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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호의 '제주를 말한다'(13)... 제주 경제와 사회의 내일을 위한 설계(2)

민선 6기 제주도정이 출범한 지 이제 한달입니다. 이에 맞춰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이 “제주 경제와 사회의 내일을 위한 설계”를 화두로 던집니다. 제주 혁신을 위한 전략을 제시합니다. 기고는 “제주 혁신하여 재창조의 길을 가자”를 시작으로 “제주 혁신하려면 지사부터 변해야” “관료 개혁” “제주 경제의 선진화 전략“ 등 40 여개의 주제로 제주가 가야 할 길을 담론의 소재로 삼습니다. / 편집자 주

 

제주 혁신, 도지사 본인과 주변 인물부터 먼저 해내야

 

‘사회 지도층부터 바꿔달라는 국민 염원 들리는가’

 

한 언론이 ‘국가 대혁신’에 대한 여론조사 후 내건 헤드라인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예상대로 사회 지도층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국민은 사회 지도층이 보통사람들보다 무능하고 부도덕하며 전문성도 민간 부문보다 낮고 준법정신도 일반인보다 못하다고 여겼다. 여기에서도 정치인과 공무원은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대상에서 어김없이 가장 꼴찌였다.

 

우리 사회의 공공성이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고 있다. 특히 사회 지도층의 공공선과 공공 의식 부재는 선사후공(先私後公)의 타락상을 낳을 정도로 심각하다. 공공성은 사회를 떠받쳐주는 기둥으로 사회의 공공성이 무너지면 법치주의와 애국심이 파괴돼, 국가 공동체가 무너지고 사회가 각박해진다.

 

제주 사회의 공공성 수준은 어떠한가.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공공성의 가치를 존중하고 이를 실천해야할 지도층들의 탐욕이 제주 사회를 사유화하며 공동체와 공공성을 위해(危害)하고 있다. 특히 지도자의 기행적 일탈은 공공성을 뿌리채 흔들어 제주의 근간까지 훼손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성추문과 공약 폐기, 지역경제 추락, 청렴도 꼴찌, 공동체적 유대감 붕괴 등이 제주 사회를 암울하고 거칠은 분위기로 만들어 심각한 지도자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한다. 문제는 이들이 일탈 행위에 대해 죄의식과 수치심과 자기 탓이 없다는 것이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무너진 제주 사회의 공공성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 그런데 처절하게 성찰하고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지휘를 해야 할 지도자가 바로 이 굴레에 갇혀 있으니 기대는 난망일 듯하다.

 

이처럼 공공성을 침해하는 지도층의 온갖 기행과 일탈에 제주 사회가 마구 흔들리고 있다. 지도자의 덫에 걸리고 패거리들의 벽에 부딪혀 대한민국에서 가장 못사는 지자체로 추락하며 제주의 성장이 한계에 봉착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990년대만 해도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우리였기에, 그 충격은 더할 나위 없이 크다.

 

이런 무겁고 음습한 분위기에서 제주사회의 창조적 혁신과 융성을 논함은 어불성설이다. 이제 제주사회는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해 종전의 익숙한 것들과 결별할 수 있는 용기와 도전정신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혁신의 길로 나아가 값진 결실을 거둘 수가 있다. 하지만 제주의 명운을 가르는 중차대한 시기에 지지부진․지리멸렬한 도정의 모습은 도민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죄악일 수 밖에 없다. 지도층 인사들이 아프게 성찰해야 할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세월호 참사는 선장과 선원들의 파렴치한 행위와 국가기관의 무능과 무책임 외에 사회 지도층의 적폐가 복합적․구조적으로 작용해 일어났다. 세월호 참사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선진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가개조 차원의 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안전은 뒷전으로 하고 보신과 조직이기주의에 몰입했던 관료 사회의 개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특히 우리 사회 지도층의 민낯은 윤리적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예로부터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고 한다. 달콤한 권력의 맛을 보면 쉽게 내놓을 수 없음을 말한다. 권력이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이로 인해 불행한 역사를 쓴 경우가 많다. 또한 생선은 꼬리보다 머리가 먼저 썩는 법이다. 우리 사회에 비리와 부패가 만연하고 있다는 건 여전히 사회 지도층이 부패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많은 힘이 이들에게 집중되면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사회 지도층을 불신하고 조롱과 멸시의 대상으로 삼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권력과 금력을 가진 이들이 지연 학연으로 끼리끼리 어울려 부정부패를 일삼는 관행을 뿌리 뽑지 않으면 국가 혁신은 요원하다. 공직자를 포함한 사회 지도층부터 혁신해야 하는 이유다. 제주 혁신의 해답도 자명하다. 도지사 본인과 사회 지도층부터 혁신을 해내야 한다. 

흉보며 따라하다 허니문 기간 박탈 당한 도정

 

인사 참사의 후유증은 너무나 컸다.

 

민선 6기 원 도정의 제주호가 출범과 동시에 추진동력을 상실하고 있다. ‘수석’ 타이틀의 대명사답게 원 지사는 관덕정 광장에서의 출마기자회견 때부터 남달랐다. 신선한 충격을 주며 상대 후보를 압도했다. 그는 “돈 안 쓰는 선거운동”과 "선거 공신 낙하산 인사와 논공행상 금지"라는 새정치의 선거프레임을 선도하며 선거에 임했다. 이런 새로움이 도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이어져 제37대 제주도지사 자리에 올랐다.

 

 

그가 취임한 지 이제 한 달이 지나고 있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단단히 마음을 잡고 제주 혁신하는 데 모든 힘을 쏟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그에게 벌써부터 ‘오만·독선’이란 말들이 들려오고 있다. 그의 첫 인사가 덧나기 쉬운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것 같은 파장을 만든 것이다. 인사 참사를 겪으며 도민은 원 도정 능력의 초라한 실체를 확인했다. 오죽하면 지지자들 조차 "선거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하는 개탄이 나온다. 그에 대한 도민들의 기대가 컸던만큼 실망도 크고 단단히 화가 난 듯하다. 제주 언론들도 이른바 정치적 허니문 기간을 배려하지 않고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다.

 

부동산 특혜의혹 논란에 휩싸인 제주시장과 협치정책실의 위상, 그가 지명한 정무부지사 내정자에 이르기까지 의혹과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전임 도정보다 선거공신과 측근 챙기기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토착 기득권 세력의 조직적 저항이다” “좀더 시간을 주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에서 “사람 잘못 봤다” “제주 도민을 너무 얕본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앞세워 낡은 정치와 타협했다” “제주 지사 자리를 중앙 진출을 위한 가교 쯤으로 생각한다” “적폐 해소하라고 뽑았더니 도리어 쌓는데 열중한다” “주변의 이야기를 잘 안듣고 즉흥적으로 너무 쉽게 판단해 버린다” “정치경험을 앞세워 보여주기식 행정에 치우친다” “모 지자체장과의 경쟁을 의식해 과속하며 중심을 잃고 있다”까지 다양한 풍문이 나돌고 있다.

 

제주의 혁신을 외친 사람은 원희룡 개인이었지만 거기에는 사회 개혁을 바라는 대다수 도민의 절규에 가까운 염원이 담겨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첫 시도가 전임 도정을 흉보며 따라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며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허니문 기간인데도 이렇게 된 데는 보다 근본적으로는 최근 상황에 대한 원 지사의 인식과 대응에 대해 적지 않은 도민들이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이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하는 도민 의혹을 쉽게 가라앉히기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지도자 함정과 활동적 타성의 덫에 빠진 도정

 

머리가 명석한 그가 왜 이랬을까.

 

곡절이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을 통해 성공방정식을 만들며 지도자가 된 이들은 '내가 결국 옳았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된다. 이들은 자기가 살아오면서 내렸던 수많은 판단과 결정이 전부 옳았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 확신이 강할수록 지도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더 깊어지며 결국 실패한 지도자로 내몰게 한다.

 

한때 크게 성공했던 지도자들이 시간이 지나면 왜 실패하는 걸까? 활동적 타성(active inertia) 때문이다. 대내외 환경이 극적으로 변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과거에 했던 활동들을 더 가속화해서 하려는 인간성향을 말한다. 가령 자동차를 타고 가던 도중 기찻길 홈 속에 뒷바퀴가 빠졌다고 가정해 보자. 페달을 밟아댈수록 바퀴는 홈에 더 단단히 박혀 빠져나오지 못한다. 활동적 타성에 빠져 쇠락한 기업의 사례로는 휴대폰 업계의 전설 노키아와 카메라 필름 시장을 호령했던 이스트만 코닥이 있다.

 

지도자 함정에 빠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가 인사다. '내가 했던 인사술이 자신의 성공을 이끌어 결국 옳았다‘는 생각이 사람에 대한 편견을 극대화한다. MB정부가 조기 레임덕을 맞이한 데에는 잘못된 인사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오만 ․ 독선의 정부라는 비판에도 또한 잘못된 인사가 자리잡고 있다. 왜 이를 흉보며 따라하는 건지 애처롭기까지 한다. '성공의 덫'은 '실패의 덫'보다 더 헤어나기 힘든 법이다.

원 지사도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제주 지도자가 되었고 대선도 꿈꾸고 있다. 이런 사람의 자기 확신은 스스로 거의 운명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강력할 수 있다. 원 지사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많다. 학력고사 전국 수석, 서울대 수석, 사법시험 수석, 집권당의 대선 경선후보... 이 화려한 수식어가 그를 활동적 타성의 덫에 가두어 실패의 길로 내모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지도자가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를 '레임덕'이라 한다. 원 지사가 조기에 레임덕에 빠지기를 바라는 도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사의 모습을 그대로 비춰주는 투명하고 정직한 거울 노릇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거울을 밖에서 구하지 못하면 스스로 거울이 되는 길밖에 없다.

 

원희룡 신화, 허망하게 끝날 수도

 

지금의 제주 상황이 주는 교훈은 현실 정치에 구세주는 없다는 것이다. 1400년대말 이탈리아는 당파싸움에 찌든 정치, 타락한 교회, 사회적 부패의 암울함으로 파국 상황이었다. 강대국 프랑스가 쳐들어오자 도시국가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르네상스의 고향인 피렌체의 운명도 풍전등화였다. 이때 수도사 사보나롤라가 피렌체의 정치에 혜성같이 등장한다.

 

금욕과 헌신의 삶을 살았던 그는 부패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던 교황과 상류층과 정치권을 질타하는 설교로 민중을 사로 잡았다. ‘시대의 멘토' 사보나롤라는 피렌체의 위기 앞에 감연히 나서 프랑스 왕과 담판을 벌여 피렌체를 구해낸다. 그는 단번에 피렌체의 구세주가 되어 환호하는 시민들의 지지를 업고 인민정부를 수립했다.

 

 

러나 현실정치는 냉혹했다. 아마추어 지도자의 실정 아래 경제가 위축되고 생활이 어려워지자 급격한 민심이반으로 이어졌다. 집권 4년 만인 1498년에 실각한 사보나롤라는 피렌체 시청 광장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그를 정치적 구세주로 떠받들던 바로 그 민중들의 손에 의해서 였다. 지금의 제주 상황이 15세기 피렌체 정치 풍경을 떠올리는 것은 비단 나만일까.

 

대한민국의 정치사를 보면 지도자에 대한 과잉기대는 예외 없이 임기 초기의 열광적 지지와 후기의 총체적 민심이반으로 얼룩지는 비극적 이중주로 점철된다. 원희룡 신화에 열광적 지지는 ‘제주판 3김’에 대한 환멸이 자리한다. 원 지사의 압승은 예비된 거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원희룡 신화가 사보나롤라처럼 정치적 구세주로 부풀려질 때 생긴다. ‘수석’ 타이틀의 대명사라 해서 제주 곳곳에 켜켜히 쌓인 분란 ․ 갈등과 이해관계가 부딪히고 난무하는 현실정치를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 혹 때려다 혹 붙여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얼마 전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7·30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공동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히며 눈가에 눈물을 비쳤다. 국민 앞에 구세주처럼 나타났던 ‘안철수 현상’, 그리고 ‘새 정치’는 이렇게 허망하게 간판을 내렸다. 안 대표는 정치적 고비마다 간만 보다 결국엔 철수했다. 새정치란 미명 아래 국민은 따라오기만 하라는 오만의 정치와 구태정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결국 제1야당 대표로서 탁월한 정치력도, 리더십도 보이지 못한 채 그의 허상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좌초한 것이다.

 

원 지사가 자신의 신화를 이어가려면 수도사 사보나롤라와 안철수의 좌초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도자로서 성공하려면 하루빨리 현실정치에 참여해 능력을 검증받고 통치의 자질을 닦는 훈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다음 기회는 오지 않으며 원희룡 신화는 허망하게 끝나버릴 수 있다.

 

머리가 아닌 가슴의 정치를 해야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회고록에서 “정치와 사랑은 계산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 역시 제주 사회에 나돌고 있는 풍문을 들으며, 원 지사에게 “머리로 생각하고 머리로 정치하는 이 시대에 가슴으로 생각하고 도민을 보듬는 가슴 정치를 해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머리로만 하는 정치는 반드시 실패하기 때문이다.

 

첫째, 인사가 망사가 되지 말아야 한다.

 

문화융성과 관광대국을 내세운 박근혜정부가 관광공사 감사에 전문성 없는 대선 캠프 인사를 채우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집권 후 올해 5월까지 선임된 공공기관장 153명 중 낙하산 인사가 무려 75명이다. 관피아 척결, 공기업 혁신의 취지가 퇴색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대목이다.

 

박 대통령의 인사는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인사의 기준이 도덕성이나 능력이 아니라 충성심이다. 국정철학의 공유라는 명분으로 합리화하고 있지만 이것은 선거 공신들에게 전리품을 배분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은 “낙하산 인사가 새 정부에서는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래서 박 대통령의 ‘보은 인사 끝판왕’ 임명에 국민은 배신감마저 느낀다. 국민통합을 위한 통치동맹을 기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인사에 대한 민심의 질타를 원 도정은 느끼고 있을까.

 

지사 취임 후 얼마도 안돼 “잘 못 찍은 내 손가락 잘라버리겠다”는 아우성이 나와서는 안된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면서 코드인사, 낙하산 인사, 폐쇄적 인사니 하는 지적을 받아서도 안된다. 하지만 일부 도민은 작금의 인사 참사를 보면서 지금의 도정을 믿고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것인지를 걱정하고 있다.

 

원 지사는 나름대로 고심을 했다지만 잘못된 인사가 지사의 도정 추진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함량 미달 인사와 도정의 역량 부족이 겹쳐 참사가 발생했다. 참사 전개 과정에서 드러난 안이한 상황인식, 독불장군식 고집, 아마추어 수준의 일처리는 도정이 여전히 도민의 공복이 아닌 도민 위에 군림한다는 오만과 독선에 빠져 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부적합 인물들이 중용되는 순간 인사 참사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도 없었기에 불통 인사라는 말들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예상을 뛰어 넘는 깜짝 인사는 사실 양날의 칼이다. 역대 권력자들이 깜짝 인사카드에 본능적 유혹을 느끼는 것은 성공하면 어떤 정치 이벤트보다 대박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실에서 이뤄지는 깜짝 인사는 검증 부실로 인사 쪽박으로 귀결되기 십상인 것이다. 결국 깜짝 인사는 능력보단 충성스런 ‘돌쇠’ 부하를 선택할 가능성을 높힌다. 충성스런 ‘우리가 남이가’ 그룹의 중추권력 장악은 인적 지평의 축소를 자초하며 소통 생태계를 위축시킨다. 또한 고질적인 유착과 담합구조의 구축으로 공정 경쟁기회를 박탈시키며 지역 사회의 역동성을 저하시킨다.

 

선거 공신들에게 전리품이나 떡반 나누어주듯 자리를 제공한다면 이는 지사의 기본을 망각하는 일이다. 아예 공신들이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해, 지사의 판단을 흐리게 하지 않도록 함이 어떨까. 한가히 자기 사람 심기를 용납하기에는 지금 제주를 둘러싼 환경이 결코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인사 불신으로 지사의 신뢰가 추락해 실패한 지도자 하나를 더 낳아서는 안된다.

 

지사가 가진 가장 큰 권한 중 하나가 인사권이다. 그 막강한 권한으로 좋은 인재를 등용해서 권한과 재량을 주어 일을 잘하도록 하는 것이 지사가 할 일이다. 제주 혁신은 전문성과 공공성을 가진 인물을 중용하는 인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대대적인 물갈이로 판을 뒤집어야 한다. 지사 자신의 도정 운영방식변화와 인적 쇄신이 빠져서는 도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지사 주변 인사에 대한 검증도 보다 철저히 해야 한다. 이들이 도덕적 불감증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제주 사회에 미래는 없다.

 

그래서 원 지사는 지금이라도 자신의 인사 결정을 찬찬히 되돌아봐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 도정이 직면한 문제와 민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취임 초 징크스’가 역대 도정마다 되풀이되는 이유는 새로운 권력에 진입한 자격미달 세력이 권력에 취해 호가호위하다 사고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인재 등용이 공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원 지사는 더 이상 인사가 망사가 되는 길을 걸어서는 안된다.

 

 

당나라 현종 집권 초기는 중국사의 황금기였다. 유능하고 강직한 신하들이 황제의 잘못을 가차없이 질타하고 거기에 황제가 귀를 기울였기에 가능했다. 한휴도 그런 재상이었다. 어느 날 한휴가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간 뒤 현종이 거울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곁에 있던 사람이 "한휴가 재상 된 뒤 폐하가 더 야위셨습니다" 했다. 현종은 "정말 그렇다"고 했다. 그러곤 말을 이었다. "그러나 내가 야윈 만큼 백성은 살쪘을 것이다."

 

영국의 영란은행은 캐나다의 실력파 마크 카니(M. Carney)를 신임 총재로 모셔왔다. 317년 영란은행 역사에 없는 초유의 결단이었다. 오랜 긴축정책 여파로 0.3% 저성장에 허덕이는 영국이 자존심을 버리고 통화주의 마술사를 초빙한 것이다.

 

둘째, 경기 회복에 도정 운명 걸 각오해야 한다.

 

세계 경제는 갈수록 빨리 변하고, 예측은 어려워지며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경제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슬로모션(slow motion)형’ 장기불황을 겪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연 3% 안팎으로 낮아지는 장기 저성장 국면이 지속되고 있고, 파산 위기에 처한 한계 기업이 늘고 있다. 이런 위기적 하강 상태가 지속된다면 올해 성장률은 2%대 아래로 추락할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다.

 

우리 경제가 과거 외환위기나 신용카드 사태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수출이 경제회복을 견인해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적 불황국면에선 이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세계 경제의 낮은 성장세가 이어지고 산업 보호주의가 확산돼 시장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난관 속에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제주 경제의 앞날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그동안 제주경제는 1970년대의 오일쇼크와 1997년의 외환위기,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역경과 위기를 힘겹게 건너왔다. 그런데 최근 흐름은 왠지 달라 보인다. 경기 회복 반등의 탄력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특히 그동안 성장을 지탱해오던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과 기후변화의 영향은 제주 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또한 급속한 도시화, 고령화 등 사회구조 변화가 미래 도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가 간단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2010년 제주는 전국 16개 광역시·도 중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가장 살기 어려운 땅으로 전락했다. 2002년 이후에는 1인당소득 증가율이 지속적으로 전국평균을 밑돌고 있다. 그만큼 도민들의 소득증가 추세가 전국평균과 격차가 벌어진다는 얘기다. 제주 경제가 실제 유례없는 장기 침체와 구조적인 저성장의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드는 이유다. 이러한 암울한 지표들은 제주 사회가 빈곤화 성장의 문제에 더해 다 같이 못 사는 ‘포괄적 하향화(race to the bottom)’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제에 울리는 경고음이 이처럼 심각해지면 도정은 비상한 각오로 위기 탈출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그러나 추락중인 경제를 붙들겠다는 결연한 의지나 수습책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오늘의 제주경제에 대한 냉철한 진단․ 성찰과 미래 비전을 시급히 재설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꺼져가는 성장동력의 불씨를 살려 경제 위기극복과 함께 새로운 도약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원 도정의 최우선 과제이다. 어쨌든 원 지사는 취임 그 순간부터 ‘못 살겠다’는 도민들의 비명을 듣고 있다. 이는 제주 도민의 막힌 가슴을 뚫어줄 비방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 지사의 역량에 미래 제주 사회의 명운이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위기 극복과 사회갈등 해소 위한 원 지사의 리더십과 돌파력을 기대한다.

 

제주 경제가 저성장의 늪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관행과 교과서에 얽매이지 않는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원 지사가 적어도 1년 이내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징후를 보여주지 못하면 원 도정의 레임덕 현상은 빨라질 수밖에 없다. 경기 회복에 도정의 운명이 걸렸다는 자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처럼 제주 경제를 둘러싼 국내외 환경이 매우 엄중한 가운데 저성장 속에 포괄적 하향화에 직면한 위기의 제주경제를 극복하기 위해 제주도정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가난을 접하는 도민들의 생각이 과거와 판이하게 달라지고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절대 빈곤의 시대를 지나 양극화 문제가 대두하면서 상대적 빈곤감이 그만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가난을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론 극복할 수 없는 사회적·구조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종전과는 차별화된 경제정책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를 위해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과 녹색산업 등 새로운 성장동력의 발굴, 육성과 함께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사회적 인프라 투자를 확대해 행복한 성장, 질적으로 고도화된 경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① 진단이 정확해야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온다. 만일 작금의 경기부진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저성장 국면이라면 제주경제의 근본적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한․중 FTA 협상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우선 건전재정을 통해 재정의 체력을 보강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근본적이며 신뢰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급속한 인구 고령화에 대한 대비도 늦추면 안된다.

 

② 과거 우리는 세계화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OECD 가입을 서두르면서 외환위기를 불러왔던 경험이 있다. 지금처럼 대외적 환경이 불투명하고 가변적인 상황에서 지사가 글로벌 경제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제주 경제도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해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글로벌 역량이 부족하면 인적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글로벌 경제에 대한 통찰력과 혜안을 키워야 한다.

 

③ 도정과 의회 등 경제주체들이 머리를 맞대는 상시적 ‘범도민 경제살리기 협의체’의 결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모든 경제주체가 위기극복에 동참할 수 있도록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도 즉시 가동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역량과 지혜를 모아 제주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환부를 과감하게 도려내고, 성장활력 회복을 위해 과감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④ 제주도가 ‘특별자치지역’이라는 지위를 획득했지만, 이것이 제주도의 경제력 향상과 도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에 도움이 된 것은 거의 없다. 경제논리로 풀어야 할 과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함으로써 타이밍을 놓치고 정치적 비용을 늘려 선택 불능 상황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있었다. 경제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제원리에 충실한 내용을 갖추는 것은 물론 각 경제주체의 역량을 한 데 모으는 것이 필수적이다. 정책수립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경제주체들의 에너지를 결집함으로써 정책의 성공이 더 크게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⑤ 소비 의존적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는 제주경제의 장기적인 성장기반 강화를 위해서는 생산 못지않게 양질의 소비활성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경제주체들의 긍정적인 소비심리 형성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언론의 보도 행태와 도정의 정책방향이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와 함께 일관된 정책을 시행하면서 경제주체들의 미래에 대한 예측력을 높일 수 있는 경제 환경을 지속적으로 조성해 나가야 한다.

 

⑥ 효율적인 경제정책 수립과 추진을 위한 창의적 조직이 되려면 생태계와의 건전한 소통 속에 다양성이 유지돼야 한다. 다양성은 제주 도정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핵심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따라서 관료사회는 민간부문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부족한 다양성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민․관이 대등한 위치에서 문제를 논의․협력할 수 있는 수평적․집단적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경제정책의 수립에서부터 민간부문의 창의성·역동성·다양성·효율성을 관료조직에 접목시킬 때 정책추진의 능률을 높이고 소통과 포용으로 지역내 갈등의 발생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와의 관계성이 넓어져 대중의 지식이 공유되고 융합됨에 따라 혁신의 가능성이 매우 커지고 결과적으로 보다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⑦ 제주 경제에 대한 올바른 진단과 처방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통계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통계의 부실은 정책 효율성을 저하시켜 도정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대표성과 속보성을 강화한 통계지표 개발과 함께 기관별, 통계별로 흩어져 있는 지역통계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지역통합통계 DB 구축이 절실하다.

 

⑧ 기존 경제정책의 성공적 추진이 필요하다. 우선 지금까지의 외자유치 중심의 지역개발 정책에 더하여 제주기업의 해외진출과 향토상품의 해외수출을 지원하는 데도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해외수출시장 개척을 통해 수요의 안정을 기한다면 국내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⑨ 프로젝트형 개발사업에 우선해 경제의 중장기적 활력을 높이는 거시정책에 대한 혜안과 대책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의 심화, 한‧중 FTA 체결, 복지제도의 확충 등에 대비한 미래지향적 비전과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

 

고운호는?

 

=1979년 한국은행에 발을 들여 놓은 뒤 제주출신으론 처음으로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이 됐다. 2005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3년간 재임하는 등 한국은행에서만 31년간 재직, 외길 금융인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으로 재직중엔 지역경제의 콘트롤타워를 목표로 제주경제포럼을 출범, 제주도지사와 함께 공동대표 역을 맡아 제주의 경제와 미래방향 논의의 불을 지핀 인물이다. 제주본부장 재직시절엔 제주본부가 한국은행 지역본부중 최우수본부로 지정됐다. [제주경제의 선진화를 위한 외침] 등 다수의 저서와 연구논문,자료를 냈다. 한국은행에서 퇴직한 최근에도 활발한 저술과 기고활동을 펼치며 제주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영훈 전 도의원이 원장을 맡고 있는 제주미래비전연구원의 이사장도 맡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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