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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준의 '아버지로 살기, 아버지로 죽기'(6)···안병욱 교수님

“이 책 한 번 읽어봐라.”

 

곰씨(서상도 형)가 점심을 먹고 공장에서 쉬고 있는 나를 제도실(製圖室)로 불러 던져준 책은 '안병욱 수상록'이었다. 1978년 겨울의 끝자락, 열일곱 살의 나는 그렇게 안병욱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나는 부산시 북구 사상동에 있는 (주)진전사에서 공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애초 약속과는 달리, 어른들의 배반으로 나는 그곳에 버려져 있었다. 부끄러운 가족사를 들추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버려져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부모도 없는 열일곱 살의 나를 버리는 일은 피우던 담배꽁초를 길가에 버리는 일보다도 쉬웠을 것이다. 양심의 가책은 잠깐이지만 냄새 나고 처치곤란의 담배꽁초를 처치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우선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버림받았다는 생각만 키우며 방황하는 내 곁에는 다행히 곰씨가 있었다. 행동이 굼뜰 뿐만 아니라 곰처럼 생겼다 하여 내가 붙인 ‘곰씨’란 별명처럼 느릿느릿, 꾸역꾸역, 그러나 누구보다 알차게 사는 건실한 사람이었다. 낮에는 그곳에서 설계일을 하고, 밤에는 경남공전에서 공부하는 모범 청년이었다. 그가 나의 사정을 어디서 들었는지 자신이 읽었던 책을 내게 읽어보라고 던져준 것이었다.

 

그러나 그 책은 사무실 한 구석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그때 나에게 필요한 것은 책이 아니었다. 인간의 따뜻한 정이었다. 버려졌다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사람의 따뜻한 마음보다 더 큰 약은 없었다. 책이란 것도 나에겐 배부르고 등 다순 놈들이나 읽을 사치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으니 돼지 앞에 진주를 던져주면서 먹어보라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 책 안 읽을끼가?”

 

그러나 곰씨는 끈질겼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나를 불러 자신이 빌려준 책을 들먹이며 나를 졸랐다. 안 읽을 거면 오늘이라도 집에 가져 갈란다. 마치 잃어버리면 안 되는 보물이라도 되는 듯 제도실 한 구석에 방치되어 있는 책을 상기시켰고, 가끔은 들춰보기도 했다.

 

무슨 책이기에 저러는 거야?

 

딱딱한 하드커버만큼이나 딱딱할 것 같은 그 책이 드디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곰씨가 읽어보라고 갖다놓은 지 보름 남짓 지나서야 나는 드디어 그 책을 펼쳤다.

 

인(忍)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
꿈이 없는 사람에게 내일은 없다.
신은 인간에게 그 사람이 극복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
오늘은 나의 최초의 날이자 최후의 날이다.

 

그날 밤 그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구구절절 가슴을 적시는 이야기들은 얼어붙었던 가슴을 녹게 했고, 꿈을 갖게 했고, 내 삶을 사랑하게 했고, 내일을 꿈꾸게 했다. 그날 밤, 안병욱 교수님은 조용히 타이르고 이제 일어서라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좌절하고 절망해 있는 나에게 아버지의 따뜻한 손을 내밀어주신 것이었다. 감당하기 어렵겠지만, 다시 버려지겠지만, 또 다시 쓰러지겠지만 혼자 감당하고 참아내고 일어서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밤새 읽고 다음날 출근을 하자 곰씨가 빙긋 웃었다. 그는 내가 어젯밤 그 책을 읽었고, 새로 태어났음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시 읽어보게, 며칠 더 빌려줄 수 있어요?”

 

나는 고마움을 그렇게 표시했다. 고맙다는 말보다 한 번 더 읽고 싶다고 하는 게 나를 위한 그의 마음에 대한 보답일 것 같았다.

 

“그러라미. 내게 당장 필요한 책도 아이고…….”

 

그는 빌려주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필요하다면 아예 선물로 줄 수도 있다는 모양새를 취했다. 결국, 잃어버리거나 파손되어서는 안 될 보물처럼 다루며 금방이라도 집에 가져갈 듯이 으름장을 놓은 것은 내가 하루라도 빨리 그 책을 읽기 바라는 마음에서 한 쇼에 지나지 않았음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책을 빌려다 두 번째 읽다가 서점에 가서 그 책을 사버렸다. 그 책을 읽기만 할 게 아니라 표시하면서 읽고 싶었고, 읽고 난 후에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마다 다시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병욱 교수님과 대화를 시작한 나는 '미와 진리의 합창', '젊은이여, 희망의 등불을 켜라' 등등 안병욱 교수님의 책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생활비도 간당간당한 월급이었지만 그 월급을 쪼개 안병욱 교수님의 책들을 구입해다 읽기 시작했다. 오늘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일을 살기 위해 나에게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다.

 

안병욱 교수님의 말씀은 학교를 떠나버린, 누구에게도 배우지 못하는 내게 인생의 의미와 삶의 자세와 방법을 가르쳐주셨고, 내일을 꿈꾸게 하셨다. 그것은 단순한 충고나 격려가 아닌 아버지의 말씀 그대로였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아버지가 내 앞에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나를 격려해주셨고, 용기를 주셨고, 힘든 인생길을 얘기해 주셨고, 그리고 혼자 일어서야 함을 가르쳐주셨다. 그분은 내가 내일도 없이 방황하고 있음을 잘 알고 계셨고,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계셨고, 작은 관심에도 용기를 얻고 혼자 일어서리란 걸 알고 계시는 듯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혼자 일어서서 당당히 걸어가리란 걸 아시는 듯했다.
‘아들아, 혼자만의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세상을 돌아보면 너보다도 더 고통스럽고 힘든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을 보려고 하고, 그들을 통해 희망을 갖고 오늘을 훌훌 털어내고 내일을 향해 걸어가거라. 인생이란 답이 없지만, 그 답을 찾아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답일 수 있으니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거라. 내 비록 너의 곁에 없지만 늘 너를 지켜보고 있고 너를 지켜줄 것이니.’

 

안병욱 교수님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시듯 나에게 이런 메시지를 매일 내게 전해주셨고, 내일을 꿈꾸게 하셨고, 일어서게 하셨고, 행동하게 하셨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게 함은 물론 보이지 않는 내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 해 주셨다.

 

그 겨울, 새로운 아버지 안병욱 교수님을 만난 나는 변하고 있었다. 세상에 대한 원망을 거두기 시작했고, 더 큰 사랑으로 보복하기 위해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내일을 꿈꾸기 위해 피곤함 속에서도 책을 보기 시작했고, 아직은 좁은 가슴이지만 세상을 품기 위해 가슴을 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말씀에 알았다고 대답한 적도 없고, 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기며 생활했던 것도 아닌데, 아버지의 말씀은 늘 나를 제어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 있었고 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했다.

 

그 겨울을 보낸 내가 공장 앞 낙동강 둑에 피어있는 개나리를 새롭게 보게 된 것도 안병욱 교수님 덕이었을 것이다.

 

사상공단(沙上工團)의 개나리

 

강바람이 차가운 사상공단
쇠 두드리는 소리에 귀가 먼
둑 위에 개나리 노랗게 웃는다
살바람 머리를 헝클고 목을 졸라도
온몸으로 웃는다
멀리서 가까이서 아지랑이
정신없이 흔들리고

굴뚝 연기 매운 사상공단
신발공장 고무냄새에 코가 막힌
둑 위에 개나리 노랗게 웃는다
검은 연기 주근깨로 얼굴에 박혀도
입을 벌려 노랗게 노랗게
온몸으로 웃는다
봄은
아픔으로 잉태해서
계절에 앞서 사랑으로 온다고 

 

이성준은?

 

=제주 출생. 제주대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단국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작가회의, 단국문인회 회원이다. 제주와 경기도에서 20여년 간 고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시인으로도 등단, <억새의 노래>, <못난 아비의 노래>, <나를 위한 연가>, <발길 닿는 곳 거기가 하늘이고 세상이거니> 등의 시집을 펴냈다. 최근엔 창작 본풀이 <설문대할마님, 어떵 옵데가?>와 소설집 <달의 시간을 찾아서>를 내기도 했다. <이청준과 임권택의 황홀한 만남>, <이야기로 풀어가는 우리 시조>, <읽기만 하면 기억되는 고사성어 365>, <글쓰기의 이해와 활용>, <통섭의 자리에 서서> 등 다양한 전문서적을 펴내기도 했다. 1년 전 고향 제주에 돌아와 제주 관련 글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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