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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죄다. 나는 다만 나치독일의 일원으로서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장교로서 유대인 학살을 수행했던 아이히만에 대한 전범재판 현장. "상부의 명령을 수행한 자신은 무죄"라며 아이히만이 항변했다.

 

요즘 제주사회가 들끓고 있다. “경찰은 명령만 내리면 가는 거 아냐? 싸우다보니 몰라갖고 할 수도 있고…. 폭도 ×의 ××들이 끼어가지고….” 출입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있었던 도지사의 말이 문제가 됐다.

 

그런데 언론을 위시한 도민사회의 타박이 ‘폭도××’라는 점잖지 못한 어격(語格)에만 쏠려있다. 물론 제주도정의 최고 책임자가 뱉어낸 말이 도민 사회에서는 거의 금기시 되는 것이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를 우린 넘어가고 있다. 그저 지나 버릴 말이 아님에도 그렇다.

 

명령에 따라 유대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이나 역시 명령에 따라 4·3당시 부녀자, 어린아이들까지 집단으로 쏘아 죽인 경찰은 무죄인가?

 

재판을 참관한 여성철학자 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 ‘철저한 무사유(無思惟)’의 책임을 부가한다. 상부의 명령이 유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유대인의 입장에서 자신이 수행할 임무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성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스스로의 의지로 생각하지 않은 죄가 있다는 것이다.

 

명령을 수행할 수 밖에 없는 경찰에 대한 연민은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명령을 수행하는 경찰의 총구 앞에서 영문도 모른 채 떨고 있는 시골 촌옹과 부녀자, 아이들까지 좌익일지 ‘몰라갖고 쏠 수도 있다’는 무사유의 극치는 도지사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참담하기 그지없다.

 

또 한 가지. 유족회와 경우회의 화해를 도모하는 식사자리에 도지사가 참석한 걸 도민사회는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간담회에선 추가적인 그의 액션을 기대했지만 그는 "관(官)이 그런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도지사는 도정의 책임자로서 도민사회의 고통에 의당 관여해야 하는 직분이다. 그런데 부적절하다며 성가셔 하거나 타인의 고통에 대해 성찰하는 윤리적 사유의 결함이 엿보여 이 또한 아쉬움이다.

사유가 작동되지 않는 정치꾼의 입에서 부르짖는 화해와 용서는 당사자들의 가슴에 공허만 채울 뿐이다.

 

정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사회적 선(善)을 이루는 일이다. 도지사의 적절치 않은 발언을 이슈화한 언론에 대고 '법적 대응' 운운하는 무사유의 정치인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을 수 없다.

 

도정 책임자가 사유하지 못한다고 나머지 간부 공무원까지 넋 놓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성찰의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지금이라도 '도민의, 국민의 공복(公僕)'이란 초임 공무원 시절의 다짐을 되새겼으면 좋겠다.

 

2003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성찰의 시간을 지나 제주도민들에게 사과했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꼭 10년 전 노 전 대통령이 던진 이 감동은 지금 제주의 도지사와 너무도 비견된다. 

 

기자는 당시 사진기자로 현장을 취재했다. 노 대통령의 사과에 한 4.3단체 관계자는 일어서서 큰 소리로 "대통령님 감사합니다"고 외치다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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