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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동양(東洋)산책(7) ... 한.중.일 3국 역사서가 기록한 작명의 비밀

 

제주도지사 선거가 끝났다. 새 인물이 취임하고 4년 동안 우리를 대표하여 제주도정을 이끈다. 새로운 미래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도지사 그러면 행정의 수반이라는 의미로만 여기게 되어 도백이라 하는 것이 친근하게 느끼는 까닭인지 ‘도지사’라 하지 않고 ‘도백’이라 부르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때마다 이 명칭이 어디서 왔으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궁금했다.

 

의미는 그 존재의 가치를 정하는 척도가 된다. 이름을 바로 세워야 의미가 곧게 되며 그에 따른 가치를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정명(正名)인 셈이다. 그래서 이 명칭의 유래와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어졌다.

 

먼저 ‘도백(道伯)’을 사전적으로 풀이를 하자면 ‘관찰사(觀察使)’를 한 도(道)의 장관이란 뜻으로 일컫는 말이라 돼있다. 그리고 덧붙여 ‘도지사(道知事)’를 예스럽게 일컫는 말이라 하였다. 관찰사는 감사(監司)․도백(道伯)․도신(道臣)․방백(方伯)․외헌(外憲)․도선생(道先生) 등으로도 불리었다고 한다. 도백은 관찰사에서 비롯됐다는 말인데.

 

관찰사란 무엇이었는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첫째는 외관(外官)의 규찰이라는 고유의 기능이다. 국왕의 특명을 받은 사신으로서 도내를 순력하면서 1년에 두 차례 수령을 비롯한 모든 외관에 대한 성적을 평가, 보고하였다.

 

둘째는 지방 장관의 기능이다. 모든 외관의 상급 기관으로 도내의 군사와 민사를 지휘, 통제했고 독자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직단권(直斷權)이 주어졌다고 한다. 따라서 각 도의 병마·수군절도사를 겸임하였다.

 

다시 말해 관찰사는 중요한 정사에 대해서는 중앙의 명령에 따라 행하였지만 관할하고 있는 도에 대해서 장관으로서 경찰권, 사법권, 징세권 등을 행사하여 지방 행정상 절대적 권력을 가졌던 것이다. 그 밖에 일반 행정은 감영에 속한 영리(營吏)들이 육방에 소속되어 담당하였다. 이를 일컬어 ‘도백’이라 약칭한 것이다.

 

‘道伯’은 한자어로 ‘道’와 ‘伯’의 합성어이다.

 

‘도’란 지방행정구역 팔도(八道)를 일컫는다. 팔도는 조선 태종 때 확정된 경기·충청·전라·경상·강원·황해·평안·함경(永吉·咸吉) 등이다. 이 체제는 1896년 13도로 개편되기까지 일부 구역의 변경 및 명칭의 개칭 등은 다소 있었으나 근 500년간 지방행정구역의 최상위 단위로서 존속되어 왔다.

 

‘道’는 중국에도 있었다. 당(唐)대에는 전국을 10道로 나눴는데 현재의 성(省)과 같은 성격이다. 청(清)대와 민국 초기에 성 이하에 道를 설치했었다. ‘도백’이란 곧 ‘도’의 ‘백’, 관찰사를 대신 부르는 말이다.

 

그런데 왜 ‘伯’일까? ‘백’은 중국에서 비롯된 용어다.

 

중국에서는 군주가 ‘백작(伯爵)’으로 봉하는 제도가 선진시대부터 시작되었다. 백작은 고대 봉건제도에서 5등급의 ‘작’중에서 제3등급이었다. “왕자 제도의 녹작은 공·후·백·자·남, 무릇 5등급이다.[王者之制禄爵,公侯伯子男,凡五等]”(『예기(禮記)』)라는 말이 그것이다. 주(周)대에 제후국 중에 백작으로 봉한 나라는 오(吴), 진(秦), 조(曹), 정(鄭), 양(梁) 등이었다. 진(秦)과 한(漢)대에는 백작이 사라졌다가 당(唐)대에 ‘현백작(縣伯爵)’을 설립했고 송명(宋明)대에도 백작이 있었으며 청(清)대까지 내려온다.

 

하상(夏商)시기에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통전通典』에 따르면 요순(堯舜)과 하대에 5등급이 있었고 모두 세습되었다. 상대에는 자와 남을 제외한 공(公), 후(侯), 백(伯)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실증할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伯’의 갑골문에서 방백(方伯)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면 사실무근은 아니라 보인다.

 

중국식 5작은 우리나라 고려시대에도 보인다. 고려에서는 천자의 아들들에게 후侯가 초봉 되었고 부마에게는 백伯을 봉하였다고 한다. 고대 일본의 귀족은 공경(公卿)과 대명(大名) 2갈래가 있었다고 한다. 701년에 ‘통귀(通貴)’와 ‘귀(貴)’라는 귀족제도가 창립되었고, 1884년에 화족(華族)제도가 실행돼 옛 공경, 대명 및 명치유신 공신들에게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의 오등작위를 내렸다. 제2차세계대전후에 폐지됐다.

 

그렇다면 ‘도지사’는 어디서 온 것인가? 도지사는 사전적으로 한 도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지방 장관이다. 즉 도道의 행정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고려시대 6조의 관직에서 비롯되었다. 고려 전기에 종2품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3품 이상의 (知兵馬事), 5품 이상의 지주사(知州事) 등이 그것이다.

 

“이조 충렬왕 24년(1298)……이에 6조의 판사․지사를 폐지하였다가 얼마 후에 다시 설치하였다.[吏曹二十四年……仍罷六曹判事知事,尋復之.]”『고려사』

 

위와 같은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知○○事’라는 관직명이 보편화돼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중국 고대 관명에서도 보인다. 송(宋)대에 지방에 파견하는 관리들을 ‘지모부(知某府)’ 혹은 ‘지모주(知某州)’, 지모현사(‘知某縣事)’라 하였는데 지사의 명칭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명청(明清)대에도 현縣급 지방행정관을 지현이라 하였고 민국시기 지현을 현지사(縣知事)라 하였으며 지사라 생략하여 부르다가 나중에 현장(縣长)이라 불렀다. 승원(僧院)의 사무를 담당하는 직명으로 쓰기도 했는데 지금의 주지(住持)다. 일본은 지금도 지방 행정구의 수장을 지사라 부른다.

 

이렇게 보면 ‘도백’이나 ‘도지사’는 관직명으로 혼용하여 부른다고 문제될 것이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글자의 뜻을 보면 확연한 차이가 있다. 먼저 ‘백’을 보자

현존하는 중국 최초문자 갑골문의 ‘伯’은 ‘白’이다. 어떤 모양을 본뜬 글자일까? 해석이 분분하다. 흰 머리뼈 모양이라고 하기도 하고 햇빛의 상형이라고도 하며 엄지손가락 모양이라고 보기도 한다. 글자 모양의 풀이 자체에서 중심, 수장이란 뜻을 갖게 됨을 유추할 수 있다. 갑골 문장에서는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색, 수[百과 같은], 방백, 신기神祇, 지명으로 쓰고 있다. 이후 ‘白’에서 ‘伯’이 분화되었다.

 

그런데 ‘백伯’은 ‘패霸’와 통한다.

 

원래 춘추시대 제후诸侯의 수령을 가리키는 말로 ‘五伯’은 ‘五霸)’[제환공齊桓公, 진문공晋文公, 송양공宋襄公, 진목공秦穆公, 초장왕楚莊王] 즉 다섯 맹주를 가리켰다. 은나라에서도 제후의 명칭으로 사용됐었다. “서백을 문왕이라 한다[西伯曰文王]”(『史记』)는 기록이 그것이다. 문왕이 은나라 왕에게서 방백의 책봉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금문金文과 주의 갑골甲骨에도 ‘초백楚伯’이라는 명칭이 보인다. 금문에서는 伯을 시호諡號로 쓰이기도 하였다. 절대 '권력'의 하나다.

 

원래 ‘패(覇)’자는 달이 비로소 빛을 얻는 일로 으뜸가다는 뜻이다. 하지만 ‘패자覇者’의 의미가 더 강하다. 무력이나 권력, 권모술수權謀術數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해석을 보면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을 넘어 권력을 부리는 사람임을 알 것이다. 동양의 맹점인 제국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지사’란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가? ‘지사명리知事明理’의 의미를 담고 있다. 분별 있고 사리를 아는 것이다. ‘지사’란 사리를 알며 세상물정을 아는 것이다. 세상을 살피며 이치를 아는 자이다.

 

지금 우리는 소통의 시대에 살고 있다. 소통이란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하는 것이다. 뜻이 서로 통하여 융화하는 것이다. 그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민심을 얻기 위해 소통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소통을 하겠다고 민심을 얻은 후 깨끗이 잊어버리고 불통 독선의 길을 택한 인물도 있기는 하지만.

 

올바른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민주주의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이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될까? 보통사람이 우선이다. 서로 인정이며 소통이다. 낮춤이다. 주권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 뽑은 인물들은 선택받은 사람이란 인식을 버리고 봉사하는 자리라는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좌우, 상하를 막론하고 막히지 않게 통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도백’을 바라지 않는다. ‘도지사’를 바란다. 군림하는 자세를 버리고 자신을 힘껏 낮추어 함께 더불어 가는 세상을 만들 그런 사리를 아는 지사가 필요하다. 이후부터는 도지사라는 호칭으로 통일하자. 소통하지 못하고 사리를 알지 못하면 그만 두라 할 수 있기에.
 

 

이권홍은?=제주 출생. 한양대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중국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신종문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는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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