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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신개념 웹연재소설] 옛 우표첩(33)

3 서울로 향하는 내내 다시 만나 더 깊이 만날 수 있을 것 같던 세종이와 더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세종이는 어디엔가 살아있는 듯, 살아서 자기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생각에 규범은 이별의 슬픔을 잊을 수 있었다.

 

‘또 기다리는 거야. 만날 날을 기다려왔듯이 또 그렇게 기다리는 거야.’

 

기다림은 품은 과거로 맞을 미래를 더듬고 보듬는 당장의 현재이다. 기다림은 가슴이며 눈이며 감촉이다. 이런 기다림은 아프지만 슬프지 않았다.

 

‘기다림이 있는 한 우린 동행하고 있는 거야 그치, 세종아.’

 

메마르기 마련인 감정은 그 깊이가 깊을수록 더 이성적으로 바뀌어갔다.

 

산다는 것을 생각한다. 산다는 것들로 생각이 잡다해지면 산다는 것, 그 하나로 집중하게 하며 이 또한 생각이다. 생각은 산다는 것이며 생각으로의 긴 여행 그리고 오랜 칩거는 나를 꿈틀되게 만든다. 생각을 움직이게 한다. 생각처럼 행동하라 한다. 고로, 그 집약된 하나의 생각, 즉 자기철학을 행동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맞다. 제대로란, 제자리를 말하며 제몫을 의미한다. 생각도, 행동도 수태보다는 잉태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지는 것이 아니라 품어야 생각이 행동이 된다.

 

규범은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세계를 이렇게 바라본다. 움직이지 못하고 정체된 채로 살아온 자신을 되돌아본다. 내 안에 나의 철학은 품고 있는가.

 

‘나는 누굴까.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국 또 ‘나’이다. 자각이 불현듯 찾아들듯이 ‘나’없인 절대 불가능하다는 인식으로 나는 깨어난다.

 

‘나는 무엇인가.’

 

차창 밖에 스쳐 지나치는 모든 것들이 그 무엇을 다 각기 가지고 있듯이 나도 무엇이어야 한다.

 

‘무엇으로 내가 사는가. 무엇으로 내가 존재하는가.’

 

나를 찾는 일은 벗어남에서 출발한다. 남들과 같음 또는 남들과의 비교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나를 찾는 시발점이다. 다수에 의한 전형을 벗겨내며 독립된 자기를 세울 때 나는 무엇이고 이로 인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깨우쳐준다.

 

 

규범은 아픈 눈물이 메마를 즈음 감옥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감옥에서의 갇힌 생활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감방에 갇히던 첫 날, 사면의 회벽 외에 아무 것 없는 그 좁은 공간에 드러눕자 혼자가 된 자기에게서 혼자의 의미를 음미했다. 하지만 엄마의 뱃속, 자궁 속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포근하고 따뜻했다. 혼자라는 게 포근하고 따뜻했다. 엄마에게 갇혀 지내온 삼십여 년이 엄마의 뱃속에서 품겨 키워졌던 십 개월로 단순해졌다. 삶은 품는 것이라고 일러줬다. 알처럼 엄마의 품속에서 키워진 십 개월의 가르침은 자기를 평생 껴안고 살라는 깨우침이었다. 수태가 아니었다. 잉태였다. 가진 게 아니라 품음을 감각하게 하고 감지하게 한 것은 엄마의 뱃속에서 가르친 최초의 본능이었다. 삶을 품으라는 가르침은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포근해야 하고 따뜻해야 하는 삶을 품으라고 엄마는 감각으로 일러줬다.

 

하지만, 세상에서의 엄마는 달랐다. 포근했을 진 몰라도 차가웠다. 엄마는 현실 속에선, 즉 배 밖에서는 안이 아닌 바깥세상과 타협했다. 바깥세상이란, 엄마가 아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진열된 상품 같은 인간이었다.

 

‘너는 어때야 해. 너는 이렇게 되어야 해.’

 

인간은 인간에 의해 존재의 존귀함을 상실하고 말았다. 본존재는 현존재로 대치되었다.

 

규범은 남을 가뒀던 검사의 자리에서 자기를 가둔 죄수로 바뀌면서 비로소 현존재가 아닌 본존재, 자기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은 옛 친구를 찾는 것에서 행동화되었다. 그러나 이런 친구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잃은 것에서 얻게 된 것이란 결국 삶은 순전히 자기자신에게 달렸다는 것, 다른 어느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완전히 자기로부터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종아, 고맙다.’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아파도 슬프진 않겠다던 세종이와 규범이는 아픔이기도 한 슬픈 재회를 하고 있었다.

 

‘마주하며 바라보지 않는 환영 같은 만남도 있구나. 나란히 앉아 함께 앞을 바라보는 동행 같은 만남도 있구나. 내 눈이 네 눈이 되어 함께 바라보고 내 귀가 네 귀가 되어 같이 듣고 내 손이 닿는 곳에 네 손도 닿아 더불어 느낄 수 있는 영혼의 만남도 있구나. 이 모두, 만남이겠지?’

 

출발 당시엔 서울까지 가기로 해서 끊은 서울행 버스표를 내고 중간경유지 양평에서 내렸다. 한없이 걸었다. 방향도 없이 걸었다. 무작정 목표도 없이 걸었다. 목적이 있다면 떠나보내는 일. 강변 뚝방에 닿았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뚝마루에 걸터앉아 내내 안고 온 농구공을 가슴 앞에 떨어트렸다. 두어 번 위로 튀어 오르던 공은 언덕에 달라붙어 굴러 내려갔다. 바위에 부딪혀 한 번 높이 튀어 오르더니 강물이 바스켓인 양 그 위로, 그 안으로 농구공이 빨려 들어갔다.

 

‘잘 가라, 친구.’

 

떠내려가는 농구공이 몸을 떨듯 좌우로 흔들렸다. 떠나는 친구의 등이 시리게 들썩였다.

 

“규범아, 이 공이 따뜻하다. 만져봐. 나 혼자 갖고 놀 땐 차가웠거든. 근데 너랑 노니 이 공이 따뜻해진다.”

 

“체온이 남아서가 아닐까?”

 

“나 혼자도 체온은 남잖아. 너하고 나하고 체온을 나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네. 그렇겠구나. 마음도 나누고 있잖아. 마음으로 이 공이 따뜻해졌을 거야.”

 

멀어지며 콩처럼 작아진 공마저 사라지고 없다. 사라졌다고 해서 없어진 것은 아닐진대, 대낮 하늘에 별들이 떠 있는데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 공은 닳고 헐어 놀 수 없게 되어도 너랑 나랑 이렇게 나눈 시간들은 잃어버리지 않겠지.”

 

친구를 보내고 서울로 돌아왔지만 엄마마저 규범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엄마가 외로웠었나보더라.”

 

아내를 잃고도 문재수는 아들 앞에서 냉혹하게 느껴질 만큼 남의 얘기하듯 덤덤하게 말했다. 한소연은 편지지 세 장에 편지를 쓴 직 후 아들에게 전화를 넣었다. 정선에 있을 때 엄마로부터 온 전화를 규범은 일부러 받지 않았다. 소연은 남편과 아들·딸에게 각각 쓴 세 통의 편지를 라이터불로 다 불살라버렸다. 그리고 문재수에게 전화를 넣었던 것이다.

 

“후회한다는, 미안하다는, 그렇다고 고맙다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당신을 만난 것이 행운으로 알았는데 우리의 만남은 지나치게 감상적이어서 즉흥적이었지요. 짧게 끝냈어야 할 만남이었지만 생긴 자식들로 인해 우리의 관계는 지루해지고 말았지요. 당신의 사랑 속엔 책임이 없었습니다. 있었다면 그저 사랑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랑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대접 받을 수나 있을까. 솔직하게 한 마디는 당신에게 하고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신은 결혼과 동시에 나를 모욕했습니다. 이 모욕감 역시 내가 선택한 일이니 누굴 탓할 수가 있겠어요. 나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으려고 아이들에게 빠져 살 수밖에 없었지요. 당신 같은 어른으로 내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나 역시 아이들에게 준 사랑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때는 아이들이 내게서 멀어진 뒤였습니다.”

 

듣고만 있던 문재수가 짧게 대답했다.

 

“당신, 무슨 일이 있소? 강한 당신의 뜻대로 살게 내버려둔 것이 나의 무책임이라 한다면 나도 할 말은 없소. 방관이 최선은 못 되어도 차선일 수 있는 게 관계의 지혜라고 여기는 게 나란 것을 알고 있을 것이오. 내가 그랬소. 방관할 수밖에 없었소, 당신 앞에선.”

 

“방관은 내겐 방치였고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게 결국 모욕이 되었구요. 우리의 관계는 여기서 끝내는 게 좋겠습니다. 아니, 끝내야만 합니다. 이제 당신과 자식들을 볼 시간이 내게도 없게 됩니다.”

 

한소연은 아들 문규범 검사의 간통사건으로 변호사 동창을 자주 만났다. 그 앞에서 취하고 싶다던 날, 한소연은 자기의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변호사 동창은 옛 짝사랑의 흐트러진 모습을 흘려보내지 않았다. 취해 정신을 잃은 옛 짝사랑의 몸을 다 벗긴 뒤 그녀의 몸 위에서 정복자의 양태대로 그가 의기양양하게 한 소릴 해댔다.

 

“그 대단하던 한소연이 고작 이 정도 여자밖에 안 되었나?”

 

이 말이 한소연의 헝클어진 정신을 바짝 고쳐 듣게 만들었다. 고작? 그랬다. 고작 여기까지 바동바동 버티고 살아왔던 것에 불과했다. 결혼 후 삶에 분명한 목적이 생겨났다. 여자는 가정에 겉도는 남편의 자리에 자식을 채워 넣었다. 이들을 남이 부럽게 키워내는 일이었다. 이는 자신이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소연, 스스로는 이를 부정했다.

 

‘아이들을 위해서야.’

 

생활인으로는, 더욱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경제적 무책임은 물론 정신적 지주가 돼주지 못한 남편을 보면서 한소연의 목표는 더욱 공고해졌다. 온전한 사회인으로 당당하게 키워내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 목표는 온전하지도, 당당할 수도 없었다. 당연히 감사해 할 것 같은 아들과 딸마저 엄마 앞에서 웃는 일이 없었지만 더욱이 거스름 하나 없이 순순하게 키워진 아들 문규범은 엄마 한소연에게 저항하는 작은 말 한 마디조차 않고 엄마의 뜻을 잘 따라줬다. 그러나 딸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엄마에 저항했지만 엄마의 의도에 의한 의사라는 자리만은 유지했다. 한소연은 자식농사의 목표에 충분히 다다랐다고 스스로 자족하며 서울대 법대와 서울대 의대로 진학한 아들과 딸이 성공했다고 믿었지만 그 이후 그들이 멀어져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소연은 유일한 할 일인 자식사랑을 잃으면서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다.

 

‘내가 누구 때문에 살아왔는데.’

 

상실감은 남탓에서 생겨나지 내탓에서 그것이 번식하지 않는다. 상실감은 성취감의 반대가 아니라 상대어이다. 우표첩을 빼앗긴 의대생 딸인 나는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우리 이렇게 다 잘 키워냈으니 이제 엄마의 삶을 살아보세요.”

 

의외일 나의 저항에도 엄마 소연은,

 

“너희들이 내 삶의 모두인 것을 네가 모른단 말이니?”

 

나는 엄마가 요구하고 있는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알았어요. 이제부터 나도 내 삶을 살아볼 거예요. 엄마는 그랬던 것처럼 알아서 하세요.”

 

나는 의대 입학과 동시에 외국으로, 결국 엄마에게서 도망칠 생각을 굳혔다. 하지만 아들 문규범은 달랐다. 아버지 문재수를 보면서 엄마가 측은했고 엄마가 여자 가장으로서 애쓰는 모습을 존경스럽게 여겼다. 그러면서도 똑똑하면서 착하게 키워진 규범에게 불만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웃음을 잃은 얼굴로 나타났다.

 

“엄마는 스스로 삶을 결정하고 살았다. 죽음도 엄마의 결정이니 우리가 존중해줘야 한다.”

 

아버지에게 한 번도 대들어본 적이 없는 규범이 이 말을 듣고 숨겨놓고 살아온 아버지에 대한 대항감정을 폭발하고 말았다.

 

“존중이요? 목숨을 스스로 끊어야 할 엄마를 존중하라구요? 그녀의 남편인 당신에겐 엄마가 도대체 어떤 존재였나요? 당신의 그 존중이란 말은 도로의 현수막에서 흔히 보는 안전운전이나 공장에 붙어있는 안전제일 같이 전시성 구호로 들리는군요. 당신에겐 가족이 당신의 전시용인가요?”

 

문재수는 당신이란 아들의 표현에도 달리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이내 전화를 끊으려 했다.

 

“어린 네가 무엇을 알겠니. 더 커봐라.”

 

진짜 어렸을 때나 나이 서른이 넘은 지금도 듣는 이 말로 언제나 점잖게 그러나 오불관언하며 회피만 하려는 아버지를 아들 규범이 전화 밖으로 불러냈다. 쓰고 산 가면이 벗겨질 만큼 머리를 퍼뜩하게는 만들었을 것이다.

 

“야, 이새끼야. 니가 한 여자의 남편이고 두 아이의 아버지 자격이 있는 놈이긴 해?”

 

문재수는 끊고자 했던 전화를 원하던 대로 바로 끊어버렸다. 규범은 친구 세종이의 죽음과는 달리 엄마의 죽음에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어린 세종의 죽음은 억울했지만 엄마의 죽음을 억울하게 볼 수는 없었다. 세종이는 타인에 의한 희생이기에 세상이 저질러놓은 타살이지만 엄마는 아버지 말대로 삶도 죽음도 자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그 선택의 시발은 아버지 문재수였을지 모르지만 그 책임은 모두 엄마에게 있다고 보았다. 세종이가 그랬듯이 엄마도 유서 한 장 남기지 못하고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한소연은 무언가 남기고자 했지만 스스로 부질없음을 생의 마지막에 절감했다. 아들이 전화를 받지 않자 깨달은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전전으로 혼자인 자기 몫이어야 했다. 하지만 세종이가 일기장을 남겼듯이 소연은 딸에게서 빼앗은 딸의 어릴 적 우표첩을 남겼다.

 

전문의가 되는 날, 돌려주마.

 

엄마의 글씨가 보였다. 전문의가 된 뒤에도 여전히 한소연은 그 우표첩을 나에게 되돌려주지 않았다.

 

잃어버린 지난 시간들이 여기에 들어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다니...

 

역시 엄마의 글씨였다. 죽어서야 돌아온 우표첩을 오빠에게서 뒤늦게 받아든 나는 얼룩이 져 심하게 구겨진 우표들을 발견했다.

 

‘엄마의 눈에도 눈물이 있었나?’ 글=오동명, 그림=정세리/ 2편으로 계속>>>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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