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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의 시론담론(時論談論)(2)

다산 정약용 선생이나 추사 김정희 선생을 비롯한 많은 선비들은 섬으로 유배를 가면 도성의 정치와 떨어져 자연을 벗 삼으며 많은 명작들을 쓰곤 하였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하와이대학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까지 6년간 재직하며 무얼 하였나 하는 자격지심을 느낄 때가 많다.

 

다만 이따금 하와이에서의 경험을 한국의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은 든다.

 

많은 사람들이 하와이를 지상낙원쯤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막상 한국사람으로 6년을 지낸 기억은 그곳을 관광지로 방문한 수많은 사람들과 무척 다르다.

 

이는 아마도 제주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과 신혼여행지로 찾은 사람들 간의 간극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와이의 교민사회와 접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기억과 이념에 관한 문제다.

 

어느 날 한 어르신과 식사를 하며 나누었던 대화가 기억이 난다.

 

느닷없이 이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빨갱이’라고 하신다.

 

어? 이분이 박정희의 남로당 시절을 잘 알고 계신가 했더니 그게 아니라 국부(國父)이신 이승만 박사를 배신했을 뿐만 아니라 국외로 망명에 이르게 하였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가능한 지 그때 처음 알았다.

 

또 다른 어르신은 70노구를 이끌고 인천에 있는 맥아더 동상을 지키기 위한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자비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셨다.

 

3년쯤 전인가 하와이대학교 안에 이승만 박사 숭모회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학교 내에 그 기관을 설치하자는 주장에 대해 한 노장학자는 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북괴 동조자'라는 취지의 이메일을 돌렸다.

 

나는 정치학 연구자로서 ‘이승만 박사 연구회’를 만드는 것은 적극 찬성하지만 ‘숭모회’를 만드는 것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대학에서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승만 박사를 ‘숭모’하지 않는다고 해서 ‘북괴동조자’로 낙인을 찍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냈다.

 

그 후 약 일주일 동안 나는 그 노장학자에게 ‘80년대 의식화 교육에 찌든 친북주의자’로 낙인이 찍혀 조금 곤란한 시간을 보내야만 하였다.

 

되돌이켜 보면 하와이대학에서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것은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사실 하와이대학 정치학과는 미국에서 가장 좌파에 속하는 학과들 중 하나다.

 

방법론이나 연구주제에서 학과의 주류는 철저하게 미국 정치학계의 주류를 거부하며, 영어가 아닌 하와이 언어로 박사논문을 쓸 수 있게 하고, 신임교수 임용에 대학원생들이 교수와 같이 1표를 행사하는 등 미국 내 진보 중에서도‘튀는’정책을 많이 가진 학과다.

 

학과 내에서 비교적 보수적인 입장에 속했던 나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한인 사회의 몇몇 어르신들 사이엔 ‘빨갱이’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그런데 나로선 이상(?)한 경험이었던 게 쿨(cool)한 정치학과의 동료교수들 보다 얘기하기도 편하고 인간성도 따스한 ‘극우’한인 어르신들과 훨씬 더 자주 술자리를 가졌다는 점이다.

 

한 어르신은 같이 소주를 한잔 하다가 ‘잘못 나가버린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 울분을 토하시고는 나를 쳐다보며 “아... 젊은 사람들은 이런 얘기 듣는 것 싫어할 텐데… 고생하고 계시니 오늘 술은 내가 사겠소”라고 하시면 나는 그냥 편하게 웃어버린다.

 

따지고 보면 그분은 1950년대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 와서 한국의 50년대라는 시간에 갇혀 버리신 분인데, 그 시대의 편견만 가지고 계신 게 아니라 옛 시절의 따스함도 같이 가지신 분이라 함께하는 술자리는 불편할 것도 힘들 것도 없었고 그냥 즐거웠다.

 

누군들 자신이 속한 시간을 쉽게 벗어날 수 있으랴. 지금도 10년 어린 후배나 20년 어린 제자들과 같이 노래 한 곡 부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눈감고 인상 쓰며 김현식의 노래를 부르고 나면 어린 친구들은 나를 멀뚱멀뚱 쳐다본다. 그럴 때면 나는 “386들 이렇게 감정 잡고 부르는 노래 듣기 힘들지?”라고 한마디 한다.

 

 나 역시 하와이 한인 어르신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적이란 말이 어울리는 감성은 버릴 수 없다. 미래세대와의 소통창구이기 때문이다.

 

☞서정민=부산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랐다. 연세대 정외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마쳤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미국 하와이대 정치학과에서 6년 간 교수로 생활했다. 현재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정치와 민족주의를 전공,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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