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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의 제육볶음(3)

“생각하면, 희망이란 본래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희망은 대지 위에 난 길과 같다. 애초부터 땅 위에 길이란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히 그 곳이 길이 되기 때문이다.”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래 전에 버젓이 있던 길을 새로 난 길인 양 이름을 붙여 또 길을 낸 듯이 설쳐대질 않나, 고작 한다는 일이란 허여멀건 시멘트와 거무튀튀한 타르를 덮어 길만 넓혀 놓고 개통식 연답시고 늘 다니던 이 길 주인 동네사람 제쳐놓고 고위직 사람 모아놓고 테이프를 끊습니다. 제주도의 올레길이나 지금도 공사 한창인 새 도로가 그렇습니다. 제주도와서 보기 싫어도 봐야 하는 일은 도로 닦는 공사현장입니다. 지금도 이만하면 길은 넉넉하지 않나 싶어 오래 살아온 제주도민에게 물어봅니다. 공히 하는 말.
“도나 시에서 토목공사 외에 할 게 없잖아. 육지도 마찬가지 아닌가? 연말 다가오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다 들어내고 새 것으로 교체한다며? 똑같지 뭐!”

 

간선도로는 주민생활에서나 경제적으로나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통행량이 적은 시골길까지도 확장하느라 제주도 땅과 흙이 온통 들쑤셔지고 있습니다. 분명 다른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어 이를 유네스코 등 국제적으로도 인정한다며 자랑하고 홍보하는 제주도청에서 이에 반한 토목공사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면 눈도 귀도 코도 벌렁 의아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육지와는 달라야 할 제주도입니다. 육지를 폄하해서가 아닙니다. 제주도의 자연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마음부터 들게끔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육지와 다름없는 토목공사로 길은 고속도로화되어 육지를 달릴 때와 별 다를 바 없어 무감흥해지고 맙니다. 제주도의 시골길에서 빨리 달릴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박정희 정권 때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워커힐이란 호텔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을 찾아보라 해서 건설되었다는 청계천고가가 삼십여 년 만에 헐렸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 땅에서만이 아닙니다. 국토개발과 일자리창출이라 하여 미국 땅에 칠십여 년 전에 세운 댐들을 이십 여 년 전부터 헐기 시작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남의 과거를 보면서 얻는 후발자의 이득은 두 번의 실수나 실패를 줄이는 실속이며 지혜입니다.

 

그러나 제주도에선 그들의 잘못된 과거를 답습하고만 있습니다. 도로를 내면서 다 파헤쳐지는 나무와 흙들을 보면 마음이 싸하게 아파옵니다. 저렇게 사라질 나무와 흙을 다시 채우고 메우려면 또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할까?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이 좋은 땅을 망치고 있는 현장이 세계 7대 경관을 자랑하는 제주도의 또 다른 자연입니다.

 

유럽이나 가까운 일본을 가보면 의외로 길이 좁습니다. 물론 그들의 간선도로는 무지 넓지만 그 외의 도로나 길은 놀라울 정도로 좁습니다. 불편하더라도 가능한 자연을 해치지 않는다는 개발의 기본선을 두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길이, 특히 지방도로는 꽤 꼬불꼬불합니다. 작은 길조차 직선길로 바꾸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길을 보게 됩니다. 이들이 건설이나 건축기술이 모자라서 이럴까요? 이들이 편의성이나 편리성, 그리고 합리성을 몰라 이러고 있을까요? 편리·편의·합리 따위의 말들은 이들에게서 나온 말이지 결코 우리가 만든 말이 아닙니다. 우리글이지만 외래어나 다름없는 단어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수입국이 더 야단법석을 떨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이젠 둘레길인가, 제주도의 조용한 숲길을 또 파헤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유 역시 같습니다. 편리성, 편의성, 안전성, 그리고 보호를 듭니다. 보호한다며 길을 내다니? 이런 어불성설이요, 얼토당토 아니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길은 이름이 아니며 유행으로 만들어질 도로 같은 길이어서는 안 됩니다. 길을 사랑한다는 자들이 이런 일들을 해대고 있으니 그들의 이중가면 행위에 유행을 쫒기 좋아하는 국민이 덩달아 몰려옵니다. 아파트로 다 바뀐 서울과 수도권이 이십년 후의 슬럼화를 우려하고 있는 것처럼 제주도의 삼십년 후를 보면 파괴로 인한 황폐화로 제주도다운 맛이나 멋이 사라질 것이 무지 우려되고 걱정됩니다. 육지와 같아지면 뭘 보러 제주도까지 오려할까요? 이 먼 제주도까지 와서 살려고 할까요?

 

'Bucket List'라는 말이 있습니다. 극단적인 표현을 빌자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 또는 ‘죽기 전에 꼭 한번은 살아보고 싶은 곳’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The Best of Bucket Lists’로 제주도를 거의 뽑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곳이 제주도입니다.

 

이제 제일 많이 간다는 올레길 7번 코스는 서울의 명동 거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자연의 길이 아니라 사람으로 빼곡하니 사람의 길, 저자거리가 된지 이미 오래입니다. 앞에선 담배를 피워대고 담뱃재가 날아들어 사람의 눈을 찌르는 불쾌한 곳, 왜 이리들 떠드는지 명동보다 더 시끄러운 곳이 되어버린 올레 7번 코스 길. 그들이 떠들어대는 소리에 지금 자연의 길을 걷는 것인지 저자거리를 걷는 것인지 분간이 안 섭니다.
바닷길을 저자거리로 만들더니 이젠 제주바닷길 오름길로도 모자라 제주도의 속살, 숲길까지 황폐화시키려고 작정을 합니다.

 

또 내 경험을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일본의 규슈 지역을 자전거로 두 달 돌아보니 그네들도 올레길 못지않은 길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작은 팻말에 그려진 약도 하나가 그 길을 안내해 줄 뿐이었습니다. 분명 단언하건데, 일본의 그 길은 원래의 올레길과 다를 바 없이 자연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길은 보호되면서도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삼나무가 빼곡한 숲이지만 그들은 사유재산이라 해도 함부로 삼나무에 손을 대질 못합니다. 남의 것 가져와 새 것으로 바꾸는 데엔 천재적 소질을 갖고 있다는 일본인들도 그냥 놔두는 게 그래도 길이며 자연입니다.

 

삼나무 숲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달리며 연신 입을 쩍 벌리며 부러워해야 했습니다. 그만은 못하더라도 제주도의 삼나무 숲은 장관이며 제주도의 가장 큰 재산입니다. 그들만 못하기에 더 보호해야 할 삼나무 숲이며 제주도의 재산입니다. 이것이 새로 난, 새로 낼 도로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편리성, 편의성, 한편 보호라며 파헤쳐지는 제주도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제주도의 숲길은 참으로 색다릅니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로 짓밟히지 않아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낙엽이 쌓인 부엽토를 밟고 걷는 기분이 마치 탄력 있는 스폰지 위를 걷는 듯합니다. 푹신합니다. 그 옆으로 조릿대가 펼쳐 있습니다. 그러나, 발길이 많을수록 그 길은 넓어질 수밖에 없고 넓어진 만큼 자연은 사라지고 맙니다. 이럴까봐서 미리 길을 닦는다고 하더군요. 이럴까봐서 미리 부엽토 위에 나무다리를 세웠다고 합니다. 무언가 앞뒤 말이 안 맞습니다. 이 좋은 제주도 숲길도 이미 저자거리가 돼버린 올레 7코스처럼 곧 변하고 말겠구나라고 생각되니 다시 가슴이 아려옵니다.

 

길이 개발되어 사람으로 짓밟히게 되면 어찌 될 것인가. 더욱이 길로써 유행을 만들고 있다면? 잘 살아보자 식 무대포 박정희 식의 개발과 이런 따위의 개발과 다를 게 뭐가 있는가? 화도 납니다.
경제가 아닌 자연으로 장난을 치는 짓이기에 더 나쁩니다. 더 욕을 먹어야 합니다. 자연을 걷자던 그들이 왜 자연을 망치려고 작정을 한 것인지... 제발 유행 따위로, 한갓 제 명예 따위로 자연의 길 걷기를 유치하고 유해하게 만들지 말면 좋겠습니다. 자연은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자연스러움은 그대로 놔두는 것입니다. 올레길을 앞세운 어떤 집단이나 그 이기적, 이권적 개입은 이제 없어져야 하고 없애야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편리성이나 편의성의 가면에 이젠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못하면, 제주도민이 못하면 제주도 밖에서라도 막고 지켜야 합니다.

 

중국인 루쉰의 얘기를 다시 들어봅니다.
“생각하면, 희망이란 본래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희망은 대지 위에 난 길과 같다. 애초부터 땅 위에 길이란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히 그 곳이 길이 되기 때문이다.”
없던 곳에 걷는 사람이 많아져서 자연히 생기는 자연의 길엔 희망이 늘지만, 있던 길마저 인간의 손에 기획되어 만들어지고 다듬어져 꾸며진 부자연스러운 인공의 길엔 희망보다는 착시나 착각이 늘뿐입니다.
“나, 몇 코스 다녀왔어.”
여행인가요? 진정한 여행일까요? 인증샷 하나 갖고 오는 착각의 여행, 창피하진 않는지요?

 

☞오동명은?=서울 출생. 경희대 경제학과를 나와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한국기자상과 민주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진으로 세상읽기]·[부모로 산다는 것]·[신문소습격사건]·[일본자전거여행] 등 다수의 책을 냈다.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작자 주= 칼럼제목 제육볶음은 "주도와 지가 제대로 버무려져 더 맛깔스런 볶음" 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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