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발행인칼럼] 35년만에 바뀐 국기에 대한 맹세 ... 대통령 참석 호소하는 4.3

수년 전의 일이다. 어리둥절한 적이 있다. 늘상 어떤 군중행사가 있게 되면 반드시 치러야 하는 대한민국의 의식이 있다. 국민의례다. 대부분 ‘국기에 대한 맹세’로 시작한다.

 

언제나 습관처럼 가슴에 손을 얹고 태극기를 쳐다봤다. 그런데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국기에 대한 맹세’는 그 시절 알고 있던 그 맹세문이 아니었다.

 

초등생 시절을 거쳐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고서도 기억하는 국기의 대한 맹세는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혹여 현재 시행 중인 국기에 대한 맹세를 초등생 기억에 갇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여기 다시 써본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그 시절 신문 한 켠에 조그맣게 자리한 박스기사에 불과한 지라 국기에 대한 맹세문이 바뀐 사연을 몰라 동그란 눈을 떴지만 그런 허둥댐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웅성거리는 소리, 수군거리는 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정권이 바뀌니 국기 맹세문도 뜯어 고친다”는 소리가 나왔고, 일부는 “진보가 국가의 정체성도 뒤흔들어 놓는다”고 수군댔다.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1968년 3월 충남교육청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보급한 게 시초다. 당시 충남교육청의 유종선 장학계장이 만든 것이다. 원래 맹세문은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였다. 이 맹세문은 1972년 유신체제 시절 문교부가 전국 각 학교에 시행하도록 지시해 교육현장에서 의무화됐다. 물론 내용도 대부분의 30~40대 이상 층이 알고 있는 문안으로 둔갑했다.

 

전두환 정권이 집권한 1980년엔 국무총리 지시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 반드시 국기에 대한 맹세를 병행토록 했다. 온 국민에게 의무화를 시킨 것이다. 매일 오후 6시가 되면 태극기 하기(下旗) 시점에 울려 퍼지는 곡조에 맞춰 길 거리, 작업장, 사무실을 가리지 않고 가슴에 손을 얹어야 했던 기억이 40대 이상 연령층엔 뚜렷하다.

 

 

그 문화는 국무총리의 단순 지시에서 1984년 2월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으로 법제화됐다. 이후 좀 편해진 게 있다면 1996년 김영삼 정권에 이르러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이 개정, 국기강하식·각종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 중 애국가를 연주할 경우 국기에 대한 맹세문 낭송을 생략할 수 있도록 한 정도다.

 

그런 역사를 가진 국기에 대한 맹세는 2007년 7월 새롭게 탈바꿈했다.

 

‘자랑스런’이라는 문구가 어법에 맞지 않아 ‘자랑스러운’으로 바뀌었고, ‘조국과 민족의’라는 문구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로 변경됐으며, ‘몸과 마음을 바쳐’라는 문구는 삭제됐다.

 

2003년 5월 유시민 국회의원이 “국기에 대한 맹세는 파시즘의 잔재”라는 주장을 하며 벌어진 논란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물론 그 이전부터 극소수가 “통일, 정의, 진실 등의 개념이 모두 삭제돼 절대적인 충성만을 요구하는 국수주의이자 ‘전체주의 유산”이라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서슬 퍼런 공안정권 시절엔 가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1972년부터 2007년 초까지 35년간 활용된 국기에 대한 맹세는 절대적인 충성을 국민들에게 훈육하고 국민들 역시 권력의 주체가 국민이 아니라 국민은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복종과 부림의 대상이란 인식이 각인되도록 만들었다. 과거 정권의 입장에선 효율적인 통치수단 역할을 ‘국기에 대한 맹세’가 톡톡히 한 셈이 된다.

 

다시 4월이다. 기억을 더듬다보니 우리 제주도민들도 길들여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체념하고 매달리고 그저 ‘윗 선’만 바라보다보니 익숙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2000년 1월 ‘4·3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김대중 정부에 의해 제정·공포됐다. 2003년 10월31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를 직접 찾아와 제주도민들에게 과거 국가공권력의 잘못을 정부수반의 자격으로 사과했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는 대통령의 공언은 현장에 자리했던 유족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4·3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4·3을 다시 음미한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봉기사태와 그로부터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군·경 토벌대와 무장대 간의)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양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본다.

 

“4·3을 추념일로 지정한다면 무장공비가 봉기한 당일을 추념하자는 취지가 된다”는 언론기고를 했던 새누리당 제주도당의 한 고문은 그 기고로 당에서 제명처분을 당했다. 제주에선 최근 사상 처음으로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정부차원의 첫 4·3위령제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을 간절히 요청하는 분위기다. 여·야가 따로 없고, 진보정당은 물론 우근민 제주도정, 그리고 유족회와 시민사회단체 역시 같은 호소다.

 

우리가 무언가를 잊고 지내는 건 아닌지 곱씹어 본다. 6·4지방선거를 앞둔 정치판이 아니라면,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살벌한 선거국면이 아니라면 “추념일을 4월3일이 아닌 다른 날로 생각해 볼 여지도 있다”는 언급이 진정 모두에게 돌팔매를 맞을 만한 일이었을까? 이 기회에 한번 진지한 토론을 해볼 필요는 없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 공론화의 결과로 더 당당하게 ‘4월3일’을 우리 도민들의 뇌리에 각인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며칠 전 도지사에 출마한 어느 한 후보의 지적처럼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행사에 대통령의 참석은 너무도 당연한 의무나 다름 없는데 우리가 그렇게 사정하듯 매달려야 하는가”란 의문은 과연 답할 이유가 없는 ‘공허한 메아리’일까?

 

4·3은 특별법의 정의만 놓고 보더라도 도화선이 됐던 1947년 3·1시위사건으로 출발한다. 애꿎은 6명의 양민이 경찰의 총탄에 스러졌다. 무장대와 토벌대의 치열한 교전으로 산간지역엔 민간의 발이 닿을 수도 없었지만 잔비(殘匪) 소탕이 마무리됐다는 이유로 당시 계엄총수인 제주도경찰국장에 의해 19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됐다. 1954년 한라산 백록담에 세워진 ‘한라산개방 평화기념비’가 그 잔해다. 지금으로부터 꼭 60년 전 일이다.

 

그 옛날의 참화와 시련, 수난을 겪었던 제주도민들은 눈물 속에서도 나라로부터 4·3특별법 제정을 이끌어냈고, 그렇게도 억울한 죽음에 대해 현직 대통령의 공식사과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제주 안에선 언제나 치열한 다툼이 있었고, 반목이 끊이지 않았다. 뭍 지방 보수단체로부턴 심심하면 공격이 대상이 됐던 제주의 아픔이기도 했다. 그동안 제주도 지방정부 차원에서, 우리 스스로 먼저 해낸 일은 무엇일까? 그나마 지난해부터 유족회와 경우회가 화해의 행보를 걷기 시작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4·3이 국가차원의 추념일로 지정됐다. 이 마당에 진정 우리가 할 일은 줄기차게 대통령의 참석을 요청하는 것 외엔 없을까? 선거판에서조차 죄다 ‘대통령 참석 간곡 호소’라는 기사만 나오니 다시 전체주의 국가의 신민(臣民)으로 전락해가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국기에 대한 맹세’만 거듭하다 우리 스스로가 대한민국의 주인이란 사실을 망각해선 안될 것 아닌가? 대한민국 제주도민 역시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편집인]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