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잇따라 금메달을 따내면서 범국민적인 복싱 영웅으로 급부상했다.

 

우리나라 복싱선수 중 아시안게임 연속 금메달은 그가 최초고, 당시 링 위에서 많이 뛰지 않으면서 상대 펀치를 매끄럽게 피하는 경기 스타일로  '캥거루 복서'라는 별명을 받아 범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1982년부터 아시아 아마복싱연맹(FAAB) 심판위원과 대한 아마복싱연맹 전무이사로 근무하면서 경기단체 행정에 기여한 그는 1983년 1월 국가대표 코치로 발탁돼 지도자로서 제2의 복싱인생을 걷게 됐다. 

 

1983년 제3회 월드컵 국제대회에서 김 전 회장은 코치로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금메달 2개를 안겼고, 1984년 LA올림픽에서도 금, 은, 동 1개씩 메달을 획득하는데 이바지했다. 

 

이 밖에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전 체급 금메달,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 2개 획득 등 1999년 12월까지 코치, 헤드코치, 총 감독 등을 역임하면서 아마복싱 전성기를 이끌었다. 특히 1966년에는 선수로서, 1986년에는 지도자로서 대한민국 체육상을 받았다. 

 

이후 연맹 심판위원장, 전무이사, 상임 부회장을 거쳐 2001년 3월 김옥태 전 회장에 이어 제17대 아마복싱연맹 회장으로 취임한 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3개 획득,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 2개 획득 성적을 이끌었다.   

 

그는 2005년 아마복싱연맹 회장 재선에 성공, 침체의 늪에 빠진 국내 아마복싱계의 중흥을 꾀했다. 그러나 2004년 찾아온 위암선고, 국제복싱협회(AIBA) 회장 선거를 둘러싼 내홍 등으로 고심하다가 2007년 8월9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당시 64세의 나이였다.  [제이누리=강남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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