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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호의 '제주를 말한다(4) ··· 식게정치 청산하고 거대한 도약의 틀 만들자

식게를 담합의 정치적 고리로 이용하는 제주 정치인들

 

바야흐로 제주에 정치의 계절이 왔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터넷 등 SNS에서는 출마 예상자들에 대한 촌평 경쟁이 뜨겁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성추행 지사” “식게집 지사” “뺑소니 지사” “양치기 지사”가 아닐까 싶다.

 

해마다 설․추석이 되면 귀성·귀경전쟁이 벌어진다. 극심한 교통정체 속에서도 명절을 챙기는 이유는 고향에 계시는 부모와 친척을 만나는 것 외에 제사가 중심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제사는 본래 고인을 추모하고 효를 실천하는 유교적인 문화에서 유래하였다. 옛사람들은 제사를 통해 생전처럼 부모의 사랑을 듬뿍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 제사를 소중히 여겼다.

 

이러한 제사의 풍습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있다. 이전에 비해 더욱 가족 중심의 일로 단촐하게 치러지고 있다. 그런데 제주의 식게(제사) 풍습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듯하다. 식게를 담합의 정치적 고리로 이용해 자신들의 집단사회를 구축하려는 제주 정치인들의 퇴행적 정치셈법이 작용하면서 숭고한 제사의 취지가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담합의 집단사회, 혁신과 창의의 가치창조 성장엔 도움 안돼

 

제주 정치인들은 식게집 등 경조사의 공간을 통해 담합을 위한 집단사회를 만들어 간다. 특히 모 인사는 도민들의 대소사는 물론 제사집까지 방문한다고 해서 제주 말로 '식게집 도지사'라는 별칭이 붙었을 정도다.

 

이러한 정치적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집단사회에 편입이 되면 도민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한 충성을 더 강조하게 된다. 제주의 '궨당(친척) 문화'가 존속, 심화되는 이유다. 집단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폐쇄적 집단사회는 양적 성장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혁신과 창의를 필요로 하는 질적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 성장 패러다임은 종전 규모의 효과에서 창의와 혁신, 그리고 모든 생태계의 안착과 유기적 협력을 통해 가치의 창조를 중시하는 쪽으로 전환되고 있다.

 

집단사회의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제주의 궨당사회처럼 리더를 중심으로 정해진 노선에 따라 집단으로 움직이는 소위  '철도형 사회'다. 관광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철도형 사회를 상징한다. 철도형 사회는 초기 사회관계의 기반을 형성하는 데 많은 비용과 노력이 소요되지만 한번 구축이 되면 지속적으로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철도형 시스템으로 일본은 국민적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결집시키면서 지난 20세기를 풍미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본은 각종 담합으로 보호와 진입장벽을 높여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막고, 패거리주의·폐쇄주의를 고수하면서 편안한 현실에 안주하는 선택을 했다. 이러한 현실 안주 사회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인들은 각종 경조사 모임에 얼굴을 수시로 내밀며 담합에 기대었다. 제주 시껫집 담합정치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현실 안주 성향의 일본의 집단사회는 당연히 사고의 경직성을 낳고 창의적 대응에 한계를 보이면서 머지않아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경제 강국 일본을 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맞게 한 바로 그것이다. 가이드의 깃발 따라 여행하던 시대가 저물었듯이 말이다.

 

제주의 식게집 담합 집단사회, 어떤 결과를 초래하나

 

제주 사회는 정치인을 중심으로 너도나도 식게집 정치에 참여하면서 담합적 모임 중시의 집단사회로 치닫고 있다. 실력보다 연줄이나 관계가 중시되는 사회는 결코 창의와 혁신을 기반으로 하는 가치 창조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가치 창조시대에 필요한 창의와 혁신은 담합이 아닌 치열한 경쟁에서 나오며, 그 바탕은 사회기반구조의 질적 수준에 있다. 제주 사회가 가치창조의 선진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불공정한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고 담합구조를 혁파해 공정경쟁 기반을 확충해 나가야 한다. 사회기반구조의 확충과 질적 향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제주경제가 저성장의 굴레에서 빠져나와 지속성장 궤도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더 더욱 그렇다.

 

이와 같은 식게집 정치의 폐해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을까?

 

첫째, 집단사고의 오류다. 제주의 궨당사회처럼 응집력이 높은 동질적 집단에서는 ‘우린 잘못된 결정을 할 리 없다’는 맹신을 바탕으로 문제를 특정한 사고의 틀 안에서만 바라보고, 이의(異議)를 제기하는 것을 억제하는 경향이 쉽게 작동한다. 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제주 사회의 모든 현안을 배타적이고 근시안적 자기안위라는 가치관 속에 가두게 되며 타자(他者)와의 공존을 거부하고 ‘닫힌 사회’로 치닫게 한다.

 

둘째, 관료주의의 심화 확산이다. 집단사회는 국제자유도시의 완성을 위해 창의와 혁신이 강조되어야 할 제주사회에 기회주의와 기득권 유지로 점철된 기존의 관료주의를 더욱 심화시켜 지역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가로막는다. 관료주의는 자신이 속한 작은 집단의 최적 합리성만을 철저하게 추구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국가나 조직 전체를 위한 종합적인 판단과 포괄적 문제 해결에는 매우 취약하다. 관료주의가 확산되면 제주 사회의 활력 감퇴로 경제까지 피폐해지는 이유다.

 

셋째, 공정경쟁 기회의 박탈이다. 식게집 정치는 제주 특유의 궨당문화와 연계되면서 제주 사회에 연줄이나 관계에 기반을 둔 관행과 문화가 깊게 자리잡게 되었다. 이는 당연히 제주사회에 공정경쟁의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궨당문화에는 나름의 공동체적 장점이 있다. 문제는 궨당문화를 내건 폐쇄적 파벌주의와 음습하고 퇴행적인 행태로 인해 제주사회가 후진적 패거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로 인해 제주사회는 몇몇 극소수 기득권 세력들의 불공정이 판을 치면서 소수의 승자를 위해 다수가 종속되고 희생하는 일종의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세대 간 분리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특히 수십 년간 자신만의 아성을 궨당의 이름으로 구축하면서 새로운 세대의 진입을 막는 기득 정치권의 폐쇄적이고 패권적인 행태는 매우 우려스럽다. 이로 인해 제주 사회의 활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로마 제국의 멸망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집단 내부의 분파와 불평등이 커지면서 사회적 합의가 흔들리고 결속력에 금이 갔기 때문이다. 제주 사회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넷째, 식게집 정치에 함몰은 지사의 여유와 공백을 빼앗아 구멍가게식 도정 운영에 갇히게 한다. 지도자는 판단도 움직임도 무거워야 한다. 지도자는 소소한 것까지 부산스럽게 챙기기 보다는 정책 운영의 큰 방향을 잡고 자신을 대신해 세상 구석구석을 살필 사람들을 잘 골라내 권한을 주고, 그들이 정책과제를 차질없이 수행하도록 독려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려면 여유가 필요하다. 비어 있어야 사람들을 흡수하고 시대를 끌어갈 수 있다. 해군기지 등 다양한 정책 현안으로 헝클어진 제주사회를 마음을 비우고 찬찬히 바라보면 해답이 떠오를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1년에 두 번씩 태평양 해안가 2층짜리 오두막집에 틀어박혀 '생각 주간(Think Week)'을 갖는다. 1주일 동안 가족도, 회사 간부도 접근금지다. 식사를 날라주는 사람만 가끔 들른다. 게이츠는 완전히 혼자가 돼서 직원들의 보고서를 읽고 산책하고 아이디어를 짜낸다. 넷스케이프를 제압한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잉태된 곳이 바로 거기다.

 

퇴행적 식게집 정치 그만하고 거대한 도약의 틀 만들어 내야

 

요즘 제주 사회는 강정 제주해군기지 문제 등 각종 현안이 제자리에서 지지부진하면서 말 그대로 ‘시계 제로’인 상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의혹의 전국 확산, 경기침체 장기화와 이에 따른 극심한 민생고, 계층간·세대간 갈등의 심화, 인구구조의 급격한 노령화로 인한 경제활력 저하, 치솟는 청년실업률, 도민 삶의 질의 추락, 올레길 관광객 살인사건 등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제 서민들의 생활고를 알리는 소식들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이러한 혼란과 갈등은 제주 도민들을 어둡고 참담한 좌절과 절망의 긴 터널 속으로 내몰며 앞으로 더욱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우울한 암시를 드리우고 있다. 앞으로 도정이 마주해야 할 진실이란, 진정한 도민 합의가 없으면 풀기 어려운 수많은 난제가 쌓여있는 데다가 어두운 제주 경제에 또 다른 난관이 설상가상으로 중첩해 밀려올 것이란 것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제주 도지사는 그 어느 때보다 뛰어난 리더십과 돌파력이 요구된다. 도민의 마음을 읽어 주눅든 자존감을 세워주고, 시대 흐름과의 조화 속에 혼란과 좌절의 고리를 끊어 지평을 더 넓혀 줄 지도자를 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 도정에서는 그 점을 찾아낼 수가 없다.

 

언제부턴가 제주 정치에는 지역사회와 도민을 위한 어떤 비장함이나 치열함이 보이지 않는다. 제주의 상황이 매우 엄중한데도 제주 정치인들은 여전히 시껫집을 전전하며 퇴행적 정치셈법에 의한 사익편취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정치적 사익을 도민의 이익으로 포장해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채우려는 저급한 행태는 미래 제주를 위태롭게 할 뿐이다.

 

이제는 정치인들의 성찰과 각성 속에 갈등과 증오로 잘게 찢겨져나간 제주 사회를 용광로에 녹여 하나로 된 새로운 거대한 도약의 틀을 만들어 내야 한다. 우리 국민은 갈등하고 싸우다가도 공통의 목표만 있으면 한 데 뭉쳐 폭발적인 공동체 에너지를 내뿜는 신비로운 민족이다. 국가부도 위기 앞에서 난동과 방화로 저항하는 유럽 국민의 모습과 IMF위기 때 장롱 속 금붙이를 꺼내 모았던 우리의 너무 다른 모습이 이를 방증한다.

 

따라서 제주 사회는 식게집 정치의 담합적 집단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역사회 전체의 역량 집결과 구심점이 될 강렬한 공동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것을 향해 나아가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제주발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과 더불어 제주사회의 균열을 아물게 할 처방을 찾아내야 한다.

 

제주 정치인들이여! 그대들이 도민을 위하는 진정한 지도자라고 자처하려면 우리의 미래에 독이 될 것이 너무나 자명한 담합적 식게집 정치에 기대지 말아야 한다. 이게 불가하다면 이름 뒤에 따라다니는 허울뿐인 ‘지도자’란 꼬리표를 스스로 떼어냄이 바람직 하지 않을까? 오늘도 제주의 역사는 그대들을 걱정스레 지켜보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고운호는?

 

=1979년 한국은행에 발을 들여 놓은 뒤 제주출신으론 처음으로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이 됐다. 2005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3년간 재임하는 등 한국은행에서만 31년간 재직, 외길 금융인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으로 재직중엔 지역경제의 콘트롤타워를 목표로 제주경제포럼을 출범, 제주도지사와 함께 공동대표 역을 맡아 제주의 경제와 미래방향 논의의 불을 지핀 인물이다. 제주본부장 재직시절엔 제주본부가 한국은행 지역본부중 최우수본부로 지정됐다. [제주경제의 선진화를 위한 외침] 등 다수의 저서와 연구논문,자료를 냈다. 한국은행에서 퇴직한 최근에도 활발한 저술과 기고활동을 펼치며 제주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영훈 전 도의원이 원장을 맡고 있는 제주미래비전연구원의 이사장도 맡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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