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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기사 입단을 마다한 제주바둑계 1인자장승홍의 '제주바둑의 향기'⑤ ... 원로 김석범(金錫範) 사범
장승홍  |  shjang4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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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13  15: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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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범 사범
김석범(32년생, 제주시 노형동 부영2차 APT 203동 104호)은 제주바둑계의 1인자로 많은 바둑인을 양성했던 원로다.

1959년 한국일보 제주지사(지사장 장용하)가 연 전국 아마추어 바둑선수권 제주대표 선발대회에서 전승을 거두며 우승, 제주바둑계의 1인자가 되었다. 제주시 칠성로 칠성다방 서쪽의 2층 칠성기원(강진화 경영)에서 열린 이 대회에는 제주바둑계의 고수(高手) 격인 2급 이상 김봉수(金奉洙, 서예가, 제주도 초대 왕위), 박창재 전 초등교장, 허두병 전 제주상공회의소 사무국장, 고두표(*고두형‧高斗衡 고바우농원 대표의 형) 등 10여 명이 참가했다. 결승전에서 맞붙은 기사는 문명택 제주측후소장으로, 그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이 대회에 조남철(趙南哲) 국수가 참석하여 지켜보았었고 기사들을 초단격이라고 인정했다.

김석범은 한국일보사 사옥에서 연 전국대회에서 3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때 조남철 국수는 김석범에게 “1주일 뒤에 프로 입단대회가 있으니 참가하라. 너의 실력으로 입단할 수 있다”고 권유했다. 김석범은 많이 고민했지만 당시 바둑으로는 앞길이 보장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조남철 국수에게는 미안했지만 간곡한 권유를 뿌리치고 제주로 내려오고 말았다.

조남철 국수는 김석범에게는 바둑 스승이다. 1953년 김석범이 부산수산대 2학년 시절 우연히 광복동에 있던 조남철 기원을 찾은 것이 인연이다. 김석범은 제주북초교 4학년 때 쯤 10여 명의 사촌 형들이 바둑 두는 것을 어깨 너머로 배웠다. 6년제 제주농업학교 때는 한 급수 위인 이승택 전 제주도지사 동생과 바둑을 두어 실력은 7~8급 수준이었다. 조남철 국수는 빈 기원이나 다름없는 한산한 기원을 찾은 대학생을 반가이 맞아 바둑을 두자고 했다. 김석범에게 토요일 오후에 기원에 오도록 했다. 처음 8점을 먼저 놓고 둔 바둑은 실력이 늘면서 1년 사이 3점 바둑으로 좁혀졌다. 조남수 국수의 개인 지도로 2급 정도의 실력을 갖춘 것.

조남철 국수는 6‧25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막을 내리고 서울이 안정되자 서울 명동에 송원기원을 차려 서울로 올라가고 말았다. 대학 방학 때 서울에 가 기원을 찾아가면 조남철 국수는 그를 반갑게 맞곤 했다. 그 뒤 제주에서 대회 때 사제간의 상봉이 있었고 프로 입단을 권유했던 것이다. 김석범은 제주에서 유일한 조남철 국수의 제자인 것.

이보다 앞서 1957년 11월 제주신보(제주신문, 제주일보 전신)가 제1회 전도바둑대회를 제주시 일도동 이승택의 집에서 열었다. 이 대회에서 우승은 4급 이규택(李奎澤, 이승택 전 제주도지사 동생, 김석범과 제북교 동창)이 12승 2패로 우승했고, 11승 2패의 3급 신덕용(申德容, 제주신보사 사원, 신두방 전 제주신문 전무 아들)이 준우승, 2급의 김석범은 11승 3패로 3위가 됐다. 이 대회는 4회까지 치러지고 없어졌다. 1968년 11월 제주신문사가 연 제1회 바둑제주도왕위전에는 김석범이 부산에 있을 때여서 참가하지 못했고 첫 왕위는 김봉수(당시 55세)가 차지했다.

김석범은 1957년 2월부터 61년 2월까지 성산수고 교사로 재직했다. 우근민 제주지사는 그의 제자다. 제주시수협 조합장을 거쳐 제주대 수산학부, 해양과학대에서 강사로 수산경영론 등을 10년간 강의했다. 그의 부인은 김애환(金愛煥, 38년생) 전 제주도 여성국장으로 슬하에 2남2녀를 두었다가 최근 아들을 잃었다.
김석범은 80년대 초 수협조합장 때 제주바둑인의 첫 본격적인 모임인 제주기우회의 사범(5단)을 맡았다. 기우회 회장은 이동일(李東一) 내과의원장, 부회장은 이중형(李中珩) 제주여행사 대표, 감사는 홍경식(洪景植) 해상급유 사장, 간사는 김익수(金益洙) 한라럭키(주) 사장이다. 매달 첫 월요일마다 열리는 기우회의 회원은 30여 명. 고수로는 2단에 양용화(梁容和) 제주여고 교장, 김헌구(金憲求) 이비인후과 원장, 초단에 김봉수 서예가, 고두형 고바우농원 대표, 김표형(金杓炯) 전 소방안전협회 사무국장 등이다. 김광수, 오병탁 현직 경찰서장도 회원이 됐다. 소설가 최현식(崔玄植) 제주신문 편집국장은 5급 실력이나 바둑을 매우 좋아해 제주신문 주최 왕위전을 열게 한 1등 공신이다. 기우회 사무실은 병원 옆 이동일 원장 자택으로 그곳에서 바둑을 두었다.

   
▲ 장승홍 논설위원이 김석범 옹을 만나 인터뷰하는 장면이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
제주기우회는 이동일 원장이 고희를 맞아 은퇴하면서 경찰 출신 임창우(任昌佑) 신제주주유소 대표가 맡아 2년여 활발히 운영했고 급환으로 숨지면서 3대 회장에 백형철 삼진건축사 대표가 맡아 2년 동안 운영했다. 2000년 초가 되면서 30여 년간 활발했던 모임이 해체됐다.

한국기원 제주지원(원장 박영수)은 1992년 5월 일본에서 바둑의 신(神)으로 추앙받는 오청원과 오청원을 수행한 임해봉 9단 등 당대 세계 최고 기사를 초청했다. 제주 그랜드호텔에서 김석범은 2점을 먼저 놓고 오청원의 지도 대국을 받았다. 잊지 못할 감격적인 대국이었다. 또 오리엔탈 호텔에서 김인 국수와 하찬석, 윤기현, 장수영 등 국내 최고 기사들과도 대국을 했다. 그는 프로 기사들과 대국 때 2점 이상은 놓지 않았다. 하찬석 9단과 2점 대국으로 1승1패를 기록한 적도 있다. 김인 국수는 전남 강진 출신으로 성질이 호방하고 바둑을 기예로 승화시킨 낭만주의자였다. 김인과는 인간적인 우애를 나눴다. 강진에서는 김인을 기려 바둑의 날을 운영한다고 밝힌다.

제주기우회에 이어 얼마 없어 백록기우회가 결성됐다. 백록기우회(회장 박동일)에는 고문(5단)으로 참여했고, 박순천 제주왕위는 명예 5단, 박영수 한국기원 제주지원장도 명예 2단으로 참여했다. 백록기우회의 고수는 4단이 홍영기, 강경호, 양광수, 송윤경, 김동욱 등이고, 3단은 박동일, 이헌종, 2단은 김기형, 현장호, 이기탁 등 7명에 이르는 등 회원이 30명으로 출발했다. 현재까지 모임이 활발해 제주 최고(最古)의 바둑 모임인 셈이다.

김석범은 1991년 12월 한국기원으로부터 아마추어 5단으로, 98년 11월에는 아마추어 6단증을 각각 받았다. 한국기원 제주지원 수석 고문으로도 추대됐다.

김석범은 광주체전이 열린 2009년 제1회 전국실버바둑대회에 고용익, 고원식 등과 함께 3명이 제주도 대표로 출전했다. 전국 16개 시‧도 대표가 4개조로 나눠 치른 대회에서 김석범은 전승을 거두며 단체전과 개인전 우승을 차지, 2관왕을 했다. 김석범은 자신의 기풍을 전투와 실리의 겸비형이라 밝혔다.

김석범의 바둑 친구 기우(棋友)는 많다. 성산포에 고성중, 서귀포에 김찬익이 있고 예전 제주~부산간 여객선 제주호의 선주인 고훈범은 제북초교 동창 고두형의 큰 형으로 부산을 찾으면 늘 함께 바둑(3~4점 접는 바둑)을 두고 갈 때는 두둑이 용돈을 챙겨주는 후원자였다. 고두형과 매주 1회 목요일에 만나고, 수요일 로타리클럽 주회가 끝나면 수산인 김수진 회장과 늘 바둑을 둔다.

해방 이전 제주의 옛 바둑 고수들은 목포에서 내기 바둑을 많이 두었다. 1-20점에 10만원(화폐개혁 이전), 20-50점에 15만원, 50점 이상 지면 20만원짜리 까지 도박 바둑으로 최재0, 김봉0 등은 술 공장 등 가산을 모두 날렸다고 전한다.

김석범이 후배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은 일수불퇴(一手不退;한번 두면 무르지 않음)다. 한수, 한 번 결정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하고 물러서지 않고 되돌리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 그가 삶을 살아가는데도 매사에 신중하고 결정하면 밀고 나가는 것을 신조로 삼는다.

바둑을 보다 잘 두는 고수(高手)가 되는 길은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으로 요약한다. 조남철 국수에게 배운 것은 고수의 바둑을 그대로 옮겨보고(복기‧復棋), 자기가 두었던 바둑을 늘 복기하여 더 좋은 수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공부다. 또 좋은 선생(상수‧ 上手)의 지도를 받고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불가(佛家)에서 암탉이 정성껏 알을 품다가 20일쯤 되면 알 속에서 자란 병아리가 안에서 쪼며 나오려 할 때 어미가 동시에 밖에서 쫄 때 병아리가 세상에 나오는 것을 줄탁동시(啐啄同時)라 한다. 스승과 제자, 나와 너가 동시에 힘을 기울여 만드는 성과가 줄탁동시인 것. 이 이치가 바둑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바둑은 기억력과 창의력이 있는 어릴 적부터 배워 익히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어린 바둑 영재를 일찍부터 길러 내는 것이 한국 바둑을 바둑강국으로 만드는 길임을 밝힌다.

   
 
장승홍은? = 연합뉴스 기자를 거쳐 조선일보 사회부 차장을 끝으로 은퇴한 원로 언론인이다.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제주지부장, 제주불교법우회 회장, 제주도불교청소년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불교와 청소년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제주청교련 회장도 지냈다. 청년시절부터 다져온 바둑실력은 수준급이다. 제주바둑계의 원로와 청년을 두루 아우른 친교의 폭이 넓다. 최근 본인이 직접 취재현장에 나서 제주바둑계의 역사를 정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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