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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호의 '제주를 말한다'(12)... 제주 경제와 사회의 내일을 위한 설계(1)

민선 6기 제주도정이 출범한 지 이제 한달입니다. 이에 맞춰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이 “제주 경제와 사회의 내일을 위한 설계”를 화두로 던집니다. 제주 혁신을 위한 전략을 제시합니다. 기고는 “제주 혁신하여 재창조의 길을 가자”를 시작으로 “제주 혁신하려면 지사부터 변해야” “관료 개혁” “제주 경제의 선진화 전략“ 등 40 여개의 주제로 제주가 가야 할 길을 담론의 소재로 삼습니다. / 편집자 주

세월호 참사가 국가 혁신의 단초 제공해

 

원칙과 기본을 무시하고 변칙과 술수에 능한 사람들이 평가받는 한국사회의 민낯이 송두리째 실체를 드러냈다. 대한민국 시스템의 총체적 파산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쌓이고 쌓여 누르고 눌려 있었던 비리와 부패와 허위와 관행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터진 것이다. 돌진형 압축 근대화 과정에서 절차와 과정은 무시한 채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는 성장 지상주의의 사회구조가 고착되면서 대형 참사는 예정되어 있었다. 성장 지상주의는 그 적폐를 은폐하는 가림막이었다.

 

그 여진이 아직도 깊게 이어지며 사회 전체가 무기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미안해하고 분노하는 민심의 거대한 파도가 쓰나미처럼 끝없이 밀어 닥치고 있다. 마음이 녹아내린 사망자와 실종자 가족들의 절규가 하늘을 찌르며 살아있는 자들의 가슴을 찢어 놓는다.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이렇게 ‘싸늘하다’ 못해 ‘냉소적’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국민의 자존심마저 뭉개져버려 마치 구조적 트라우마에 빠진 듯하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혁파를 다짐했던 박근혜 정권의 의지를 ‘비정상의 총체적 집하장’이었던 세월호의 참사가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긴 조문 행렬과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 하락은 대한민국이 바뀌어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의 증거이다. 리더십에 큰 타격을 받은 박 대통령은 정치적 생사의 기로에 서있다. 여기에 비리로 얼룩진 원전의 사고까지 터지는 날이면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다.

 

 

우리는 황망함과 참담함 속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다. 여기서 빠져 나와야만 한다. 그 탈출구는 바로 나라를 재창조하는 국가 혁신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로부터 쌓여온 잘못된 적폐를 바로잡지 못하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너무 한스럽다. 이번에는 반드시 바로 잡겠다"며 국가 혁신을 비장한 표정으로 약속했다.

 

어느 나라, 사회에나 해묵은 폐단은 있게 마련이다. 적폐는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고 또 반복되면서 사회 발전의 저해는 물론 안전과 공공성을 위협하게 된다. 그만큼 폐단이 수십년간 이어져 구조적으로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바로잡기가 어렵다.

 

세월호 사건이 우리에게 준 충격은 좌절과 분노만큼이나 교훈도 컸다. 앞만 보고 빨리빨리 달리는 삶의 방식은 이제 한계를 드러냈고, 효율과 성장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받드는 것도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게 되었다. 더욱이 국가가 독단적․주도적으로 사회를 이끌며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규모의 재난은 그 충격으로 사람들의 습관적 행동양식을 반성케 하고 변화하게 한다.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넘어서기 위해 성찰적인 판단과 합리적인 결정이 나와야만 한다. 지금이 적폐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걸쳐 세월호 전후로 확연히 구분되는 혁신 원칙과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비싼 교훈을 헛되이 하지 않고, 선진 대한민국 건설에 기폭제가 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세월호로 인해 유명을 달리한 그들에게 속죄하는 길이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주는 소중한 교훈은 원칙을 지키고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영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혁신이 절실한 곳은 제주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지 올해로 8개의 성상을 보내고 있다. 우리 미래상을 우리 스스로 그려내고 이를 완성시켜야 할 나이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창 성장 에너지를 분출하며 번영의 틀을 만들고 꿈을 일궈나가야 할 나이인데도, 성장은 둔화되며 전국 최하위로 추락하고 있고 공동체적 유대감은 내분과 갈등의 덫에 갇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폐해지고 있다.

 

도민의 안위를 보호해야 할 권력 집단들이 제왕적 권력을 악용, 제주사회를 사유화하면서 도민이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공동체를 위해(危害)하고 훼손하려는 시도가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 제주 사회가 제왕적 권력으로 비대화한 지도자 폭력의 트라우마로 점철된 정체의 굴레에 갇혀 돌파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적폐를 뿌리뽑기 위한 제주사회의 총체적 혁신이 절실한 이유다.

 

제주사회는 언제부터인가 분열과 갈등이 일상화돼 있다. 사회 전체가 권력 패거리끼리 갈려 서로가 이를 악물고 서로를 증오하며, 이념 갈등과 집단이기주의, 떼쓰기와 기 싸움에 빠져 문제해결 능력과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 토론보다는 집단행동이 우선이고, 논리보다는 도민 감정이 앞선다. 이러한 결과로 어느 한 쟁점에서도 여론을 한 곳으로 제대로 모으지 못한다. 매듭 하나 제대로 푼 게 없고 오히려 새로운 매듭을 만들어 내고 있을 뿐이다. 강정 해군기지, 7대 자연경관 선정 문제에 이르러서는 도민 분열이 최고조에 달했다.

 

사회 구성원 간 견해 차이와 이해 상충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일이다. 내분과 갈등을 얼마나 지혜롭게 승화시켜 국가전략으로 발전시키는가에 국가의 운명이 달려 있다. 소승적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대승적 국가전략을 세워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성숙한 의사 결정능력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의사결정능력이 정상적이지 못하면 어렵사리 여론과 정책이 형성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도민적 대동단결과 진정한 대통합 정치를 이룰 제주의 비전과 전략일 가능성은 낮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 혁신은 소통과 설득의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를 만나, 도정 의사결정능력의 회복에서 시작돼야만 한다.

 

제주 경제가 계속 어렵다. 이 상태로 가면 제주의 잠재력이 소멸돼 제주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질지도 모른다. 지금 제주 경제가 왜 추락하고 있고, 또 이를 처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 알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루빨리 어려운 결정과 힘든 선택을 할 수 있는 집단적 의사결정능력과 사회적 합의구조를 갖춰 제주경제와 사회의 내일을 위한 청사진을 만들어 실행으로 옮기는 일이다.

 

혁신의 추진과정에서 소통과 타협은 구분돼야만 한다. 화합과 야합은 다른 것이다. 여론을 존중하는 것과 여론에 영합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지금 제주는 소통과 화합이란 명분을 내세워 고통스러운 결정을 기피하는 영합주의에 빠져, 사회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제주사회 적폐의 원인과 배경은?

 

지도자의 성추행과 기만과 배신, 경제성장을 위한 큰 기획과 구상 실종, 가장 가난한 지자체로 추락, 정책 역량 퇴행, 각종 편법과 반칙으로 인한 공정경쟁 기회 박탈, 동종교배 인사 심화, 계층간·세대간 갈등 심화, 인구구조의 급격한 노령화로 인한 경제 활력 저하, 도민 삶의 질 추락, 대학 졸업자 취업률 및 취업성공률 최하위, 광역시도 단체장 평가 꼴찌, 청렴도 전국 최하위 등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이 계속 이어지면서 도민의 패배의식 팽배와 자존감에 크게 상처를 주고 있다.

 

홍수 후 물이 빠지면 불법을 저지르면서 쏟아 낸 온갖 오물이 드러나듯 현 제주의 문제는 그 단면일 뿐일 것이다. 이러한 총체적 ․ 구조적 제주 사회 적폐의 배경과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도서지역의 폐쇄적 특성에서 형성된 강한 순혈주의의 배타적 자주문화, 심각한 청년 실업과 이에 따른 청년들의 좌절, 제주산업구조의 특성에 기인한 비정규직의 가파른 증가, 빠른 고령화 진전과 저출산, 비정규직 근로자 증가, 양극화의 심화, 잠재 성장률 저하, 관료 중심 사회의 심화, 혁신형 창업 부족 등이 제주 경제 ․ 사회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이러한 요인들은 ‘잃어버린 20년’의 장기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경제 위기의 원인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된다.

 

둘째, 도정의 수퍼갑질과 시껫집 문화로 대표되는 집단 패거리 문화는 관료주의의 심화와 공쟁경쟁 기회의 박탈로 혁신과 창의의 가치창조와 사회 활력을 위축됨으로써 제주 발전을 가로 막는다.

 

셋째, 견제받지 않는 새로운 경제권력의 등장이다.

 

그동안 한국의 경제권력은 재벌과 관료들이었다. 그런데 노동조합을 포함한 농민, 교사, 의사, 변호사 등 각종 직능단체와 이익집단이 한국 경제에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했다. 이들 집단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이기적인 목소리가 점점 강해져 우리 사회 전체의 공동체적 이익은 도외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단·지역 이기주의와 포퓰리즘 이익집단에 볼모로 잡힌 각종 정부정책이 추진력을 상실하고 있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문제는 지금 이들 신흥 경제권력의 이기적 행동이 견제받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이렇듯 이익집단들이 국가 여론과 정책을 주도하는 상황에서는 언론의 여론선도 기능이 중요해 지는데 언론이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노벨 경제학자 뮈르달(Myrdal)이 말하는 소프트 스테이트(soft state), 즉 연성국가가 된다. 연성국가는 령(令)이 안서는, 소위 질서가 안 잡히는 국가를 말한다. 뮈르달은 연성국가에서는 사회가 극도의 혼란으로 내몰리고 민생과 약자들은 더 궁지에 빠지게 되어 절대로 경제발전이 안 된다고 했다.

 

이는 혼란의 시대에는 언론이 경제발전에 중요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갈등과 분란이 일상화되고 있는 제주사회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하지만 권력에 순응하는 듯한 제주 언론의 모습에 도민들의 실망과 좌절이 더해지고 있다. 제주의 언론이 직분에 충실함으로써 도민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매개체로, 권력과 불의를 경계하는 파수꾼으로, 도민을 계몽하며 도민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수호천사로 재탄생해야 한다.

 

제주 공동체에 대한 존중과 법질서 회복이야 말로 제주 혁신과 재건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본다. 이 두 가지만 제대로 지켜도 ‘내분과 갈등으로 퇴행을 일삼는 폐쇄 사회’란 이미지를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개방화의 지형을 뚫어보는 통찰과 가치관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요즘 우리는 개방과 교류의 세계화를 통해 형성된 지구촌이라는 하나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제주의 제도적·문화적 폐쇄성과 거주·교육·의료 등 사회 시스템의 낙후성이 외부 인력과 투자 유치에 걸림돌이 되는 실정이다. 다문화에 대한 제주 사회 인식도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혈통을 중시하는 전통적 성향 때문에 다문화를 수용하는 데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제주는 혁신 창출 측면에서도 상당히 배타적인 모습을 보인다. 저성장 시대를 극복하고 선진 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선 제주 사회의 체질과 사고방식의 혁신을 통해 더 많은 개방과 경쟁, 그리고 자기혁신을 지속하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 외부와의 소통과 협업이 없이는 결코 홀로 혁신을 창출하기가 어렵다.

 

다섯째, 제주 사회의 사회적 자본이 너무나 빈약하다.

 

미국의 정치사상가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신뢰의 가치를 특별히 중시해서 "한 국가의 경쟁력은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했다. 불신의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지는 밀양 송전탑과 강정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요즘 제주는 지도자들이 정책에 대한 비전과 철학이 없이 편법, 은폐, 꼼수 등을 자행하면서 불신의 굴레를 쓰고 말았다. 지도자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의 후유증은 결과적으로 제주사회에 엄청난 저신뢰 비용을 안기며 제주 상황에 대한 낙관과 도정에 대한 기대 심리를 갈수록 떨어뜨리고 있다. 도정 정책이 효과적으로 집행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제주가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전국 16개 시도 중 꼴찌를 기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부패도 불신에서 싹트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경영대학 INSEAD의 교수인 안토니오 파타스(Antonio Fatas)와 일리안 미호프(Illian Mihov) 등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수준, 경제의 개방성, 부정부패의 수준 등으로 측정한 사회기반구조의 질적 수준이 국민소득과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다고 했다.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의 양적 증가가 과거처럼 수월하지 않는 상황에서 상호간의 신뢰를 핵심요소로 하는 사회적 자본은 경제 전반의 고비용구조를 완화하고 갈등을 낮춰 성장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한 언론은 OECD의 보고서를 인용해, 한국의 전체 국부 가운데 40%를 ‘보이지 않는 자본‘이 깎아먹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심각한 리더십의 위기인 동시에 정신문화의 위기를 뜻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자본’이란 사회의 신뢰를 반영하는 사회적 자본과 사회 제도의 질 등을 포괄하는 무형의 자산을 반영한다.

 

우리나라는 신뢰 저하의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82조~246조원으로 추산된다. 갈등지수를 10%만 낮춰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8~5.4% 높아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에만 머물러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21% 증가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분란과 갈등이 일상화하고 있는 제주의 경우 신뢰저하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더 심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위와 같이 제주 사회 전반에 독버섯처럼 만연한 적폐를 감안할 때, 특별자치도 체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해 선진 제주를 건설해 나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지금이야말로 정말 중요한 시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역량과 지혜를 집결해야 할 제주사회가 균형점을 잃고 흔들거리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도정이 혼미 속을 헤매고 있기에, 경제와 민생까지 온통 엉망이 되고 있다. 이 절박한 고난의 시기에 우리에게는 지도자도 없고 어른도 안 보인다. 권력 집단의 패거리 문화와 그 후유증이 남긴 적폐를 지혜를 모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하는 과제 해결은 바로 도민 몫인 셈이다.

 

원 도정, 긴호흡으로 신성장의 길 열어야

 

이렇듯 숨 막힐 듯 답답한 정국에서 60%에 가까운 도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원희룡 도정의 등장은 소낙비 같은 존재다. ‘제주판 3김시대’의 마감을 학수고대해 온 도민들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표정들이다. 원 지사는 대선 후보의 반열에도 오르고 있다. 미래의 권력자가 제주 사회의 전면에 등장해 곧 시원한 성공 방정식을 만들어 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도민의 높은 기대와는 달리, 제주 사회 전반에 만연한 후진적․ 구조적 적폐를 걷어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제주 사회를 혁신해 경제를 살려내고 사회를 선진화해야 할 원 도정의 책임이 갈수록 무거워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제주의 혁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원 도정의 출범을 계기로 도정의 조직과 운영 방안에서부터 도민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문제까지 염두에 두고 긴 호흡으로 접근해 가야 한다. 원 도정은 세월호 참사가 제주사회를 성장에서 성숙으로, 위험에서 안전으로, 불신에서 신뢰로 이행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표현처럼 상호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 없이는 밝은 제주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성숙한 시민의식은 품격있는 선진사회가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이자 기본적인 소양이다. 거창한 국가 혁신도 기본적인 의식개조가 출발점이다. 제주의 의식개조를 위한 원 도정의 힘은 소통과 설득과 화합과 탕평과 감동에서 나올 수 있다. 원 도정은 혼자 모든 것을 하려 하지 말고 마음을 열고 귀를 뚫어 제주 사회의 중지를 모아야 한다. 야당은 물론 시민단체, 지식층들도 이번만큼은 이분법적인 진영논리를 떠나 진정 도민을 위한 길이 무언지 협의하고, 공통분모를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정파와 이념을 넘어서 도정이 바뀌더라도 이어갈 수 있는 범도민적 차원의 대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제주 모습이 완전히 달라져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또다시 땅을 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 전반적 혁신 없이는 "다 같이 못 사는 포괄적 하향화(race to the bottom)“의 난관을 결코 뚫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 도정에겐 긴호흡의 신성장 정책이 절실한 것이다.

 

첫째, 제주가 바뀌려면 도민과 제도, 이 둘이 다 바뀌어야 한다. 제주 사회에 깊이 퍼져 있는 불공정, 부패, 반칙, 비합리성, 비효율성 이런 것들이 사회와 제도 전반에 대한 도민들의 불신을 낳고 있다. 그리고 불신에서 나오는 분노와 좌절감이 대립과 갈등, 반목의 골을 깊게 하고 있다.

 

이를 고쳐나가기 위한 첫걸음은 우리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 전반적 사회제도와 운영체계의 개편, 관행의 변화, 그리고 도민들 스스로의 행동양식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여기에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탐욕을 자제하는 시민의식의 함양이 필수적이다. 특히 제주의 정치인, 언론인, 학자, 관료들이 달라져야 한다. 이들이 선진국과 같은 식견과 역량을 갖춰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제도를 만들지 못하면 제주 사회는 대재앙을 싣고 서로 마주 달려오는 폭주 열차와 다를 게 없다.

 

둘째, 도정의 능력과 역할을 재검토하여 도정-민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특히 행정 시스템과 권력을 사유화하며 사익 편취하는 퇴행적 관료 지배구조의 개선은 가장 핵심적 과제다. 제주 사회에 전방위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여러 부정적 현상들의 밑바닥에는 이들 지배구조의 문제점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지상주의 시대에는 관료집단의 도정이 제주 발전을 이끄는 조타수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식산업 시대에 접어들면서 규범과 능력에서 민간이 도정을 앞설 뿐 아니라, 민간부문 영역의 확장과 공공 서비스 내용의 다양화로 관료 중심주의는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 도정은 민간과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강력한 공공성의 담지자가 되어, 민간을 지원하고 활용하는 관계로 바꾸어 새 지평을 열어야 한다.

 

셋째, 부패와 위험을 치밀하게 통제하는 투명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제주도의 청렴도 수준이 전국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주의 ‘우리 삼춘’으로 상징되는 연고주의, 괸당문화와 관료주의가 공직사회에 부패친화적 환경을 쉽게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패척결의 관건은 부패행위의 적발에 있다. 조직 내 부패·비리를 알고 있거나 알 수 있는 내부자의 고발을 적극 유도하는 게 구조적 비리를 찾아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내부 고발자에 대한 보호와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관련 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넷째, 관피아 적폐의 해소 첩경은 민간전문가를 중용하는 것이다. 고위관료가 낙하산을 타고 부당하게 재취업하는 실태를 끊어야 한다. 이를 위해 관피아 적폐 논란의 진원지인 공공기관장 선임 절차와 행정규제 생태계를 혁파할 수 있도록 제주 사회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관피아들은 도정에 로비와 청탁 그리고 방패막이를 통해 관치를 재생산하고 부패를 확산시키며 도정을 무력화해 정책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단순히 관피아의 먹이사슬과 비리 관행을 도려내는 차원을 넘어, 민간의 경영방식이 모든 공공부문에 폭넓게 적용돼야 한다. 공공기관에 민간의 경영원리를 받아들여, 조직 풍토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요구다. 민간전문가 중용은 바로 공공 개혁의 출발점이다.

 

다섯째, 결과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한민국이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를 딛고 60년 넘게 줄달음치며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을 이뤄낸 데는 '하면 된다'는 노력 숭배정신이 큰 몫을 했다. 한 겨울 유엔군 묘지에 초록 잔디를 깔아 달라는 미군의 요청에 대신 보리를 옮겨 심어 파란 잔디처럼 보이게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부작용도 컸다.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해내기만 하면 된다는 '결과 지상주의' 사고방식을 불러왔다. '하면 된다'는 본래의 진취적 도전 정신보다 요령과 유착과 편법과 불법을 부추기고 나아가 당연한 듯 여기는 잘못된 가치관을 사회에 심어준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비리와 부패의 대부분은 결과에만 목을 맨, '하면 된다'는 결과 지상주의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든 요령과 편법 만능주의가 얽히고설켜 일으킨 극단적인 사례다. 고도성장은 끝났다. 결과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원칙과 상식을 앞세우는 시대로 나아가야만 한다. 이제 '하면 된다'는 관습과 과감히 결별해야 할 때다.

 

여섯째, 도정의 의사결정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제주 혁신을 위해서는 하드웨어 못지않게 제주의 정치·경제·사회가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뜯어 고쳐야 한다. 한 사회의 성숙도와 선진화를 결정하는 소프트웨어의 핵심은 그 사회의 집단적 의사결정 능력이다.

 

어렵고 괴로운 일이라도 사회의 발전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결정하고 단결해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융성했던 국가들은 모두 성숙한 의사결정 능력을 가졌으며, 쇠퇴한 국가들은 내부 분열과 갈등에 빠져들어 지리멸렬하다 역사의 흐름에서 낙오되었다.

 

일곱째, 도민 눈높이와 시대 정신에 대한 통찰이 깃든 혜안의 정치를 해야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국민의 눈높이’는 금과옥조와 절대선으로 통한다. 지난해 세법개정안 백지화 파동도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데서 일어난 것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범세계적인 리더십 결핍 현상을 지적하는 글에서 '왜 세계에는 우리 시대의 도전에 맞서도록 그들 국민을 고무하고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이렇게도 없는 것일까'라고 한탄하면서 지도자들이 SNS 등으로 너무 많은 사람의 ‘소리’를 듣다 보니 결국 자신(自身)은 없어지고 그 '소리'에 갇히고 만다고 했다. 그는 지도자들이 여론에 함몰되다 보면 국민이 가야 할 길보다 국민이 당장 원하는 것에 매달리게 된다고 했다.

 

이제 제주 지도자들은 도민의 눈높이와 시대정신에 대한 통찰이 깃든 정책을 제시하고 제주 사회를 끌고 나가야 한다. 포퓰리즘 지향적 정책은 장기적, 세계적, 개방적 안목을 무색케하여 제주 경제를 저성장의 늪으로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도민들도 지금 당장의 달콤한 혜택보다 융성의 밝은 미래를 선택하는 데에 혜안과 역량을 모아야 한다. 포플리즘에 함몰돼 여론의 꼭두각시로 행세하는 줏대 없는 정치인보다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자신의 철학과 신념과 의지에 따라 처신하는 정치인에게 소중한 표를 주어야 한다.

 

여덟째, 국가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해야 한다. 저출산․고령화는 우리에게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일본은 인구 감소가 본격화하면서 이용자가 거의 없는 도로 등 불필요한 시설이 급증하고 있다. 이에 신도시 건설을 포기하고 교외 지역 인프라 투자를 줄이는 등 신규 건설보다는 노후 시설의 개보수와 퇴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주는 어떠한가. 차량운행이 많지 않은 도로가 많다. 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빠른 제주 역시 인프라 정책은 여전히 인구 성장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모두가 정치인과 공무원의 야합에 의한 치적 쌓기용 산물인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표심을 자극하기 위해 한계생산성이 낮은 사회간접자본에 재정투자를 쏟아붓고 있다.

 

외형 확대 중심의 전시행정에 치우친 경제정책 추진을 과감히 정리하고, 인적자원 및 연구개발 강화 등 산업체질 개선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경쟁력이 취약한 부문에 투입되고 있는 노동력과 자본을 첨단기술산업과 고부가가치서비스산업 등 생산성이 높고 국제경쟁력을 갖춘 부문으로 자원이 원활히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

 

일본은 정치 논리와 지역 이기주의에 따라 한계 생산성이 떨어지는 도로·항만·공항 등에 집중적으로 쏟아부어 공공투자를 왜곡한 결과 잃어버린 20년의 고통을 겪고 있다.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 제주 산업정책의 방향을 틀어야 할 때다.

 

아홉째, 긴호흡으로 제주 혁신 위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이제 우리도 혁신을 계기로 제주 사회를 먹여 살릴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야 한다. 제주가 저성장경로에 진입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지배구조, 스펙트럼과 제도, 시장과 경쟁, 정치와 정책이 근본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철저한 분석과 개혁이 절실한 시점이다. 모든 경제 문제를 긴호흡으로 바라보아야만 하는 때가 도래했다. 그렇지 못하면 제주는 경쟁력이 무너지며 녹슨 도시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프로젝트형 개발사업에 우선해 경제의 중장기적 활력을 높이는 거시정책에 대한 혜안과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저출산‧고령화의 심화, 한‧중 FTA 체결, 복지제도의 확충에 대한 대비와 교육·의료 등 두뇌산업을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비전과 전략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델라웨어주는 기업 친화적 제도와 정책 운영을 통해 구글·애플·포드 같은 쟁쟁한 기업들의 본사 등록을 유도했다. 기업들은 이곳에 호적만 올려놓고 실제 사업은 다른 곳에서 한다. 그렇게 델라웨어에 몰려든 기업 100만개가 델라웨어 인구 92만명을 먹여 살린다.

 

라스베이거스는 카지노 규모 확대를 기반으로 한 성장정책에 컨벤션 사업과 고급 레스토랑, 쇼핑몰, 레저기능을 복합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해냈으며, 룩셈부르크는 금융에서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아 1인당 소득이 10만 달러가 넘는 부자 국가가 됐다.

 

뼈아픈 과거를 망각하면 적폐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제주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지 8년이 지나고 있지만 우리는 새로운 이정표를 찾지 못한채 언제부턴가 갈등과 좌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 사이 사회 양극화가 심해졌고 경제의 성장잠재력은 추락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선 아직도 절박함이 묻어나지 않는다.

 

1990년대만 해도 전국에서 중상위권을 유지하던 제주 도민의 생활이 지금은 전국 최하위로 추락하며 혼돈의 와중에 서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지금 제주를 둘러싼 제반 환경과 당면한 과제는 날로 엄중해지고 있다. 하지만 제주 사회에 변화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제주가 이렇게 표류하고 있어도 되는 것인가. 제주 사회는 이번만은 뼈아픈 역사를 반추하며 치열한 성찰 속에 제대로 바꿔야 한다. 성찰과 반성의 수준에 제주와 미래세대의 명운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구조적 트라우마는 분명 오래갈 것이다. 제주의 혁신은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어 우리 앞에 닥친 현실 문제로 다가왔다. 길게 보면 역사적 혁명일 수 있다. 퇴행적 권력집단이 지배하며 제주 사회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뼈아픈 역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제주의 것을 굳건하게 지키면서 새로운 창조의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무엇이 제주를 지키면서 도민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길인가에 도민의 중지를 모아 신성장의 길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 융성의 시대를 열어젖힐 기회가 될 수 있다. 더 추락하기 싫다면 혁신의 물결을 타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선 적폐의 실상을 직시하고, 잘못을 반성하며, 교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쉽게 망각해서는 안된다.

 

이스라엘은 인구 대비로 세계 평균의 100배에 이르는 노벨상을 탄다. 매년 창업 기업 수는 유럽 전체보다 많다. 미국 내 유태인 1인당 소득은 우리의 20배 안팎이다. 고난의 역사를 어릴 때 경험케 하는 유태인식 교육이 이들을 이렇게 변모시켰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이다.

 

과거의 잘못을 가르치는 나라는 그렇지 못한 나라와 완전히 다른, 바른 길을 가게 된다. 분발과 각성을 위해 덮고 싶은 과거를 깨워 정면으로 바라보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오욕의 역사는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는다.

 

“제주판 3김 권력”이 마감돼 2개월이 지나고 있다. 선거후 터져 나오는 자성의 목소리와 제주 개조의 결의도 들었다. 이 지경이 된 제주 사회를 부끄러워하며 시민의식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망각에 저항하고 기억을 보존하는 것이다. 망각에 무릎을 꿇는 한 우리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아우슈비츠 박물관 정문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국민은 그 과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고운호는?

 

=1979년 한국은행에 발을 들여 놓은 뒤 제주출신으론 처음으로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이 됐다. 2005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3년간 재임하는 등 한국은행에서만 31년간 재직, 외길 금융인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으로 재직중엔 지역경제의 콘트롤타워를 목표로 제주경제포럼을 출범, 제주도지사와 함께 공동대표 역을 맡아 제주의 경제와 미래방향 논의의 불을 지핀 인물이다. 제주본부장 재직시절엔 제주본부가 한국은행 지역본부중 최우수본부로 지정됐다. [제주경제의 선진화를 위한 외침] 등 다수의 저서와 연구논문,자료를 냈다. 한국은행에서 퇴직한 최근에도 활발한 저술과 기고활동을 펼치며 제주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영훈 전 도의원이 원장을 맡고 있는 제주미래비전연구원의 이사장도 맡은 바 있다.

 

 

 

 


 

 

* 보론= 혁신, 왜 필요한가

남의 일일때는 당연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다가 막상 자기의 문제가 되면 별로 달갑지 않은 말들이 있다. "혁신(革新)"도 그중의 하나이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데 따르는 희생과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혁신의 과정에선 그래서 갈등과 저항이 불가피하다.

 

혁신은 묵은 제도나 잘못된 전통․관행․조직 등을 바꾸어 새롭게 하는 일이다. 한자어인 ‘혁’은 갓 벗겨낸 가죽을 무두질해 새롭게 만든 가죽을 말한다. 이처럼 혁신은 생가죽을 벗겨내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흔히들 혁신은 혁명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새판을 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그림 위에 새 그림을 덧입혀야 하기 때문이다. 강압에 의한 타율적 변화가 아니라 참여에 의한 자율적 변화가 이루어져야하기 때문에 더욱더 어려운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혁신에 대한 다양한 정의 중에서 가장 적합한 것은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이다. 혁신은 파괴에서 시작이 된다. 특히 지금처럼 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때에는 혁신 역시 기본 틀을 파괴하는 큰 변화를 추구해야 성공할 수 있다.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사회로, 폐쇄경제에서 개방경제로 전환되면서 기존의 가치, 제도, 관행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괴만 있고 창조나 가치 창출이 없는 무조건적인 파괴는 혁신이라고 할 수 없다. 혁신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결국 혁신은 낡은 생각과 가치, 관행을 버리고 새로운 가치를 찾는 창조적 변화의 과정이다. 따라서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결별에서 혁신은 시작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습관이나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이 편하므로 변화를 거부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혁신이 시작될 때에는 불편하고 어려운 상황이 닥쳐오게 마련이다.

 

1800년대 증기선이 이미 취항하기 시작했는데도 범선업계는 종전의 경영사고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다가 세계에서 가장 큰 범선 "토마스 로슨호"가 폭풍에 전복되면서 승객 대부분이 사망을 하자 범선은 사라졌다. 변화의 흐름을 잘못 읽고 기존 틀에 집착하다 사멸의 길을 걸은 것이다.

 

혁신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요구되는, 종착역 없이 가야 하는 여정으로 인류 역사가 진보하는데 있어서 숙명적인 과정이다. 지금처럼 급변하는 시대에는 혁신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제주가 생존할 수 없다. 기존의 것을 적당히 수정하는 정도의 변화로는 성공할 수 없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변화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제주 도민들이 어려움이 있더라도 회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혁신의 주체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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