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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의 '기상천외-제주'(5) ··· 영국을 세계강국으로 만든 힘

1742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을 놓고 영국과 프랑스가 유럽 본토에서 전쟁을 벌이자 인도에 있던 양국의 동인도회사 간에도 충돌이 발생했다. 당시 인도의 프랑스 총독으로 부임한 조제프 프랑수아 뒤플렉스(1697~1763)는 뛰어난 장군이었다. 그는 ‘세포이’로 알려진 인도 병사들을 정규군에 수용해 전투능력을 증대했다. 유럽에서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1740~1748년)이 벌어지자 프랑스는 인도에서 영국을 공격할 빌미를 찾았다. 뒤플렉스는 프랑스군과 세포이부대를 동원해 영국이 점령하고 있던 마드라스를 함락했다. 1차 전쟁 결과 프랑스가 인도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떠올랐다.

열세에 놓여있던 영국에게 승리의 여신은 로버트 클라이브(1725~1774)를 통해 손짓했다. 전투에 있어 전술적 핵심은 “기습, 역량의 집중, 통솔, 단순성, 신속한 행동, 기선”이라고 몽고메리 장군은 말한다. 인도전의 영웅 클라이브는 이런 전술을 가장 적절하게 응용했던 장군 중 하나였다. 그는 또 전투에서 기상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지휘관이기도 했다. 클라이브 장군은 인도인 병사로 영국군대에 복무케 하는 일명 ‘세포이’ 부대를 영국군에도 창설했다. 그는 1751년 단 200명의 영국군과 600명의 세포이로 아르코트 기지를 수비해 뛰어난 지휘 능력을 선보이면서 명성을 얻었다.

한편 양측은 1757년 6월 23일 무르시다바드에서 30㎞ 떨어진 플라시 평원에서 인도의 운명을 뒤바꾼 전투를 벌이게 됐다. 영국의 클라이브 장군은 먼저 전투가 벌어질 플라시 지역의 기상조건을 면밀히 검토했다. 그는 이맘때 소나기가 자주 쏟아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당시 무기 기술로 대포와 총은 비가 올 경우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그는 비가 오더라도 지장을 받지 않을 방법을 강구했다. 그리고는 위치가 높은 망고 숲을 차지하고 병력을 은폐했다.

캘커타의 승리와 병력의 우세에 도취한 상대편 벵골군은 여유롭게 플라시로 진군해왔다. 클라이브는 진군하는 벵골군에 기습을 가했다. 대포와 총을 이용해 집중 공격한 것. 뜻밖의 기선을 제압당한 벵골군은 혼비백산했다. 때마침 하늘에서는 뇌우와 함께 엄청난 소나기가 쏟아졌다. 철저한 준비를 한 영국군은 소나기에도 아랑곳없이 지속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에 젖은 인도의 대포와 총은 그저 고철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인도군은 대혼란에 빠지고 갈팡질팡 하면서 무수히 죽어갔다. 인도의 주력군이 전멸했고 벵골 왕 다울라는 달아나고 말았다. 단 한차례의 너무나도 싱거운 전투로 벵골 제국은 무너져 버린 것이다. 이어 벌어진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영국은 포콕 제독과 에어 쿠트 경이 두 차례 승리를 거둠으로써 인도의 영국지배는 견고해졌다.

플라시 전투는 영국이 인도에서 토지가 비옥하고 산업이 발달한 벵골 지역을 차지했다는 사실 외에도 라이벌이었던 프랑스 세력이 이로 인해 완전히 소멸했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영국의 벵골 정복은 곧바로 인도 전체를 차지할 수 있는 길을 확보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인도 비의 신인 인드라가 영국의 손을 들어주면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영국에 절대적 승리를 가져온 명장 클라이브는 누구일까? 클라이브는 문제아였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상업학교에 진학했으나 성격이 과격해 퇴학을 거듭하며 결국 졸업하지 못했다. 그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인도 동인도회사의 말단 사무원으로 취직했다. 그의 선택은 옳았다. 인도는 그에게 놀라운 기회를 준 것이다.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수차례 전투에서 공을 세워 동인도회사 직속 군대의 대위 계급장도 따냈다. 결정적인 기회는 1757년 28살 때 플라시에서 찾아왔다.

 

인도군 지휘자를 매수하고 날씨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덕으로 대승을 거둔 것. ‘하늘이 낸 군인’ 이라는 평가를 얻으며 벵골 행정관으로 임명됐다. 그는 인도의 자치권에 영국의 조세권이라는 이중 행정체계로 인도의 돈을 빼내갔다. 벵골 행정관을 두 차례 지내는 동안 그의 재산은 천문학적으로 불었다. 돈과 명성의 힘으로 하원의원에 당선되고 남작 지위까지 받았다. 영국에서 그는 영웅이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일이 있다. 작은 섬나라인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든 힘은 무엇이었을까?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줘 말썽꾼 클라이브가 성공하게 해 줬고 결국 영국은 그를 통해 엄청난 부와 세계적인 강국으로 떠올랐으니 말이다.

 

반기성은?=충북 충주출생.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공군 기상장교로 입대, 30년간 기상예보장교 생활을 했다. 군기상부대인 공군73기상전대장을 역임하고 공군 예비역대령으로 전역했다. ‘야전 기상의 전설’로 불릴 정도로 기상예보에 탁월한 독보적 존재였다. 한국기상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군에서 전역 후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위원을 맡아 연세대 대기과학과에서 항공기상학, 대기분석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기상종합솔루션회사인 케이웨더에서 예보센터장, 기상사업본부장, 기후산업연구소장 등도 맡아 일하고 있다. 국방부 기후연구위원, 기상청 정책자문위원과 삼성경제연구소, 조선일보, 국방일보, 스포츠서울 및 제이누리의 날씨 전문위원이다. 기상예보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대통령표창,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날씨를 바꾼 어메이징 세계사>외 1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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