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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호의 '제주를 말한다'(17) ... 제주경제와 사회의 내일을 위한 설계(6)

민선 6기 제주도정 출범에 맞춰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이 “제주 경제와 사회의 내일을 위한 설계”를 화두로 던집니다. 제주 혁신을 위한 전략을 제시합니다. 기고는 “제주 혁신하여 재창조의 길을 가자”를 시작으로 “제주 혁신하려면 지사부터 변해야” “관료 개혁” “제주 경제의 선진화 전략“ 등의 주제로 제주가 가야 할 길을 담론의 소재로 삼습니다. / 편집자 주

'원맨 정치' 지향 발언, 왜 반복되나

 

“내가 모든 걸 직접 챙기겠다”

 

참 익숙한 말이다. 정치를 희화화하는 언어이다. 공자는 “정치인이 올바르게 행동하면 굳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백성들은 스스로 행할 것이요, 정치인의 행동이 부정하면 백성들은 호령을 해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다수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독선독주를 고집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가 이를 거부하고 ‘원맨 정치’의 자만에 빠지는 순간 낭떠러지에 직면하게 된다.

 

‘원맨 정치’ 발언이 계속되는 이유는 뭘까? 첫째, 권력 초기 치적쌓기를 위한 욕망과 초조함의 발로이다. 둘째, 대형 사고나 실정(失政)으로 악화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정치 지도자들이 의례적으로 내놓는 민심 수습카드이다. 셋째, 곡절이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을 통해 성공방정식을 써내려온 정치 지도자들에게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자기 과신용이다.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아온 원희룡 지사의 자기 확신은 스스로 거의 운명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강력할 수 있어 이러한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규제 개혁’ 등을 임기 내내 직접 챙기면서 강력하게 추진해 성공적으로 이끌겠다는 각오를 밝혔었다. 얼마 전 원 지사도 이런 ‘원맨 정치’의 대열에 합류를 했다. 원 지사는 "지금까지 잘못된 관행으로 원성과 불신을 사왔던 건설공사 하도급 계약행태를 완전히 뜯어 고치겠다"며 "부당한 하도급 요청이 있는 경우 저에게 직접 알려주시면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지사가 오죽 관료들을 불신했으면 이런 비장한 심정과 각오를 토로할까. 정치 지도자들의 이런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걱정이 앞선다. 별 감흥도 없고 울림도 없는 일종의 수사적 표현으로 치부하고 싶은 마음이 나 뿐일까. 반복되는 소재의 식상함도 그렇고 결과도 항상 유야무야됐기 때문이다.

 

 

'원맨 정치', 우리 사회를 퇴행시킬 뿐이다

 

이러한 ‘원맨 정치’는 이들의 언명과는 달리 여러가지 폐단을 야기하며 사회를 퇴행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정치는 혼자 열심히 노력하여 시험에 수석하는 일과는 다르다. 자기 혼자서 내달리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의 공감 속에 이들과 함께 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원맨 정치’의 결과는 허망하게 실패로 끝난 경우가 많았다.

 

지사는 4년짜리 비정규직이고 관료들은 정년이 보장된 철밥통 정규직이다. 그래서 지사가 도정 운영 시스템을 혼자 틀어쥐면 관료들은 납작 엎드려 지사 임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지금의 제왕인 지사도 4년 후면 떠나는 기간제 신분이라는 사실을 관료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정이 지사의 ‘원맨 정치’의 무대로 전락하면 될 일은 늦추고, 어려운 일은 아예 손 안대는 관료사회 특유의 생존본능이 발동하게 된다. 재량권 제로인 관료사회는 윗분 지시에만 집중하며, 색다른 일은 하지 않고 탈없이 지내면서 자기 보신에만 급급할 뿐이다. 밀폐된 격납고의 공간에 갇히게 된 이들에게서 새롭고 창의적인 정책이 개발될 여지는 사라진다.

 

또한 정작 현장 행정에 투신해야 할 시장 등 관료들은 재량권 없는 배우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면서 지역발전을 위한 도민과의 소통 생태계 구축도 실패로 끝난다. 이는 도정의 추진동력을 크게 떨어뜨리게 되며 이로 인한 행정공백과 공공서비스의 파행은 도민들에게 고스란히 피해로 돌아가게 된다.

 

또한 지사의 권력 독점은 철밥통 관료집단과 공개 충돌만 하지 않을 뿐 분열 상태의 국면을 만들 수 있다. 두 집단 간 분화가 심화되면 정책 추진의 힘을 떨어뜨려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고 집행될 수 없는 구조로 빠져들게 된다. 지사의 ‘원맨 정치’가 관료집단의 고질적인 문제를 발현시키게 되는 모양세가 되고 만다.

 

이제 관료집단 운영을 중앙집권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명령과 복종, 감시와 통제의 권위적인 시스템은 거둬야 한다. 한 사람이 모든 결정을 독점하는 시대는 지났다. 도청에서 시청으로, 탁상에서 현장으로 권력을 내려줘야 한다. 또한 관료들의 사고를 지배해 온 생존 법칙도 확 바꾸어야만 한다.

 

무려 11년 동안 영국 총리자리를 지켰던 대처 수상은 국민들로부터 영국병 치유로 존경은 받았으나, ‘원맨 정치’에 의한 독선과 오만의 리더십으로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결국 리더십이 무너지면서 불명예 퇴진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대처의 독선과 오만의 정치를 지속적으로 지적하며 이것을 바꾸지 않으면 가장 무능한 정부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1983년 5월 14일자엔 ‘문제는 대처다’라는 사설과 1년 후인 84년 7월 7일자의 ‘여전히 문제는 대처’라는 제하의 기사에선 ‘중요한 결정을 도와 줄 참모를 찾아 공관의 텅 빈 복도를 헤매는 대처 총리. 그러나 다가갈 곳은 무능한 부엌 가신들뿐. 정책 실패가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보도하였다. 대처가 싫어하기 때문에 관리들에게 4분 이상의 보고가 금기사항이었다.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 언론 보도가 거의 예외 없이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를 연상시킨다. 대처는 박근혜 대통령의 롤 모델이다. 영국병을 치유한 대처리즘이 바로 한국병을 치유할 수 있는 리더십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대처의 문제점을 더 많이 닮아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두 지도자의 공통점은 경청보다는 자신 주장의 관철에 거의 맹목적이라는 점이다.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자기 확신과 환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리더십이 초래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정책 결정의 공동화 현상이다. 중요한 정책 결정에 내각이나 정당 등 공적 조직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대신 소수의 비선이 자리잡게 된다. 또한 매우 대결 지향적정치가 이루어지면서 민주정치의 요체인 설득과 타협의 정치가 실종될 수밖에 없다. 대처가 떠나면서 남긴 교훈은 ‘원맨 정치’가 자신의 명예는 물론 나라까지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점이다. 제왕적 권력으로 ‘원맨 정치’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제주 정치 지도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새로운 사회 시스템이 제주 사회를 살린다

 

세월호 참사는 마비된 대한민국의 시스템과 관료집단의 속살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관료집단의 속살은 노폐물의 축적과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치명적인 독소를 배출하고 있었다. 고도성장 과정에서 관료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관료조직은 커졌고 그에 따른 권한도 강화돼 왔다. 그러나 관료들이 휘두르는 각종 권한과 규제가 나라 성장을 가로막고 국민의 경제활동을 제약하고 있다. 이제 관료집단은 수술대에 먼저 올라야 할 중환자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종착역이 아니라 온갖 문제의 근본 원인 제공자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4년 국가 경쟁력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는 작년에 6단계 떨어지더니 올해 1등급 더 낮아져 세계 26위로 추락했다. 2007년 11위로 최고 순위에 오른 후 거의 매년 경쟁력이 후퇴하고 있어 한국의 `잃어버린 10년`을 보여주는 듯하다. 일본과 중국의 경쟁력이 상승한 사실에 비춰봐도 우리의 경쟁력 퇴보는 심각한 경고음이다. 갈등 해결에 대한 법률 효율성이 82위, 규제 개선을 위한 법률 효율성이 113위로 바닥권이다. 공무원 의사결정 공정성은 82위, 정치인에 대한 신뢰는 97위로 국가 거버넌스가 낙제 수준이다.

 

사고와 실수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됐는지, 어디에 이상이 있는지,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다. 결국 관료집단이 시대 변화를 읽어 제대로 대처하느냐 못 하느냐에 우리의 장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관료들 가운데는 세상이 바뀐 줄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직 개발지상주의 시대가 계속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제주 관료사회의 적페를 청산하기 위해선 사회 전반에 만연한 법 무시, 규정 무시의 후진적 문화를 걷어내야 한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관적폐 논란의 진원지인 행정규제 생태계를 획기적으로 혁파하고,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회 혁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관료집단은 물론 도민 등 사회 구성원 모두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법이 없어서 세월호가 침몰했던 것이 결코 아니었다. 준수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준법정신의 함양 없이는 세월호의 비극은 되풀이될 것이며 국가경쟁력도 담보할 수 없다. 준법정신으로의 귀환과 시스템 사회가 요구되는 이유다.

 

이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해답은 뻔하다. 관적폐가 제주의 하늘을 뒤덮도록 놔둬서는 안된다. 잘라낼 곳은 잘라내고 꿰맬 곳은 꿰매야 한다. 제주 사회는 관료들만에 의존해 굴러갈 수 있는 구멍가게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하는 거대 사회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중병을 앓고 있는 제주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서 범 사회적 매뉴얼을 제주의 새로운 사회시스템으로 운영해야 할 때가 왔다.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는 모든 일에 절차·규칙을 담은 매뉴얼을 만들어 사회 시스템을 움직인다. 이런 매뉴얼엔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은 경험과 노하우가 담겨 있다. 그래서 안전과 질서는 기본 매뉴얼을 확실히 지키는 데서 출발한다. 매뉴얼이 확립돼 있고 매뉴얼이 지켜지는 나라라야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그 사람 FM이야"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이제는 이 말이 '융통성이 없다. 그래서 안 해도 될 수고를 한다'는 뉘앙스도 포함하게 됐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FM을 무시하면서 그것이 효율이고 요령이며 지혜라고 믿는 풍토 속에서 살아왔다.

 

세월호 구조작업이 백가쟁명의 장이 된 것은 매뉴얼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매뉴얼 실천의식 부재와 매뉴얼 훈련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뉴얼은 잘 갖춰져 있다 하더라도 매뉴얼을 사용하는 연습이 안 돼 있으면 시스템은 마비된다. 좋은 기계가 있어도 쓸 줄 모르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내일을 위한 설계 7편으로 이어집니다>

 

☞고운호는?

 

=1979년 한국은행에 발을 들여 놓은 뒤 제주출신으론 처음으로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이 됐다. 2005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3년간 재임하는 등 한국은행에서만 31년간 재직, 외길 금융인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으로 재직중엔 지역경제의 콘트롤타워를 목표로 제주경제포럼을 출범, 제주도지사와 함께 공동대표 역을 맡아 제주의 경제와 미래방향 논의의 불을 지핀 인물이다. 제주본부장 재직시절엔 제주본부가 한국은행 지역본부중 최우수본부로 지정됐다. [제주경제의 선진화를 위한 외침] 등 다수의 저서와 연구논문,자료를 냈다. 한국은행에서 퇴직한 최근에도 활발한 저술과 기고활동을 펼치며 제주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영훈 전 도의원이 원장을 맡고 있는 제주미래비전연구원의 이사장도 맡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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